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은
김다은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연재 중
웹소설 종의기원
12개의 칼럼 #문화
  • 웹소설 종의기원
    II 부 12. 쓰레기 연인 어제부터 시작된 쓰레기 분리수거가 오늘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4층 아파트 창가에 서서 플라스틱류나 비닐류로 차곡차곡 채워진 거대한 포대기가 작은 섬들처럼 아파트 앞에 놓여 있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매주 저렇게 많은 쓰레기가 모이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주민 두 사람이 양손에 겹겹이 접어 담은 종이상자들과 빈 병들을 담은 봉투를 번갈아들며 수거 장소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파트 앞으로 대형 쓰레기차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늦장을 부리던 주민들이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날랐다. 유학 시절, 프랑스 파리의 한 외곽 아파트에 살 때는 부엌에 쓰레기 수거 우체통이 있었다. 우체통 모양의 구멍으로 무슨 쓰레기건 던져 넣었다. 고층에서 아래로 흘러가서 지하 어느 한 곳에 모이는 것을 수거하는 구조였다. 주민은 어떤 경로로 쓰레기가 처리되는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그 편리한 시스템에 익숙해 있다가, 한국에 와서 고층에서부터 저층까지 모두 쓰레기를 들고나오는 진풍경을 보았다. 며칠 간의 호텔 생활에서 벗어나 아파트 일상으로 진입하면서부터 그 쓰레기 운반 과정을 나라고 피할 수는 없었다. 게으름을 피우면 집안에서 냄새가 스멀거렸기에 어쩔 수 없이 매주 수요일 밤 11시가 넘어서 어둡고 인적이 뜸할 때 나가곤 했다. 나와 비슷한 부류와 마주치면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빈 깡통 던져넣고 도로 들어갔다. 어쩌면 나보다 더 늦은 시간에 나온 올빼미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 행렬은 새벽까지 계속되어 지금 시간에 이르렀을 것이다. 대형집게 크레인 트럭에서 젊은 기사 한 명이 내렸다. 트럭 뒤쪽의 크레인을 움직이자 거대한 집게 손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마치 거대 스크랩의 붉은 손같은 집게가 종이상자를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놀라운 효율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쓰레기를 운반해가는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철제 집게 손은 단번에 수십 개의 상자를 한꺼번에 잡아서 올렸다. 어, 거대 철제 스크랩 손이 나무 정자 옆에 서 있는 한 여자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 놀라서 몸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다시 보니, 다행히 집게 손이 여자의 머리를 친 것은 아니었다. 직장인이라면 출근 준비를 하고 주부라면 출근 준비를 시켜야 하는 시간이었다. 여자는 아랑곳없이 정자 옆에 서서 붉은 스크랩 손이 땅의 쓰레기를 트럭으로 운반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짧은 반바지에 푸른 티셔츠를 걸치고 챙이 긴 모자를 쓴 모습이었다. 집게 차와 나무 정자 사이에 간격이 있었지만, 내 아파트에서는 집게 손이 내려올 때마다 여자를 칠 것 같은 각도로 보여 아찔하곤 했다. 왜 저렇게 쓰레기의 매력에 빠져 넋을 놓고 있는지, 나는 비키라고 여자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이 바쁜 아침 시간에 스크랩 손의 영웅적인 활동에 빠진 여자의 모습이 한심하다 못해 매력적이었다. 고개를 계속 들고 있는 여자를 계속 내려다보고 있는 내 모습이 더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 순간에도, 지각 주민 한 명 나타나 재빠르게 쓰레기를 투척하고 사라졌다. 무슨 연유인지 발길을 떼지 못하는 여자를 보면서, 과거 내가 폐차시켰던 자동차가 생각났다. 10년 이상 타고 나니 수리의 빈도가 점점 잦아지더니, 큰 도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멈춰 버리는 순간이 왔다. ‘푸’른 조명이 음악과 잘 어울려 마음속으로 아꼈고, 내 분주한 스케줄을 잘 맞춰준 ‘조’력자라는 의미에서 ‘푸조’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던 애마였다. 중고차로 처분하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위험한 차를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것도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닌 듯해서 폐차를 결정했다. 필요한 절차를 밟고 약속을 잡은 날, 폐차장 직원이 나타났다. 자신의 트럭 꽁무니에 간단하게 내 ‘푸조’를 연결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개처럼 내 하얀 자동차가 끌려갔다. 애처롭게 끌려가는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쩌면 저 여자도 버려야 할 것을 버려놓고, 차마 마음을 떼지 못해서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쇠 스크랩 집게 손에 의해 쓰레기 뭉치가 다시 하늘에 붕 치켜 올려졌다. 하늘 위로 올려진 쓰레기 뭉치는 마치 바쳐지는 제물처럼 신성하게 보였다. 다음 순간 쓰레기 뭉치가 트럭 위로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푸조’가 나에게 버림을 받고 트럭에 연결되어 끌어가던 순간처럼 애잔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기꺼이 제공하고 이제 그 껍데기들만 남아서 결국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나는 ‘푸조’를 위해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고 중요해서 10년 이상이나 내 발이 되어 주었던 존재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나 싶었다. 여느 때 같으면, 나는 메모장에 ‘쓰레기를 위해 애도’라는 메모를 남겼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아서, 내가 오늘 창밖으로 본 풍경과 ‘푸조’에 대한 애도와 그리고 붉은 스크랩 집게 차가 트럭 위에 쓰레기를 부려놓은 후 사정없이 짓뭉개서 부피를 줄이던 광경을 묘사했을 것이다. 쓸모를 다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해 애도한 시간을 그럴듯하게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짝사랑하는 남자의 쓰레기와 여자의 플라스틱 그릇이나 병들이 쓰리기 수거차 안에서 비로소 만나는 상상을 신나게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쓰레기 연인’의 이야기를 쓰면서, 쓰임을 다하고 사라져가는 쓰레기들을 마지막까지 모욕하고 싶지 않았다. 뻑뻑한 유리 창문을 닫으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짜 버려야 하는 것들을 결국 버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거처를 옮길 때 정리해야 하는 많은 물건처럼, 마음도 이사하려면 정리해야 할 것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아진 이유는 내 삶의 중요했던 것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그것들로부터 도망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내용물이 다 빠진 거푸집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정신적인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 위기감은 내가 프랑스 작가와의 대담에서 도망쳐 나오던 날 이미 감지한 것이었다. 그날, 잠깐의 휴식시간에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대담 장소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대담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휴식 후에 대담이 다시 이어질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곳을 떠나버렸다. 핸드폰으로 나를 찾는 메시지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알지 못하는 척했다. 그리고 밤거리를 정신없이 헤매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도리어 사과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노랑머리가 보낸 것이었다. 자신의 미숙한 전달로 내가 대담이 끝난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사과문을 받고 더 괴로웠다. 어디든지 달아나고 싶었고, 달아날 곳을 찾아 헤매는 난잡한 꿈을 꾸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프랑스 작가에게서 이메일이 직접 와 있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는 매우 정중한 감사 인사와 함께, 혹여 자신의 실수나 오해가 있었다면 알려달라고 적은 글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쓰레기차의 플라스틱들이나 빈 종이상자들처럼 짓뭉개져서 산산이 부서지고 싶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10.28 09:00:00
    종의 기원
  • 웹소설 종의기원
