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 경영진이 협력사와 입점사·채권자들에게 고개 숙였다. 회생절차 개시로 밀린 납품 대금과 임대 점포 정산금 등 상거래채권을 중소기업·영세업자부터 순차적으로 전액 변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이번 사태에 책임지는 자세보다는 각종 논란을 해명하는 데 주력하면서 홈플러스를 둘러싼 불안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과 조주연 홈플러스 사장 등 경영진은 14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기업회생절차 돌입에 따른 각종 피해에 대해 사과했다. 조 사장은 “이번 회생절차로 불편을 겪고 있는 협력사·입점주·채권자 등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주주로서의 권리를 모두 내려놓고 책임 있는 자세로 모든 채권을 변제함으로써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가 이달 4일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지 열흘 만에 이뤄진 공개 사과다.
조 사장은 “13일까지 3400억 원의 상거래채권을 상환했다”며 “대기업과 브랜드 점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세업자 채권은 곧 지급 완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일 기준 현금 시재가 약 1600억 원이고 영업을 통해 매일 현금이 유입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잔여 상거래채권 지급도 문제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6월 이후 정산받는 대기업에는 홈플러스가 대금을 분할상환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조 사장은 또 “전일 기준 하이퍼(대형마트), 슈퍼, 온라인 거래 유지율은 95% 수준”이라며 안정적인 거래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에서 홈플러스는 자구책을 내놓기보다 이제까지 제기된 각종 논란을 해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김 부회장은 MBK가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하락을 인지하기 전부터 기업회생절차를 준비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신용등급 하락이 확정된 후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긴급히 검토하고 실행했다”며 “기업회생은 주주(MBK)가 가장 큰 희생을 당하는 절차지만 부도를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신용등급 하락을 인지하고도 카드 대금을 기초로 한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해 투자자 피해를 키웠다는 의혹 역시 부인했다.
홈플러스 인수 후 매출이 많이 나오는 점포들을 매각한 후 재임차하는 방식(세일앤드리스백)을 운영해 경쟁력이 악화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세일앤드리스백은 많은 유통 회사들이 하고 있는 방식으로 이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홈플러스는 이마트·롯데마트 등 경쟁사보다 지난해 매출 성장률이 더 높고 문 닫은 점포도 적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재를 출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답변드리기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김 부회장은 추가 점포 매각·폐점 등의 구조조정을 회사 주도로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추진해오던 홈플러스익스프레스의 매각 작업은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홈플러스는 이날 간담회를 통해 빠른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납품 업체들은 홈플러스의 상환 계획을 받아들여 납품을 이어가면서도 규모를 줄이는 등 조정에 나서고 있다.
홈플러스에 제품 공급을 일시 중단했던 식품 업체의 한 관계자는 “순차 변제를 이유로 다시 납품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음 달 말로 예정된 채권 도래일까지는 공급 규모를 기존보다 20~30%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마트노조 또한 “김 부회장이 간담회에서 대부분 답변을 직접 했지만, 정작 MBK의 책임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MBK가 홈플러스를 실질적으로 직접 경영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홈플러스를 둘러싼 시장 불안이 확산되면서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금융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원·은행연합회·기업은행 등은 이날 관계기관점검회의를 열고 홈플러스 회생절차 과정에서 협력 업체에 대한 대금 지금 동향 등을 점검하기로 했다. 또 국토교통부는 홈플러스 매장을 자산으로 편입한 5개의 리츠(REITs) 운용사를 대상으로 점검에 나섰다. 대출금과 자산 현황, 임차료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리츠의 향후 대응 방향 등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