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화
이경화 미디어 아티스트 겸 건축가
연재 중
하이브리드 美MI
4개의 칼럼 #문화
  • 하이브리드 美MI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스코틀랜드의 한 지역에서 갈매기들이 ‘치즈 토스트’에 ‘다이빙 폭격’을 가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이 갈매기들은 식당손님들이 이 소문난 토스트와 함께 인증샷을 찍으려 할 때 공중을 맴돌다 마치 배고픈 갱스터처럼 급습하여 먹튀를 한다. 식당은 이제 토스트를 강탈당할 위험에 처한 고객을 위해 ‘갈매기 보험’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갈매기들이 토스트 조각을 노리는 것일까? 바다위에서 물고기를 찾으며 날아야 하는게 아닐까? 이 갈매기들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의 혼란스러운, 때로는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에 적응하려 생존 모드에 돌입한 걸까? 올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렸었다. 그곳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를 보았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제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동호 명예조직위원장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김 위원장은 ‘문화의 불모지’였던 부산을 ‘영화의 도시’로 변모시킨 인물이다. 공보처 7급 주사관으로 시작해 문화부 차관, 초대 예술의 전당 사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등 다양한 공직을 역임한 그의 행보는, 작가 리처드 바크의 소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주인공과 닮았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에서 주인공 조나단은 시대의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고, 자유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멋진 비행을 꿈꾸는 갈매기다. 1960년대 미국의 반문화 시대를 배경으로, 그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분주히 날아다니는 다른 갈매기들과는 달리, 스스로를 위해 밤낮으로 비행연습에 몰두하며 하늘을 날아다닌다. 그는 기존의 관습을 거슬러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며, 결국 자유로운 비행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 이야기는 자기 수련과 꿈을 향한 끈질긴 추구가 결국 성공을 넘어 초월의 길로 이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설립 30년 만에 김 위원장의 고군분투 덕분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영화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와 정부의 치명적 수준의 예산 삭감 등으로 영화제의 운영이 어려워졌고, 부산은 레임덕에 빠진 상황이다. 정부가 부산 영화제의 문화적,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케이팝과 함께 한류의 두 축을 이루는 케이시네마, 그 위상을 쌓아올린 부산영화제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동안 남다른 자부심을 보여온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 등에서 올해는 특별한 성과가 없었던 것도, 정부의 지원 부족과 문화에 대한 인식부족이 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정부의 예산 삭감은 젊은 영화감독들에게 영화를 창작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었고 그 결과 실험적 예술적 창의성에 중점을 둔 영화가 나올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 버렸다. ‘독립, 다양성 영화 속 재능있는 영화인을 발굴해 소개한다’라는 부산국제영화제 본래 취지를 이어받아 영화 창작자들이 자유로이 창의적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일궈온 K-시네마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실험성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들이 나올 수 있을때 케이시네마가 지속 가능할 것이다. 현재 영화 산업은 ‘극장의 암흑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요즘같이 디지털과 트렌드에 익숙한 컨템포러리 시대에 극장에서 OTT로 영화 소비 형태가 바뀌고 있는 지금, 영화제는 어쩔 수 없이 OTT와의 상생 방안을 고민해야만 한다. 새로운 시도와 창의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도로 올해는 넷플릭스의 ‘전,란’이 최초 OTT 영화로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였다. 부산은 영화의 꿈이자, 부산국제영화제는 예술가와 시민들이 함께 영화창작을 실험하는 살아있는 실험실이자 생태계이다. 축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부대행사와 파티는 영화제의 열기를 더한다. 한때 해외 집행위원장들과 영화 평론가들이 신문지를 깔고 술판을 벌였던 명물 스트리트 파티는 전설이 되었고, 벽에 휴지를 던져 붙이며 폭탄주를 즐기던 왕가위 감독과 쥴리엣 비노쉬가 춤을 추던 파티도 유명했다. 문화적 불모지였던 부산, 특히 남포동과 해운대 거리들은 세계적 스타들과 영화 창작자들의 파티장이 되었다. 2021년 이후, ‘동네방네 비프’를 창설하여 부산 전역이 영화의 거리로 확장되고,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영화제를 만들어가고있다. 