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만 물어보고 물건 사는 사람은 없어요.”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의 한 인형 가게에서 20대 커플이 인형을 집어 들었다가 가격이 3만 5000원이라는 말을 듣고는 바로 내려놓았다. 이 가게는 오전 내내 인형을 사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근처 대형 트리가 전시된 별마당도서관이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고물가·고금리에 소비심리가 위축된 데다 탄핵 정국으로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지며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혔다. 내년 경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내수 부진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관련 기사 3면
이날 서울 주요 상권으로 손꼽히는 명동·삼성동·홍대·영등포 일대는 대형 트리와 썰매 장식 등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런 분위기를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졌지만 정작 상점에서 구경만 할 뿐 물건을 사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명동의 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는 점심시간 직후에도 한산했다. 이전에는 중심 거리에서 멀지 않은 데다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인기가 높았지만 이날은 2개 층 40개 테이블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이 카페 매니저는 “예전에는 점심시간이 지나면 좌석이 빼곡하게 들어찼지만 오늘은 대목인 연말인데도 사람이 적어 당황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 조사’에 따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달보다 12.3포인트 하락한 88.4로 조사됐다.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년 3월(-18.3포인트)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이 수치가 100보다 작으면 소비자 심리가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연말, 내년 초까지 매출 확대를 기대했던 유통 업계와 자영업자들의 근심도 커졌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지출뿐 아니라 기업투자와 정부지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내수 침체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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