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은
김다은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연재 중
웹소설 종의기원
23개의 칼럼 #문화
  • 웹소설 종의기원
    23. 고도를 기다리며 어디선가 숨소리가 들렸다. 아니, 숨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이 새벽에, 무슨 숨소리일까.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내 숨소리는 아니었다. 내 숨은 몸 안에 들어있어서 들리지 않았고, 내 상체를 부풀렸다 가라앉혔다 할 뿐이었다. 들리는 숨소리는 내 몸 밖에서 나는 것이다. 더구나 내 숨보다 두 배 정도 주기가 빨랐다. 위층이나 아래층 사람의 코 고는 소리가 새벽의 조용한 기운 때문에 내려왔거나 올라왔을 수도 있었다. 새벽에 부부가 나누는 애정의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온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숨소리는 분명 내 침실에서 났다. 분명 내 곁에, 내 귓가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누운 채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확실하게 숨소리가 귓가에서 들렸다. 나는 그 근원지를 탐색하기 위해 몸을 뒤집었다. 나는 잠을 깊이 자기 위한 캐노피 침대를 사용한다. 마치 유럽의 왕실 침대처럼 프레임을 세우고 천을 덧씌워 방의 시야를 가린 것이다. 한국의 모기장도 캐노피 침대를 닮았지만, 침대의 캐노피에는 아주 부드러운 천이나 장식이 달려있어 창문을 통해 바람이 흘러들면 미세한 소리가 날 때가 있다. 지금은 창문이 모두 닫힌 상태다. 더구나 이 소리는 사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생명이 내는 소리다. 파리나 모기도 아니다. 고양이나 개가 들어왔을 리도 없다. 나는 침대 프레임 위로 걸쳐놓은 긴 망사 천을 들추어보았고, 덮고 있던 이불 밑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서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베개였다. 내가 밤새도록 베고 잔 베개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베개에 다시 귀를 대보았다. 베개가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베개 앞뒤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베갯잇을 열어 안도 살펴보았다. 베개를 두드려도 보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활발하게 베개를 까뒤집고 털은 후 다시 귀를 기울여 보았다. 숨소리는 가라앉아 멈춘 상태였다. 나는 제자리에 베개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이른 새벽에 깨어서 별일을 다 겪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 많이 놀라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의 가시적인 것을 넘어서는 미스터리 한 일들이 우주에는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매일 아침 베개는 숨소리를 내었는데, 오늘만 내가 들었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때 이런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또래들은 나를 미친놈 취급했다. 당시 젊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의 첫 발령지인 튀니지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들의 몰이해가 이해되었다. 서로 언어 소통이 잘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경계에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에너지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바퀴벌레나 심지어 베개도 다른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러므로 그 에너지들은 서로 만나고, 튕겨 나가거나, 서로 섞인다. 이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을 물리학은 알고 있다. 모든 물질은 분자여서 끊임없이 서로 경계 없이 섞이고 있다. 내 머리카락의 분자와 공기의 분자도 지금 눈에 보이지 않게 섞이고 있을 것이다. 내 숨소리가 베개에서 난 이유는 간단하다. 내 숨의 미소한 일부를 베개가 빼앗았기 때문이다. 나는 허약해졌고, 피폐해졌으며, 희망을 잃고 허망한 상태다. 베개는 나를 받치는 역할을 하면서 도리어 약해진 나에게서 에너지를 흡수해서 스스로 강해졌을 것이다. 베개는 내 숨을 가장 먼저 마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더구나 내가 잠든 시간은 절호의 기회였다. 내가 내 숨결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베개에게 빈틈을 보인 것이다. 내가 다른 사물들보다 강한 에너지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베개의 숨소리가 내 숨보다 빨랐던 것은, 사물 주제에 사람의 숨을 감당해내려니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내가 뺏긴 것은 숨만이 아니었다. 특권처럼 누리던 신사의 품격이 거의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장례식을 끝내고 나니,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와 다른 위치로 내가 자연스럽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보다 죽음 후에 사람들에게 더 존경을 받았다.