이처럼 부산국제영화제는 K-시네마의 성장을 이끌며, 지역 문화와 도시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마치 스코틀랜드 갈매기가 우리의 ‘셀카’ 습관을 먹이로 삼는 것처럼, K-시네마의 경제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후, 다이빙 갈매기처럼 먹튀하는 상황처럼 보인다. 정부와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경제적 소비 촉진과 외화 유입을 이끌어내며, 도시 경제 발전과 고용 창출, 인프라 구축을 통해 관련 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바 있다. 또한, 국제 교류와 도시이미지, 정체성 확립 등의 많은 이점을 누렸다. 영화는 마치 꿈처럼, 눈을 감으면 펼쳐지고, 눈을 뜨면 사라진다. 프랑스 칸 영화제와 미국 오스카상을 꿈꾸며, 전 세계의 젊은 영화 감독과 배우 지망생들이 칸과 할리우드에 구름처럼 모여드는 것처럼, 부산과 영화제는 한국과 아시아 영화를 위해 중요한 곳이며 행사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OTT와의 상생을 꿈꾸며 정부의 적극적 지원하에 활기찬 영화의 날개를 다시 펼쳐야 한다. 30년의 전통과 컨템포러리가 공존하는 영화제, 조나단 갈매기처럼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는 영화제는 사람, 도시, 문화가 하늘과 전 세계 ‘구름Cloud’처럼 연결되는 새로운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단순한 영화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국 영화의 실험과 발표의 장, 그리고 국제교류의 장으로서 그 중요성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 창의적 영화 창작과 영화제 운영, 정부의 적극적 지원, 도시와 한국 문화를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으로서 케이시네마는 더욱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부산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도시로, 한류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영화제를 통해 우리 삶과 소통하며 진화해나갈 것이다. 다시 멋지게 날아오르는 활기찬 부산 국제영화제를 기대한다
    2024.12.05 10:52:21
    한국 영화와 갈매기의 꿈
  • 하이브리드 美MI
    올해 기록적인 열대야와 폭염으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극곰의 다이어트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전세계가 북극곰을 마치 셀럽처럼 주목하는 가운데, 그들과 셀럽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요즘 북극곰은 유명하고 인기가 있으며 매우 날씬하다는 점이다. 그린란드 남동부 지역 민물 빙하에서 식단을 명상수행자와 힙스터들처럼 채식으로 바꾸고 살아가는 북극곰 무리가 발견되었다. 원래 이들의 주식은 단백질과 지방함량이 높은 바다표범이었는데 최근 몇 년간 딸기와 채소잎으로 바뀌었고 최고 250㎏상당의 다른 지역 북극곰들에 비해 180㎏정도의 몸매로 날씬해졌다. 과연 기후변화는 이 폭신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이 동물은 시간이 지날 수록 아이러니컬하게 K팝 스타처럼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빙하 위에서 주로 바다표범을 사냥해 생존해온 북극곰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줄어드는 빙하로 먹이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들은 서식지에서 이동하여 새로운 먹이를 찾아 헤매야 했다. 이로 인해 북극곰의 몸무게가 눈에띄게 감소하게 된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발견된 북극곰 무리는 그린란드 표층 얼음에서 떨어져 나온 민물 빙하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었다”며 “이런 특이한 서식지가 북극곰의 피난처가 될 수도 있다” 고 밝혔다. 인간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베지테리언 북극곰은 전통적인 본성에서 벗어나 현대 생활에 적응하며 하이브리드적인 삶을 살고 있다. 팬데믹 이후의 전 지구적 생물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유일한 가능성은 하이브리드를 포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성공은 못했지만 세계 엑스포 유치에 제안되었던 '해상도시'가 그 한 예다. 부산 앞바다에 설계된 이'떠다니는 도시'는 난민과 기후 변화와 같은 이 시대의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하이브리드라는 혁신적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에 기대어 제시하고있다. 우리가 눈을 돌리는 곳마다 반세기 전과 같이 ‘순수’하거나 전통에 따른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북극곰은 인간이 낚시를 하는 곳에서 먹이를 찾고 체중을 줄이기 위해 채식을 하며, 부산 해상도시와 같은 '하이브리드' 도시도 그 혼종성을 수용하고 있다. 하이브리드는 혼돈에 직면한 우리에게 그 방법론으로서 창조적인 힘이 될 수 있을까? 해상도시에 적용된 아이디어는 전통과 혁신을 통합한 하이브리드를 포용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상상해 낼 수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전 세계의 해안 도시들이 가라앉고 있다. 빙하가 녹고, 폭우가 쏟아지며, 해안 침식, 지하수 고갈, 산불, 신종 바이러스, 식수 오염 등 환경 위기 이슈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개별적 재난상황은 서로 연결되어 전체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우리 모두에게 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단순히 별개의 현상으로 취급할 수 없다. 에코 페미니스트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우리의 시급한 과제는 레퓨지아(피난처)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학자들이 현재의 생태 위기를 레퓨지아의 붕괴라고 이야기한다. 