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연재 중
경제를 보는 눈
8개의 칼럼 #경제
  • 경제를 보는 눈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가장 먼저 나이부터 재본다. 나이순에 따라 연배와 연장자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장유유서라는 오랜 유교적 전통의 잔재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는 오래 살아 나이가 많으면 지혜가 쌓인다고 존경을 받던 세상이었다. 50에 지천명(知天命)이요 60에 이순(耳順)이라는 공자의 말씀이 나이가 들며 성숙하고 현명해져 가는 인생의 단계를 묘사한다. 그런데 현대 기업의 세계에서는 전혀 다르다. 기업의 인사관리에서도 나이를 따진다. 다만 나이가 많으면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홀대를 받는다. 생물학적 나이와 회사 기여도는 반비례의 관계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임금 형태는 연공서열형 호봉제로 근속 연수를 기준으로 임금이 결정된다. 오래 근무하면 자동으로 임금이 인상된다. 나이든 직원을 우대하는 임금제도로 도입됐다. 그런데 이 호봉제 때문에 나이든 직원이 기업의 부담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임금이 인상된 만큼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고 새로운 기술이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걸림돌로 치부된다.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네이버, 카카오, 삼성SDS, LG CNS에서 50대 팀장급 관리자가 늘어나며 공무원 조직처럼 관료화됐다고 한다. 20~30대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 할 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50대 관리자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 기술적 선도기회를 놓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든 직원을 직장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정년 제도를 운용한다. 연령을 기준으로 정년을 정하며 현재 근로자의 법정 정년은 만60세이다. 흥미롭게도 선진국에서는 법률로 제정한 의무적 정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경찰, 소방관 등의 특정 직종을 제외하면 연령에 따른 강제적 퇴직은 불법이다. 최근에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년은 별 의미가 없다. 정년까지 근무하는 직장인은 드물다. 대부분은 정년 전에 여러 이유로 회사를 떠난다. 임원으로 승진해 나가면 다행이다. 보통은 임원이 되지 못하고 중간에 밀려난다. 경기는 주기적으로 부침을 겪는데 침체기에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인원을 감축한다. 희망퇴직 또는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감원도 몇 년생까지 적용하다는 식으로 나이를 정해 실시한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실상은 세대교체를 추진하는 것이다. 요즘이 딱 그런 시기이다. 팬데믹과 고금리로 침체된 국내 경기가 계속 악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국내 탄핵정국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내수와 수출 기업 모두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올 하반기에 삼성전자, 포스코, SK텔레콤, LG디스플레이, 롯데온, 신세계면세점, G마켓 등의 대기업들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KT는 전체 인력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기업들은 주로 50대 임직원을 희망퇴직의 형태로 내보냈는데 그 여파로 50대 고용률이 지난 4월부터 8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에 30대와 40대의 고용률은 늘어났는데 50대의 고용률만 감소했으니 50대가 감원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임원 인사에서는 더 혹독한 세대교체가 나타났다. 롯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임원 인사를 단행하며 60대 이상 임원의 80%를 퇴진시켰다. 우리은행은 부행장의 절반가량을 물갈이하며 1970년대생 부서장들을 부행장과 임원으로 발탁하여 승진시켰다. 구조조정이라는 태풍에 50~60대 임직원이 쓸려가는 와중에서도 무풍지대가 존재한다. 대기업의 지배주주 경영자들은 모두 안전하게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승진잔치를 벌였다. 실적 부진을 이유로 대거 임직원을 퇴직시킨 식품 및 유통업계의 내수기업에서는 3~4세 경영자들이 회장, 사장, 부사장 등으로 승진하였다. 세대교체의 흐름에 편승해 1986년생 3세가 입사한 지 5년밖에 안 돼 부사장으로 승진한 사례도 있다. 나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철밥통 경영진은 은행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이사가 70세를 넘어도 임기를 보장받도록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했는데 이는 연임에 성공할 경우 3년 임기를 채울 수 있게 해주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KB금융그룹과 우리금융그룹도 이사가 70세를 넘어도 임기를 보장받도록 하고 있다. 70세가 넘어도 이사를 할 수 있는 직위는 회장밖에 없다. 