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몇 나라들의 심장병 아이들을 위해 아버지는 유산 전액을 기부한다는 유서를 남기셨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귀중한 것이 있다고 어머니가 따로 말씀하셨지만, 아버지가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전달할지는 어머니도 모른다고 했다. 침대 프레임에 걸터앉아 있으니, 하루아침에 털이 다 뽑힌 새 같았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던 십자매 ‘도리’의 아름다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베란다의 새의 정원으로 나갔다. ‘도리’가 혼자 베란다 정원의 포도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면 강아지처럼 흔들던 하얀 깃털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노랫소리도 슬픈 울음소리도 없었다. 세상사의 명예에 목을 매달 때라면, 짝을 잃어 목소리를 잃은 버린 ‘도리’의 상태를 글로 써서 일간지에 당장 내놓았을 것이다. 독자들은 신기해하며 인간보다 낫다는 반응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독자의 반응을 즐겼을 것이고, 한두 출판사는 내 새 이야기를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도리’의 슬픔을 내 명예나 경력을 위해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도리’는 나처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상태였다. 내 고통과 슬픔이 오죽하면 내가 베개에게 숨을 빼앗겼을까. 먹이를 줘도 ‘도리’는 날아서 가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양 눈이 옆으로 붙어 있는 탓에, 나를 더 잘 보기 위해 사시처럼 눈을 떠든 귀여운 모습도 사라지고 없었다. 장례식 기간을 포함하여 지난 2주간의 일정은 저절로 취소되었지만, 앞으로 이 주간의 일정은 내가 문자로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렸다. 해외문학 독서토론회에서 요청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관한 초청 강연과, 희곡집들만을 파는 ‘아름다운 고집’이라는 작은 서점에서 있을 작은 공연 관람도 취소했다.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3개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빌미로 양해 메시지를 보냈다. 일방적인 취소임에도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이해한다는 답장들이 돌아왔다. 아파트 인터폰이 울려서 나가보았더니, 우편함이 넘쳐서 관리실에서 플라스틱 바구니에 우편물을 모아서 내 아파트 문 앞에 놓았다고 했다. 나는 우편물을 아파트 안으로 끌어넣고, 시계를 보았다. 7시 30분에 가까웠다. 나는 아파트주변을 조금 산책하고 싶었다. 아파트 단지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내 아파트 건물 앞과 옆 건물의 공터를 왕복해서 걸었다. 공터의 정자 옆을 지나가고, 다시 돌아서 정자 옆을 지나가고, 다시 돌아서 정자 옆을 지나가고, 다시 돌아서 내 결핍의 정자 옆을 지나갔다. 누군가 내려다본다면, 공터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반복해서 오가며 매우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나는 이 목적없는 왕복 산책을 하다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했다던 이야기를 문득 떠올렸다. 올림픽에서 한 선수가 자신의 표적이 아니라 경쟁자의 표적에 사격한 실수에 관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나서, 내가 삶의 과녁을 잘못 조준하고 있다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마저 전했다. 이 되돌이표 아침 운동도 과녁이 없는 행동임에는 분명했다. 과녁은 없다 해도, 무의식적인 욕망이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왔다 갔다 걷고 있었지만, 정자 옆 빈터를 계속 확인했다. 그곳에 서 있던 여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이 아파트 안에 사는 여자인지 방문한 여자인지, 나와 같은 아파트 동에 사는 여자인지, 옆 동에 사는 여자인지,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만나면 어떻게 할지, 히드라처럼 얽히는 정서적인 감정이 치밀고 올라왔다. S와 이별 이후에 이렇게 간절히 원한 여자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들떠서 이렇게 헤매는 것부터가 과녁이 없는 화살 상태였다. 올림픽에서 경쟁자의 과녁에 발사한 선수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알지 못하는 여자에게 화살을 쏘려는 이 비참한 한 남자의 행동은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상의 모든 성공과 성취를 내려놓았는데도, 내가 왜 이렇게 분주한지 알 수 없었다. 공허함을 채우려고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럴수록 얼굴도 모르는 여자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마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인물 같았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는데, 고도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다시 방향을 틀어서 걸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산울림 극단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버지를 따라 외국을 떠돌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한 곳이었다. 