중국산 전기자동차에 대해 최고 47.6%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놓고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의견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중국 무역 비중이 높은 독일 등이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어서다. 최근 1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후 EU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영국도 중국 전기차 관세 부과에 대해서는 EU를 따르지 않겠다며 ‘반대파’에 힘을 보탰다.
17일 블룸버그통신은 EU 회원국들이 전날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상계관세 잠정 부과 안을 두고 사전 투표를 진행한 결과 대체로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다만 독일을 포함한 일부 국가들은 기권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보였다. 해당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고 비공개로 진행됐기에 각국의 투표 결과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찬성 의견을, 독일과 스웨덴이 기권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일부 국가가 추후 더 확고한 반대 입장을 밝힐 계획이 있다고 덧붙였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달 초 중국 정부가 자국 전기차 업체에 부당한 보조금 등을 지급해 시장 질서를 해친다며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37.6%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모든 수입차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10% 관세를 합치면 최대 47.6%의 고율 관세가 부과된다. 최소 넉 달간 ‘잠정’ 부과되는 이 관세는 10월 정식 투표를 거쳐 15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을 경우 11월부터 5년간 확정 부과·징수된다.
다만 실제로 관세가 부과될지는 미지수다. 중국과 무역 비중이 높은 독일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는 국가가 적지 않아서다. 중국은 EU가 관세 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보복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와인과 코냑 등 유럽 주류에 대한 관세 부과 검토에 돌입했고 6월에는 유럽산 돼지고기에 대해서도 표적 반덤핑 조사를 실시했다. 독일이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고배기량 자동차와 스웨덴·덴마크 등의 수출 비중이 높은 유제품 등 농산물에 대해서도 차례로 추가 관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럽 산업체들도 정부에 반대 로비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2013년에도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잠정 관세를 부과했으나 다수 회원국의 반대로 확정하지 못한 전례가 있다.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 부과가 자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국가도 있다. EU의 조치는 르노·BMW·테슬라 등 중국에서 제조돼 EU로 수출되는 서방의 전기차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조너선 레이놀즈 영국 무역부 장관은 16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G7 통상장관회의에 참석해 중국 전기차의 불공정한 보조금 등에 대해 우려한다면서도 관세 부과 등을 위한 조사를 시작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수출 지향적인 산업이라면 그 분야에 맞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영국은 2023년 총 70만 대의 자동차를 수출했지만 중국 비중은 7%에 그쳐 보복 관세에 대한 우려는 덜한 편이다. 다만 영국의 내수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와 BMW, 상하이모터스 소유의 MG 등 중국 제조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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