46억 년 전에 탄생한 지구는 여러 차례 빙하기를 겪었고 이 기간 동안 기후 변화를 비롯한 극심한 환경 변화가 일어났지만 이를피할 수 있는 지역과 피난처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 인간이 촉발한 기후 변화가 이러한 피난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기후와 생태계의 위기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장'에만 의존해 해결책을 찾으려 해서도 안된다. 정부, 지역사회, 개인을 포함한 모든 수준에서 정치, 경제, 생활양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이브리드 개념을 적용한 해상도시 건설은 이러한 노력을 상징한다.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의 리더로서 지속 가능한 건축 프로젝트와 최첨단 기술을 구상하는 능력을 여러 차례 입증해왔다. 한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 산업과 전 세계, 특히 중동에서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를 건설한 최고의 건설 산업을 자랑한다. 부산시가 월드 엑스포에 제안한 해상도시는 UN해비타드와 오셔닉스의 협업으로 덴마크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다. 이는 바다와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해 제시된 인류의 청사진 이었다. 2022년 4월, 유엔 본부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심각한 토지 부족 현상에 주목을 하였다. 획기적 기술제공을 목표로 한 세계 최초의 지속 가능 해상도시 프로토타입 설계를 공개한 것이다. 기술과 문화, 예술의 힘을 통해 전 세계 기후 위기에 대한 해결방안이며 향후 미래에 다가올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혁신적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들의 설계를 이끄는 한 가지 원칙은 바로 하이브리드이다. 이 제안은 현재 계획을 바꿔 북항 재개발 2단계 부지 부산 앞바다로 전환 추진될 예정이다. 총 면적 6.3헥타르의 상호 연결된 플랫폼으로 구성, 이 해상 커뮤니티 모델은 초기에는 1만2000명, 최종적으로는 10만명 이상의 인구수용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럽연합이 내민 해법에 더해 한가지 제안을 해보고자한다. 재해에 대응하는 대안으로서 한국의 미학과 철학을 담은 해상도시를 한국의 주요 해안에 만들면 좋겠다. 동양 사상은 근본적으로 "자연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유기적 사고를 갖고있다.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한국 전통 건축은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중요시한다. 자연에 인위적질서를 강요하지않고 대상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한국미학에서 중시되어 온 전통적 시각이다. 한국 전통 건축의 자연 친화적 철학을 바탕으로 해상 도시에 '피난처'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인류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은 역사적으로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위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 왔다. 한국은 일제 식민 통치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실향의 아픔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재건했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처 역할을 했으며 역사적 항구 도시로서, 유입되어온 외국 문화의 영향으로 개방적이고 복합적인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국제사회와 잘 어우러지는 지정학적 특성을 지닌 곳으로 새로운 희망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에 제안된 해상도시는 각 플랫폼이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주거, 연구, 숙박, 수상 레크리에이션, 문화 예술 및 공연을 위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온실, 폐기물 제로 순환 시스템, 자체 처리 폐수시스템, 식량, 탄소 중립 에너지 및 혁신적인 모빌리티를 통해 에너지와 농작물을 생산한다. 이 프로그램에는 해안 서식지 재생, 태양 에너지 생산 시스템, 자원 절약 및 재활용을 위한 상호 연결된 시스템이 포함된다. 국제기구인 유엔 해비타트의 비전을 바탕으로 각 도시는 국제 환경 정책에 따라 일관되게 지속 가능한 관리를 받게 된다. 한국은 이제 세계 무대의 리더가 되었다. 건축, 문화, 예술, 도시 정책은 유엔과 함께 글로벌 위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유엔의 역할과 아시아의 허브로서 부산의 역할을 결합하면 윤리적이고 실용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현재의 도시 계획에 대한 대안을 설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구 생태계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의 힘은 지구운명을 결정하는 한 요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에 혼자 살아남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다른 존재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해야한다. 해상도시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한국의 문화(K건축, K컬처)와 혁신은 이러한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다.