지배주주가 없는 금융그룹에서 회장이 주인 노릇 하며 70세 넘어서도 계속 하려는 욕심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금융그룹의 70세 임기 연장을 두고 ‘나이는 걸림돌이 아니다’라는 신문논평도 나왔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이는 ‘벼슬’도 ‘걸림돌’도 아니어야 한다. 획일적으로 나이로 끊기 보다는 개인별로 성과를 평가해 정당하게 일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혈연과 경영권의 특혜가 없어도 누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오래 능력을 발휘하며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 일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라는 노랫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12.22 08:13:31
    내 나이가 어때서…
  • 경제를 보는 눈
    대기업 공채가 사라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내 대기업은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어 1년에 두차례 신입사원을 공개채용했다. 대학의 졸업 시기에 맞춰 대졸자를 신입사원으로 채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많은 대기업이 정기공채를 줄이고 대신 수시채용을 늘리고 있다. 수시채용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적합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재를 분야별로 선발하는 방식이다. 현대차, SK, LG 등의 주요 그룹은 아예 정기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만으로 뽑는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부터 모든 채용을 수시채용으로 전환했고 올해는 고성능차 개발, 배터리 설계, 로봇 사업 관리와 같이 세밀하게 132개 부문으로 나누어 지원서를 받았다. 4대 그룹 중에 삼성만이 유일하게 신입사원 공채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공채가 감소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기술과 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일반적인 범용인재보다 실무 분야에 맞는 맞춤형 인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규모 공채 시험과 면접을 실시하지 못하게 된 여건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공채로 채용한 신입 직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집체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상당수 대기업이 2020년을 전후해 공채제도를 폐지하게 되었다. 대기업의 신입사원 공채는 산업화 시대의 잔재이다. 대량생산-대량판매-대량소비하던 시대에 대단위로 투자해 고속성장하려면 대규모 인력이 필요했다. 공채는 많은 인력을 단기간에 채용할 수 있는 효율적 방법으로 1950년대 일본 기업들이 시작했고 1960년대부터 우리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대학도 대형화하여 졸업생을 양산하며 공채는 수만명의 대학생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정부가 청년 고용 측면에서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을 장려한 것도 공채의 확산에 기여했다. 대기업의 공채 규모가 정경밀착의 산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도 있었다. 경제가 어려울 때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면담하며 경기회복을 위해 투자와 고용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면 이에 화답하듯이 대기업들은 몇만명을 채용하겠다는 공채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매년 대기업 그룹이 몇 명을 채용하느냐는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이었다. 공채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인재를 평가해 채용하는 제도로 평등과 공정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규범과 일치하여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보편적인 채용방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공채제도가 시행되면서 부작용도 커졌다. 특히 ‘인력-일자리 미스매치’가 악화되었다. 청년의 구직난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대기업 공채로 인해 확대되었다. 기본적인 학력 요건만 갖추면 지원할 수 있는 공채는 대기업 입사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만큼 엄청난 경쟁을 유발한다. 대학 졸업자라면 누구나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입사 경쟁은 고시급으로 치열하다. 유명 대기업의 입사 경쟁률은 100대1이 넘는다. 재수 삼수가 태반이다.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할 수 있는 졸업 예정자 신분을 유지하려고 몇 년씩 졸업을 유예하며 계속 도전한다. 그러다 나이가 차서 안 되면 결국 취업 자체를 포기한다.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한 청년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다른 일자리를 가질 생각도 못 한다. 