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시장은 기후변화 대응, 공급망 재편, 글로벌 분쟁 국면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에너지 안보와 가격 안정은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이슈가 됐고, 신기술과 정책 변화에 힘입어 에너지 산업은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에너지 산업의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과 시장 개방성 확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됐다.
에너지 산업은 국가 경제의 핵심 인프라로서 공급의 안정성과 함께 시장 내 공정경쟁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가스 산업은 전력 산업이나 통신 시장의 가상 이동통신망 사업자(MVNO) 모델과 비교할 때 망 중립성의 부재로 인해 경쟁 제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같은 에너지 분야인 전력 산업과 비교해도 가스 산업의 폐쇄성은 뚜렷하다. 전력 산업은 공공성과 경쟁성을 일정 부분 조화시킨 사례로 평가받는다. 한국전력이 송배전망을 독점적으로 소유하지만 발전 부문은 민간과 공공이 함께 경쟁하는 구조다. 전력망은 법적으로 모든 발전 사업자에게 개방돼 있고 전력거래소를 통해 투명하게 거래가 이뤄진다. 이로 인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자 등 새로운 시장 참여가 가능해졌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다양한 전력원이 혼합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전력 산업의 경험은 망 중립성이 확보될 때 시장 효율성과 소비자 후생이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통신 시장의 MVNO 모델도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이동통신 3사가 보유한 망을 알뜰폰 사업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도매제공 의무 제도’를 통해 도매요금이 규제되고 망 소유자의 독점적 지위가 견제된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사업자가 시장에 참여하면서 소비자는 보다 폭넓은 선택이 가능해졌으며 통신요금 부담 역시 완화됐다. 기간산업의 핵심 인프라가 공정하게 개방됐을 때 시장 경쟁이 촉진되고 소비자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가스 산업은 여전히 높은 진입 장벽과 폐쇄적 공급망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도입부터 도매, 주배관망 운영까지 거의 전 과정을 독점하고 있으며 외부 사업자의 배관망 접근이 제한적이다. 신규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려 해도 배관시설 이용 요금과 조건이 사실상 가스공사에 의해 결정되면서 현실적인 참여가 어렵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한정된 공급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시장 내 가격 경쟁도 활발하지 않다. 이는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소비자 후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가스 산업도 전력과 통신 산업이 보여주듯 망 중립성이 확보되면 시장 경쟁 촉진과 소비자 선택권 확대라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단계적으로 망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고 투명한 요금 체계를 마련해 신규 사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에너지 시장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 에너지 전략의 실행력을 강화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면서도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라는 대원칙을 유지하는 균형 잡힌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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