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연재 중
경제를 보는 눈
6개의 칼럼 #경제
  • 경제를 보는 눈
    국회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편법증여이다. 이번에도 장관, 국가인권위원장, 검찰총장, 경찰총장에서 대법관, 헌법재판관에 이르기까지 인사청문회에서 편법 증여 문제가 불거지지 않은 후보자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부모인 후보자가 자녀에게 집이나 돈을 증여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부모가 자기 집과 돈을 자녀에게 주는 것이 왜 편법으로 비판받는가. 그건 내야 할 증여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적발되는 사례는 자녀가 집 장만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부모의 집을 시가보다 싸게 증여하거나 자녀의 집 매입 자금을 보태주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는 수십억 원대의 서울 강남 아파트를 장남에게 시세보다 싸게 판결로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대법관 후보자의 20대 딸은 아버지한테 증여받은 돈으로 용산 재개발 지역에 7억 원대 빌라를 사서 보유하고 있다. 경찰청장 후보자는 차남에게 돈을 빌려주며 편법 증여를 덮기 위해 차용증을 위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고위공직자의 편법 증여는 부당하게 부를 대물림하는 ‘아빠 찬스’ ‘엄마 찬스’로 사회 불평등의 근원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더 나아가 나라를 망칠 특권 세습이라고까지 욕을 먹는다. 솔선수범해서 국가 기강을 지켜야 할 사회 지도층이 법을 위반하고 세금을 탈루하며 재산을 자식에 물려주려는 것이 만악의 뿌리인 것처럼 매도된다. 그러나 이처럼 비난하는 사람들 본인은 어떨까. 자신들은 자녀에게 집 사줄 때 솔선수범해서 세금을 다 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요즘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는 10억원이 넘는다.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지난 6월 기준 12억1718만원이라고 한다. 이 정도 아파트를 자녀에게 상속하거나 증여하면 세금을 상당히 내야 한다. 우리나라 상속·증여 세제는 2000년 이래 25년간 변하지 않아 경제 규모의 성장과 개인 자산의 증가를 반영하지 못한다. 상속세 공제한도는 10억원으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보유한 중산층도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증여세 공제한도는 더 낮다. 직계 자녀에 대한 증여는 10년간 합산 공제금액이 5000만원에 불과하다. 10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증여하면 내야 하는 증여세가 억대이다. 이런 세금을 다 내고 자녀에게 집을 물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온 공직자들에게 몇억 원의 증여세는 엄청난 부담이다. 그러니 편법 증여가 절세를 위한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고위 공직자라고 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여 떼돈을 벌거나 거액의 재산을 물려주면 당연히 부정축재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10~20십억원 정도의 집 한 채를 자녀에게 물려 주는 정도로 나라 망칠 중죄인 취급받는 것은 조금 억울할 것 같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고 하지만 공직자로서의 특권을 이용한 것도 아니다. 평범한 부모라면 누구나 하듯이 자녀에게 자기 집을 하나 장만해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부모가 자녀에게 집 하나 마련해 주는 것은 한국적 관행이다. 특히 결혼하는 자녀에게 전세라도 해주어야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자녀에게 집도 못 해주는 부모는 늙어서 대접도 못받는다. 그건 공직자뿐 아니라 대한민국 부모가 안고사는 업보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집값이 천정부지로 쏟는 세상에서 자녀가 부모 도움없이 아파트 마련한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집이 없으면 결혼도 안하고 애도 못낳는다. 저출산에 인구 감소 시대에 청년에게 부모가 집을 마련해주는 것이 그처럼 잘못된 것이고 나라 망칠 특권 세습인가.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다 하고 있는데 특별히 고위 공직자의 편법 증여만 콕 짚어 나라 망칠 특권 세습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과하다. 차라리 공직자를 포함해 많은 국민이 편법 증여하니 나라가 망할 것 같다라는 논설을 쓰는게 맞다. 사실 고액자산가는 편법 증여 논란에서 자유롭다. 세무사나 은행원의 도움을 받아 법인을 만들거나 재단을 세워 이미 합법적으로 증여해 두었다. 어설픈 중산층이나 법망 피해 집 한 채 증여했다가 걸려들어 망신당한다. 정부는 상속·증여세제를 현실화하기 위해 지난 7월 새로운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아무쪼록 누구나 마음 편히 세금 다 내고 자녀에게 합법적으로 증여하여 나라 망칠 일이 없어지기를 희망한다.
