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동맹 질서가 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래 미국은 그간 해보고 싶거나 해야 할 일을 거칠게 몰아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이 계획했지만 실행하지 못한 동맹 변환도 그중 하나다. 동맹국이 자국 안보의 주 책임을 지고 미국은 최대 위협에 집중하는 형태로 조만간 공식 모습을 드러내며 바로 이행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한미 동맹에 적용하면 북한 위협 대응에 대한 주 책임을 한국이 감당하는 형태다. 주한미군은 인도태평양 역내 위협, 결국 중국 대응용으로 재편될 수 있다.
2001년 집권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 평가를 포함한 국방 전략 검토를 국방부의 전설적 민간인 전략 분석가 앤드루 마셜에게 지시했다. 그 결과 당시 미군 체제는 여전히 소련과 대적했던 냉전형이라며 전진 배치된 대규모 지상군 전력을 감축하고 미군 기지도 신속 대응 체제로 전환해 고도의 기동성을 갖춘 유동군으로 재편하는 지침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도 2005년까지 1만 2500명을 감축하고 역할도 북한 위협이라는 단일 목적으로 운용하지 않으며 주한미군 기지는 신속 대응군이 활용할 수 있는 거점 기지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 발생으로 지난 20년간 테러와의 전쟁에 빠진 미국은 이를 이행하지 못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뤄진 숙제를 할 공산이 크다. 우선 중국 위협 대응에 모든 것을 건다. 지난달 29일 미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잠정 국방 전략 지침’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군의 우선순위를 중국의 대만 침공 억제와 본토 방어 강화에 맞추도록 재조정한다. 기준 위협(pacing threat)과 기준 시나리오(pacing scenario)로 중국과 대만해협 위기를 ‘유일하게(only)’ 상정했다. 기준 위협은 군사전략, 병력 구성, 무기 개발, 예산 배분 등을 짤 때 사용하는 핵심 근거다. 기준 시나리오는 가장 우려되는 실제 전쟁 또는 충돌을 가정한 것으로 ‘이 상황을 기준으로 전쟁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오로지 중국과의 전쟁만을 가정한 계획을 수립해 군 구조와 자원, 동맹 전략 등을 바꾸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미국은 동맹국이 자국 방어의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동맹 정책을 포함해 국방 전략을 만드는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미국이 국가 전략을 수행할 자원이 부족하다면서 동맹국이 스스로 방어력을 강화해 더는 미국에 의존하지 말 것을 이미 3월 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잠정 국방 전략 지침’은 보다 노골적으로 유럽·중동·동아시아의 동맹국이 러시아·이란·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지 책임을 더 많이 지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적었다. 동맹국이 충분한 방위비 분담금을 내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트럼프의 세계관과도 통한다. 이제는 동맹국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한미 동맹도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11일 미 상원 청문회에서 주한미군이 북한 억제에 여전히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새뮤얼 파파로 인도태평양 사령관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했지만 워싱턴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한국 방어의 주 책임을 한국에 전환할 것이다. 지난해 한미가 합의한 새로운 연합작전 계획인 5022는 북한 핵 공격에 대한 대비를 강화했지만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 미 증원군이 동원된다는 내용은 유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와 국방부는 전시작전권을 조만간 한국에 전환하고 연합사 체제도 바꿔 대규모 증원군 없이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의 재래식 전력에 대응하기를 원할 가능성이 크다. 주한미군 기지도 전시에 대규모 미 증원군을 수용하는 기능이 아니라 중국과의 전쟁을 상정해 미국 전력이 거쳐 가는 거점 기지로 재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분담금 증액 압박도 동시에 가해지며 갑자기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면서 2018년과 같이 한미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할 수도 있다. 분석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이 어떤 때보다 간절하다. 그러나 맞다면 한국은 거대한 안보 쓰나미에 휩쓸릴 수 있다.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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