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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 베니스인들의 미적 취향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파올로 베로네세의 ‘카나의 결혼식’.




이탈리아 북동쪽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베니스는 약 120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유서 깊은 항구도시다. 도시를 구성하는 섬들이 운하와 다리로 연결돼 있어 물과 다리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일찍이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며 동방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한 베니스는 나폴레옹의 군대가 침입하기 전까지 약 1000년 동안 독립적인 공화국 체제를 유지한 독특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베니스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서 르네상스 시기 동서 문물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 비잔틴과 이슬람 지역을 통해 유입된 값비싼 동방의 향신료들이 이 도시를 통해 유럽인들에게 전달됐다. 르네상스 인문학자 페트라르크는 베니스를 ‘세상의 다른 곳(Mundus alter)’이라 칭했다. 물이 흐르듯 상인들이 끊임없이 지나가는 도시 베니스에는 늘 이국적이고 진귀한 물건이 넘쳐났다.

오랜 기간 동안 베니스의 지배층은 상인들이었다. 이들의 가치관은 매우 실용적이며 개방적이었는데 이 점은 베니스 문화의 독특한 특성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피렌체 및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지로 올라선 베니스에서 화려한 색채 미학이 발달한 이유는 이 도시의 미술 후원자들이 주로 상인 계층이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파올로 베로네세가 1563년에 완성한 ‘카나의 결혼식’은 베니스 화풍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갈릴리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전환시킨 예수의 기적을 소재로 제작된 이 그림에서 종교적 경건함이나 신성한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유발하는 요소를 찾기란 쉽지 않다. 다채로운 색상의 의상을 입은 130명의 인물들이 가로 10m에 이르는 대형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작품은 종교화라기보다는 풍속화에 가깝다. 음악 연주를 들으며 만찬을 즐기고 있는 하객들의 모습은 동시대 베니스인들의 풍요로운 삶을 대변한다. 특히 물이 포도주로 바뀐 사실에 놀라기보다는 포도주의 맛을 음미하는 듯한 미식가의 모습에서 삶의 기쁨을 찬미하는 당시 베니스인들의 쾌락주의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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