한국처럼 빠르게 변하는 나라에서 내가 어릴 때 본 극단이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경제적 효용성이 적은 극단을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연극을 매우 사랑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았다. 아직도 남아 있는지 가보고 싶었다. 연약한데도 도도하게 부서지지 않은 것을 보고 싶었다. 내가 믿었던 세계와 내가 세운 세계가 차례차례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고 나서, 부서지지 않는 것을 갈망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고도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5.03.17 09:00:00
    종의 기원  <23회>
  • 웹소설 종의기원
    22. 결핍의 정자 내 아파트 단지 앞에는 육각형의 나무 정자(亭子)가 있다. 옆 동과 중간지점이어서 사선으로 눈길이 가는 곳이다. 아침부터 창문을 열어놓고 자꾸 그곳을 쳐다보았다. 급기야 시선이 그곳에 머물러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정자 옆에는 벤치들도 드문드문 놓여 있다. 새벽이건 밤이건 사람들이 쉬는 곳은 주로 벤치쪽이었다. 벤치에서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음악을 듣거나 했다. 벤치에는 혼자 앉아 있어도 자연스럽지만, 정자에는 혼자 앉아 있기에 쑥스러운 공간 같았다. 옛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담소하던 공동의 공간이어서 그럴 것이다. 노인들도 제법 있었지만, 서로 대화 나눌 만큼 친분이 없는지 정자에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정자는 그저 풍경에 그쳤다. 그렇게 아무도 찾지 않는 정자에 내가 왜 끌림을 느꼈을까. 정확하게는, 정자가 아니라 정자 곁의 한 모퉁이 빈터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저 빈터는 …… 그 여자가 … 서 있었던 곳이다! 쓰레기 수거 날이었으니, 2주 전 수요일이었다. 옆 동 앞에 빈 종이상자들과 신문지 등 종이무더기가 산을 이루며 쌓이고, 그 곁으로 플라스틱류나 비닐류로 채워진 거대한 포대기가 작은 섬들처럼 놓여 있던 날이었다. 그 전날인 화요일부터 시작된 분리수거는 운반 트럭이 오는 수요일 아침까지 이어졌다. 나는 내 아파트 안에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침 7시 40분경에 대형 크레인이 들어섰다. 트럭이 멈추자 뒤쪽에서 무시무시한 철제집게가 땅으로 내려왔다. 순간 화들짝 놀라서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었다. 강력한 철제집게가 나무 정자 옆에 서 있는 한 여자의 머리를 쳤기 때문이다. 너무 놀라 작은 비명을 질렀는데 ……, 여자는 아무 탈이 없었다. 내 시선의 위치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대형 크레인은 무자비하게 종이상자들과 종이 쓰레기들을 움켜쥐고 마치 외계 비행선으로 옮기는 것처럼 하늘로 끌고 올라갔다. 여자의 시선이 집게발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면서 고개가 뒤로 젖혀졌고, 나는 쭉 휘어지고 뻗은 여자의 라인을 보려고 창밖의 몸이 아래서 더 내려갔었다. 짧은 반바지에 푸른 티셔츠의 여자! 나는 그곳에 서 있던 여자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젊은 여자가 짧은 반바지를 입은 풍경은 신선했다. 프랑스에서 조깅하러 나온 여자의 모습과 유사했다. 챙이 긴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 진작 운동을 하러 나온 것인지도 몰랐다. 모자 때문에 얼굴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모자를 벗어도 모르는 여자였을 것이다. 그녀의 스타일로만 봐도 이전에 보았다면 기억했을 것이다. 하늘로 끌려 올려지는 쓰레기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몸이 뒤로 휘는 모습이 눈을 휘감았었다. 다들 바쁜 아침에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여자가 있구나 싶어서 여운이 남았었다. 그런데,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안개처럼 사라져 가버린 지금, 안개 뒤의 나타난 선명한 물체처럼 그 여자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은연중에 나는 본능적으로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로 되돌아온 것이다. 정자의 모퉁이 빈터에 서 있던 여자의 실루엣이 너무나 생생해서 착각이 일 정도였다. 보이지 않지만 보였다. 보였지만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쓰레기 수거 날도 아니고, 여자가 그곳에 올 이유가 없었다. 쓰레기 수거 날이라도 그날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녀를 생각하자, 몸 안의 수컷 정서가 춤을 추듯 흔들렸다. 한 마디로, 여자가 그립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애도해야 하는 시기에, 인간의 육체적 메커니즘은 이렇게 터무니가 없다. 부도덕하게 느껴져서 심란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파티에서 만난 국내외 커리어우먼, 영화 레드카펫을 걸었던 아름답고 화려한 배우들, 외교계나 예술계의 세련되고 심지어 특이한 여자들을 무수히 수첩에 적어두고서도, 세상의 쓰레기에 매료되어 눈을 떼지 못하는 한 여자에게 빠진 나의 취향이 당황스러운 것이다. 