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이 작년하고는 비교가 안 돼요. 바닥이야, 바닥. 날씨가 애매하니까 여름 옷도 가을 옷도 안 사려고 한다니까요.”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상인)
기후변화로 여름이 길어지면서 가을 옷을 준비하는 의류업계도 매출이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경기에 소비를 줄이는 흐름에 더해 더운 날씨 때문에 간절기 옷을 구매해야 한다는 소비자의 욕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서울경제신문이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고투몰과 동대문패션몰 등 주요 의류 소매상가를 방문한 결과 가을을 맞아 간절기 의류를 판매 중인 의류 소상공인들은 줄어든 매출로 고충을 토로하고 있었다. 고투몰에서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상인 A 씨는 “작년과 비교해 올해 30~40% 매출이 줄었다”며 “날씨가 더워져서 구매해둔 가을 옷 ‘신상’은 잘 팔리지 않고, 여름 옷 재고만 간간이 나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매대에 놓인 옷들 대부분은 블라우스, 셔츠 등 얇은 초가을용 옷이 많았다. 간간이 가디건이나 니트 조끼 등 두꺼운 소재로 만들어진 의류도 있었지만 ‘아사면’ ‘인견’ 등 여름용 원단으로 만든 옷을 판매하는 가게도 눈에 띄었다.
저조한 판매는 이른 추석과도 연관이 있다. 의류업계에서는 통상 추석을 가을 시즌의 시작으로 삼는다. 그런데 올해 추석 연휴는 16~18일로, 지난해 추석(9월 28~30일)과 비교하면 2주가량 빨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늦은 폭염까지 찾아왔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27일 기준 올해 9월 폭염일수(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 수)는 6일로, 최근 10년간 9월 폭염이 발생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더위로 상인들은 도매 옷 주문마저 늦췄지만 예상보다 폭염이 길어졌다. 고투몰 상인 B 씨는 “9월 초에는 초가을용 의류를 주문하고, 10월에는 두꺼운 늦가을용 옷을 사는데 확실히 올해 덥다 보니 옷 주문도 늦어지긴 했다”면서 “경기가 안 좋아 옷 소비를 줄이려는 분위기도 느껴진다”고 전했다.
동대문 패션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두타몰에서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C 씨는 “사계절이 뚜렷할 때에는 가을 옷으로 바꿔 판매하면 바로 반응이 왔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면서 “매출이 30% 줄어서 걱정이다”라고 호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라리 기다렸다 겨울 옷에 집중하자’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판매자 커뮤니티에서는 “어차피 금방 추워질 텐데 가을 장사를 포기하고 겨울 장사에 집중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여름의 장기화는 한 해 전체 의류 매출에도 영향을 끼친다. 두꺼운 가을·겨울 옷에 비해 여름 옷은 단가가 싸고 단순하다. 직접 디자인한 옷을 통해 온라인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27)씨는 “시간이 갈수록 고객들이 간절기에 점점 돈을 쓰지 않는다”며 “그래서 디자인이나 제품 기획을 할 때 재킷 대신 가디건처럼 ‘가성비 좋은 옷’을 준비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알테쉬’로 중국공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상인들이 늘어난 데다가 2000년대 이후 인력 유출로 고령화를 겪고 있는 국내 봉직공장도 줄줄이 타격받고 있다. 서울 동대문에서 봉직공장을 운영하는 천 모 씨는 “지난해보다 가을 옷 주문이 90% 이상 줄었다”면서 “9월 중순부터 맨투맨·후드티가 팔려야 하는데 주문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진정한 장사는 가을부터 시작된다’는 업계 분위기와는 달리 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조차 바뀌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기후위기로 인해 2027년까지 건설업(-4.90%), 부동산업(-4.37%)에 이어 섬유 의복 및 가죽제품 분야에서 부가가치의 2.53%가 줄어드는 피해가 예상된다.
홍진환 수원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을이 짧아지는 만큼 시즌에 맞춰 의류를 모두 판매하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이라면서 “정해진 연중 일정에 맞추기보다는 날씨에 맞춰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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