현재 일도 하지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20대 청년이 44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30대까지 더하면 73만명이나 된다. 일하지 않고 있는 20~30대 청년 인구가 이처럼 많지만,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린다. 한국고용정보원이 1014개 중소기업 대상으로 ‘청년고용 실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청년 직원 채용이 어려운 이유로 ‘지원하는 청년 구직자 자체가 부족하다’는 응답(53.2%)이 가장 많다. 인재들이 대기업에만 쏠리고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고착된 것이다. 대기업의 신입사원 공개채용이 줄어들고 경력자 수시채용이 확대되면 청년 실업과 중소기업 구인난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하는 청년은 처음부터 대기업에 입사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러면, 중소기업에 먼저 취업해 경험을 쌓고 그다음에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기회를 노릴 것이다. 이럴 경우에 중소기업의 인력이 대기업으로 유출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중소기업의 인력 이탈은 심각하다. 정부가 중소기업 재직 청년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청년내일채움공제’ 가입자의 35.4%는 2년 이내에 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대상의 실태조사에서도 청년 근로자가 퇴사하는 가장 큰 이유로 ‘더 나은 곳으로 취업하기 위해’(68.7%)가 꼽힌다. 공채 시대에 중소기업에 취직한다는 것은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한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런 사회적 인식이 청년들의 중소기업 재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공채가 사라져 대기업에 취업할 가능성이 낮아지면 중소기업에서 신입으로 시작해 경력을 쌓고 대기업으로 이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럼 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한 편견이 해소돼 중소기업을 선택하는 청년이 늘어날 것이다. 일단, 중소기업이 오지 않을 인재가 온다는 것만 해도 큰 변화이다. 입사한 인재가 떠나지 않고 장기재직하도록 붙잡는 것은 중소기업의 몫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11.10 09:06:51
    대기업 공채가 사라져야 청년과 中企가 산다
  • 경제를 보는 눈
    국회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편법증여이다. 이번에도 장관, 국가인권위원장, 검찰총장, 경찰총장에서 대법관, 헌법재판관에 이르기까지 인사청문회에서 편법 증여 문제가 불거지지 않은 후보자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부모인 후보자가 자녀에게 집이나 돈을 증여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부모가 자기 집과 돈을 자녀에게 주는 것이 왜 편법으로 비판받는가. 그건 내야 할 증여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적발되는 사례는 자녀가 집 장만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부모의 집을 시가보다 싸게 증여하거나 자녀의 집 매입 자금을 보태주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는 수십억 원대의 서울 강남 아파트를 장남에게 시세보다 싸게 판결로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대법관 후보자의 20대 딸은 아버지한테 증여받은 돈으로 용산 재개발 지역에 7억 원대 빌라를 사서 보유하고 있다. 경찰청장 후보자는 차남에게 돈을 빌려주며 편법 증여를 덮기 위해 차용증을 위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고위공직자의 편법 증여는 부당하게 부를 대물림하는 ‘아빠 찬스’ ‘엄마 찬스’로 사회 불평등의 근원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더 나아가 나라를 망칠 특권 세습이라고까지 욕을 먹는다. 솔선수범해서 국가 기강을 지켜야 할 사회 지도층이 법을 위반하고 세금을 탈루하며 재산을 자식에 물려주려는 것이 만악의 뿌리인 것처럼 매도된다. 그러나 이처럼 비난하는 사람들 본인은 어떨까. 자신들은 자녀에게 집 사줄 때 솔선수범해서 세금을 다 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요즘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는 10억원이 넘는다.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지난 6월 기준 12억1718만원이라고 한다. 이 정도 아파트를 자녀에게 상속하거나 증여하면 세금을 상당히 내야 한다. 우리나라 상속·증여 세제는 2000년 이래 25년간 변하지 않아 경제 규모의 성장과 개인 자산의 증가를 반영하지 못한다. 상속세 공제한도는 10억원으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보유한 중산층도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증여세 공제한도는 더 낮다. 직계 자녀에 대한 증여는 10년간 합산 공제금액이 5000만원에 불과하다. 10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증여하면 내야 하는 증여세가 억대이다. 