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천 개의 공장을 원래 있어야 할 곳인 미국으로 다시 불러들일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관세와 현명한 정책을 통해 이뤄질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루 전인 19일 오후(현지 시간) 워싱턴DC ‘캐피털원 아레나’에서 개최한 대선 승리 축하 집회에서 “우리는 세금과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물가를 내리고, 임금을 인상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2기의 경제정책 목표가 미국 일자리 확대에 있고 정책 수단의 중심에 관세가 있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에서 ‘메이드 인 USA’ ‘공장’ ‘일자리’ 등 미국 제조업 활성화와 무역수지 개선을 강조하는 표현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이날 대화했다면서 쿡 CEO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심지어 미사일 방어 강화를 위한 아이언돔 건설 계획을 밝히면서도 “이 방어막은 모두 미국에서 만들 것(made in USA)”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관세 효과가 국제사회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UAE)의 투자회사는 미국에 200억~4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고 소프트뱅크도 1000억~2000억 달러의 투자 약속을 했다”며 “(우리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미국에서 수백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트럼프는 1977년 제정된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 사용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비상 권한(emergency powers)을 활용해 국가와 기업인들이 거대한 인공지능(AI) 공장을 짓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IEEPA는 미국의 안보나 외교, 경제 등에 위협이 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외국과의 무역 등 경제활동을 광범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법안이다. 트럼프가 보편 관세 등 대규모 관세정책을 실행할 근거로 꼽혔던 대표적인 법안이다.
트럼프가 관세를 대규모 투자 유치 등 협상 도구로 쓰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하면서 글로벌 무역에서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협상을 위해서라면 필요한 수준의 관세보다 더 강도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각국을 상대로 ‘고강도 관세 부과→미국이 원하는 더 큰 경제 기여 확보(그랜드 딜·grand deal)→관세 인하’ 패턴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애나 웡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더 높은 관세를 발표할수록 트럼프가 ‘그랜드 딜’을 노리고 있다는 의미”라며 “협상이 타결되면 관세는 재빨리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결국 상대국 입장에서는 그랜드 딜이 타결될 때까지 정확한 최종 관세율을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의미다.
월가에서는 트럼프의 관세나 이민자 축출 등의 정책이 고강도로 시행될 경우 이른바 ‘채권 자경단’으로 불리는 국채금리 상승세에 막힐 가능성을 보고 있다. 싱어캐피털마케츠의 전략가 제이미 컨스터블은 “취임 후 9일 정도 트럼프는 꽤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겠지만 채권시장도 그들만의 견해가 있다”며 “미국 10년물 수익률이 상징적 한계인 5%를 넘어서면 주식시장에서 매도가 일어나 트럼프의 정책을 제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우려를 의식한 듯 트럼프는 취임 첫날 관세 부과에 따른 시장 충격을 피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트럼프는 이날 취임사에서 “우리는 우리 국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다른 나라를 배불리기 보다, 관세와 외국에 대한 세금을 통해 우리 국민들을 부유하게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대외 수입청을 신설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트럼프가 중국과 캐나다, 멕시코와의 무역 관계를 평가하는 연구를 행정부에 지시하는 명령을 내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곧바로 관세를 부과하는 대신 추후 시행될 관세정책에 대한 청사진을 구체화하는 정지 작업부터 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블룸버그는 “베이징을 바로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기로 한 결정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협상을 성사시키려는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다만 앞으로 몇 주, 몇 달 안에 무역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관세와 이민자 축출 등이 물가와 금리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WSJ는 경제학자 7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올해 말 기준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전망치가 전년 대비 2.7%로 집계됐다고 이날 밝혔다. 대선 전인 지난해 10월 설문 당시의 2.3%보다 높아졌다. 지난해 12월 CPI가 2.9%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취임 첫해 물가가 거의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트럼프는 순조로운 출발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새로운 행정부는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국경 위기 등 국내외에서 재앙 같은 상황을 이어받았다”며 “선거 이후 주식시장은 급등했고 중소기업 낙관론은 39년 만에 최고치(실제로는 2018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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