    2024.09.14 07:00:00
    터전 잃고있는 북극곰과 부산 해상도시
  • 하이브리드 美MI
    얼마전 미국 로스엔젤레스 아카데미영화박물관 한국영화 상영 시리즈 <윤여정: Youn Yuh-jung> 특별 회고전 오프닝에 참석했다. 건축의 거장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은 영화제작의 예술과 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최대기관이다. 매끄러운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이 구형 건물과 대조적으로 박물관의 전시는 매우 오래된 할리우드 느낌이 나는 아르데코 공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마치 다른 마법의 세상에 온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개관 직후 이 박물관은 미국 문화예술과 영화계에서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톰 행크스, 레이디 가가, 스티븐 스필버그 등 스타들이 지지한 가운데 많은 기대 속에 2021년 문을 열었다. 원래 2017년 개관 예정이었던 박물관은 팬데믹의 영향으로 개관이 연기됐지만 톱스타들과 문화예술 주요인사들이 참석한 오프닝 갈라 행사로 할리우드가 열광했고 박물관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이 특별전은 ‘미나리’를 비롯해 세계속 여성의 위치를 사유해볼 수 있는 그녀의 출연작들로 구성됐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한국어를 주요언어로 쓴 디아스포라 영화다. 영국의 유력지 더 가디언은 “거침없이 열정적이며 솔직한 윤여정은 새로운 유형의 독립적 한국 여성상을 구현해냈다” 라고 평했다. 미국 할리우드의 심장부에서 왜 윤여정 그녀를 주목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필자는 한국인 최초 아카데미 어워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을 만나 그녀에게 ‘디아스포라’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영화 속 그녀의 역할은 한국에서 미나리 씨앗을 미국 오지로 가져오는 할머니다. 자신의 몸을 던져 더러운 물을 정화해내는 미나리처럼 포용적 모성의 상징이며 동시에 삶의 무게를 장난기 가득한 웃음의 미학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가졌다. 본인 스스로 북한 개성출신 실향민이며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보편적 미개념에 부합되지않는 비호감 배우, 순종적이지 않은 이미지등에서 개성파 배우로 인식돼 왔다. 그녀가 맡은 배역의 대부분은 성적이고 전복적 역할을 이뤄내는 약자의 입장이었다. ‘타자’로서의 여성성을 대표하는 윤여정의 몸은 현대적 개념의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듯하다. 세계적 대배우로 인정받기까지 그녀의 삶은 고난으로 가득했다.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등 이른 나이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좌절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결혼후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가 13년동안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려운 삶을 견뎌냈다. 이혼 후 고국으로 돌아와 싱글맘으로서의 양육과 생계를 해나가기 위해 단역이나 남들이 기피하는 역할들을 마다하지않았고 불굴의 의지로 버텨냈다. 아무곳에서나 자라나며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풀, 특유의 향과 줄기의 강한 탄성으로 주요리를 묶고 장식하는 조연의 역할, 그녀의 모든 역사는 마치 이 미나리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세계는 다양성, 초국적성, 하이브리드화된 네트워크의 세상이다. 아카데미 회고전을 개최하는 이유는 팬데믹 이후 새롭게 부각된 인권과 디아스포라라는 현대적 이슈에 있다고 본다. 디아스포라란 근본적으로 소수민족의 뿌리 없는 삶과 뿌리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 개념이다. 이민자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고국을 떠나면, 미나리처럼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이 미국땅에 뿌리를 내리고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하이브리드 미나리가 된다. 글로벌 관점에서 디아스포라가 주목받는 이유는 오늘날 세계가 기후변화,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한 사회경제적 양극화, 인종 및 계급 갈등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단절된 채 살아가는 부조리의 세계라는 점 때문이다. 자신의 터전을 떠나야했던 이민자들의 경험은 현대사회의 모든 세계 시민들과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만이 하나의 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언어라고 설명한다. 