    11. 사람이라는 이름 “아기의 이름 ‘라비’는 생명이라는 뜻이지요?” 내 질문에, 지중해 건너편에 있는 작가의 푸른 눈이 샘물처럼 맑아졌다. “오! 맞습니다. 라비는 죽음의 관에서 나와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인간을 상징화한 것이지요.” “라(La)+비(vie)!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어요.” 작가는 이런 말에 민감하기 마련이었다. “책 속의 단어들이 숨바꼭질한다고 여겨주세요. 첫눈에는 안 보여도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 찾아내고 말지요. 작가는 일부러 숨길 때도 있답니다.” 순간, 작가가 일부러 숨겨놓은 다른 것을 나는 보았다. 지도에 없는 나라라고 설정되어 있지만, 프랑스어를 계속 키워드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면 소설 속 나라는 암암리에 프랑스를 지칭했다. 당장 밝히기보다 마지막 카드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가 계속 표지 문구의 의미를 스스로 풀어놓도록 유도했다. “아기의 이름을 왜 홉이 아니라 단테가 짓도록 했나요? 이름을 짓는 것은 보통 그것의 주인이 하는 일인데요.” “오! 예리한 발견입니다. 새 자동차를 개발하면, 그 자동차를 개발한 회사가 이름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단테가 이름을 붙인 것은 당분간 아기의 주인이 그라는 뜻이지요.” “당분간? 작가님의 이름은 누가 주셨나요? 부모님이 주셨나요?” “오! 아닙니다. 저는 부모님이 누군지 모르고 자랐습니다. 나에게 처음 이름을 준 자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자라면서 우여곡절로 이름이 여러 번 바꿨고, 지금은 제가 지은 필명으로 살아갑니다.” “그랬군요. 제가 실례되는 질문을 한 것 같군요.” “혈육의 부모는 없었지만, 저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자유로운 작가가 그런 말씀을 하시니…….” “작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대담자 씨! ‘사람’이라는 이름을 누가 우리에게 주었을까요? 그 이름을 준 자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대담을 시작하기 전에 주최 측으로부터 나는 한 가지 당부를 받았다. 종교적 혹은 이념적 논쟁을 벌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논쟁은 몇 시간이고 각자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다가 끝난다고 했다. 지금 종교적인 논쟁을 시작하려는 것은 상대방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작가가 말했다. “아시겠지만, ‘아담’이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아담이라는 이름을 누가 주었을까요?” 작가가 원하는 대답은 하나님이었다. 크리스천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주인이다. 하지만 그 대답은 표지 문구의 모순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하나님이 답이라면 표지 문구의 의미는 더 꼬여버린다. 하나님이 사람의 주인이라면, 하나님은 사람을 팔 수 있는 쪽이지 살 수 있는 쪽이 아니다. 자동차를 만든 회사가 자동차를 팔 듯이 말이다. 누가 하나님에게 무엇을 치르고 사람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누가 팔고 누가 사건, 값으로 팔릴 수 있다면 사람은 결국 종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나나 작가나 서로 말이 없자, 촬영팀에서 내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출판사 편집자도 기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기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작가의 질문에 더는 꼬박꼬박 대답할 의지를 상실했다. 대신에 다른 공격 도구를 준비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쓴 책입니다. 그는 당시 파리의 생활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글도 잘 쓰지 못해 방황합니다. 안면이 있던 의사를 찾아가지요. 그가 건넨 약물은 대마초 해시시였습니다. 보들레르는 처음에 거절하지만, 다시 제 발로 찾아갑니다. 그렇게 환각의 공간인 해시시 클럽에 들어가서, 대마초에 절어 글을 쓰게 됩니다. 해시시 클럽에서 작가 발자크와 위고, 화가 들라크루아 등과 환각의 교제를 이어갑니다. 마약은 매춘으로 이어졌고……그리고 보들레르는 시집 외에도 해시시 클럽의 경험을 담은 산문책 『인공낙원』을 썼습니다.” 보들레르는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은 어두운 절망과 우울의 색깔을 포착한 탁월한 시인이었다. 그런데 대담을 하면서 나의 취향이 갑자기 달라진 것이다. 그의 걸작들이 마약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동시에 그의 작품들에 열광했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노랑머리 여자가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 내 눈에 희미하게 들어왔다. 멈춰달라는 뜻인데, 나는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작가님의 소설 『인공낙원의 문』도 보들레르의 마약 클럽을 본뜬 것은 아닌지요?” 작가는 앞서와 달리 약간 주춤하는 모습이었다. 작가의 대답을 들으려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 의미 없는 표지 문구에 스스로 코가 꿰서 여태 혼자 발버둥을 친 것이 억울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작가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하고 싶었다. “흔히 소설 주인공은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님도 단테처럼 마약의 피해자거나 마약과 관련된 경험이 있으신 것이 아닌가요?” 모든 스텝이 일제히 긴장하는 분위기가 피부 세포로 느껴졌다. 나는 더 개의치 않았다. 작가가 보들레르처럼 마약에 절어 표지 문구를 뽑아냈을 것 같았다. 알 듯 말 듯 어리석고 모순된 문장으로 전 세계 독자를 홀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단어들의 환각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취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라면 어리석은 독자의 눈을 열어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그는 명철하고 지혜롭던 ‘독서의 신’의 눈을 감겨버렸다. 나는 읽어도 읽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태로 독자들에게 책을 안내하는 것은 한 장님이 장님의 무리를 인도한다는 것과 같았다. 순간, 촬영기사가 벌떡 일어났고, 조명이 꺼졌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10.14 09:01:55
    종의 기원
  • 웹소설 종의기원
    10. 사라진 아기 삐이, 이름 모를 새가 하늘을 가르며 울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큰 걸음을 떼다가 미끄러졌을 때, 단테는 한 이름을 반사적으로 불렀다. 라비! 그러고 보니 하늘에서 도토리 하나가 떨어지면서 단테의 머리통을 톡 건드렸을 때도, 촉촉한 땅 위를 거닐던 달팽이를 무심코 밟을 뻔했을 때도, 달팽이를 피하려다 삐끗, 발목을 삘 뻔했을 때도 라비를 불렀다. 단테는 라비의 이름을 자꾸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웃음이 나왔다. 평지에 내려오니, 언덕 위에서 혀처럼 갈라지던 붉은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모습이 보였다. 더워지기 전에 감자꽃을 따야만 한다. 삐거덕, 나무계단에 발을 올리자마자 통나무의 신음이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려 흠칫했다. 단테는 까치발로 살금살금 몇 계단을 올라갔다. 출입문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았다. 아기가 아직 깨진 않은 듯했다. 아기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시간을 견뎠다. 어른보다 몇 배 힘들었을 것이다. 막 출입문을 열려는데, 주변을 맴도는 검은 길고양이가 보였다. 문득 그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삐익, 출입문은 계단보다 더 큰 소리를 질렀다. 안으로 들어가니, 로깡과 안드레가 코 고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두 사람이 화음을 맞추며 골아댔다. 아기가 깨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단테는 서둘러 침실 옆의 임시 아기방으로 들어갔다. 어, 단테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깨끗한 이불을 골라 뉘어 놓았던 아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불만 텅 비어 있었다. 라비, 단테는 얼음처럼 온몸이 굳는 것을 느끼며, 신음처럼 이름을 뱉어냈다. 단테가 그 이름을 반복하며 기분 좋게 언덕을 내려오던 시간에, 라비는 누군가의 손에 탈취당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위급함을 알리려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게 해준 것이었는데, 단테는 깨닫지 못하고 즐거워했었다. 마치 형의 이름이 자꾸만 입에서 중얼거려지는데, 바깥에서 다른 일에 빠져 늦게 돌아온 날과 비슷했다. 늦게 도착해서 형을 구하지 못했던 생각이 솟구쳤다. 옆방으로 뛰어가서 녀석들을 흔들어 깨우려다가 멈칫했다. 라비가 잠든 곳은 분명히 이 공간이었다. 로깡이나 안드레가 자다가 일어나서 다른 장소로 옮기진 않았을 것이다. 로깡은 몽유병이 있지만, 간밤에는 그런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아기를 옮기지 않았다면……침입자가 있다! 