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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포커스] NASA도 큰일날 뻔…우주방사선 견디는 반도체 뜬다

강한 방사선에 취약한 기존 반도체

NASA 목성 탐사도 좌초 위기 겪어

단단한 다이아몬드 반도체 등 해법

日 기업, 다이아몬드 공정 앞다퉈 개발

유럽선 나노와이어로 태양전지 제작

산화갈륨·SiC 기반 성능 개선 시도도

반도체 관련 이미지. EPA연합뉴스




이달 15일 목성을 향해 날아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탐사선 ‘유로파 클리퍼’는 세달 전까지만 해도 임무 실패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탐사선의 전자장치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지구 자기장보다도 2만 배 강한 목성의 우주방사선을 견딜 수 없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방사선에 피폭되면 신체가 심하게 손상되듯 우주방사선이 반도체의 물성을 손상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해 반도체 집적회로(칩) 자체가 작동을 멈추거나 성능이 저하되면 29억 ㎞ 밖 목성을 돌며 지구와 교신해야 하는 탐사 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진다. NASA는 두꺼운 금속케이스로 방사선을 차폐하는 것도 모자라 목성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긴 타원궤도로 공전하는 방식을 설계하며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반도체의 결함을 회복시키는 어닐링 공정도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세한 반도체 칩 하나가 50억 달러(6조 9000억 원) 규모 대형 우주탐사 임무의 성패를 가를 뻔한 것이다.

유로파 클리퍼의 목성 공전 궤도(하늘색). 목성 방사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근접을 피하는 긴 타원궤도로 설계됐다. 사진 제공=NASA


뉴스페이스(민간 주도의 우주개발) 시대를 맞아 우주 탐사가 활발해지면서 우주방사선을 견딜 수 있는 반도체, 이른바 내방사선 반도체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퓨처에 따르면 텔레다인, 인피니온,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마이크로칩 등 일부 기업 주도로 내방사선을 포함한 우주용 반도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우주반도체 시장은 2032년까지 43억 달러(5조 9000억 원)로 아직 초기 단계지만 2030년대 유인 우주 탐사, 우주 수송 상용화 등에 맞춰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련 업계와 학계가 다양한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우선 방사선을 잘 버틸 수 있는 견고한 소재로 반도체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 일본 정밀부품 제조사 오브레이는 현재 2인치 크기의 다이아몬드 웨이퍼(기판)를 4인치로 키우기 위한 연구개발(R&D)을 조만간 완료한다. 더 큰 웨이퍼를 만들수록 반도체 대량생산이 유리해지는 만큼 오브레이가 다이아몬드 반도체 상용화에 한발 더 다가갈 전망이다.

다이아몬드 이미지. 사진 제공=오브레이


가장 단단한 광물로 알려진 다이아몬드는 외부 충격은 물론 섭씨 300도의 고온, 방사선까지 잘 견뎌 우주반도체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전기적 특성도 우수하다. 다만 회로를 새기는 판인 웨이퍼를 기존 실리콘이 아닌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단가가 비싸고 희소하기 때문이다. 오브레이는 화학적 기법을 통해 다이아몬드 결정을 점차 성장시켜 기판으로 만드는 독자 기술을 가졌다.

오브레이뿐 아니라 일본 기업과 대학들이 이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한 가지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고 현장의 방사선으로 인해 제염이나 원전 해체에 필요한 센서 등 전자장비들이 고장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응해 ‘오쿠마 다이아몬드 디바이스’라는 기업이 40억 엔(370억 원)을 투자해 후쿠시마 근처에 세계 최초의 다이아몬드 반도체 제조공장을 짓고 제품 생산을 준비 중이다.

일본 오쿠마 다이아몬드 디바이스의 다이아몬드 반도체 제조공정 설명 그림. 사진 제공=오쿠마 다이아몬드 디바이스




일본 사가대는 지난해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반의 전력 장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와세다대에서 창업한 스타트업 ‘파워 다이아몬드 시스템’도 같은 해 다이아몬드 전력 장치의 성능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전기연구원이 지난달 오브레이와 다이아몬드 전력반도체 개발을 위한 국제 공동협력에 착수했다. 각자의 강점인 전력반도체와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을 융합해보겠다는 것이다.

또다른 방사선 저항법도 있다. 스페인 말라가대, 독일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시스템 연구소 등이 참여한 국제 컨소시엄은 유럽연합(EU)으로부터 400만 유로(60억 원)를 지원받아 4년 간 ‘우주에서 나노와이어 태양전지를 활용한 무손실 에너지 하베스팅(ZEUS)’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우주선의 핵심 동력원인 태양전지 역시 반도체의 일종으로 우주방사선의 영향을 받고 고장을 일으켜 임무 실패로 직결될 수 있다. 연구팀은 지름이 200nm(나노미터·10억 분의 1미터)로 머리카락의 1000분의 1에 불과한 미세한 나노와이어를 활용해 태양전지를 개발할 계획이다. 특유의 기하학적 구조로 인해 방사선 저항력이 크게 높아지고 빛 흡수 효율도 향상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말라가대 연구진이 ‘우주에서 나노와이어 태양전지를 활용한 무손실 에너지 하베스팅(ZEUS)’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말라가


영국 우주국은 지난해 기업 아이스모스의 관련 기술인 실리콘카바이드(SiC) 기반 ‘내방사선 고전압 초접합 모스펫(MOSFET)’ 반도체 개발에 30만 파운드(5억 원)을 지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과학기술대(KAUST) 등도 산화갈륨 같은 내방사성 소재를 발굴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과학기술대(KAUST) 연구진이 산화갈륨 반도체를 다루고 있다. 사진 제공=KAUST


국내에서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재료연구원이 우주방사선이 반도체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규명해 국제학술지 ‘나노머티리얼즈’ 8월호에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연구팀은 내방사성 소재인 이황화몰리브덴 기반 반도체에 우주방사선의 일종인 감마선을 조사해 전기적 특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아황화몰리브덴에서 전자가 비정상적으로 빠져나와 절연체와 경계면의 공기층으로 들어가는 ‘전자 터널링’ 현상이 발생하고 이것이 고장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병엽 원자력연 첨단방사선연구소장은 “방사선으로 인해 화학적·물리적 성질이 나빠지는 열화현상의 근본적 원인을 밝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원자력연은 우주 환경을 모사에 상용 반도체의 방사선 영향을 테스트하는 우주환경모사장치를 산하 경주 양성자가속기 시설에서 운영 중이다.

우주항공청가 첫 국제 주도 프로젝트로 추진 중인 1억 5000만 ㎞ 거리의 심우주 거점 ‘제4라그랑주점(L4)’ 탐사도 우주방사선 연구를 포함한다.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L4에 탐사선을 띄우고 향후 달과 화성 등 심우주 진출 시 필요한 태양 우주방사선 관측을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경북 경주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에 구축된 우주환경모사장치. 사진제공=한국원자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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