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3년차에 돌입했으나, 여전히 양형기준은 공백 상태다. 실형과 집행유예 사이 판단 기준조차 없어 실무를 맡는 변호인들은 물론, 재판 당사자인 기업과 피해자 유족들까지도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형위원회는 지난 6월 열린 제139차 회의에서 향후 양형기준을 마련하거나 보완할 범죄 유형을 선정했다. 그러나 중처법은 최종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논의 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이 양형기준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소수의견에 그쳤다. 중처법이 2022년 1월 시행 이후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양형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법원마저 중처법 사건 선고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판례나 과실치사상 범죄의 양형기준을 참고해 형량을 정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중처법이 동일 산업재해를 다루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보다 높은 법정형을 규정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양형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변호인들이 실형 여부를 가늠한 일정 기준 없이 재판을 준비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만큼 방어권 보장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처법 사건을 다수 맡아온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양형기준이 없다 보니 실형이 나올지, 집행유예가 선고될지 설명 자체가 어렵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은 법정형과 취지가 다른 중처법에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집행유예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실무상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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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로펌 변호사도 “판례가 어느 정도 축적되긴 했지만, 여전히 양형기준이 없다는 점은 전략 수립에 있어 구조적인 한계로 작용한다”며 “비슷한 사안임에도 형량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 기업 입장에선 예측 가능성 부족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영책임자의 반성문, 재발 방지 조치, 피해 회복 노력 등을 강조하더라도 어느 정도로 반영될지를 가늠하기 어려워, 변호인 입장에서도 방어 전략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양형기준의 부재가 항소 결정도 쉽지 않게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양형기준은 판사가 형을 선고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적 규칙은 아니다. 하지만 동일한 범죄 유형에 대해 어느 정도의 형이 적정한지를 제시하는 ‘공통된 판단 틀’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형이 과도하거나 지나치게 낮은 경우 항소 때 양형 기준을 논거로 자주 거론한다.
노동전문 변호사는 “양형기준 부재는 단순히 형량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책임자와 피해자 유족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라며 “전면적인 기준 수립이 어렵다면, 최소한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기준선이라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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