단테는 소리를 지르려던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가만가만 서랍 깊숙이 숨겨놓은 총을 찾아냈다. 그리고 깨우지 말라는 듯 더 심하게 코를 고는 녀석들을 지나 집안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래, 잠들어 있는 편이 났다. 잠들어 있어야 범인의 얼굴을 보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단테는 집안의 구석을 천천히 살폈다. 커튼 뒤도 장롱 안에도 없었다. 그는 통나무집의 뒷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뒷문으로는 확장한 실내창고가 이어진다. 주인이 돌아온 것을 알았다면 침입자가 이곳으로 피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감자의 가루를 말리는 곳인데, 지금은 수확 철이 아니어서 비어 있다. 이곳에는 지붕도 있고 비닐로 되어 있어 바깥이 환하게 보인다. 오른쪽 햇살이 내리쬐는 곳을 보니, 홉이 아기를 안고 우유를 먹이고 있었다. 평안하고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단테는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기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쳐든 홉의 온화한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대체, 아기를 굶기고 태평하게 잠을 자다니요. 단테 씨는 어디 갔다 오셨어요? 세 사람이 사람이에요?” 이 정도의 강경한 표현은 홉에게는 욕설 이상이었다. 단테가 사라진 아기 때문에 놀란 것보다 아기를 굶긴 세 사람의 인성에 홉이 더 놀란 듯했다. 단테는 총을 뒤로 숨기며 다가갔다. “오늘 오후에나 올 줄 알았는데.” “새벽에 아기에게 우유 먹이라고 몇 번이나 일러주었는데…….” 로깡과 앤드류에게만 맡겨두고 아기를 굶긴 것을 단테는 속으로 자책했다. 자신도 화가 나니, 홉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아기는 홉의 가슴에 안겨 한 방울씩 입가에 흘러 넣어주는 우유를 받아먹었다. 아직 우유를 빨 힘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아기가 너무 연약해 보였다. ‘내가 왔어, 눈을 떠 봐.’ 단테는 아기에게 은밀한 전언을 시도했다. 아기는 순순히 눈을 뜨지 않았다. 단테는 더 강하게 다시 시도했다. ‘라비! 힘을 내 봐!’ 다시 우유 한 방울을 가까스로 흘러 넣은 후, 홉이 단테에게 말했다. “어른은 하루에 두 끼나 세 끼 먹지만, 아기는 더 여러 번 먹어야 해요.” 단테의 귀는 홉의 말에 순종적이었지만, 단테의 입은 반항적으로 튀어나왔다. “아기를 어떻게 하면 좋겠어?” “아기를 어떻게 하다니요?” “여기서 계속 키울 수는 없잖아.” “그럼 어디에서 키워요? 아기가 어디서 왔는지 단테 씨는 설명할 수 있으세요?” “그래도 대책이 있어야지. 이곳에 누군가 불시에 올 수도 있고.” 조금 전 상상 속의 침입자가 아직 단테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아기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단테를 사로잡았다. 빈틈없이 대책을 세워 놓지 않으면 어른도 아기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꽃들이 보기 좋다고 남겨두면 감자는 영양분을 빼앗겨버리듯이, 아기의 운명도 비슷해서 계속 데리고 있으면 모두의 약점이 되고 위태로워질 것이다. “아기를 안느에게 맡기면 안 되겠지?” “그런 말씀 하실 줄 알았어요. 안느 곁도 안전하지는 않아요.” “아니 왜?” “하여간 안 돼요. 여기가 더 안전해요.” 우유 방울을 먹이는 홉과 받아먹는 아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단테는 기다렸다. “감자 농사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잖아요. 관 속을 뒤지는 일을 꼭 해야 해요?” “자네가 내 속사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니잖은가. 사람마다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법이지. 꼭 복수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네.” “저도 복수……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홉의 입에서 복수라는 단어가 나오니, 신선하다 못해 속은 느낌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안느는 내 여자가 아니라 여동생이에요. 나쁜 놈들이 안느를 집단강간했지요. 안느를 숨기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그 죽일 놈들이 안느를 찾아내면 안느의 아기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안느 곁은 절대 안 돼요.” 홉이 너무 간단하게 놀라운 비밀을 털어놓았다. 홉도 안느의 아기 때문에 매우 위태로운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의 남자인 척했군.” “로깡과 안드레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들도 남자잖아요. 여동생이라고 하면 여자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항상 가까운 주변에서 일어나니까요.” “그럼, 나는 괜찮아?” “믿으니까요.” 갑자기 단테의 가슴에서 뜨겁고 뭉클한 것이 솟구쳤다. 이 나라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목숨이 내놓는다는 표현과 같았다. 상황이 나빠지면 안느의 아기도 여기서 보호해주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라비가 살아날 때까지는 여기서 돌보도록 해주세요.” “아직 살아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방치되었던 시간이 있으니 갑자기 어떤 부작용을 보일지도 몰라요. 아기는 시시때때로 달라요. 정말 변화가 많고……. 아! 이것 봐요. 아기가 단테 씨의 목소리를 들었나 봐요. 우리 말이 들리는 것처럼 얼굴을 꿈틀거려요. ” “미소를 짓네. 보이지. 봤지?” “네. 아직 엄마 배 속에 있다고 착각하며 꿈을 꾸는 상태지요. 배냇짓을 하는 거예요. 배냇짓!”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10.07 09:11:50
    종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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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하얀 꽃들의 운명 언덕에 앉아서 내려다보니, 감자밭에 하얀 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초록빛 양탄자에 흰무늬가 박힌 듯 아름다웠다. 이틀 동안 아기에게 몰두하느라, 단테는 이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꽃들을 그대로 두면 더 멋진 풍경이 연출되겠지만, 꽃은 감자의 양분을 빼앗는다. 꽃이 올라오는 족족 잘라내야 하는데, 자칫 시기를 놓칠 뻔했다. 이틀 밤낮을 뜬눈으로 보낸 홉은 어젯밤 집으로 돌아갔다. 아기 곁에 서툴게 붙어 있던 로깡과 앤드류는 새벽이 되기 전에 뻗어서 코까지 골았다. 고르게 가슴 숨을 쉬는 아기를 확인하고, 단테는 밖으로 나왔다. 아침 공기의 서늘하고도 투명한 바람결에 이끌려 오래간만에 이 언덕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메종(Maison)의 큰 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여서 형은 이 자리를 좋아했다. 어린 단테가 오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서 형은 가끔 단테를 데려갔다. 형과 함께 이렇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없이 앉아 있던 순간이 참으로 좋았다. 형이 죽고 나니 도리어 무덤 속처럼 고독하고 무서운 곳으로 느껴졌다. 수년 발길조차 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맑았고, 언덕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형이 죽은 후 엄습했던 무섬증이 사라진 듯했다. 형과 함께 감자를 키우던 시절의 그리움이 따스하게 온몸을 감쌌다. 메종에서 씨를 뿌려 싹을 틔운 채소는 많지 않았고, 싹이 나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그런데 푸른 감자는 달랐다. 씨감자를 심고 3~4개월이 지나면 감자를 풍성하게 수확했다. 바깥세상에는 개량감자로 붉은 감자나 보라색 감자도 있다지만, 개량하지 않은 푸른 감자는 이곳이 유일할 것이라고 형은 말했었다. 이곳의 기후와 땅의 특질 때문이었다. 보통 감자를 상온에 두면 독이 올라 껍질이 푸른 빛을 띠기에, 속이 푸른 메종의 감자는 아예 푸대접을 받았다. 사람들은 동일한 것으로 여겨 꺼렸다.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 감자를 팔 수 없다면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형은 푸른 감자가 영양분이 많고 특히 임산부에게 좋다고 믿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들었다고 했다. 임산부를 본 적이 없었기에 진짜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진짜 효능을 확인한 것은 형이 죽고 난 뒤였다. 어느 날 차를 달리고 있는데, 남녀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가 지쳐서 걷지 못하는 것을 남자가 부축하는 모습이었다. 단테는 차를 세웠고, 여자가 임신 상태라는 것을 알아챘다. 두 사람은 몹시 지치고, 배고프고, 목말라 보였다. 가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메종으로 함께 왔다. 삶은 감자를 주니 망설였다. 단테가 먼저 베어 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들도 허겁지겁 따라 먹었다. 얼굴이 푸르뎅뎅했던 임산부는 그렇게 푸른 감자를 먹으며 점점 몸이 좋아졌고, 이곳에서 제대로 아기를 낳았다. 임산부의 남자가 홉이었다. 