이런 세금을 다 내고 자녀에게 집을 물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온 공직자들에게 몇억 원의 증여세는 엄청난 부담이다. 그러니 편법 증여가 절세를 위한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고위 공직자라고 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여 떼돈을 벌거나 거액의 재산을 물려주면 당연히 부정축재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10~20십억원 정도의 집 한 채를 자녀에게 물려 주는 정도로 나라 망칠 중죄인 취급받는 것은 조금 억울할 것 같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고 하지만 공직자로서의 특권을 이용한 것도 아니다. 평범한 부모라면 누구나 하듯이 자녀에게 자기 집을 하나 장만해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부모가 자녀에게 집 하나 마련해 주는 것은 한국적 관행이다. 특히 결혼하는 자녀에게 전세라도 해주어야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자녀에게 집도 못 해주는 부모는 늙어서 대접도 못받는다. 그건 공직자뿐 아니라 대한민국 부모가 안고사는 업보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집값이 천정부지로 쏟는 세상에서 자녀가 부모 도움없이 아파트 마련한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집이 없으면 결혼도 안하고 애도 못낳는다. 저출산에 인구 감소 시대에 청년에게 부모가 집을 마련해주는 것이 그처럼 잘못된 것이고 나라 망칠 특권 세습인가.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다 하고 있는데 특별히 고위 공직자의 편법 증여만 콕 짚어 나라 망칠 특권 세습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과하다. 차라리 공직자를 포함해 많은 국민이 편법 증여하니 나라가 망할 것 같다라는 논설을 쓰는게 맞다. 사실 고액자산가는 편법 증여 논란에서 자유롭다. 세무사나 은행원의 도움을 받아 법인을 만들거나 재단을 세워 이미 합법적으로 증여해 두었다. 어설픈 중산층이나 법망 피해 집 한 채 증여했다가 걸려들어 망신당한다. 정부는 상속·증여세제를 현실화하기 위해 지난 7월 새로운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아무쪼록 누구나 마음 편히 세금 다 내고 자녀에게 합법적으로 증여하여 나라 망칠 일이 없어지기를 희망한다.
    2024.09.10 17:25:17
    편법 증여, 도덕적 결함인가, 합리적 선택인가?
  • 경제를 보는 눈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약화돼 저성장 기조에 빠진 것은 기업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3일 성장사다리 정책을 발표했다. 중소기업 성장사다리 구축방안은 졸업 중소기업 지원 확대, 가업승계 지원, 성장사다리 점프업 프로그램 신설, 성장바우처 제공, 정책자금과 민간금융 연계한 자금조달 지원, 민간 투자 연계형 연구개발(R&D) 확대, 중소기업 M&A 지원 강화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에서 가장 큰 효과가 기대되는 대책은 세제혜택 확대이다. 현재 세제혜택은 자본과 자원이 열악한 중소기업에 주로 집중되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각종 세제혜택이 전면 중단된다. 이런 세제혜택 절벽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않는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혀왔다. 이에 성장사다리 대책에는 중소기업 기준을 넘어도 세제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는 유예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했다. 코스피·코스닥 상장 중소기업은 2년 추가 연장해 총 7년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유예기간이 지나 중견기업에 진입한 기업에 대해서는 최초 3년 간 높은 R&D·투자세액공제율을 적용해 준다. 성장역량이 높은 유망 중소기업 100개를 밀착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 성장사다리 점프업 프로그램도 제시되었다. 정부는 세제에서 금융, R&D M&A에 이르는 전방위 지원을 망라하는 성장사다리 프로그램을 통해 중견기업을 성장하는 중소기업의 수를 지금보다 2배 이상 늘린다는 방침이다. 중소기업의 성장사다리가 중요하다는 정부의 인식은 올바르다. 하지만 정부 지원만으로 중소기업의 성장사다리가 작동할지 의문이다. 정부의 대책은 지원 투성이다. 기존의 중소기업 지원을 초기 중견기업까지 확대한 정도에 불과하다. 작은 사다리를 조금 그것도 일시적으로 늘린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스 신화의 괴물 프로크루스테스는 사람을 침대에 묶어 놓고 침대 길이 맞춰 사람의 키를 늘이거나 줄였다고 한다. 정부의 성장사다리 정책도 비슷한 방식이다. 중소기업 지원 기준이라는 침대를 약간 늘려 놓았을 뿐이다. 아예 침대를 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직접 육성한다는 접근도 진부하다. 유망 중소기업 100개를 선정하고 밀착지원해 중견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대책을 보는 순간 머리가 띵하다. 왜 무슨 근거로 100개인가? 정부는 무엇을 근거로 성장역량이 뛰어난 유망기업을 선택할 것인가? 기존의 수많은 정부 지원사업과 무엇이 다른가? 이전에 수출중소기업 10만개, 벤처기업 3만개, 유니콘 기업 10개를 육성하겠다는 개수 목표와 다를 바 없다. 역시 침대에 사람 키를 맞추는 프로크루스테스 식의 접근이다. 정부의 인위적 노력에 의해 중소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면 벌써 이전에 했다. 성장사다리 정책의 원조는 MB정부이다. 당시에 독일의 히든챔피언을 벤치마킹해 강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소기업 정책의 요지이었다. 그 이후 강소기업이 늘어났다면 오늘날 성장사다리 대책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건강한 민간 생태계 조성을 위한 경제구조 개혁과 중소기업의 체질개선 노력은 전혀 없다. 역시 표지갈이 식의 전형적 정부 대책이다. 성장사다리 정책이 필요하다니 내놓은 격이다. 문제는 다른데 같은 답안만 내놓은 탁상공론의 발상이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2024.06.08 07:00:00
