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체포가 말이 돼? 저기 차 들어간다! 막아!”
2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진보단체 집회 참석자들과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서로를 향해 욕설을 주고받고 있었고, 차량 한 대 한 대가 대통령 관저로 접근할 때마다 시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고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가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을 수사하고 있는 수사기관들이 이날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집행한다는 소식을 들은 진보·보수단체 지지자들이 몰린 탓이다.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을 수사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공동으로 구성한 공조수사본부(공조본)가 한남동 관저로 진입해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집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졌다. 체포영장 집행 기한은 오는 6일까지다.
경찰은 이른 아침부터 집회에 대비를 하는 모양새였다. 관저 진입로 쪽에는 경찰 버스 8~9대가 차벽을 형성하고 있었고, 경찰 저지선 또한 관저 입구에 3중으로 마련돼 있었다. 경찰은 통행하는 시민들에게 목적지를 물으면서 우회로로 인도했다. 이내 화단 위까지 사람들이 가득 찰 정도로 통행이 어렵게 되자 경찰은 기동대를 추가 합류시켜 질서 관리에 나섰다.
가장 먼저 현장에 몰린 것은 보수단체였다.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오전 10시께부터 한남초등학교 인근에 집결해 수사기관이 관저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차량이 관저에 접근할 때마다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 시민들은 경찰에 “제발 문을 열어달라.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며 읍소하기도 했다.
일부 보수 유튜버들은 언론사 촬영기자를 향해 “왜 찍냐”며 고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현장에서 일부 유튜버들은 “11시에 수사기관이 온다더라”, “민주노총이 쇠파이프를 들고 온다”고 말하는 등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혼선을 유발하기도 했다.
곧이어 진보단체 관계자들도 현장에 속속이 도착했다. 진보 측 지지자들은 ‘윤석열 탄핵’, ‘윤석열 체포’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윤 대통령의 체포를 촉구하는 구호를 내뱉었다. 윤 대통령을 향해 “후쿠시마에 던지자”고 외치는 등 격양된 문구도 눈에 띠었다.
보수단체와 진보단체가 한 장소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이내 관저 앞은 싸움판으로 변했다. 각 단체는 서로에게 고성과 욕설을 내뱉었고, 일부 장소에서는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 경찰이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한 윤 대통령 지지자가 진보단체를 향해 “벌레 XX, 빨갱이 XX”라고 소리를 지르자 진보단체 관계자도 “얌전히 체포나 당하라”며 맞받아쳤다. 다른 곳에서도 진보 측 지지자가 “누가 국회를 총 들고 쳐들어가냐. 우리나라는 말로 하면 말 잘 듣는다”고 외치자 보수단체 측은 “너나 말 잘 들어라.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은 현상금을 걸어야 한다”고 되받아쳤다.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 보수단체 참석자가 경찰이 조성한 저지선을 밀면서 반대 측 여성 참가자가 밀려 넘어지기도 했다. 상황이 발생하자 양 측은 또다시 서로를 향해 “왜 미냐”, “누가 거기 서 있으라고 했냐”며 욕설을 주고받았다.
한 보수 단체 참석자 노인은 휴대전화로 진보 측 여성 참석자를 촬영하다 기기를 빼앗기자 “내놓아라”라고 외치며 여성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다. 한 남성은 반대 측 피켓 더미를 들고 도망가다 붙잡혀 한바탕 육탄전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양 측 참가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땀을 뺐다. 감정이 격화된 지지자들에 의해 저지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경찰은 “제발 통행로를 막지 말아달라”며 확성기를 통해 외쳤다. 진보 참가자가 대형 현수막을 펼치려 하자 경찰은 “제발 자극하지 말아달라”며 제지하기도 했다.
한편 공수처는 영장 집행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날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서 취재진과 만나 “체포영장과 수색영장은 원칙에 따라 권한 행사를 하겠다”며 “지금 공조수사본부 차원에서 협의하고 있고 기한 내(6일)에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오 처장은 대통령경호처에 공문을 발송하는 등 체포영장 집행에 반발할 경우 강경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오 처장은 “권리행사방해와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의율(법규를 사건에 적용)할 수 있음을 경호처에 엄히 경고했다”며 “바리케이드나 철문 등을 잠그고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는 것은 공무집행방해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은 반발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1일 입장문을 내고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판사에게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불법 무효로서 사법의 신뢰를 침해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도 없는 공수처가 관할까지 옮겨 청구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위법한 행위를 한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변호인을 통해 A4용지 한 장짜리 메시지를 내고 “나라 안팎의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면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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