    2024.09.10 17:25:17
    편법 증여, 도덕적 결함인가, 합리적 선택인가?
  • 경제를 보는 눈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약화돼 저성장 기조에 빠진 것은 기업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3일 성장사다리 정책을 발표했다. 중소기업 성장사다리 구축방안은 졸업 중소기업 지원 확대, 가업승계 지원, 성장사다리 점프업 프로그램 신설, 성장바우처 제공, 정책자금과 민간금융 연계한 자금조달 지원, 민간 투자 연계형 연구개발(R&D) 확대, 중소기업 M&A 지원 강화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에서 가장 큰 효과가 기대되는 대책은 세제혜택 확대이다. 현재 세제혜택은 자본과 자원이 열악한 중소기업에 주로 집중되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각종 세제혜택이 전면 중단된다. 이런 세제혜택 절벽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않는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혀왔다. 이에 성장사다리 대책에는 중소기업 기준을 넘어도 세제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는 유예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했다. 코스피·코스닥 상장 중소기업은 2년 추가 연장해 총 7년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유예기간이 지나 중견기업에 진입한 기업에 대해서는 최초 3년 간 높은 R&D·투자세액공제율을 적용해 준다. 성장역량이 높은 유망 중소기업 100개를 밀착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 성장사다리 점프업 프로그램도 제시되었다. 정부는 세제에서 금융, R&D M&A에 이르는 전방위 지원을 망라하는 성장사다리 프로그램을 통해 중견기업을 성장하는 중소기업의 수를 지금보다 2배 이상 늘린다는 방침이다. 중소기업의 성장사다리가 중요하다는 정부의 인식은 올바르다. 하지만 정부 지원만으로 중소기업의 성장사다리가 작동할지 의문이다. 정부의 대책은 지원 투성이다. 기존의 중소기업 지원을 초기 중견기업까지 확대한 정도에 불과하다. 작은 사다리를 조금 그것도 일시적으로 늘린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스 신화의 괴물 프로크루스테스는 사람을 침대에 묶어 놓고 침대 길이 맞춰 사람의 키를 늘이거나 줄였다고 한다. 정부의 성장사다리 정책도 비슷한 방식이다. 중소기업 지원 기준이라는 침대를 약간 늘려 놓았을 뿐이다. 아예 침대를 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직접 육성한다는 접근도 진부하다. 유망 중소기업 100개를 선정하고 밀착지원해 중견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대책을 보는 순간 머리가 띵하다. 왜 무슨 근거로 100개인가? 정부는 무엇을 근거로 성장역량이 뛰어난 유망기업을 선택할 것인가? 기존의 수많은 정부 지원사업과 무엇이 다른가? 이전에 수출중소기업 10만개, 벤처기업 3만개, 유니콘 기업 10개를 육성하겠다는 개수 목표와 다를 바 없다. 역시 침대에 사람 키를 맞추는 프로크루스테스 식의 접근이다. 정부의 인위적 노력에 의해 중소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면 벌써 이전에 했다. 성장사다리 정책의 원조는 MB정부이다. 당시에 독일의 히든챔피언을 벤치마킹해 강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소기업 정책의 요지이었다. 그 이후 강소기업이 늘어났다면 오늘날 성장사다리 대책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건강한 민간 생태계 조성을 위한 경제구조 개혁과 중소기업의 체질개선 노력은 전혀 없다. 역시 표지갈이 식의 전형적 정부 대책이다. 성장사다리 정책이 필요하다니 내놓은 격이다. 문제는 다른데 같은 답안만 내놓은 탁상공론의 발상이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2024.06.08 07:00:00
    지원 일색 ‘성장사다리 정책’통할까
  • 경제를 보는 눈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가장 큰 한계는 성장성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가치는 성장에 있다. 성장이란 단지 매출이 늘어나 규모가 커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장하는 기업은 활력이 넘치며 생기가 충만하다, 기술혁신을 통해 일류가 되고자 노력하여 투자와 고용의 선순환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반대로 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정체와 퇴보를 의미한다.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현상유지에 급급하며 새로운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다른 기업들이 앞서 나가는데 제자리에 머물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이 자생력을 갖추려면 성장사다리에 올라타 중견기업으로 클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 매우 어렵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성장하지 않고 계속 중소기업으로 남아 있다. 이런 현상이 고착화되어 ‘피터팬’ 신드롬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지 않고 어린이로 남아 있는 것에 비유하는 말이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이원화되어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과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납품거래 구조에 예속된 중소기업은 독자적으로 사업을 키워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도 중소기업의 성장기회를 제한한다. 대기업이 내부 시장을 이용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내재화하여 중소기업이 성장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광고, 물류, 정보시스템, 건물관리, 급식 등의 사업서비스 부문에서 이런 문제가 두드러진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보호가 성장동기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중소기업을 경제적 약자로 간주하여 다수의 중소기업에게 보편적 지원을 제공하는 복지성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이 성장하여 범위 기준을 벗어나면 이런 지원과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중견기업이 되어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수많은 혜택이 없어지는 대신에 엄격한 규제의 대상이 된다. 