    지원 일색 ‘성장사다리 정책’통할까
  • 경제를 보는 눈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가장 큰 한계는 성장성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가치는 성장에 있다. 성장이란 단지 매출이 늘어나 규모가 커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장하는 기업은 활력이 넘치며 생기가 충만하다, 기술혁신을 통해 일류가 되고자 노력하여 투자와 고용의 선순환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반대로 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정체와 퇴보를 의미한다.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현상유지에 급급하며 새로운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다른 기업들이 앞서 나가는데 제자리에 머물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이 자생력을 갖추려면 성장사다리에 올라타 중견기업으로 클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 매우 어렵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성장하지 않고 계속 중소기업으로 남아 있다. 이런 현상이 고착화되어 ‘피터팬’ 신드롬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지 않고 어린이로 남아 있는 것에 비유하는 말이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이원화되어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과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납품거래 구조에 예속된 중소기업은 독자적으로 사업을 키워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도 중소기업의 성장기회를 제한한다. 대기업이 내부 시장을 이용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내재화하여 중소기업이 성장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광고, 물류, 정보시스템, 건물관리, 급식 등의 사업서비스 부문에서 이런 문제가 두드러진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보호가 성장동기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중소기업을 경제적 약자로 간주하여 다수의 중소기업에게 보편적 지원을 제공하는 복지성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이 성장하여 범위 기준을 벗어나면 이런 지원과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중견기업이 되어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수많은 혜택이 없어지는 대신에 엄격한 규제의 대상이 된다. 중소기업은 노동·안전·환경에 대한 규제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견기업은 모든 규제를 예외 없이 온전히 적용받아야 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적합업종이나 생계형 업종 등의 시장조치에서도 중견기업은 규제의 대상이다. 중견기업이 내수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성장을 추구할 경우 과열 경쟁을 유발하여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정부의 보호막이 걷히고 대신 감시와 견제의 칼 끝에 놓이게 된다.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는 중소기업의 생존에 정부 지원과 보호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개별 기업에 대한 직접적 지원과 혜택이 과도하면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고 성장을 기피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앞으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성장성과 연계하여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려는 동기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성장잠재력이 높은 중소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여 해외시장에서 성장을 추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개별 기업에게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시장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정신이 보상받는 민간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대기업의 부당한 내부 거래를 규제하여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함으로써 전문 중소기업이 독립적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장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에 대한 전속관계를 완화하여 타 경쟁사에게도 공급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대기업에 유리하고 중소기업이 소외받는 경제구조를 개혁하여 중소기업이 튼튼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05.25 17:00:00
