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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칼럼] 정밀의료 위한 기반 마련 시급하다

국립보건연구원장

유전체검사 비급여 많고 정보활용 족쇄

국민 혜택 누리게 정밀의료 법제정 필요

데이터 관리 체계·인력 양성 서둘러야





현대 의학의 발전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질병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2003년 완성된 인간의 유전체 해독은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질병 발생의 위험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예측 의료’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상당 기간 유전체 분석의 기술적 한계와 생물학적 복잡성으로 인해 인류의 기대만큼 현실화하지 못했다.

최근 기술 발전으로 개인의 전체 유전체 정보를 수일 내 분석할 수 있고 인공지능(AI) 기술이 도입되면서 정밀 의료는 현실이 되고 있다. 정밀 의료는 개인의 유전적 특성, 생활 습관, 환경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맞춤형 치료와 예방 전략을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다.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암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예방적으로 양측 유방 절제술을 선택한 것이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질병 발생 위험을 예측하고 사전에 대응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지금 유전체 정보에 기반한 정밀 의료는 어디까지 왔을까. 국내에서는 암 치료와 희귀 질환 진단에서 변화가 두드러진다. 과거에는 암의 종류에 따라 획일적인 치료가 적용됐으나 이제 많은 병원에서 환자의 유전정보와 종양의 특성에 기반한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희귀 질환 진단은 과거 평균 7년 이상 소요되던 기간이 이제 수일에서 수주 내로 가능해졌으며 조기 진단을 통해 치명적인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2017년부터 암과 희귀 질환에서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반의 유전자 패널 검사를 조건부 선별 급여 항목으로 지정하고 비용 일부를 지원해왔다. 그러나 2023년 폐암을 제외한 대부분 암종에서 본인 부담률을 80%로 상향하면서 정밀 의료에 대한 정부 지원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유전체 기반의 정밀 의료에서 가장 혁신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국가는 영국이다. 우리의 국민건강보험에 해당하는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는 ‘유전체 의학 가속화 전략’을 발표하고 유전체 기반의 정밀 의료를 일상 진료에 통합하기 위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암과 희귀 질환 등 다양한 질환에 대한 유전체 검사를 정부 서비스로 확대해 가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신생아 10만 명을 대상으로 200개 이상의 유전 질환을 선별 검사하는 대규모 연구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과 첨단 과학기술, 정보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정밀 의료 서비스 영역에서는 법·제도적 기반이 아직 미흡하다. 조건부 선별 급여로 일부 인정되는 검사 외 대부분 유전체 검사는 연구나 비급여로 진행되고 있고 소비자가 직접 의뢰하는 유전자검사(DTC)는 과도한 규제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전체 기반의 정밀 의료 서비스에 대한 법적 근거가 취약하다. 국내 유전체 의료는 2004년 제정된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법안은 의료보다는 연구와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정밀 의료 촉진에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와 유사한 법체계를 갖춘 일본은 2023년 ‘유전체 의료추진법’을 제정해 세계 최고 수준의 유전체 의료를 실현하고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전체 의료 서비스가 국민에게 안전하게 확산되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제정이 필요해 보인다.

법적인 근거 외에도 정밀 의료를 위해서는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정밀 의료가 구현되려면 유전체 분석, 생물정보학, 임상 유전학, 유전 상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유전체 데이터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관리 체계 또한 필요하다. 지금은 환자들이 유전자 검사를 받고서도 해당 검사 기관 외에서는 그 정보를 활용하기가 어렵다. 정밀 의료가 방대한 양의 개인 유전체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이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정밀 의료는 미래 의료의 핵심으로 이를 위한 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부와 의료계·학계·산업계가 협력해 인프라 구축을 비롯해 인력 양성, 데이터 관리 체계, 법적·윤리적 기준 정립 등의 과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도 정밀 의료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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