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법 파보기
원하는 영어이름을 사용할 권리
나는 내 이름이다. 태어나서 이름을 가진 다음에야 하나의 인격이 되고 그 인격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내 이름이 고유의 내 이름대로 불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권에 적히는 '로마자 이름'에 관한 이야기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최근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 불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쟁점은 이름 중 ‘태’의 로마자 표기였다. 원고는 여권을 신청하며 ‘TA’로 표기했지만, 접수 당국은 이는 국어 로마자 표기법에 맞지 않는다며 ‘TAE’로 정정해 여권을 발급했다. 원고는 영어권에서는 ‘TA’가 자연스럽고 널리 쓰이는 표기라며 원래 신청대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결국 소송에 나섰다. 법원은 ‘국어 로마자 표기법’은 어디까지나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라며 상식적으로도 ‘cap(캡)’, ‘nap(냅)’, ‘fan(팬)’ 등 모음 ‘A’를 ‘애’로 발음하는 단어를 무수히 찾을 수 있다고 하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 사회에서 이름은 대개 한자로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순수한 우리말로만 짓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특정 영어 단어나 발음을 염두에 두고 아
도산법 네비게이터
도산절연 구조 속 채권자의 권리와 회생절차의 경계
도산절연(Bankruptcy Remoteness). 기업금융이나 부동산금융 구조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다. 이는 특정 자산이 채무자의 도산 또는 회생절차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법적 구조를 설계하는 기법을 말한다. 흔히 부동산담보신탁, 자산유동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서 활용된다. 최근 필자가 검토한 사안은 이 ‘도산절연’ 구조가 실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복합상영관을 운영하는 A사는 채무자의 점포 중 하나를 임차해 오랜 기간 영업해 왔다. 해당 부동산은 은행을 수탁자로 하여 담보신탁이 되어 있었고, A사는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담보하기 위해 그 전에 이미 임차권 등기와 근저당권 설정을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채무자가 회생절차에 돌입하며 A사의 보증금반환채권을 회생채권으로 분류해 회생채권자 목록에 기재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A사의 채권은 회생계획에 따라 감액될 수 있고, 채권자로서 집합적으로 변제를 받아야 할 위치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안의 핵심은, A사가 담보권을 설정한 대상이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이 아닌 ‘신탁된 제3자 소유의 부동산’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산절연의 법리가 작동한
Dream 톡talk
여성은 왜 눈보라를 피해 남편에게 갔을까
우울증을 겪고 있는 어느 여성 환자의 꿈이다.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심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나는 급히 집으로 들어가 남편에게로 갔기 때문에 다행히 거기에서 도망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남편이 신문 광고란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다음은 심리학자인 아플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의 해석이다. 이 꿈은 남편과 화해하고 싶다는 감정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그녀는 안락한 가정생활을 구축하는데 실패한 남편의 무력감과 연약함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꾼 꿈의 의미는 ‘혼자서 난관에 부딫치기 보다는 남편의 곁에서 있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것이었다. 한편, 이 꿈에는 그녀가 혼자 있을 때의 위험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또한 그녀가 용기와 독립과 협동을 드러내고 시행하는 일에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임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 꿈의 분석을 통해서 자신의 심리적 상태와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아들러는 말한다. “꿈의 목적은 꿈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속에 내재해 있다. 개인이 창출하는 감정은 언제나 그
여의도 커피챗
AI 공급 과잉? 아직 논할 때 아니다
대공황 당시를 연상시켰던 트럼프의 고율관세 집행이 90일간 유예되고 있지만 여전히 일관된 기대를 하기 힘들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부분의 국가에 대한 10%의 기본관세 부과를 고집하고 있고, 중국에게는 대공황 당시에도 경험하지 못한 145% 관세로 협상 압박을 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의 높은 관세율이 실제로 집행된다면, 글로벌 경제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의해 형성된 자유무역시대와 작별해야 할 지도 모른다. 대공황이 있었던 100년 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이다. 당시 스무트홀리(Smoot-Hawley Tariff Act)법에 의해서 미국은 캐나다, 유럽 등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최고 59%의 관세를 부과했다. 지금도 미국은 당시 유럽, 캐나다와 같은 경계대상 국가로 중국을 지목하고 당시보다 훨씬 더 높은 145% 관세 부과를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ECB 총재 라가르드는 고율 관세와 대공황 연계성을 경고한 바 있다. 최근 금융시장의 반응도 미국의 강한 경기침체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고율관세 부과 발표 이후 주식시장은 미국 나스닥 중심으로 급락했고, 미국의 달러 인덱스는 이례적으로 하락했다. 상위소득자에 의해 편중적으로 소유된 미국 증시(상위 10%
일본, 일본인 이야기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 ‘나고야 성’
433년 전 4월 13일은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서막이 오른 날이다. 1592년 이날,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선봉장으로 하는 왜군 17만여 명은 조선 침략 길에 올랐다. 규슈 남단 가라쓰(唐津)에서 출항한 왜군은 12시간 만에 부산진항에 상륙했다. 왜군은 다시 육로를 따라 한양까지 무인지경으로 내달았다. 무능한 선조는 2주 만에 안방을 내준 채 의주로 도주했고, 분노한 백성들은 도성을 휘저으며 곳곳에 불을 놓았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 종묘가 불탔고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한 수많은 문화유산은 잿더미가 됐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왜군이 출진했던 가라쓰에 다녀왔다. 임진왜란 직전 축조한 이곳 히젠(肥前) 나고야(名護屋) 성은 왜군이 출진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었던 곳이다. 지금은 텅 빈 성터만 있다.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였던 나고야 성터를 돌아보는 내내 눈부신 벚꽃 아래서 착잡했다. 후쿠오카를 빠져나와 규슈 북서부에 위치한 사가(佐賀) 현 가라쓰로 가는 길은 한적하다. 교통체증으로 번잡한 후쿠오카와 달리 해안도로는 여유롭다. 50km, 1시간여를 달려 가라쓰에 접어들면 무지개 솔밭으로 불리는 국가명승 ‘니지노 마쓰바라(虹の松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