    중소기업의 성장사다리를 찾아서  
  • 경제를 보는 눈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가장 새롭다고 주목받은 대목은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하여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경제성장 정책을 이끌어온 ‘경제기획원’과 같이 종합적이고 강력한 사령탑 역할을 담당하는 부총리급의 기획 부처를 설치하여 교육, 노동, 복지를 아우르는 정책을 수립해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인구감소로 인해 국가 소멸의 위기까지 예견되는 상황에서 저출산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여러 부처의 관련된 정책을 총괄하여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의지는 높이 평가한다. 현재 인구문제를 다루는 최고위급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정책 권한과 예산권이 없는 위원회 조직으로 실행력을 갖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했다. 그동안 각 부처가 따로 놀면서 저출산 대응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지난 15년간 출산장려를 위해 투입한 예산이 280조원에 달하지만, 출산율은 계속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4분기 국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의 평균 출생아 수)은 0.65명으로 최초로 0.6명대로 떨어졌다. 저출산에 대응하는 접근을 복지 정책의 차원을 넘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도 긍정적이다. 대통령이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을 밝히며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게 하고, 자녀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부담을 줄게 하겠다’라는 설명은 정확하고 적합하다. 저출산 문제는 매우 복잡하며 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주거, 교육, 노동, 일자리, 의료, 복지, 노후 등의 모든 문제가 얽혀 있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출산과 양육을 억압하는 경제적 구조와 사회적 문화가 뿌리처럼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한 두가지 정책만으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육아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복지성 대책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은 채 증상만 악화시킬 따름이다. 나무로 치면 속에 골병이 들어 안에서부터 시들고 뿌리가 썩어가는데 영양제와 비료만 주는 꼴이다. 이처럼 난해한 저출산 문제를 부총리급의 부처 신설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교육 개혁, 노동 개혁, 연금 개혁, 의료 개혁 등 어느 하나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상태에서 이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 풀리는 저출산 문제를 부처 설치로 해결하겠다고 하니 생뚱맞기만 하다. 저출산에 대응하는 신생 부처가 조직을 갖추고 역량을 발휘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실효성도 미흡할 것으로 예상한다. 차라리 기획재정부를 저출산 대응 부처로 변경하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획재정부는 재정과 예산을 책임지며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을 통제하는 사령탑 기능을 담당한다. 국회와 야당도 법안이나 예산에서 기재부 눈치를 볼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런 기획재정부를 저출생대응기획부로 변경하여 모든 부처의 정책과 예산에서 출산장려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면 효과가 훨씬 크게 나타날 것이다. 저출산 정책이 힘을 발휘하려면 국회와 야당의 협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통령도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에 야당의 적극적 협력을 요청하였다. 국가의 미래 운명을 좌우하는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정부뿐 아니라 여야 정당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저출생대응기획부가 출범하면 장관에 야당 인사를 임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국가적 비상사태인 인구감소 위기를 여야가 같이 해결하는 것에서 실질적 협치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공약으로 ‘인구위기대응부’를 내세웠으니 야당 공약을 수용하는 의미로 저출생부처를 만들었다고 하면 야당도 거부할 명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국회가 입법할 때 ‘출산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출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법안은 아무리 중요해도 통과시키지 말아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부처 신설이 아니라 국가 개조 수준의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05.11 07:00:00