영화라는 장르는 시각적 언어와 함께 문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가상 현실이라는 가상의 개념에 대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어 영화 미나리는 미나리 씨앗을 잠재력으로서 상상을 한다. 모성을 상징하는 할머니를 통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디아스포라의 잠재력으로서의 미디어다. '한'의 정서는 전 세계 소수민족의 보편적 정서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한국의 역사적 개념인 '한'은 우리의 DNA에 담겨 국경을 넘어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다. '가상현실'을 '한'으로 구현하고, 고대 그리스 희극 작품처럼 기쁨과 흥겨움으로 승화시키는 ‘한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한류의 성공은 미나리로 상징되는 생명력 DNA와 개인주의가 아닌 단결성, 연결성을 통해 공감을 나누는 데에 있다. 한국 영화 회고전이란 현상이 일어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 디아스포라 영화 '미나리', 식민지 경험의 치유 '파친코', 계급과 구조의 전복 '기생충', 자본주의 경쟁 '오징어 게임' 등이 한류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한류의 힘은 잠재적 가능태라고 본다.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시대 상황을 수렴한, 재현과 재해석을 통해 전통을 넘어서는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양성, 네트워크, 하이브리드로 정의된다. 지역성과 지정학적으로 깊이 얽혀 있으며 중앙집권보다는 분권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유색인종의 힘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우리의 한류 DNA는 다양한 맥락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더 큰 힘을 발휘해 나가고 있다. 한국 영화와 함께 K팝은 방탄소년단의 예처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팬들과 겸허하게 일상을 교감하며 활기찬 희망의 길을 보여줬다. 자유에 대한 의지, 변화를 향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열망을 담은 K-컬처는 전 세계 관객들을 자발적으로 참여시키고 연결시키는 희망과 설렘을 만들어냈다. 이제 우리는 한류에 대한 깊은 철학이 필요하다. 한류는 백남준 작가처럼 여러 세계사이의 중간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높은 문화예술"과 "낮은 문화예술"의 가교로서 한류의 역할은 사회적 문화외교적 측면에서도 힘을 가지며, 진정성과 생명력의 DNA로 글로벌 시각의 문화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이제는 기술, 예술, 문화의 토대를 더욱 강화해야 할 때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원, 한류를 통한 글로벌 교류의 문을 활짝 열어 세계 무대에서 우리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08.01 08:00:00
    할리우드가 배우 윤여정을 주목한 이유
  • 하이브리드 美MI
    올해 오스카 시상식 스크리닝 파티에 참석했었다.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이야기가 7개 부문을 휩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에 비유되는 오펜하이머는 핵분열과 핵융합의 물리학원리를 이용해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위해 핵폭탄을 만들어냈다. 그는 인류를 구하려는 노력과 세상을 파괴할 힘을 아이러니하게도 융합시켰다. 작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백남준 다큐의 시사회에도 참석했다. 한국의 천재 예술가에 대한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백남준은 진공관의 음극선이라는 물리학 원리로 동양 철학의 우주 생성적 변화를 의미하는 비디오 예술의 세계를 열었다. 그는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한 인류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전자 통신의 세계와 달의 끝없는 생명력을 상징한 예술적 결과물을 융합해냈다. 백남준의 다큐멘터리는 선댄스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미국과 유럽의 최고 뮤지엄에서 상영되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영화제와 주요 미술관에서 찬밥 신세가 되었고, 한국 미술계와 영화계의 정치적 입장에 의해 외면당하기도 했다. 