아기가 깨지 않았을까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과 내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팽팽했다. 아기의 상태가 좋아진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앞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다른 곳에 맡기려면 아기의 출생신고서나 부모가 누구인지 알려야만 했다. 홉의 아내에게 맡기면 좋으련만, 홉은 거절할 것이 분명했다. 홉의 가족을 끌어들이는 일은 단테도 피하고 싶었다. 아기가 미미하게나마 움직일 때마다 기적이 따로 없었다. 살아날지 이제나저제나 조마조마했는데, 아기가 한쪽 눈꺼풀이 아니라 두 눈의 눈꺼풀을 처음으로 연 순간이 있었다. 단테는 처음으로 탄성을 입 밖으로 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라비’라고 중얼거렸다. 단테는 홉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수고했습니다. 홉!” 홉은 메종에서 두 명의 아기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아기와 관속의 아기를 의미했다. 첫눈을 뜨는 순간을 단테는 두 번 다 놓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앤드류가 물었다. “라비가 아기의 이름이에요?” “왜?” “조금 전에 라비라고 불렀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고 뱉은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라비! 그럼 그렇게 부를까.” “좋아요!” “좋은데요!” 이구동성 찬성했다. 그때 로깡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홉만 수고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수고했어요. 아기를 안고 막 달리는데, 들키면 끝장이잖아요. 목숨 걸고 줄행랑을 쳤다니까요.” 이전에는 별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얼굴들은 지쳐 보였지만 얼굴에 생기가 있었다. “두 분도 수고했어요.” 단테의 말에 덩치 큰 앤드류는 겸연쩍어하며 눈가를 만졌고, 빼빼 마른 로깡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대로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단테는 이 묘한 인간 조합의 균형이 자칫 깨질까 봐 일부러 차갑게 대해왔다. 그런 빗장이 언제 풀어졌는지 그들에게 진심을 전하고 말았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홉은 버텼지만, 여자가 의심할까 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기를 위해 추가 필요한 것이나 양육에 필요한 노하우를 정리해오라고 했다. 아래쪽 감자밭의 흰 꽃들이 아침 빛을 받아 순식간에 많아졌다.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은 푸른 감자의 판로를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운 좋게 연줄로 감자를 사줄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다. 단테는 15살이 될 때까지 형이 진짜 감자가루를 팔러 다니는 줄 알았다. 형의 건강상태나 태도가 예사롭지 않아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어느 날 정색하며 물었다. 형은 단테가 세상에 나가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정도의 돈만 벌면 그만둘 것이라고 대답했다. 형의 건강이 점점 나빠져서, 단테는 감자가루를 자신이 팔러 나가겠다고 주장했다. 형은 펄쩍 뛰면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며 꾸중했다. 형이 운 좋게 만나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다는 사람들의 정체를 단테가 알게 된 것은, 형이 죽고 몇 년이 지난 뒤였다. 단테는 곧 떼어내야 하는 하얀 꽃들의 운명을 생각하며, 언덕을 천천히 내려왔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09.30 09:00:00
    종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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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태초에 수년 전, 한 대형서점에서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강연하면서 나는 유명해졌다. 기존의 독서법은 엉터리였다는 말이 방송을 탔기 때문이다. ‘내’ 기존 독서법을 말한 것이었다. ‘내’를 뺀 문장이 전파를 타자, 한국인의 기존 독서법은 엉터리라고 사람들은 알아들었다. 나의 독서법을 취재하고 싶다고 연일 요청이 쇄도했다. ‘엉터리’라는 표현은 영어의 ‘broken’과 같아서 어긋한 독서라고 대강 알려주었다. 이때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나에게 좋은 제안과 승승장구할 기회가 줄지어 들어왔다. 나에게 ‘독서의 신’이라는 타이틀을 선사하기도 했다.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일이었다. ‘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없어서 그간 내버려 두었다. 그 우연찮은 사건이 세계적인 작가와 대담을 나누는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나를 인도했다고 여겼는데, 동시에 내 인생의 가장 곤욕스러운 자리로 나를 초대했음이 비로소 깨달아졌다. 이 쪽팔리는 대담이 어디까지 나를 끌고 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이런 상황을 가장 간단하게 해결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나는 표지 문구의 출처와 의미를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기로 작정했다. 솔직함은 때로 어떤 무기보다 강하다. 내 유명세에 타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죽을 쑤고 대담을 끝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한 인간의 솔직함과 허약함은 도리어 반전 매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그런 영리한 계산 끝에 막 고백하려는 순간이었다. 화면 속에서 작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태초에, In the beginning….” 작가의 입에서 갑자기 영어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뭐지? 왜 갑자기…영어를! 세 단어의 위력이 상당히 컸던 모양, 막 용기를 내려던 솔직함이 내 안으로 쑥 들어갔다.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다. 프랑스인은 유난스럽게 자국의 언어를 사랑한다. 상품을 팔기 위해 외국 바이어를 상대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특히 사교 생활에서는 프랑스어가 자랑이자 특권이었다. 프랑스인 작가가 전 세계로 방영될 대담에서 ‘교양 없이’ 영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반복했다. “태초에 In the beginning, 생명의 체계가 이미 설계되어 풀 한 포기도 이 종에서 저 종으로 바뀔 수 없습니다.” 그는 ‘태초에’라는 세 단어만 영어로 반복하고 뒷부분은 프랑스어로 이어갔다.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독서의 신은 그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태초에’로 시작하는 책은 이 세상에 오로지 한 권뿐이다. 프랑스어로 들을 때는 ‘시작에’로 해석해서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영어로 들으니 ‘태초에’로 들렸다. 표지 문구의 어투만 보아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책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는 그 책이었다. 작가는 영어로 그 책을 암암리에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은커녕, 더 굴욕감을 느꼈다. 지혜로운지 교활한지 가늠할 수 없는 작가의 눈을 도전적으로 쳐다보았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출처를 알아도 표지 문구의 모순적인 표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문구를 다시 떠올리자마자, 눈에 보이지 않는 칼처럼 뭔가가 나를 겨냥해서 섬짓했다. 『인공낙원의 문』에서 단테는 무리의 우두머리였고 홉은 단테의 명령을 따르는 신출내기였다. 하지만 관 속의 아기를 구하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변했다. 홉이 아기를 품에 안는 순간부터, 단테가 아니라 홉이 명령하는 우두머리로 바뀌었다. 나와 작가의 관계가 마치 단테와 홉과 같았다. 대담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그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는 사회자이자 이 행사를 진행하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 질문에 그럴듯한 대답을 해가며 자신의 책을 한국 독자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는 종속된 관계였다. 그런데 표지 문구의 비밀 때문에, 그는 홉처럼 상황을 끌고 가는 우두머리로 우뚝 섰다. 나는 죽음의 관을 마지막에 덮던 단테로 전락한 셈이다. 나는 이 변화의 원인에 주목했다. 나는 여태 책을 정복하는 심정으로 다독(多讀)을 해왔다. 타고난 능력이기도 했고, 가정교육에 따라 의무적으로 읽어내야 하는 책들과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떠돌며 섭렵한 다양한 책 종류 때문이기도 했다. 