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업체에 대학수학능력검정시험이나 모의고사 출제 문제를 판매한 뒤 금품을 수수한 현직 교원 등 126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문항제작팀과 검토팀 등을 운영하며 조직적으로 문제를 유출했으며 수 억 원을 건네고 문제를 사들인 사교육 강사들은 일명 ‘족집게 강사’로 이름을 날리며 수강생들을 끌어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교육 업체가 법인 차원으로 문제 사들이기에 나선 정황도 포착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는 17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사교육 카르텔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총 24건에 대해 수사에 나선 경찰은 126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해 그 중 100명을 송치했다고 밝혔다. 입건된 126명 중 당시 현직 교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인원은 96명이며, 사교육 업체와 강사 관계자는 25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와 대학교 입학사정관 등 5명도 함께 입건됐다.
‘문항 거래’ 수사와 관련해 경찰은 수능, 모의고사, 내신에 출제되는 문제를 유출한 교원 47명과 이를 받고 금품을 건넨 사교육 업체 및 강사 19명을 적발했다. 경찰은 시대인재를 비롯한 대형 입시학원 3곳이 법인 차원으로 문제 사들이기에 개입했다 판단해 총 7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며 대형 사교육 업체 M사 소속 유명 강사들도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문항 당 가격을 10만~50만 원으로 책정하고 문항 20~30개로 구성된 문제를 ‘세트’ 단위로 거래했으며 이를 이용해 최대 2억6000만 원을 벌어 들인 교원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강사 1명이 지불한 최대 금액은 5억5000만 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교원들이 조직적으로 문제를 유출한 정황도 발견됐다. 수능검토위원 출신 교원 A씨가 다른 수능 출제 및 검토위원 출신 교원 8명과 함께 문항제작팀을 구성하고 7명의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문항검토팀 조직을 총괄 운영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문항 2946개를 제작해 사교육 업체와 개인 강사 등에게 넘겨 총 6억2000만 원을 받았다. 일부 교원은 금품 수수를 위해 차명 계좌를 이용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 ‘Too Much Information’이 특정 학원 강사의 모의고사 교재에 동일하게 사용된 사안의 수사 결과도 공개됐다. 당시 문제 출제위원이었던 대학 교수는 자신이 2022년 감수한 EBS 교재에서 해당 지문을 발견한 뒤 이를 그대로 출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지문을 교재에 실은 강사는 다른 현직 교원이 제작한 문항을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수능 출제위원과 강사의 유착 정황은 밝져지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평가원이 출제 과정에서 검증을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사설 교재와의 중복성 검증에 나선 평가원은 매년 구매 대상이었던 해당 강사의 교재를 별다른 이유 없이 누락했으며 이후 23번 문항과 교재 문항이 유사하다는 이의신청을 접수 받고도 심사를 무마했다. 당시 평가원 심사 업무 담당자 3명은 이의심사 실무위원 등에게 “평가원이 구매할 수 없었다”고 말해 A 강사 교재를 심의 안건에 상정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해당 문항 출제 교수와 문항을 매매한 교사와 강사, 평가원 직원 3명 등을 검찰에 넘겼다.
이외에도 경찰은 문항 판매 과정에서 수능 모의평가 검토위원 참여 이력을 누설한 현직 교원과 수험생을 개인지도 후 대가를 수수한 대학교 현직 입학사정관, 모의고사 검토위원으로 참여한 직후 문제를 일부 변형해 사교육 업체에 판매한 교원, 상업용수험서 집필 사실을 숨긴 채 모의고사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현직 교원 등도 입건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죄의 근간이 된 현직 교원들의 문항 판매 행위가 근절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음성적으로 관행화되어 현재에 이른 만큼, 더이상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교육부 등 관계기관과도 지속 협의하여 대학입시 절차의 공정성이 보장되고 건전한 교육 질서가 확립되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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