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송배전망 건설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기존 규제를 풀어 송전 용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한전은 폭풍과 산불 등 위험 사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가정한 ‘계통 신뢰도 기준(N-2)’으로 전력수요를 관리하고 있다. 일부 문제가 생겨도 대규모 공급 지연이나 전압 불안정 없이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여유를 두는 형태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N-2’를 ‘N-1’으로 조정해 안전성을 어느 정도 낮추면 평소에 쓸 수 있는 전력량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N-1’으로 단계가 내려가면 정전 위험은 상대적으로 커지지만 송전량은 증가하게 된다. 지금처럼 송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N-2는 한전이 정전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망을 두 배로 깔아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망을) 조금만 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면 운영을 더 효율적으로 해 전력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한무경 전 국민의힘 의원실이 주최한 ‘효율적인 전력계통 운영을 통한 발전제약 최소화’ 포럼에서는 동해안 송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N-2 기준’을 적용할 경우 원전 1기에 해당하는 1GW 상당의 전력 생산이 덜 이뤄지게 된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이 때문에 비상시에는 ‘N-2 기준’을 적용하고 평소에는 ‘N-1’을 적용하거나 시간대별로 달리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조환익 전 한전 사장도 “송전 용량을 늘렸을 때 정전 위험성이 얼마나 커지는지,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수 있는지 등을 최대한 기술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며 “특정 시간에 한해 송전 용량을 늘리는 등 운용의 묘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력 업계도 해당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철수 한국전력 전력계통 부사장은 송전망 사용 용량 확대에 대해 “제한적으로라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다각적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전기학회에서도 워킹그룹을 만들어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전에 대해 (국민들이) 너무 민감하기 때문에 설비를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오조작이든 자연재해든 고장이 한 번 나면 큰일 난다는 부담이 크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송전망 구축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신뢰도 기준을 완화해 전력 송전 용량을 늘리는 것이 옳다”며 “망 관리자의 명백한 과실이 없다면 일부 전력 공급 장애가 발생해도 면책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안정적인 공급 문제가 달린 사안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신뢰도 기준은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며 “급격한 제도 변경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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