마치 운동선수처럼 독서로 나를 단련했다. 읽을수록 지식도 늘고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되니 꿩 먹고 알 먹기였다. 그런데 표지 문구의 비밀에 의문을 품자, 어디서 불어 왔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독서의 신을 사정없이 무너뜨리고 있었다. 『인공낙원의 문』의 관에 일그러진 여자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면, 내 몸의 관에는 읽었던 책들의 파편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여태 마약처럼 복용한 책의 중독자였던 셈이다. 책들의 종이었다. 그 결과로 그 책들을 쓴 사람들의 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 화면 속 작가의 종이 되어 이처럼 끌려다니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대처 방안이 없었다. 단테가 그러했듯이, 생명의 비밀을 품은 작가 앞에서 나는 마비된 듯 침묵을 지켰다. 다행스럽게도, 말하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답게 작가는 계속 떠들어 대고 있다.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바뀔 수 없는 이유는 생명의 비밀이….” 순간, 나는 드디어 반격할 하나의 단서를 찾아내었다. 굳은 표정이 저절로 풀면서도 입도 풀렸다. “관에서 구한 아기에게 악당들이 지어준 이름 말인데요. 그 이름이 표지 문구의 비밀을 풀 열쇠이지요?”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09.23 09:00:00
    종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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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기원이 없는 종의 기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단추를 낄 수는 없었다. 밤새워 준비한 질문들은 이제 소용이 없게 되었다. 혼자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어떻게 읽든 문제 될 것이 없다. 작가의 의도도 상관이 없고, 읽고 싶은 부분만 읽거나, 마음에 드는 문장에 줄을 치거나, 혼자 해석하고 즐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대담은 달랐다. 공적 대담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대담은 『인공낙원의 문』의 작가를 추앙하는 전 세계 인간들이 영상을 통해 보고 들을 한국 국제도서전의 특별 기획행사였다. 아찔한 기분이 순간 찾아들었다. 가장 자신 있는 영역에서 허방을 디딘 심정이었다. 문학작품을 제대로 논하려면 작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독자가 밖에서 열쇠로 열고 들어가서 작가를 만나거나, 작가가 안에서 열어주며 독자를 초대하는 방식이어야 했다. 나는 『인공낙원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잃었다.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 문을 열지 못했고, 그 사실을 솔직하게 알리지 못해 작가가 문을 열어줄 기회를 놓쳐 버렸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다면, 저 순진한 얼굴을 한 작가는 작품을 한국에 더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알려주었을 것이다. 내가 알면서도 일부러 질문을 던졌다고까지 생각했을 것이다. 사회자나 대담자는 청중이나 관객을 위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대신 물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부지불식간에 표지 문구의 출처를 안다고 나는 말해버렸다. 나는 내 오만함에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직접 알려줄 기회도 차단해버렸으니 결코 좋은 대담자가 아니었다. 내가 표지의 모순적인 문구를 이해했다는 전제 하에 작가는 대화를 진행했다. 다른 독자들도 그 정도는 이해한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정도’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다. 지금 솔직하게 번복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여태 녹화된 내용과 대화가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담을 넘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순간,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문득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 다윈의 『종의 기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지는 않더라고 전 세계 사람이 모른다고 말할 수 없는 책이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도 아는 내용이었다. 표지의 모순적인 문구가 다윈의 ‘종’과 관련된 것이라는 근거없는 확신이 올라와서, 나는 즉석에서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메종에서 키우는 ‘푸른 감자’로 다윈의 종을 건드려보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요?” 화면 속 작가의 눈동자가 한없이 커지는 것을 먼저 보았고, 이어 그의 대답이 들렸다. “오! 그렇게 연결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윈의 종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종으로 연결된 이론이니까요.” 작가의 반응이 반가웠다. 표지 문구를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스스로 그 의미를 말하도록 유도하면 될 것 같았다. 최근에 다윈의 자필 원고가 일부 발견되어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 자필 원고는 폐지로 버려지거나 자녀의 그림 낙서나 문제풀이 종이로 사용되었다가 발견되었다. 나는 작가의 의도를 더욱 정확하게 알기 위해 다시 확인했다. “다윈에 따르면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생물만 진화한다니, 경쟁하다가 지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다윈의 이론은 철저한 세상의 경쟁 논리이고 죽음의 질서에 부합한다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다윈에 따르면 인간도 다른 생물에 비해 특별난 존재가 아니지요. 우연으로 태어났고 인간은 앞으로 다른 경쟁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논리이니까 철저한 죽음의 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윈의 최근 기사에서 읽었는데, 자연선택은 곰같은 동물을 고래같은 동물로 점차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록이 나중에 삭제되었다고 했습니다. 비평가들의 반박이 심해지자 그 뒤의 판본에서는 다 사라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살리건 죽이건 별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윈의 ‘종의 기원’은 과학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 기원이 없으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생명의 체계에서는 한 가지 종이 다른 종으로 결코 바뀔 수 없습니다.” “종에서 종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소설 속 푸른 감자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땅의 성질 때문에 푸른 감자가 생겼다고 적지 않았나요?” “소설 속 푸른 감자는 물론 상상의 산물이지만, 설령 그런 변화가 있다 해도 환경에 의해 ‘종’안에서 일어난 다양성으로 보시면 됩니다. 감자뿐만 아니라 자연의 생명체계는 태초에 이미 정해져 변할 수 없습니다. 생물의 종이 계속 변한다는 다윈의 논리는 생명의 기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는 것도 거짓이라는 것이군요?” “당연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우리는 한 번도 원숭이가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없었을까요? 천천히 진화해서?” 작가는 질문을 던지면서 약간의 코웃음을 쳤다. 나는 코웃음이 거슬려서 다시 겸손한 마음을 잃었다. “그렇다면 수없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 동식물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죽음의 종이 아니라 생명의 종을 제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표지 문구가 그 비밀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표지 문구의 출처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아직도 표지 문구에서 헤매는 심정을 작가가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책상다리를 발로 차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 화가 났다.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09.09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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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모르’의 비밀 “인간의 뼈로 마약을 만드는 일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나요?” 