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 등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6개 법안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곧 재의요구안을 재가하면 이들 법안은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농업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유통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과 국회법·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심의·의결했다. 한 권한대행은 “오로지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유통가격안정법은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고, 다른 농산물은 ‘기준 가격’ 이하로 떨어질 경우 국가재정을 투입해 생산자에게 손해를 보전해 주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법은 ‘예산안 자동 부의’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이, 국회증언감정법은 국회가 증인·참고인 출석이나 서류제출을 요구할 경우 기업은 영업비밀 보호 등을 이유로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한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법안별 거부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우선 농업4법은 시장 기능을 왜곡해 농가의 과잉 생산을 유도하고 정부엔 재정부담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한 권한대행은 양곡관리법에 대해 “(지난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부가 이의 제기한 남는 쌀 의무매입에 대한 우려 사항이 보완되지 않았다”며 “뿐만 아니라 양곡의 시장가격이 일정 가격 미만인 경우 정부가 그 차액을 지급토록 하는 양곡가격안정제 도입 규정이 추가됐다”고 지적했다.
농수산물유통가격안정법에 대해선 “농산물 가격안정제가 시행될 경우 농산물 생산이 가격안정제 대상 품목으로 집중돼 농산물 수급 및 가격이 매우 불안정해질 것”이라며 “농산물 가격 지지 중심에서 농가 소득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농업정책을 전환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는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농어업재해대책법과 농어업재해보험법에 대해선 “재해복구비 외에 생산비까지 보상하는 것은 재난안전법상 재해 지원의 기본 원칙에 반하며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 문제,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며 “보험의 기본 원칙에도 반하고 재해 위험도가 상이한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한 기본료율이 적용돼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고 밝혔다.
국회법은 정부에 예산 편성권을 부여한 헌법 정신에 위배돼 거부권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한 권한대행은 국회증언감정법을 두고는 “헌법상 비례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해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기업 현장에서도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중 재의요구안을 재가할 것으로 보인다. 거부권이 최종 행사되면 해당 법안은 국회로 되돌아가 재표결 절차를 거쳐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이들 법안은 윤석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 26~31번째 법안이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탄핵소추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내란 수괴 윤석열의 뜻을 따르겠다는 선언”이라며 “국정 운영에 어떤 권한도 없는 내란 공범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말고, 오늘 당장 민생 개혁법안을 공포하라”고 말했다. 향후 국정 혼란은 한층 심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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