중소기업은 노동·안전·환경에 대한 규제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견기업은 모든 규제를 예외 없이 온전히 적용받아야 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적합업종이나 생계형 업종 등의 시장조치에서도 중견기업은 규제의 대상이다. 중견기업이 내수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성장을 추구할 경우 과열 경쟁을 유발하여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정부의 보호막이 걷히고 대신 감시와 견제의 칼 끝에 놓이게 된다.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는 중소기업의 생존에 정부 지원과 보호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개별 기업에 대한 직접적 지원과 혜택이 과도하면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고 성장을 기피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앞으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성장성과 연계하여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려는 동기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성장잠재력이 높은 중소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여 해외시장에서 성장을 추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개별 기업에게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시장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정신이 보상받는 민간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대기업의 부당한 내부 거래를 규제하여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함으로써 전문 중소기업이 독립적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장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에 대한 전속관계를 완화하여 타 경쟁사에게도 공급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대기업에 유리하고 중소기업이 소외받는 경제구조를 개혁하여 중소기업이 튼튼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05.25 17:00:00
    중소기업의 성장사다리를 찾아서
  • 경제를 보는 눈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가장 새롭다고 주목받은 대목은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하여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경제성장 정책을 이끌어온 ‘경제기획원’과 같이 종합적이고 강력한 사령탑 역할을 담당하는 부총리급의 기획 부처를 설치하여 교육, 노동, 복지를 아우르는 정책을 수립해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인구감소로 인해 국가 소멸의 위기까지 예견되는 상황에서 저출산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여러 부처의 관련된 정책을 총괄하여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의지는 높이 평가한다. 현재 인구문제를 다루는 최고위급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정책 권한과 예산권이 없는 위원회 조직으로 실행력을 갖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했다. 그동안 각 부처가 따로 놀면서 저출산 대응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지난 15년간 출산장려를 위해 투입한 예산이 280조원에 달하지만, 출산율은 계속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4분기 국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의 평균 출생아 수)은 0.65명으로 최초로 0.6명대로 떨어졌다. 저출산에 대응하는 접근을 복지 정책의 차원을 넘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도 긍정적이다. 대통령이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을 밝히며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게 하고, 자녀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부담을 줄게 하겠다’라는 설명은 정확하고 적합하다. 저출산 문제는 매우 복잡하며 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주거, 교육, 노동, 일자리, 의료, 복지, 노후 등의 모든 문제가 얽혀 있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출산과 양육을 억압하는 경제적 구조와 사회적 문화가 뿌리처럼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한 두가지 정책만으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육아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복지성 대책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은 채 증상만 악화시킬 따름이다. 나무로 치면 속에 골병이 들어 안에서부터 시들고 뿌리가 썩어가는데 영양제와 비료만 주는 꼴이다. 이처럼 난해한 저출산 문제를 부총리급의 부처 신설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교육 개혁, 노동 개혁, 연금 개혁, 의료 개혁 등 어느 하나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상태에서 이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 풀리는 저출산 문제를 부처 설치로 해결하겠다고 하니 생뚱맞기만 하다. 저출산에 대응하는 신생 부처가 조직을 갖추고 역량을 발휘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실효성도 미흡할 것으로 예상한다. 차라리 기획재정부를 저출산 대응 부처로 변경하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획재정부는 재정과 예산을 책임지며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을 통제하는 사령탑 기능을 담당한다. 