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후 크게 늘어난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미국 제조업이 성장한 데 따른 결과라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한국의 자본재 수출이 늘면서 미국의 제조업을 성장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논리다.
13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한국 대미 수출의 구조적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66억 달러 수준이었던 대미 무역 수지는 지난해 56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제조업 확장에 필수적인 자본재 수출이 크게 늘었다는 게 산업연의 진단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일반기계 수출액은 150억6000만 달러에 달해 2020년 대비 75.3% 늘었다. 일반기계 수출에서 자본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67%에 이르렀다.
자본재는 공장·기계·설비 등 기업이 생산을 늘릴 때 필요한 재화다. 가령 삼성전자가 네덜란드 ASML에서 극자외선 노광기(EUV)를 수입해 스마트폰을 만들었다고 가정할 경우 EUV는 자본재이고, 스마트폰은 소비재로 볼 수 있다. 대미 자본재 수출이 늘었다는 것은 미국의 최종 제조업 생산품이 증가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간재 수출도 크게 증가했다. 중간재는 소비재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본재로 만들어내는 부품 등을 의미한다. 삼성전자가 EUV로 저전력(LPDDR)D램을 만들어 갤럭시S25에 탑재했다고 가정할 경우 D램이 중간재가 되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106억 8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2020년 대비 43.2% 증가했고 석유제품이나 이차전지 등 중간재들도 같은 기간 수출액이 100%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연구원이 한국산 중간재·자본재에 대한 미국의 생산탄력성을 분석한 결과 비 정보기술(IT) 중간재 생산탄력성은 2020년 1.25에서 2024년 1.28로, IT 중간재 탄력성은 0.48에서 0.58로 각각 상승했다. 2020년 1.05에 그쳤던 자본재 탄력성은 지난해 1.10으로 4년 만에 급격히 상승했다.
생산탄력성은 미국 생산이 1%포인트 증가할 때 한국산 수출이 몇 %포인트 증가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산업연은 “한국산 자본재·중간재에 대한 탄력성이 늘었다는 것은 미국 제조업 생산과 한국의 자본재·중간재의 연계성이 한층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기업이 현지에 공장·사업장을 지어 일자리를 창출에 기여하는 그린필드형 투자 역시 2014년에는 누적 4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지난해에는 누적 13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산업연은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운영에 필요한 제품의 59%를 여전히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다”며 “최근 우리 기업의 대미 직접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대미 투자 확대가 한국산 산업재 조달 확대로 이어지고, 곧 중간재·자본재 수출 증가 및 한미 간 연계성 강화로 이어지는 흐름을 형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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