    저출생대응기획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
  • 경제를 보는 눈
    격렬했던 총선이 끝나고 진한 여운이 오래 남아 있다. 승리한 정당은 압승의 환희에 들떠있고 패배한 정당은 책임 논쟁으로 시끄럽다. 대통령은 여야 양쪽에서 수용할 총리 후보를 물색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막강한 국회 권력을 거머쥔 거대 야당의 공세가 예상되며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자 정부 부처와 공공 기관은 현안 대응에 손을 놓고 있다. 이 와중에 민생 경제는 방향타를 잃고 갈팡질팡 흔들리며 좌초 일보 직전에 놓여 있다. 특히 물가 상승이 거세지며 가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올해 들어서도 3% 대의 상승률을 이어가며, 신선식품 물가 상승률은 20%대로 급등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인플레이션이 퍼지자 신조어가 유행한다. 사과를 위시한 과일값 급등을 칭하는 ‘프루트 플레이션’,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상승한다는 ‘치킨 플레이션’, 밀가루·계란 가격 상승으로 빵값이 계속 오르는 ‘빵 플레이션’, 우유 가격의 지속적 인상을 의미하는 ‘밀크 플레이션’, 국수 음식 가격의 상승을 뜻하는 ‘누들 플레이션’, 직장인들의 점심값 지출이 증가한다는 ‘런치 플레이션’ 등등. 인플레이션이 민생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며 파생된 유행어를 열거하면 끝이 없다. 흥미롭게 이런 인플레이션 신조어는 대부분 먹거리와 관련된다. 한국인은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하다. 그러니 먹거리 물가 상승은 심각한 민생고이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에 일조한 ‘대파 가격’ 논란이 왜 그리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 잘 생각해 보라. 대파 한 품목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대파로 상징되는 먹거리 가격의 상승이 문제이다. 대파 가격이 싸다는 둥, 한 단이 아니라 한뿌리 가격이라는 둥의 말장난은 먹거리 물가에 시달리는 국민을 서글프고 화나게 만든다. 총선 유세에서 대파를 흔들어 대며 여당을 비웃고 공격한 야당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법카로 초밥도 사 먹고 코인 투자로 수억원을 벌어들이며 불법 대출로 강남 아파트에 투기한 본인들은 민초들의 생활고를 얼마나 알기나 할 것인지. 대파 가격을 잘못 거론해 민생에 무지하다는 사실이 탄로 난 여당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대파를 비롯한 장바구니 물가를 내리기 위해 야당은 무엇을 노력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국정에 관한 여야 협치를 논의하기 위해 곧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난다고 한다. 그런데 야당이 주장한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의제에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벌써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정말로 한심하고 치졸하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살포하는 현금성 지원금이 포퓰리즘이냐 아니면 내수활성화 마중물이냐 하는 논란을 떠나 사소하고 쫀쫀하다. 이 정부 들어와 대통령과 야당 영수가 최초로 만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최우선 과제가 기껏 국민 1인당 25만원짜리 밖에 안된다는 말인가. 여당과 야당의 총선공약집을 살펴보면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거창하며 중요한 정책이 많다. 국민의힘 총선 공약집은 ‘새로운 변화 내 앞으로’라는 제목으로 ‘민생 활력, 새로 희망’을 내세운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집은 ‘삶의 질, 수직 상승을 위한 민주당의 약속’이라는 제목을 걸고 ‘국민 모두가 전 생애에 걸쳐 건강과 안전, 소득과 주거 등 모든 영역의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실제 총선 유세에서 공약집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정책 토론회도 없었고 언론도 공약에 관심두지 않았다. 그러니 대다수 국민은 각 정당의 총선공약집이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넘어갔다. 여야가 서로를 비난하는 심판론만 부각되었을 뿐이다. 민생공약으로 주목받은 것은 야당의 25만원 민생지원금이 유일하다. 참 상상력이 빈약하다. 뭐 현대판 고무신 쪼가리도 아니고. 거창한 협치를 논의하는 여야 영수회담에서 조금 더 큰 민생 과제가 의제로 다뤄지기 바란다. 민생을 위한다며 지원금을 얼마 줄 것인지만 논의하는 영수회담은 역사적으로 가장 초라한 협치로 기록될 것이다. 기왕 여야가 협력하여 국민들에게 돈을 뿌릴 바에는 돈 쓸 맛 나게 10배로 늘려야 통 크다는 소리나 들을 것이다.