나는 준비한 두 번째 질문을 『인공낙원의 문』의 작가에게 던졌다. 화면만 바라보던 촬영 기사가 고개를 약간 들었다. 출판사 편집자도 궁금한지 작가의 대답을 기다렸다. “실제로 있습니다. 마약의 이름을 제가 ‘모르’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나는 첫 번째 질문과 달리 호의를 가지고 대응했다. “‘모르’라는 단어가 한국어 발음으로도 마약에 어울립니다.” “프랑스어가 유창하시니, ‘모르’의 뜻을 아시지요? ‘모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대담이 제법 순조로워진 것 같아 나는 자신있게 덧붙였다. “마약 중독은 말 그대로 인간을 ‘종’의 상태로 만들죠.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니까요. 그렇다면 작가님은 인간을 종처럼 묶어 놓는 가장 강력한 것이 마약이라고 보신 것인지요?” “대담자님은 마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를 종으로 묶을 만큼 강력한 것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전문직에 경제적으로나 세상 그 어느 쪽으로 견주어 보아도 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다. “저는 마약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인간을 가장 비인간적으로 만들 물건이 마약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만, 저를 종으로 묶을 수 있는 대상을 아직 만나지 못했지요.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을 ‘종’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것은 모르입니다. 죽음이지요.” “…….” “대담자님도 이 포박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순간, 출판사에서 온 편집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영상에 올라왔다. 얼마 전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생각이 났다. 봉투에 조의금을 넣어준 것으로 나는 죽음의 예의를 지켰다. 녹화 현장의 사람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다들 귀를 곤두세우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죽음의 종이라는 작가의 발언에 대한 내 반응이 궁금할 것이다. 그 말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 또한 죽음의 종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작가도 자기가 죽음의 종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이 침묵을 깨뜨릴 말을 찾고 싶었지만, 더 강력한 말을 투척한 것은 화면 속의 작가였다. “우리는 모두 썩어갈 것입니다.” 대서양을 건너 날아온 비수는 정확하게 나를 관통했다. 갑작스럽게 몸의 떨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연은 아니었다. 영원히 살 것이라 여기진 않았지만, 여태 죽음이 나를 종으로 부리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인류가 처음 인간의 죽음을 접했을 때 느꼈을 법한 놀라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었다. 처음으로 ‘죽음’의 실체가 온몸으로 감지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구더기와 함께 썩어갈 것이다. 죽음의 비수를 쏘아준 인간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항하는 공갈 아기를 내세웠군요.” “공갈 아기?” “가짜 생명요. 관 속의 죽은 여자에게서 악당들이 살아 있는 아기를 안고 나오지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공갈이지요.” “공갈 아기라는 표현이 매우 흥미롭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현인지 궁금합니다. 상상 임신은 있겠지요. 세상에 모든 종류의 공갈이 가능할지라도 결코 생명은 공갈이 없습니다.” 두 번째 질문이 다시 나의 덫이 될 조짐을 보였다. 생명은 확실히 공갈이 없다! 그 사실은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대담에서 계속 헤매는 이유가 작가가 걸어놓은 표지 문구를 아직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데 기인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모순 문구를 풀어낼 힌트를 조금 얻긴 했다.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그러니까 ‘(죽음의)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는 뜻이 함축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죽음의 종이 아닌 생명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 누가 ) 값을 치르고 (나를) 사신 것인지 마저 풀어야만 했다. 순간적인 호기심에 사로잡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을 무시하고 싶은 강력한 욕망 또한 동시에 일어났다. 작가가 책 표지의 문구로 계속 나를 함정에 빠뜨리지 않도록, 문득 떠오르는 프랑스 속담을 임기응변으로 내뱉었다. “L’habit ne fait pas le moine.” 직역하면 ‘옷이 성직자를 만들지는 않는다’였다. 책과 관련해서는 ‘표지가 반드시 책 내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었다. 내가 농담한다고 생각했는지 부드러운 얼굴선을 가진 작가가 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렸다. “프랑스 속담에는 이런 것도 있지요. ‘고양이는 고양이라고 말해야 한다.’” 말은 바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격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09.0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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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종의 순서 일의 목표나 방향은 우두머리가 정한다. 여태 그것은 단테의 역할이었다. 오늘은 달랐다. 좀 전에, 생명의 포대기를 안은 자가 서슴없이 일당의 방향을 결정했다. “메종으로 가. 메종!” 홉이 그렇게 소리쳤을 때, 단테는 명령의 서열이 한순간에 뒤집힌 것을 알았다. 홉의 결정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어디로 가야 하는지 미리 정해둔 사람 같았다. 홉을 무시하던 로깡도 아무 말이 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앤드류는 홉의 권위에 순종하듯이 물었다. “홉의 집으로?” 메종은 집이라는 뜻이었다. 홉의 집에 가면 우유며 아기 옷들이 있을 테니 좋은 선택이었다. 단테는 어림없다고 생각했다. 홉이 일당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일 사람이 아니었다. 여태 그런 여지를 보인 적도 없었고, 특히 아이가 생기고 난 뒤로 더욱 경계했다. 앤드류의 질문에 놀란 것은 도리어 홉이었다. 홉은 이전의 단테처럼 단호하게 명령했다. “대문자!” 대문자 집(Maison)은 일당만의 은어였다. ‘푸른 감자의 집’을 약칭해서 메종이라 불렀다. 푸른 감자를 수확하는 집이었다. 홉이 하필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다른 곳이어야 할 것 같은데, 단테는 다른 곳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죽은 자의 뼈를 수송할 때는 목적지가 분명했다. 하지만 아기의 생명을 구할 미지의 방향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죽음과 관련된 결정과 달리, 생명과 관련된 결정은 더없이 막막했다. 홉이 단테의 마음을 꿰뚫듯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순간 갈림길이 나타났고, 앤드류는 메종의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푸른 감자의 집으로! 잘라보면 푸른색이 도는 감자들이었다. 땅의 특징 때문에 그런 색깔을 띠었다. 최근에는 보라색이나 노란색 감자도 시장에서 볼 수 있지만, 단테의 형이 푸른색 감자를 처음 수확했을 때는 팔 수 없는 종이었다. 그런데 푸른 감자를 먹으면 약한 몸이 빠르게 회복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근처에서 찾는 사람들이 생겼다. 일당은 겉으로는 푸른 감자를 키우고 수확하는 평범한 일꾼들이었다. 단테는 아기를 ‘푸른 감자의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 최선인지 확신이 없었다. 그 ‘메종’이야말로 아기에게는 더없이 위험한 곳이었다. “여기 잠깐 세워 줘!” 저만치 주유소와 잡화점이 보이는 곳에서 홉이 갑자기 요구했다. 무슨 일인지 다들 긴장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테도 왜 그러냐고 물을 여유가 없었다. 차를 세우자마자, 홉은 아기를 로깡에게 맡기고 서둘러 내렸다. 차의 앞문을 열더니, 단테에게 아까 자신이 바닥에 던졌던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이것이 무슨 술수인가 싶어 단테는 얼굴을 험악하게 찡그렸다. 마치 우두머리가 총무에게 돈을 정산하라는 식이었다. “아기에게 먹일 것을 사야 해요. 빨리 서둘러요.” 단테는 그제야 홉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급하게 돈을 주섬주섬 꺼냈다. 홉이 바닥에 던져 꾸겨진 지폐 두 장과 자신의 지갑에서 제법 큰 금액의 몇 장을 꺼내 주었다. “단테 씨! 자주 올 수 없을 테니 필요한 것을 한꺼번에 사도록 할게요. 