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각 후보들은 기업들이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서 국가의 신성장 동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과연 경제가 살아날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22대 국회가 출범한 지 11개월 만에 약 9900건의 법률안이 발의됐는데 그중 30%에 가까운 2800여 건이 규제 법안으로 분류된다. 대한상공회의소 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규제부담지수는 2015년 88.3에서 올해 102.9로 급상승했다.
입법 효과를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정치적 타협의 도구로 법안을 처리하는 부실 입법과 의정 활동 평가를 위한 무리한 입법 발의가 문제로 지적된 지 오래다. 이에 유럽에서 시행 중인 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유럽의회의 싱크탱크인 유럽의회조사처(EPRS)의 경우 영향평가를 위한 부서를 두고 사전·사후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입법과 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다.
규제영향평가와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 제출하는 정부 입법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반면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의원 입법은 10명 이상이 동의하면 발의할 수 있다. 아무런 사전적 검증과 평가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각지대다. 문제는 우리나라 국회의 입법 발의가 비현실적인 수치를 보인 지 이미 오래라는 사실이다. 21대 국회(2만 5858건)는 16대 국회(2507건)에 비해 무려 10배나 증가했으며 지금 추세라면 22대 국회는 신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의원 발의 법률안이 정부 발의 법률안보다 양적으로 훨씬 앞서 있다는 점에서 국회 스스로가 법률안에 대한 질적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입법영향 분석이 도입되지 못하는 것은 이 제도가 국회의원의 입법권 침해가 아니냐는 오해에 근거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모여 설립한 유럽의회에서 입법영향평가가 입법권 침해라는 주장은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입법영향 분석은 ‘더 좋은 법률 만들기’를 위한 절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법률안의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서 법률안을 만들고, 시행 중인 법률의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발 빠른 대처를 통한 시정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법률안에 대한 면밀한 영향 분석을 제공한다면 국회의원의 법률안 발의와 상임위원회의 법률안 심사의 논거가 강화돼 국회가 더 좋은 법률을 생산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회는 입법기관으로서 국민을 위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입법 과정에서 국회의 주도적 역할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반작용으로 불필요하거나 불합리한 규제도 증가하고 있다. 사회가 세분화하고 복잡해질수록 정교화된 입법이 필요하고, 한 번 잘못 채택된 제도는 문제를 해소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된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경제 생태계에서 더 이상 우리 경제는 실험 대상이 될 여력이 없다.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규제가 늘어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입법영향 분석 제도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