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이 어두운 사각형의 방에 꽃길이 펼쳐진다. 막 들어선 관람객이 한 발을 앞으로 내밀자, 꽃잎이 흩날린다. 방에는 수선화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수선화는 ‘추사 김정희’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수선화 향은 짚향으로 바뀐다. 관람객의 발걸음이 향하는 인터미션 공간에 깔린 짚에서 나는 향기다. 은은한 향기에 취해 거닐다 보면 어느새 관람객은 18세기 조선, 예술가들의 세상에 들어서게 된다.
15일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 박물관에서 개막한 미디어 아트 전시 ‘구름이 걷히고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 중 추사 김정희의 서화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한 전시실의 모습이다. ‘구름이 걷히고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는 올해 재개관한 간송 미술관이 간송미술재단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기획한 몰입형(이머시브) &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전시다.
간송미술재단은 지난 2014년 DDP 개관전 ‘간송 전형필’에서 간송의 일대기를 그린 ‘촉잔도권’을 선보인 이후 전통 예술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특히 ‘이머시브(몰입형)_K’라는 브랜드를 구축,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미술관과 MZ 세대의 접점을 확대하는 방안을 찾는 데도 힘을 쏟았다. 몰입형 미디어 아트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예술 작품을 재해석하고, 조명과 음향 등을 활용해 관객들에게 마치 작품 속에 들어온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독특한 전시 방식이다.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압도적인 공간과, 화려한 빛, 작품에 어울리는 음악 등이 몰입형 미디어 아트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이번에 DDP에서 열리는 전시는 국내에서 최초로 열리는 국보급 전통 예술 작품을 중심으로 한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다. 전시에서는 간송 미술관이 소장한 우리나라 국보·보물 및 주요 작품 99점을 총 1,462㎡(411평)의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조영욱 투비컨티뉴 감독, 신재희 봄랩(Vomlab) 대표, 이상훈 H3 감독, 황세진 스튜디오 레논 앤 퍼스트게이트 감독 등 미디어 분야의 베테랑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훈민정음 해례본,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추사 김정희의 서화, 겸재 정선의 ‘관동 명승첩’ 등 교과서에서나 보던 전통 예술 작품들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재해석하고,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 시켰다.
관객들이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점은 ‘작품과 관객의 상호작용’이다. 개별 작품은 홀로 발화하지 않는다. 키네틱 아트, 모션 그래픽, 라이다 센서 등 다양한 기술력이 적용된 공간은 관람객의 움직임, 소리 등을 인지하며 관객과 상호작용한다. 전시는 오는 8월 15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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