국회와 야당도 법안이나 예산에서 기재부 눈치를 볼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런 기획재정부를 저출생대응기획부로 변경하여 모든 부처의 정책과 예산에서 출산장려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면 효과가 훨씬 크게 나타날 것이다. 저출산 정책이 힘을 발휘하려면 국회와 야당의 협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통령도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에 야당의 적극적 협력을 요청하였다. 국가의 미래 운명을 좌우하는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정부뿐 아니라 여야 정당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저출생대응기획부가 출범하면 장관에 야당 인사를 임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국가적 비상사태인 인구감소 위기를 여야가 같이 해결하는 것에서 실질적 협치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공약으로 ‘인구위기대응부’를 내세웠으니 야당 공약을 수용하는 의미로 저출생부처를 만들었다고 하면 야당도 거부할 명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국회가 입법할 때 ‘출산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출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법안은 아무리 중요해도 통과시키지 말아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부처 신설이 아니라 국가 개조 수준의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05.11 07:00:00
    저출생대응기획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
  • 경제를 보는 눈
    격렬했던 총선이 끝나고 진한 여운이 오래 남아 있다. 승리한 정당은 압승의 환희에 들떠있고 패배한 정당은 책임 논쟁으로 시끄럽다. 대통령은 여야 양쪽에서 수용할 총리 후보를 물색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막강한 국회 권력을 거머쥔 거대 야당의 공세가 예상되며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자 정부 부처와 공공 기관은 현안 대응에 손을 놓고 있다. 이 와중에 민생 경제는 방향타를 잃고 갈팡질팡 흔들리며 좌초 일보 직전에 놓여 있다. 특히 물가 상승이 거세지며 가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올해 들어서도 3% 대의 상승률을 이어가며, 신선식품 물가 상승률은 20%대로 급등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인플레이션이 퍼지자 신조어가 유행한다. 사과를 위시한 과일값 급등을 칭하는 ‘프루트 플레이션’,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상승한다는 ‘치킨 플레이션’, 밀가루·계란 가격 상승으로 빵값이 계속 오르는 ‘빵 플레이션’, 우유 가격의 지속적 인상을 의미하는 ‘밀크 플레이션’, 국수 음식 가격의 상승을 뜻하는 ‘누들 플레이션’, 직장인들의 점심값 지출이 증가한다는 ‘런치 플레이션’ 등등. 인플레이션이 민생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며 파생된 유행어를 열거하면 끝이 없다. 흥미롭게 이런 인플레이션 신조어는 대부분 먹거리와 관련된다. 한국인은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하다. 그러니 먹거리 물가 상승은 심각한 민생고이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에 일조한 ‘대파 가격’ 논란이 왜 그리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 잘 생각해 보라. 대파 한 품목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대파로 상징되는 먹거리 가격의 상승이 문제이다. 대파 가격이 싸다는 둥, 한 단이 아니라 한뿌리 가격이라는 둥의 말장난은 먹거리 물가에 시달리는 국민을 서글프고 화나게 만든다. 총선 유세에서 대파를 흔들어 대며 여당을 비웃고 공격한 야당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법카로 초밥도 사 먹고 코인 투자로 수억원을 벌어들이며 불법 대출로 강남 아파트에 투기한 본인들은 민초들의 생활고를 얼마나 알기나 할 것인지. 대파 가격을 잘못 거론해 민생에 무지하다는 사실이 탄로 난 여당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대파를 비롯한 장바구니 물가를 내리기 위해 야당은 무엇을 노력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국정에 관한 여야 협치를 논의하기 위해 곧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난다고 한다. 그런데 야당이 주장한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의제에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벌써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정말로 한심하고 치졸하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살포하는 현금성 지원금이 포퓰리즘이냐 아니면 내수활성화 마중물이냐 하는 논란을 떠나 사소하고 쫀쫀하다. 이 정부 들어와 대통령과 야당 영수가 최초로 만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최우선 과제가 기껏 국민 1인당 25만원짜리 밖에 안된다는 말인가. 여당과 야당의 총선공약집을 살펴보면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거창하며 중요한 정책이 많다. 국민의힘 총선 공약집은 ‘새로운 변화 내 앞으로’라는 제목으로 ‘민생 활력, 새로 희망’을 내세운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집은 ‘삶의 질, 수직 상승을 위한 민주당의 약속’이라는 제목을 걸고 ‘국민 모두가 전 생애에 걸쳐 건강과 안전, 소득과 주거 등 모든 영역의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실제 총선 유세에서 공약집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정책 토론회도 없었고 언론도 공약에 관심두지 않았다. 그러니 대다수 국민은 각 정당의 총선공약집이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넘어갔다. 여야가 서로를 비난하는 심판론만 부각되었을 뿐이다. 민생공약으로 주목받은 것은 야당의 25만원 민생지원금이 유일하다. 참 상상력이 빈약하다. 뭐 현대판 고무신 쪼가리도 아니고. 거창한 협치를 논의하는 여야 영수회담에서 조금 더 큰 민생 과제가 의제로 다뤄지기 바란다. 민생을 위한다며 지원금을 얼마 줄 것인지만 논의하는 영수회담은 역사적으로 가장 초라한 협치로 기록될 것이다. 기왕 여야가 협력하여 국민들에게 돈을 뿌릴 바에는 돈 쓸 맛 나게 10배로 늘려야 통 크다는 소리나 들을 것이다.