그의 예술 세계와 한국전쟁을 의미 있게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DMZ 영화제에서 주목받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백남준의 다큐멘터리는 그의 위상에 걸맞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환경, 인권, 기후 위기 등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예술가이자 사상가인 백남준은 지금 이 시기에 재조명되어 야 할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세기를 앞서 소셜미디어를 예측하고 비틀즈를 비롯한 대중예술가들 을 그의 작품에 등장시킨 백남준은 한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백남준의 정신은 특히 분열된 현재의 세계 상황에서 인류를 위로하고 연결하기 위해 재해석돼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과학 기술과 문화 예술의 융합의 힘을 통해 사회를 희망으로 이끌 수 있다는 그의 유쾌한 긍정의 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다고 본다.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가 화두로 여전히 뜨겁다. 오펜하이머 영화의 렌즈를 통해 원자력의 장단점을 살펴볼 수 있었듯이 백남준의 렌즈를 통해 현 상황을 살펴보자. 특히 핵전쟁의 공포가 항상 도사리고 있는 한국 땅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여전히 분단이 고착화된 비무장지대는 현대 한국의 가장 상징적인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적 의미로 보면 남과 북을 가르는 동시에 동서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지뢰밭 투성이며 역사적으로 아픈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곳이지만 생태적으로 오랜 세월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아 형성된 청정한 아이러니의 장소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의 개념에 잠시 집중해 보면, 이 것은 두 극이 만나 에너지를 변환하는 백남준의 진공관 구조 개념으로 잘 설명할 수 있다. 아시아의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태어나 유럽의 분단 국가인 독일에서 미디어 아트를 창시하며 문화 간 격차 해소를 노력한 백남준은 예술가이자 세계 시민으로서도 아이러니적 정체성을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적인 분열과 환경 위기로 인해 인류의 미래가 밝지 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는 문명의 단절과 생명의 단절이 공존하는 비무장지대 같은 곳이 될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진화하는 불굴의 생명력이 살아남을 것이다. 일런 머스크의 꿈인 달 관광 프로젝트 ‘디어문’이 현실화되고 있듯이, 인류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실제로 개척할 날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백남준의 정신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만큼이나 희망찬 미래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올해 정부의 문화예술 예산 정책은 심각하다. 영화제를 비롯한 모든 문화 예산이 삭감되어 그 의미를 되새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시적이고 일시적인 사업에만 관심이 있는 현재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선견지명을 볼 수 없다. 한류의 힘은 특별하다. 그것은 우리의 DNA를 바탕으로 강인하며 신선하다. 현재 세계의 정치·경제적 혼란속에서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 한류는 소셜미디어를 질주하며 달려와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한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지금 이 순간, 한류 정책은 명철한 문화 철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DMZ와 같은 상징적인 장소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실험적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어 전 세계와 공유하면 좋겠다. 백남준의 실험정신을 재해석하고 문화철학을 담아 새롭고 매력적인 K컬처의 장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DMZ를 미래를 상징하는 K컬처로 만들어 나갈 것을 제안한다. 동양사상의 화합의 정신에 물을 주고, 젊은 세대에게 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상징성, 과학기술과 함께 미래지향적 문화강국으로서의 한류의 역할, 이에대한 정부지원을 활성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백남준은 세계의 위기를 축제로 만드는 유쾌한 아티스트다. 그는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했다. 문화예술을 통해 미래를 그려내는 역할을 우리 한류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05.18 06:05:00
    백남준과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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