물건을 가지고 나오면 바로 싣고 갈 수 있도록 잡화점 뒤쪽에 차를 세워두도록 하세요.” 홉은 단테에게 지시하고, 아기용품을 사기 위해 달려갔다. 단테가 그의 달리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앤드류가 말을 걸었다. “언제 잡화점 뒤쪽으로 이동해야 하나요?” 홉이 사라지자 기존의 서열이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기다려!” 단테는 속으로 언제부터 서열이 뒤집혔을까를 생각했다. 10분 전만 해도 홉은 오늘 받은 일당(日當)을 던지고 일당(一黨)에서 달아나던 도망자였다. 그런데 달아나던 사람을 중간에서 태우고 아기를 안겼을 때, 그는 달라졌다. 아기 포대기를 품에 안자 그는 여태 보이지 않던 결단력과 행동력을 발휘했다. 홉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앤드류와 로깡도 아기를 발견할 때부터 달라졌다. 그들도 단테를 두고 먼저 아기를 안고 달아났다. 그렇게 발이 빠른 놈들인 줄을 처음 알았다. ‘죽은 자를 위한 예의의 시간’에서 관의 마지막 뒷정리를 단테가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죽음의 덮개를 닫는 것은 서열상 꼴찌가 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홉 대신 단테가 닫았다. 그때부터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종의 순서가 달라졌다. “이제 차를 이동시켜.” 앤드류는 주유소를 지나 잡화점 뒷문 쪽에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게으르고 느려터진 앤드류의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이전 앤드류는 무감각하고 자기 의견을 내는 적이 좀체 없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줄도 몰랐다. 한데, 아기의 울음을 들었다고 말할 때부터 눈빛이 달라졌다. 살아 있는 아기를 버려두고 갈 것이냐고 버틸 때 그는 변했다. 그는 죽은 자의 뼈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아기를 안고 나오는 시간을 지나왔다. 자신의 의견이 단테에게 먹힌 아주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꼬박꼬박 지시해주어야만 했던 이동 경로를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했고, 그는 달라졌다. “홉이 나타났어요.” 앤드류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뒤쪽의 로깡은 아기를 안은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단테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로깡에게 몸을 낮추라고 말하고, 자신도 그렇게 했다. 앤드류가 서둘러 홉이 사 온 물건들을 받아서 뒤쪽에 싣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집이 제법 날쌔게 움직이는 모습이 신이 난 사람 같았다. 다시 운전석에 올라타더니 급하게 시동을 걸었다. 뒤쪽에, 홉이 아기를 건네받는 모습이 거울에 비췄다. 홉은 30초만 기다리라고 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쉬운 위치인데, 홉은 포기하지 않았다. 로깡은 홉이 사 온 물건들을 이리저리 들춰보며 대기 상태였다. 홉이 요구한 이 절체절명의 30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테는 깨달았다. 형의 삶과 죽음의 갈림길의 몇 분과 같은 시간일 것이다. 단테는 아기에게 뭔가를 먹이는 듯했다. 잠시 후, 다시 달리라고 지시한 것은 홉이었다. 단테는 혼란한 마음에 뒤쪽을 돌아보지 않고, 가슴에 걸리는 일을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금 단테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구하지 못한 죽은 자의 뼈였다.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실패한 일을 복구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새로운 시체를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공작을 새로 꾸미려면 최소한 한 달 이상 필요했고, 그것도 극히 조심해야 했다. 더구나 교통사고로 부서진 시체를 구하는 일은 운이 극히 좋아야 했다. 슬그머니 아기의 엄마가 떠올랐다. 지금쯤 단단하게 못질을 당한 관이 묘지로 가고 있을 터였다. 푸른 감자가 심긴 들판 가운데 길로 앤드류가 차를 몰아 들어가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08.26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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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두 종류의 다급함 단테가 아기를 데려가자고 말하자, 믿기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게으르고 굼뜬 로깡과 앤드류가 거짓말처럼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죽은 자의 뼈를 담기 위해 가져온 비닐 시트를 맞잡고 뒤집었다. 마치 의사처럼 죽은 여자와 분리한 아기를 들어 올렸다. 뒤집힌 부드러운 시트 쪽에 아기를 감쌌다. 그리고 단테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뒤쪽 출구를 향해 달렸다. 명령도 복종도 필요 없었다. 두 놈은 관도 제대로 덮지 않은 채 포대기를 안고 뒷문으로 사라졌다. 여느 때 홉이 하던 마무리를 오늘은 단테가 해야만 했다. 어떠한 범죄의 단서도 남기지 않아야만 했다. ‘죽은 자를 위한 예의의 시간’의 마지막 30초를 두고 단테는 빠져나왔다. 이제부터 되도록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야만 했다. 외진 곳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드물지만, 일찍 도착한 죽음의 봉사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이 장소를 배회하는 자는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로깡과 앤드류는 차가 있는 곳으로 줄달음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묘를 파고 인골을 구할 때는 밤에 주로 움직였기에 사람의 눈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에 짐승들의 눈이 따라 다녔다. 사람의 시신 냄새를 짐승들은 기차게 알아챘다. 일행이 서둘러 뼈를 채취하고 나면, 남은 시신을 동물들이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동물들이 협조자이면서도 경쟁자였다. 여태 단테 일당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파묘가 동물들의 행위로 매번 결론이 났기 때문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힐 수 있다는 느낌이 왔을 때, 단테는 인골(人骨) 도둑질의 장소를 묘지가 아니라 ‘죽은 자의 예의의 시간’으로 바꿨다. 당분간 묘지 부근에는 얼씬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일부러 천천히 걸어 도로까지 왔다. 그때부터 단테는 미친개처럼 맹렬하게 달렸다. 다급함이 단테를 몰아세웠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다른 작업 때와 다른 다급함이었다. 이전의 다급함은 누구에게 쫓기는 도망자의 것이었다. 뒤에 누가 보고 있는지, 경찰이 잡으러 오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는 분노나 죄의식에서 달아나는 다급함이었다. 오늘의 다급함은 반대로 추격자의 그것이었다. 따라잡으면 귀한 것을 잃지 않을 조급함이었다. 앞서간 로깡과 앤드류를 따라잡아야 했다. 그들이 안고 간 포대기를 따라잡아야 했다. 그 안에 있는 아기를 잃지 않아야 했다. 아기의 생명을 붙잡아야 했다. 살려야 했다. 손톱자국처럼 열렸던 아기의 한쪽 실눈! 단테를 향해 열렸던 그 실눈의 호소. 그런 간절한 실눈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단테는 왜 눈물이 날 정도로 다급한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런 눈을 형에게서 보았다. 마지막 스르르 감기던 한쪽 눈을 단테는 보았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오로지 세상 전부처럼 의지하던 형, 항상 친구 같던 형, 그의 유일한 혈육이 죽어가던 순간에 열려 있던 실눈, 세상에 혼자 남겨질 동생을 한순간이라도 더 보려고 애타게 열려 있던 형의 눈과 아기의 눈이 닮아 있었다. 그때처럼 단테는 마음이 초조하고 다급했다. 드디어 차를 숨겨놓은 곳까지 왔다. 그런데 차가 보이지 않았다. 보스인 단테를 버리고 이 망할 두 놈이 달아나버린 모양이었다. 단테는 그들이 사라졌을 방향으로 도로변을 달렸다. 한참 달려가자 뒤에서 빵빵거리며 차가 나타났다. 단테는 욕을 하며 차에 올랐다. 운전대를 잡은 앤드류가 말했다. “단테 씨를 태우려고 갔는데, 우리를 보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어요. 다시 돌려서 온 것입니다.” 단테는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깡이 포대기를 안은 모습이 보였다. 생소하면서도 안도가 되었다. 형을 싣고 병원으로 달려갈 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다행히 로깡과 앤드류가 곁에 있었다. 처음으로 그들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살아 있어?’ 말없이 표정으로 물었지만, 로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른다는 뜻인지 죽었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단테가 앞쪽으로 몸을 바로잡자, 운전석의 앤드류가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해야 해요.” “홉의 집으로 가자.” 