    2024.04.27 07:00:00
    민생 살리는 통큰 협치가 절실하다
  • 경제를 보는 눈
    은행 거래하면서 금융 소비자들이 느끼는 공통점은 은행이 매우 이기적으로 영업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수익을 추구하며 이해를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은행만큼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기업은 드물다. 은행이 대외적으로는 고객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단건 단건 하나의 거래에서 이익을 올리려는 성향을 보인다. 말로는 고객을 우대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고객의 욕구와 상황을 도외시한 채 손익만을 계산하는 은행의 행태에 많은 고객이 실망하고 좌절한다. 개인 소비자가 오래 은행 거래하다 가장 실감 나는 변화는 은퇴할 때 마통(마이너스 통장) 한도가 준다는 것이다. 웬만한 직장에서 경력이 쌓인 직장인이면 통상 1억원 정도의 마통 한도가 주어진다. 그런데 퇴직하면 1000~2000만원 수준으로 대폭 감소하는 것이다. 마통은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매우 요긴하다. 누구한테 빌려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필요할 때 쉽게 꺼내 쓰고 여유가 있으면 채워 놓는 지갑 역할을 한다. 은행은 마통을 미끼 상품으로 이용해 직장인을 고객으로 유치한다. 실제 필요한 금액보다 더 많은 한도의 마통을 제공하며 자기 은행을 이용하도록 유혹한다. 그런데 직장을 은퇴하는 시점에 마통을 걷어가는 것이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면 신용 대출인 마통의 리스크가 높아져 이를 회수하는 것이 은행 입장의 논리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마통을 사용하며 성실히 이자를 납부한 기록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은행의 다른 상품을 이용하며 수익에 기여한 것도 반영되지 않는다. 심지어 은행에 연금펀드, 개인형IRP, 외화예금 등의 여러 상품 잔고가 상당 금액 남아 있지만 소용이 없다. 신용점수도 만점에 가까운데 마통을 연장해 주지 않는 은행의 야박한 처사가 야속할 따름이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마통을 갱신하러 지점에 갈 때마다 담당 은행원으로부터 새로운 상품을 권유받은 적이 많다. 수십 년에 걸쳐 은행과 거래하며 가입한 상품은 적금, 신용카드, 적립식 펀드, 변액보험, 퇴직연금 등등 다양하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도 구매한 적도 있다. 당시에 은행원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작으면서 만기 수익률이 높은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역사적 통계를 고려할 때 기초자산인 홍콩H지수가 반 토막 날 정도로 하락할 일은 거의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 경제가 추락하며 홍콩 증시가 폭락해 대거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고객과 거래하면서 리스크를 최대한 회피하며 이자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그 덕분에 은행의 이익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작년 이자수익은 총 41조3878억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올렸다. 코로나19 여파와 고금리 추세로 가계, 소상공인, 중소기업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사상 최대의 이익성과를 거두며 ‘이자장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은행이 단지 이익을 많이 낸다고 비난받는 것은 아니다. 은행이 욕먹는 이유는 고객의 가치와 기여는 무시하고 은행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영업 관행 때문이다. 고객이 필요할 때는 도움 주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것만 강요하는 은행의 이기적 행태가 고객을 처량하고 서글프게 만든다. 언젠가 은행 시장이 개방되어 정부의 보호막이 걷히면, 고객들을 무시하고 홀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04.13 06:10:00
    금융소비자로부터 은행이 욕먹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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