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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함·멋보다 정통…동농의 붓끝을 엿보다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

대한제국 대신·독립운동가

창덕궁 후원 글씨 등 한곳에

9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서


“세상이 혼미한데 어떻게 멋드러진 글씨를 쓸 수 있었을까요. 동농 김가진은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며 정통에서 흔들림 없는 글씨를 쓰는데 집중했습니다.”(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동농 김가진의 생전 모습. 사진 제공=동농 김가진 서예전 추진위원회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였던 동농(東農) 김가진(1846~1922)의 첫 번째 서예전 ‘백운서경(白雲書境)’이 그의 사후 102년 만에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김가진은 대한제국 농상공부 대신 등을 역임한 고위관료이자, ‘조선민족대동단’을 조직해 총재로 활약한 독립운동가다. 그는 74세 노구를 이끌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고문으로 일했다.

이번 전시 전체를 추진하고 기획한 유홍준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전 청장은 23일 “지금껏 김가진의 서예가로서의 면모는 독립운동가, 애국계몽가로서의 명성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러 기관의 소장품이 모인 이번 전시에서 김가진의 서예 세계를 재조명하고자 한다”며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23일 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 전시 기자 간담회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동농 김가진의 자작 ‘육언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백운서경’은 동농의 글씨뿐 아니라 백범 김구 등 당대 독립운동가들이 동농과 그 가족에게 건넨 글씨 등 200여 점이 모인 대규모 근대 서예전이다. 김가진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백운동 골짜기에 ‘백운장’이라는 집을 짓고 스스로를 ‘백운동 주인’이라고 칭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백운서경’은 김가진의 서예 경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자리에서는 말년에 그가 완성한 행서·초서 서풍, ‘동농체’의 묘미와 창덕궁 후원에 걸려 있던 수많은 그의 글씨 등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23일 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 전시 모습. 연합뉴스




김가진은 힘차고 율동적인 글씨체를 추구했다. 유 전 청장은 “당시 서예계는 추사 김정희 등 청나라 서예가들의 독특한 서풍을 추종하거나 특이함으로 이목을 끌 수 있는 글씨가 유행했으나, 김가진은 이러한 것에 관심이 없었다”며 “시대에 따라 변하는 글씨의 겉모습보다는 고래부터 추구된 글씨의 본연적 가치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글씨를 약간 흘리며 멋을 추구하는 방식은 그의 50대 후반 작품에서야 비로소 나타난다.

김가진은 백범 김구 등 다른 독립운동가에 비해 후대에 그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유 전 청장은 “김가진은 대한제국의 대신이었고, 창덕궁 후원에 걸린 현판이 거의 다 그의 글씨”라며 “이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서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유인촌 전 문화재청장이 동농 김가진이 쓴 당나라 두보의 시 ‘산행’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유 전 청장을 비롯해 이동국 경기도 박물관장, 김채식 경운초당 대표(훈장) 등은 9월 10일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도슨트 형식의 강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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