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국면과 통상 환경 불확실성에 내년 1%대 성장을 눈앞에 두고 있는 정부가 적절한 재정과 통화정책 조합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재정의 75%를 쏟아붓는 한편 추가경정예산 및 기준금리 인하, 대출 확대 등의 카드를 놓고 최적의 시점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본지 12월 14일자 6면 참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경 편성과 관련된 질의에 “내년도 대외 불확실성 및 민생 상황을 봐가면서 적절한 대응 조치를 계속 검토하겠다”며 “민생이 어렵고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돼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추경의 필요성을 간접 시인한 셈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 통과된 예산은 경제성장에 -0.06%포인트 영향을 준다”며 “올해 2.2% 성장을 예상하고 있는데 조금 내려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가 될지 2.1%가 될지는 지켜봐야 된다”고 전했다. 2% 턱걸이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최대 15조 원가량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안에서 감액한 4조 1000억 원에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소요 등을 고려한 규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상계엄 선포 전에도 이미 재정 확장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감액된 만큼은 증액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빠른 추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부양 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담느냐의 문제이지 연초에 추경을 해야 한다는 데는 야당과 정부의 의견이 같을 것”이라며 “1월에 바로 편성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도 설 연휴 전후 추경예산안이 편성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국 17개 시도지사들도 추경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이날 서울 시도지사협의회 대회의실에서 박형준 부산시장 주재로 개최한 ‘제60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임시총회’에서 “조속한 추경 편성과 재정의 신속 집행, 규제 완화, 확장 재정 등 강력한 경제 회복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제부총리 출신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민생 추경, 신속 추경, 슈퍼 추경’이 필요하다며 “내년도 예산안 감액 폭을 고려할 때 통상적인 추경 규모를 훨씬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추경 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상반기에 예산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의 75%를 상반기에 배정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2025년도 예산 배정 계획’을 확정했다.
정부는 재정 확대를 뒷받침할 금리 인하도 바라고 있다. 다만 원·달러 환율이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에도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날보다 3.9원 오른 1438.9원에 마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금리를 추가 인하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환율이 신경 쓰이는 상황”이라며 “미국의 통화정책에 발맞춰 조금씩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은은 내년 1월 1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개최해 기준금리를 결정하게 된다.
대출 확대 정책도 정부의 카드 중 하나다. 재정 건전성 악화를 최소화하면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들은 대출 한도 조정에 나선다. 신한은행은 이날부터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늘린다. 하나은행도 12일부터 비대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상품 판매를 재개했다. 우리은행 역시 비대면 부동산 금융 상품 8종에 대한 판매를 23일부터 다시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대출 지원 확대 및 만기 연장도 정부가 매번 검토하는 사안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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