    2024.04.27 07:00:00
    민생 살리는 통큰 협치가 절실하다
  • 경제를 보는 눈
    은행 거래하면서 금융 소비자들이 느끼는 공통점은 은행이 매우 이기적으로 영업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수익을 추구하며 이해를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은행만큼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기업은 드물다. 은행이 대외적으로는 고객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단건 단건 하나의 거래에서 이익을 올리려는 성향을 보인다. 말로는 고객을 우대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고객의 욕구와 상황을 도외시한 채 손익만을 계산하는 은행의 행태에 많은 고객이 실망하고 좌절한다. 개인 소비자가 오래 은행 거래하다 가장 실감 나는 변화는 은퇴할 때 마통(마이너스 통장) 한도가 준다는 것이다. 웬만한 직장에서 경력이 쌓인 직장인이면 통상 1억원 정도의 마통 한도가 주어진다. 그런데 퇴직하면 1000~2000만원 수준으로 대폭 감소하는 것이다. 마통은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매우 요긴하다. 누구한테 빌려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필요할 때 쉽게 꺼내 쓰고 여유가 있으면 채워 놓는 지갑 역할을 한다. 은행은 마통을 미끼 상품으로 이용해 직장인을 고객으로 유치한다. 실제 필요한 금액보다 더 많은 한도의 마통을 제공하며 자기 은행을 이용하도록 유혹한다. 그런데 직장을 은퇴하는 시점에 마통을 걷어가는 것이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면 신용 대출인 마통의 리스크가 높아져 이를 회수하는 것이 은행 입장의 논리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마통을 사용하며 성실히 이자를 납부한 기록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은행의 다른 상품을 이용하며 수익에 기여한 것도 반영되지 않는다. 심지어 은행에 연금펀드, 개인형IRP, 외화예금 등의 여러 상품 잔고가 상당 금액 남아 있지만 소용이 없다. 신용점수도 만점에 가까운데 마통을 연장해 주지 않는 은행의 야박한 처사가 야속할 따름이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마통을 갱신하러 지점에 갈 때마다 담당 은행원으로부터 새로운 상품을 권유받은 적이 많다. 수십 년에 걸쳐 은행과 거래하며 가입한 상품은 적금, 신용카드, 적립식 펀드, 변액보험, 퇴직연금 등등 다양하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도 구매한 적도 있다. 당시에 은행원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작으면서 만기 수익률이 높은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역사적 통계를 고려할 때 기초자산인 홍콩H지수가 반 토막 날 정도로 하락할 일은 거의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 경제가 추락하며 홍콩 증시가 폭락해 대거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고객과 거래하면서 리스크를 최대한 회피하며 이자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그 덕분에 은행의 이익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작년 이자수익은 총 41조3878억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올렸다. 코로나19 여파와 고금리 추세로 가계, 소상공인, 중소기업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사상 최대의 이익성과를 거두며 ‘이자장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은행이 단지 이익을 많이 낸다고 비난받는 것은 아니다. 은행이 욕먹는 이유는 고객의 가치와 기여는 무시하고 은행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영업 관행 때문이다. 고객이 필요할 때는 도움 주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것만 강요하는 은행의 이기적 행태가 고객을 처량하고 서글프게 만든다. 언젠가 은행 시장이 개방되어 정부의 보호막이 걷히면, 고객들을 무시하고 홀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04.13 06:10:00
    금융소비자로부터 은행이 욕먹는 이유
1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