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북한강에 유기한 현역 군 장교가 치밀하게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6일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피의자 30대 남성 A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3시쯤 부대 주차장 내 자신의 차량에서 30대 여성 B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목을 졸라 살해했다. 피해자의 시신에 옷가지를 덮어놓고는 차량을 빠져나온 뒤 근무를 이어간 A씨는 퇴근 뒤 오후 9시쯤 부대 인근 건물에서 시신을 훼손했다.
이미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인 이곳에서 A씨는 직접 준비해온 도구들로 혈흔 등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경찰이 A씨의 검거 이후 압수수색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건물 옹벽과 바닥 등이 철거된 상태였다.
A씨는 시신 훼손을 위해 찾았던 또 다른 공사장에서도 주차가 가능한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를 목격했다는 공사장의 한 관계자는 “나갔다 들어오니 차 한 대가 있어서 ‘뭐냐’고 물으니 ‘주차하면 안 되느냐’고 그러더라. 안 된다고 나가라고 했더니 차를 뺐는데 그 안에 물체가 하나 있긴 있더라”고 설명했다.
결국 철거 공사 중인 부대 인근 건물에서 시신을 훼손한 A씨는 10여년 전 자신이 근무한 경험이 있던 강원 화천군을 유기 장소로 택했다. 이튿날인 26일 오후 9시 40분쯤 화천 북한강변에 시신을 유기했다. 유기할 때는 시신이 금방 떠오르지 않도록 시신을 담은 봉투에 돌덩이를 넣고 테이프로 밀봉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화천까지 국도로 이동했고, 중간중간 시신 훼손에 쓰인 흉기를 버렸다고 진술했다.
그는 실종 신고를 막기 위해 B씨가 살아 있는 것으로 위장하려고 했다. B씨 휴대전화를 이용해 소속 부대에 “휴가 처리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로 결근을 통보했고, B씨의 가족과 지인에게도 "어디 가서 머리를 식히고 오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A씨는 28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산하 부대로 전근 발령을 받은 뒤에도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며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이 같은 행동을 두고 표창원 프로파일러는 “두뇌 회전이 빠르고 전략을 세우거나 합리적 판단에 능한 직업적 특성을 가진 사람이다 보니 정신적 역량을 총동원해 증거 인멸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달 2일 북한강에 유기한 B씨 시신 일부가 떠오르면서 A씨가 노린 완벽한 증거 인멸은 무산됐다. 만일 시신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뒤늦게 실종 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될 수밖에 없었고, A씨가 용의선상에 오르더라도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A씨의 자백 없이는 장기 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주민 신고로 수사에 착수해 B씨 시신에 대한 지문 감식과 디옥시리보핵산(DNA) 감정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 경찰은 B씨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거쳐 A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고, 시신 발견 하루 만인 3일 검거했다.
춘천지법이 경찰이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혐의로 4일 청구한 구속영장을 5일 발부해 A씨는 구속됐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