뒷좌석의 로깡이 단테가 들리도록 큰소리를 쳤다. “홉을 혼쭐내러 갈 생각이세요? 아기부터 어떻게 해봐요.” “아기를 살리러 홉에게 가자는 거야.” “홉은 아기를 보자마자 도망가버렸어요. 우리가 가면, 우리가 아기를 데려가면 경찰에 신고할 놈이에요.” “홉에게 가야만 해. 그는 아기를 키워봤잖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가 알 거야.” “그의 여자가 거절할 거예요. 훔친 아기를 도와줄 리가 없어요.” “아니야. 홉이 달아난 것은 죽은 여자와 아기에 대한 연민 때문에 그랬을 거야. 너희들도 돈이 되는 여자가 아니라 아기를 데리고 나왔잖아.” “여자를 포기했다고 우리도 홉처럼 돈을 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때 앤드류가 로깡의 흥분된 저항을 끊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중에 홉의 집이 가장 가깝기는 해요.” “더 빨리 달려!” 형을 싣고 달릴 때 느꼈던 절박함이 그의 온몸을 다시 감쌌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도착했으면 형을 살릴 수도 있었다고 들었다. 단 몇 분에 삶과 죽음의 순간이 갈렸다고 했다. 단테는 홉에게 연락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작업 중 휴대전화 사용은 금지조항이었다. 어쩔 수 없을 때 ‘푸른 감자’를 사용했다. 푸른 감자는 그들만이 아는 암호였다. 만약 발각되어도 마약 제조를 숨길 수 있도록 만든 암호였다. 휴대전화를 꺼내려던 단테의 눈앞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분명 익숙한 모습이었다. 차가 앞으로 달릴수록, … 분명했다. 홉이다! 앤드류가 단테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단테는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홉도 차를 분명 알아보았지만 달아나지 않았다. 앤드류가 차를 세우자, 홉은 당연하다는 듯이 뒷좌석으로 올라탔다. 홉이 달아나다가 우연히 따라잡힌 것인지, 홉이 아예 일행을 기다린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누구도 홉을 탓하지 않았다. 홉도 변명하지 않았다. “아기를 좀 돌봐 줘.” 단테는 일부러 무심한 듯 말했다. 홉은 흠칫했지만, 상황을 금방 파악했다. 네 남자 중에 아기를 키워본 것은 홉밖에 없었다. 홉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아기를 이리저리 신중하게 들여다보았다. 급하게 물병의 물을 수건에 적혀 아기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로깡도 아기의 온몸을 닦는 그를 도왔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달리는 차 안은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병원처럼 엄숙했다. 마침내 홉이 아기를 로깡에게서 자신의 품으로 옮겨 안았다. 단테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앤드류는 기쁨의 나팔처럼 차의 경적을 빵빵 울렸다. 그때 홉이 마치 우두머리처럼 명령했다. “메종으로 가. 메종!”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08.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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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무관 속의 아기 “분명 관속의 아기가 운 거지?” “살아 있나?” 낡은 나무관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악당은 동시에 말을 뱉었다. 우두머리 단테는 홉이 달아나면서 던진 돈을 줍느라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관 속의 가냘픈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단테는 주운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관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두 놈을 발견했다. ‘죽은 여자에게 반한 것이야. 쓸모없는 놈들!’ 단테는 성실한 홉이 가버리고 무능한 두 놈이 남은 것이 속상했다. 같이 동거하던 여자가 임신한 후 홉은 일행에 합류했다. 홉은 아기가 생기자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성실하게 마약 제조일에 동참했다. 그런데 관속에 들어 있는 모자(母子)를 보고 달아나버렸다. 자신의 아기를 먹여 키우기 위해 벌어야만 하는 돈도 던지고 가버렸다. 충격을 받은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결정을 단숨에 하게 만든 홉의 내면의 무엇이 궁금했다. 다가갈 때까지, 멍청한 두 놈은 여전히 나무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단테는 큰소리로 야단을 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두 놈은 여자가 아니라 황토로 빚은 듯한 물컹한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기의 감은 두 눈의 단아함과 또렷한 입술의 윤곽이 신비하여 멈칫했다. 키가 큰 로깡이 단테에게 작게 속삭였다. “아기가 살아 있어요.” “지금이 농담할 때야? 아기를 핑계 삼아 홉처럼 일하기가 싫은 거지. 여자와 아기, 두 사람의 뼈를 수거하니 돈을 더 달라는 거야?” 그 순간이었다. 단테는 관 속 아기가 한쪽 실눈을 가늘게 떠는 것을 보았다. 얇은 눈꺼풀이 세상의 무게를 견디며 미미하게 열리는 믿기 어려운 순간과 맞닥뜨렸다. 몇 밀리미터 열린 실눈이 온몸의 에너지로 단테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두 놈은 실눈의 변화를 보지 못한 듯했다. “단테 씨! 우리가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아기는 나머지 한 눈을 뜰 여력은 없어 보였다. 단테는 시계를 보았다.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무관에 못을 치기 전 죽은 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이었다. 세상의 미련이나 고통을 놓고 정리하라는 ‘죽은 자를 위한 예의의 시간’이었다. 세상과의 인연을 못질로 단단히 닫아버리기 전에 베푸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에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상례(喪禮)였다. 단테는 그 예의의 시간을 예외로 샀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을 치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시간이었다. 서로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사람들과 맞닥뜨리거나 얼굴을 보면 안 되는 계약이었다. 아기의 열린 실눈과 단테의 시선이 다시 조우했다. “빨리 뼈들을 뜯어서 담아!” “누구의 뼈를요?” 이 질문에 단테는 잠시 망설였다. “죽은 여자의 뼈! 여자의 뼈를 샀으니 여자 것만 가져가자.” 두 놈은 동시에 단테를 바라보았다. “아기는요?” “ …… .” “살아 있는 아기는요?” “살아 있을 리 없어. 죽은 직후에 사후 경직 현상 때문에 … 꿈틀거릴 수 있어.” 아기가 여전히 단테의 시선을 붙잡고 있어서 더듬거렸다. 두 놈은 자꾸 엉뚱한 소리로 버텼다. “울음소리를 분명히 들었어요.” 평소 미련하기도 하고 소심해서 자신의 의견이 별로 없는 앤드류까지 나섰다. 단테는 시계를 보고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손톱자국처럼 열린 실눈이 온 생명을 다해 단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관속에서 생명이 태어날 수는 없었다. 죽은 여자의 몸속에서, 죽음 속에서 생명이 뚫고 나올 수 없었다. “아니라니까!” 단테가 워낙 강하게 말하자 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뚱뚱이 앤드류는 가만히 있었지만, 로깡은 포기한 기색 없이 관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아기의 울음을 토해내게 하려는 듯 작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보기까지 했다. “이번에 인골을 가져가지 못하면 다음 달 제공할 마약 ‘모르’의 제조 자체가 불가능해. 굶어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하나라도 건져.” 인골 없이 마약을 제조할 수는 있어도 가짜 약이었다. 인골을 빼고 제조한 ‘모르’는 효능이 거의 없었다. 인골 자체에 어떤 효과가 있다기보다 촉진제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마약보다 효능이 높은 ‘모르’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모르’는 고급 손님을 상대로 한 마약이었다. 가짜 마약으로 신용을 지킬 수는 없었다. 단테는 마음이 급했다. “5분 안에 빨리 나가야만 해. 지금 나가지 않으면 우리 모습을 들키고 말 거야. 장례사가 들이닥치면 끝장이야.” 순간, 로깡인지 앤드류인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다. “단테 씨! 아이를 관 안에 넣은 채 못질을 하게 내버려 둘 거예요?” “그럼 어쩌라는 거야?” 망치를 든 사람들이 곧 들이닥칠 것이다. 나무관을 못질하여 봉해버릴 죽음의 봉사자들이 올 것이다. 최근 마약에 절은 시신이 많아서 동물들의 파묘가 심해졌다. 그들은 과거보다 더 완벽하게 못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기의 한쪽 실눈이 견디지 못해 스르르 닫히는 순간이었다. 단테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죽은 여자는 두고 … 아기를 데려가자, 빨리!”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08.0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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