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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 죽음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약자가 더 빨리 늙고 병든다 !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알린 T.제로니머스, 돌베개 펴냄)

청소부·병원잡역부·운전사 등

노동자·소외계층 차별에 노출

스트레스로 감염병 등 잘걸려

편견 등 시달리는 흑인 산모들

분만 중 사망률이 '백인의 3배'

'건강-사회적배경' 연관성 짚어





코로나19의 공포가 한창이던 2020년 봄 미국 디트로이트의 50세 흑인 버스 기사 제이슨 하그로브는 버스에 마스크 없이 입도 가리지 않은 채 계속해서 기침을 하는 승객이 탔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영상에서 그는 승객의 부주의로 위험에 노출된 사실에 화를 내면서도 “내게 주어진 일을 프로답게 해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감염 위험에도 매일 성실히 일하러 나왔고 승객을 위협하지도 않았으며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성실함은 결국 그의 생명을 단축했다. 하그로브는 영상을 올리고 나흘 뒤 코로나19에 걸렸고 불과 일주일 뒤 사망한다.

그저 ‘운이 나빴다’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세계적인 공공 보건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우선 하그로브 같은 공공 버스 기사나 코로나19 환자의 체액·배설물 등을 다루는 간호조무사 및 병원 잡역부, 청소부, 열악한 시설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 등은 코로나19 감염률과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정 집단이 바이러스에 과도하게 노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음은 결코 평등하지 않은 셈이다.





저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왜 하그로브처럼 한창 일할 나이인 50살 중년이 감염 일주일 만에 사망했는지에 주목한다. 저자는 “나는 그가 그토록 빠르게 코로나에 굴복한 이유가 가족을 부양하는 근면 성실한 노동 계급 흑인이 마주하는 일상의 현실에 있다고 믿는다”고 썼다. 흑인 노동 계급 남성이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끊임없는 스트레스, 그러니까 흑인은 위협적이거나 충동적이고 마약·범죄 등을 일삼는다는 인종차별적 선입견에 맞서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동시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각종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야 하는 문화·사회적 압박감이 그의 건강을 조금씩 갉아먹었다는 것이다. 차별과 편견, 배제와 같은 만성적이고 집요한 스트레스가 신체 구석구석으로 침투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이 과정을 저자는 ‘웨더링(weather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긴 시간에 걸친 침식이나 마모 등을 뜻하는 웨더링은 가난한 사람과 약자, 소외 계층을 더 빨리 노화시켜 비만·고혈압·당뇨·심장비대 등 만성질환에 시달리게 하고 결국 더 빨리 죽게 만든다.

웨더링은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몸과 마음을 마모시키는 현상이다. 만성 스트레스가 세포 노화를 알려주는 지표인 염색체 말단 부위의 텔로미어를 더 짧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더 많은 위협에 노출돼 항상 경계하며 사는 사람들의 몸은 손상된 세포를 복구하기 위해 세포 분열을 더 많이 하기에 생물학적 노화가 가속화된다. 차별과 편견에 맞서느라 기력이 소진된 이들은 감염병과 사고 등에 특히 취약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넘길 수 있는 한 번의 공격으로도 단숨에 무너지듯 조기 사망하는 것이다. 일례로 흑인 산모는 백인 산모에 비해 분만 중 사망률이 거의 3배가량 높은데 30대 중후반이 되면 사망률이 5배까지 치솟는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는 개인의 수명 격차를 나쁜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 알코올·약물 남용에서 찾는 경향이 크다. 무지와 나태, 탐욕이 문제라는 비난이다. 책은 아이비리그를 나와 사회적으로 성공한 흑인들 중에서도 만성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같은 조건의 백인보다 많다고 전한다. 흑인 공동체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는 스트레스가 그들을 더 빨리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건강과 노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사람을 대우하는 방식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며 우리 사회가 이 명백한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인종차별이 중심 소재이지만 사회 곳곳에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편견·배제가 만연한 한국도 참고할 만한 지점들이 많다. 3만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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