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공정성 논란으로 헌법상 독립 기구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해 여당이 칼을 빼 들었다. 보수층을 중심으로 떠오른 부정선거 의혹을 겨냥한 여론전부터 방만한 조직을 뜯어고치기 위한 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이중·삼중으로 압박을 가하는 양상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과 맞물려 정치권에서 개헌과 함께 선관위 개편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을지 주목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채용 비리와 근무 태만의 온상으로 전락한 ‘마피아 패밀리’ 선관위에 대해 국민적 불신이 커지고 있다”며 “이번 주에 특별감사관법을 당론으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원 감사로 특혜 채용 등 선관위의 복마전 행태가 드러났음에도 헌법재판소가 감사원의 선관위 감사에 제동을 건 만큼 입법을 통해서라도 비위 행위 척결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권 원내대표는 “선관위는 제3자의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다”며 “그것이 바로 특별감사관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선관위 개혁을 위해 특별감사관과 사무총장 인사청문회 도입을 비롯해 법관의 선관위원장 겸임 금지, 시도 선관위 대상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도입, 지방선관위 상임위원 임명 자격 외부 인사로 확대 등 5대 선결 과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여당이 지적하는 선관위의 문제점은 크게 선거 관리 부실과 방만한 인사 운영 등 크게 두 가지다. 우선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로 대표되는 사전투표 관리 부실 논란은 현재의 강성 여당 지지층 사이에서 통용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의 발단이 됐다. 감사원이 당시 의혹 해소를 위해 선관위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음에도 선관위는 ‘직무감찰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며 기관 간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선관위는 감시받지 않는 성역이냐”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선관위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듬해 ‘아빠 찬스’를 비롯한 고위직 자제 채용 비리 의혹이 또다시 불거지자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여론이 들끓자 “감사 범위를 확인받겠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결국 헌재가 지난달 27일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지만 감사원이 같은 날 선관위가 최근 10년간 진행한 291차례 경력직 채용에서 878건의 규정 위반을 저질렀다고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김세환 전 사무총장이 재임 시절 선관위 명의의 정치인 연락용 ‘세컨드폰’을 만든 사실도 확인돼 파문이 일었다.
선관위는 감사원 결과가 발표되자 입장문을 통해 “선관위 직무감찰 결과에 따른 일부 고위직 자녀 경력 채용 문제와 복무 기강 해이 등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국회에서 통제 방안 마련 논의가 진행된다면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연루 직원 17명에 대한 징계에 착수하는 한편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한시적 특별위원회를 꾸려 조직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선관위의 ‘셀프 개혁’에 기대할 것은 없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실제 국회가 선관위에 손을 대기 전에 땜질식으로 자구책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위 내부 감찰 조직이 있지만 ‘제 식구 감싸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감사위원회를 외부 인원 과반수 구성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며 “‘선관위 흔들기’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어도 선관위의 비리가 확인됐고 역할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의혹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당 의원들도 선관위를 겨냥한 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사전투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 의원은 “사전투표를 부재자 투표로 보완하고 본투표일을 연장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외에 이달희 의원은 투표함 탈취 등 사고 예방을 위해 투표함 송부 과정에 경찰공무원 동행을 의무화하는 공직선거법을 지난달 대표 발의했고 박수민 의원은 선거와 투개표 시스템을 점검하는 ‘특별점검법’을 조만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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