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처음 했을 때 결혼하고 가정도 있는데 경북 문경에 계신 부모님께 용돈 정도가 아니라 생활비까지 챙겨드려야 했습니다. 월급만으로는 안되니깐 투자로 꾸준히 수익을 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죠.”
여의도 증권가에서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이홍구 KB증권 대표는 26일 서울 여의도 KB증권 본사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투자에 뛰어든 배경에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 KB증권 전신인 현대증권에 입사해 증권업계에 발을 처음 디딜 때부터 투자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투자로 돈을 벌면 좋고 안 벌면 그만이 아니라 무조건 일정 수익을 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투자를 했다”며 “돈 벌어서 술 마시고 자동차 살 여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투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절박한 환경을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런 환경에서 투자를 공부했던 이 대표는 어릴 때부터 ‘경제관념’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자녀들의 금융교육도 일찍 시작했다. 딸과 아들이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은행 계좌를 만들어 용돈을 저축하게 했고 돈이 어느 정도 모이자 증권 계좌를 텄다. 증권사에 다니던 이 대표가 추천 종목을 5개씩 내밀면 자녀들이 직접 선택해 투자하면서 수익률을 체감하고 재미를 가질 수 있게 했다. 기본적 투자 원칙을 알도록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라는 책도 선물했다.
이 대표는 “아이들이 계좌에서 돈이 불어나는 것을 느끼니 용돈을 바로 쓰지 않고 돈이 생길 때마다 다시 계좌에 넣어달라고 했다”면서 “투자를 통해 목돈을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이 생기자 성인이 된 후로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산을 증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 대표는 주로 자산관리(WM) 분야에서 근무하며 전문성을 갖췄다. PB고객본부장·강남지역본부장·WM총괄본부장·WM영업총괄본부장 등을 두루 맡으며 영업 최전선에서 투자자들을 상대했다. 지난해 1월 대표이사로 취임해 김성현 대표와 함께 각자 대표로 KB증권을 이끌고 있다. 리테일(개인금융) 부문에서 사장을 배출한 것은 이 대표가 처음이다.
최근 고령화 등으로 증권사들이 WM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KB증권은 WM 부문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KB증권은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이 대표가 맡고 있는 WM 부문의 자산 규모는 64조 1000억 원으로 불과 1년 만에 13조 원 이상 늘었다.
자식을 비롯한 젊은 세대에 대한 투자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첫 번째 원칙은 ‘효율적인 소비’다. 특정 종목이나 산업을 공부하는 것보다 5000만 원이든 1억 원이든 종잣돈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미다. 투자 공부를 하거나 실력을 쌓는 것은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효율적으로 소비하면서 돈을 모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수 소비가 아닌 남과 비교해서 쓰거나 ‘이 정도 행복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라는 자기변명 성격이 강한 소비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힘들게 모은 돈일수록 어떻게 증식할 수 있을지 공부하지만 적은 돈이면 없어져도 되는 돈이라 생각하고 고민을 덜 하게 된다”며 “적은 돈으로는 부담 없이 변동성이 큰 투자를 하는데 초반에는 돈을 벌 수 있더라도 결국에는 독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투자 노하우가 발휘된 것이 아니라 타이밍과 운이 맞아떨어진 결과일 확률이 큰 까닭이다. 종잣돈을 조금씩 모아 투자에 재미가 생기면 전체 자산 내 투자 비중이 점차 늘어나면서 결국에는 진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원칙은 ‘분산투자와 겸손’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주가가 내려갈 때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려고 물타기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주가가 떨어지면 팔고 거래량이 늘면서 주가가 상승할 때 매수해야 한다는 투자의 정석과 반대로 움직이는 셈이다. 정석대로 투자할 때 중요한 것이 ‘로스컷(손절매)’인데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이용하거나 분산투자를 하지 않으면 정석대로 투자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감내할 수 있는 정도에서 레버리지를 이용하고 분산투자하면서 작지만 높은 승률로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투자 때문에 삶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라는 철칙과 함께 투자는 겸손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승률이 높아졌다고 ‘다 안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리스크”라며 “‘나는 모른다’라는 것이 기초가 돼 있어야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 심리가 탐욕스럽기 때문에 투자할 때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 정석대로 투자하기 어렵다”며 “투자를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것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평소 자신의 사무실에서 김밥이나 샐러드를 먹으면서 신입 직원을 비롯한 여러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나눈다. 어떻게 하면 투자를 잘 할 수 있냐는 질문부터 직장 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이 대표는 “직장 생활이 늘 행복할 수는 없어도 싫으면 안 된다”며 “육체만큼 정신건강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갖고 마음을 다스리라”고 조언한다.
평소 즐겨 읽는 책 역시 새로운 정보를 주는 것보다는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내용을 선호한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법정스님의 일기일회 등 법문집은 수시로 읽을 뿐만 아니라 여러 권을 구매해 주변에 선물하기도 한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난처한 미술 이야기 시리즈’나 유현준 홍익대 교수의 ‘공간의 미래’도 최근에 감명 있게 읽은 책으로 꼽았다.
이 대표는 “다 아는 내용이라도 내가 절박하고 목이 마를 때 읽으면 훨씬 더 울림이 있고 흡수가 잘 된다”면서 “평소에 인문학 서적이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수필집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내부통제도 꾸준히 당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인데 책임을 질 수 없는 일을 해버리면 그럴 수 없게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고객 자산을 관리하는 만큼 정석대로 투자하고 설명하면서 충분히 신뢰를 쌓아야 한다”며 “하나라도 빼먹으면 안 된다고 늘 당부한다”고 했다. 특히 이 대표는 “임원들은 솔선수범해서 책임지고 직원들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한다”면서 “장기적인 투자 관점에서 고객들이 안심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직원들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글로벌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KB증권도 고객 대상 간담회를 연일 개최하며 시장 변화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다. 이 대표는 올해 미국 증시가 과도하게 하락했다는 판단이 들 때마다 분할 매수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연초 이후 한국 코스피(9%), 독일 닥스(15%), 홍콩 항셍(17%) 등이 모처럼 상승세를 보이는 동안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은 각각 2%, 6% 하락하는 등 부진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미국 증시를 추천하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반 발생했던 시장 불안과 변동성이 점차 완화될 것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미국 증시는 지나친 과열이나 지나친 침체 없이 박스권에 머물 것”이라며 “조정을 받을 때마다 비관론이 나오겠지만 시장 신호가 나빠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나 친(親)기업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투자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우량주 위주로 투자하는 것이 새로운 테마 종목을 찾아서 투자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수익률이 좋다”며 “새로운 테마주는 변동성이 큰데다 별다른 기술이 있지 않는 이상 심리적으로 손절매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우량주 위주의 투자를 추천했다.
He is…
△1965년생 △고려대 경영학 △1990년 현대증권 입사 △2011년 KB투자증권 HR팀장 △2014년 양천·목동센터장 △2017년 PB고객본부장 △2019년 강남지역본부장 △2020년 WM총괄본부장 △2022년 WM영업총괄본부장 △2024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