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를 회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건 수사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검찰이 김 여사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판단을 했지만, 이 총장이 수사심의위를 통해 외부 견해를 듣기로 결정하면서 향후 수사 결과가 180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이 임기를 단 20일가량 남긴 상황에서 외부 의견을 듣자고 결단을 내린 만큼 향후 수사심의위가 내릴 결론에 따라 쓰나미급 후폭풍이 예상된다.
◇꼬리에 꼬리 문 논란…이 총장 ‘고육책’=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총장은 23일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건을 직권으로 수사심의위에 회부했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김 여사에 대한 무혐의 판단을 보고한 지 이틀 만이다. 수사심의위 회부 대상에는 기존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외에 알선수재, 변호사법 위반도 포함됐다.
대검찰청은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결과를 보고 받고, 증거 판단과 법리 해석이 충실히 이뤄졌다고 평가했다”며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소모적 논란이 지속되는 이 사건에서 수사심의위 절차를 거쳐 공정성을 제고하고, 더 이상의 논란이 남지 않도록 매듭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 총장이 그동안 스스로 ‘성역 없는 수사’를 원칙으로 공언한 상황에서 이대로 무혐의 처분을 내릴 경우 수사 공정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수사 착수 시기는 물론 김 여사에 대한 비공개 대면 조사까지 그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지난 5월 직접 전담 수사팀 구성을 지시한 이 총장은 여러 차례 ‘특혜도, 성역도 없이’ 공정하게 수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김 여사에 대한 제3의 장소 ‘출장 조사’, 지연 보고에 따른 ‘총장 패싱’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강제성 없지만…결과에 영향 ‘가능’=지난 2018년 도입된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의 △수사 계속 △공소 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공소 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사건의 수사 적정성·적법성 등을 심의하는 기구다. 수사심의위 소집은 검찰총장 직권이나 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 150~300명 가운데 무작위로 추첨된 15명이 심의한 뒤 수사의 계속, 기소 여부 등을 판단해 권고한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이 출석해 심의 위원들에게 주장을 설명할 수 있다. 수사심의위 운영 지침 제19조는 ‘주임검사가 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만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이나 수사심의위 결정이 영향을 준 사례도 있다. 앞서 1월 이태원 참사 관련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수사심의위는 기소 등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내놓았던 수사 결과는 김 전 청장에 대한 불기소에서 기소로 180도 바뀌었다. 법조계 안팎에서 향후 수사심의위 의견에 따라 쓰나미급 파장이 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수사팀은 김 여사가 2022년 6~9월 최재영 목사로부터 300만 원 상당의 디올백, 180만 원 상당의 샤넬 화장품 세트 등을 받기는 했으나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최 목사가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국정자문위원 임명, 통일TV 송출 재개 등 청탁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수사팀은 전달되지 않은 만큼 선물이 청탁이 아니라고 봤다. 디올백은 청탁이 아닌 김 여사를 만나기 위한 수단이고 화장품은 윤 대통령 취임 축하에 대한 단순한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조만간 회의에 참석할 심의 위원을 뽑는 등 본격 절차에 돌입할 전망이다. 다만 이들 과정에 시간이 소요돼 이 총장의 임기 내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김 전 청장에 대한 수사심의위는 시민위원회 논의 이후 개회까지 11일이 걸렸다. 김 전 청장의 불구속 기소까지는 4일이 더 소요됐다.
◇불붙는 정치권 정쟁=전문가들은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심의위가 향후 내릴 결론과 무관하게 정치 폭풍을 피하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수사심의위가 어떠한 판단을 내리고, 이를 검찰이 수용·불수용할지에 따라 여·야가 정치적 공세에 나설 수 있다는 것. 결과를 두고 진영만 달라질 뿐, 정치적 역풍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총장의 수사심의위 회부에 정치권은 정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24일 서면 브리핑에서 “수사심의위를 소집한다고 김 여사와 검찰의 죄가 가려지지 않는다”며 “(수사심의위는) 검찰의 면죄부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요식 절차로 끝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권과 검찰은 김 여사 한 사람을 위해 고위 공직자들이 수백만원짜리 뇌물을 받아도 처벌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었다”며 “보여주기식 수사심의위 소집으로 (김 여사에 대해 제기된 의혹을 규명할) ‘특검 열차’를 멈춰 세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혜란 국민의힘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 브리핑 후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이 적정한 절차에 따라서 공정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켜보겠다”며 “같은 증거를 가지고 같은 법리에서 보더라도 심사하는 사람 구성이 다르지 않나. 외부 위원들이 다시 한 번 살펴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절차적 정당성과 국민 신뢰를 확보하는 절차라고 본다”고 밝혔다. ‘요식행위’라는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제는 검찰총장에게 수사심의위에 회부도 못 하는 식물총장이라고 비난하더니, 회부되자마자 ‘요식행위’, ‘검찰총장은 공범’이라고 한다”며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를 깨뜨리기 위한 시도이고 수사기관 흔들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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