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공정을 디지털 공간에 가상으로 그대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공정 최적화를 이끄는 ‘디지털 트윈’ 시장 개척을 국내 스타트업들이 이끌고 있다. 이미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전통 제조업에 비해 디지털 전환 진척이 더뎠던 화학·바이오, 건설 산업을 적극 공략하면서 시장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국내 디지털 트윈 스타트업은 공정에 대한 전문 지식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핵심 무기로 해외 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0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시마크로, 메이사, 엔젤스윙, 마키나락스 등 국내 디지털 트윈 기업은 화학, 바이오, 건설 등 디지털 전환이 비교적 느렸던 산업을 공략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시마크로는 글로벌 디지털 트윈 기업 아스펜테크에서 경력을 쌓은 윤정호 대표가 2018년 설립한 기업으로 화학·바이오 공정에 특화한 디지털 트윈 솔루션을 개발했다. 시마크로 솔루션의 핵심은 실제 존재하는 화학 공식과 물리 법칙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정확하게 학습시켜 실제 자연 현상과 유사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는 데 있다. 각종 제조 공정을 미리 계획해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일은 일반 제조업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화학 물질을 어떤 조건에서, 어떤 비율로 배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화학·바이오 산업에서는 진전이 더뎠다. 시마크로에 초기 투자한 함슬범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책임심사역은 “디지털 트윈 서비스를 화학 및 바이오 제조업에 실제 적용한 구체적인 국내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시마크로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 하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시마크로 디지털 트윈 솔루션을 도입한 기업은 CJ제일제당,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HD현대오일뱅크, AGC(아사히글라스) 등이다. 화학·바이오 디지털 트윈은 공정을 사전에 계획하는 것을 비롯해 실제 공정을 진행할 때 온도나 압력 등 각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데 쓰인다. 현장 작업자가 공장 설비 내부로 직접 들어가 계측기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도 중앙 통제실에서 이상 수치 등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는 향후 공정을 개선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시마크로가 화학·바이오 산업의 디지털화를 시도하고 있다면 건설 산업에서는 메이사와 엔젤스윙이 디지털 트윈 솔루션 안착을 시도하고 있다. 메이사, 엔젤스윙은 모두 건설 현장 위에 카메라가 달린 드론을 띄운 뒤 건설 기계의 배치나 근로자의 동선 등 현황을 실시간으로 촬영한다. 이 결과물은 실시간으로 각 사가 자체적으로 구축한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전송돼 현장 관리자가 작업 동선이나 공정 진행도를 한눈에 확인하고 조정할 수 있게 한다. 메이사와 엔젤스윙 모두 국내 시공능력평가순위 기준 상위 건설 대기업은 물론 해외 건설 기업에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이 이미 장악하고 있는 전통 제조업 시장에 파고들려는 시도도 있다. 윤성호 대표가 2017년 창업한 마키나락스는 설립 초기부터 산업 현장 적용이 가능한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집중해 각종 설비, 장비의 이상 징후를 사전에 파악해 알려주는 AI 모델을 만들어냈다. 모터(원동기), 컴프레서(압축기), 터빈(유체의 흐름으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내는 회전 기관) 등 각종 산업용 전동기에 계측기를 부착하면 기기 움직임을 AI가 분석해 고장 전 이상 징후를 알려준다. 장비 점검과 보수에 들어가는 비용 감축 효과에 주목한 현대차, LG테크놀로지벤처스 등이 초기 투자했다. 마키나락스는 현재 상장을 추진 중이다.
윤정호 시마크로 대표는 “현재 새로 개발 중인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의 기술 검증(PoC)에 CJ제일제당, HD현대오일뱅크, 삼성물산, AGC 등 국내외 대기업이 참여했다”며 “그동안 진척이 더뎠던 화학·에너지·바이오 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제품 고도화를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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