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케네디센터에서 레미제라블을 관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야유가 쏟아지고 있다. 케네디센터 이사회의 진보적 이사들을 해임하고 본인을 이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정작 문화계를 보수적 인사로 채운 그가 민중의 저항과 자유를 찬양하는 내용의 뮤지컬을 관람한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시각에서다.
12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레미제라블의 주제곡 '성난 군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언급하며 "이 혁명적인 노래가 케네디 센터를 가득 채웠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 스티븐 밀러를 부르라거나, 해병대를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밀러는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로 이번 로스앤젤레스(LA) 시위 사태의 한복판에 선 인물이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혁명의 민중 봉기를 다룬 작품으로, 가족을 위해 빵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갇혔다가 도망쳐 봉사하는 삶을 사는 장발장과 그를 추격하는 자베르의 삶을 담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한 취재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장발장에 더 가까운가요, 아니면 자베르에 더 가까운가요?"라고 질문을 던졌고 그는 "오, 이건 어려운 질문"이라며 옆에 있는 멜라니아 여사를 향해 "당신이 대답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난 모르겠다"고 웃어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케네디센터를 방문한 것은 2기 취임 이후 처음이다. 그는 지난 1월 백악관에 복귀하자마자 문화계까지 보수적 색채를 덧씌우는 이른바 '이념 전쟁'의 칼날을 뽑아들었다. 이후 케네디센터 이사회의 진보 성향 이사들을 해촉하고 자신을 직접 이사장에 '셀프 임명'했다. 이 여파로 기존 케네디센터 공연이 뒤바뀌는 등 문화계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람 대상으로 '레미제라블'을 선택한 것이 매우 "역설적"이라고 짚었다. 그의 문화계 개입 행보와 대비되는 정치적 메시지가 상충된다는 지적에서다. 실제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공연장에 입장하자 일부 관객들은 "범죄자", "엿먹어라"라는 비난을 퍼부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USA"를 연호하며 환호가 이어지기도 했다. 일부 레미제라블 출연진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항의하며 보이콧을 선언했으며, 성소수자 단체는 '드래그퀸(하이힐, 화장 등 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성)' 복장을 입고 저항의 의미를 표명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다 꼬리를 내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레미제라블의 등장인물 '에포닌'에 비유하기도 했다. 에포닌은 '마리우스'를 돕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인물하며 사랑에 대한 고통과 외로움을 겪는 역할이다. 가디언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 대통령의 슬로건)가 미국 문화 수도를 강타한 그 날 밤, 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며 "아마 그 기술계 인사(머스크)는 워싱턴의 어두운 거리를 헤매며 레미제라블의 에포닌처럼 외로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민자 강제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LA를 넘어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덴버, 오스틴,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오는 14일에는 미 전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노 킹스(No Kings)' 운동이 예정돼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