세상에서 추락하니 여성에 관한 취향도 저절로 바뀐 것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녀가 어떤 여자이건 간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찾아온 감정이었다. 문제는 미치도록 보고 싶은 것이다. 갑자기 몸 안으로 도파민이 폭발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닥뜨렸던 상황에서 강렬한 아드레날린이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면, 당연한 수순처럼 도파민이 이어서 폭발했다. 새로운 동기부여나 목표물을 찾아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나오는 몸의 신경전달 물질이었다. 불안과 좌절에 침체 되었던 인간이 다시 희망을 찾으려는 본능 때문에 솟구치는 도파민! 그런데 그것이 여자 쪽으로 흘렀다. 세상의 명예나 돈 그리고 물질에서 이미 가치를 상실한 인간이 다시 동일한 분야에서 동기나 목표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라도, 세상의 멋진 여자가 아니라 전혀 모르는, 몰라도 되는 미지의 여자를 새로운 동기부여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분석은 불필요한 것이다. 몸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욕정이 다시 돌아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여전히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 있는 여자 S. 육각 정자 모퉁이의 여자가 S와 뭔가 공통점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눠보지도 않았는데, 처음 본 순간부터 광기에 빠져버리는 징후가 비슷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운명의 상대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첫눈에 반하는, 소위 운명의 상대라고 빠져드는 남녀관계의 위험성을 이미 S를 통해 체험했다. 그 위험한 운명이 다시 시작되었다면, 저 정자의 모퉁이에서였을 것이다. S와의 광기 어린 경험이 끝나고 나는 여자에게 관심을 잃었다. 그런 강렬한 감정과 몸정을 대신할 여자가 있을 수 없었다. 더구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자에게 안정감을 주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성향을 갖지 못했다. 여자들이 원하는 충분한 시간과 다정함과 배려를 주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쉬크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여자와 연인처럼 지내다가 스스로 떠나가면 끝을 맺곤 했다. 그래서 끊어진 관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워서, 다시 연락하면 다시 만나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지금, 나는 쓰레기에 반한 여자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지금 느끼는 정욕은 그래서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결핍에 가까웠다. 내가 바람둥이여서가 아니다. 나는 짧은 시간에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고, 생애 처음으로 최고의 결핍 상태이다. 모든 것이 충족되던 과거의 시간은 사라졌고, 충족했던 시간 속에 있던 여자들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반면에 세상의 보석이나 명품 가방이 아니라 세상의 쓰레기를 바라보며 서 있던 여자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세상의 쓰임새를 다하고 버려지던 쓰레기에 시선을 맞추고 있던 여자! 어쩌면 나도 세상의 쓰레기에 시선을 맞추고 매료된 채 살아온 것 같았다. 나는 이미 그녀에게서 나의 페르소나를 보았다. 그녀가 집게발의 철퇴를 맞는 듯한 순간에, 창밖으로 내밀었던 내 몸에 어떤 에너지가 강렬하게 휘감았었다. 여자를 끊임없이 더듬고 있는 것은, 내가 나를 찾고 싶어서일 것이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 내가 나와 다시 한 몸이 되고 싶은 욕망이었다. 결핍의 정자는 보통의 성욕보다 강했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온 후 아들의 온몸은 생명을 갈구했고, 가장 쉽게 여자를 탐하고 싶었다. 뱀과 새 사이의 유혹의 계략이 이런 것이었다. 뱀과 새의 실험에서 나는 새였다. 나는 케이지 안에서 혼자 자유롭게 날고 있었는데, 이어서 뱀이 내 케이지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나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고 밑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자 새는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나는 그 여자가 궁금해서 시선을 맞추고 대화하고 싶다. 아니 가까워지고 싶다. 나는 꿈틀거리는 뱀의 관능적인 몸을 접촉하고 싶다. 만지면 매우 매끄럽고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낮은 가지로 점점 내려가서 여자 앞까지 가고 싶다. 더 다가가고 싶다. 그리고 그 여자의 쩍 벌린 입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정말이지, 삼켜지고 싶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5.03.04 09:00:00
    종의 기원  <22회>
  • 웹소설 종의기원
    21. 반려 내 집에 십자매 한 쌍이 들어온 계기는 친구의 외국 여행 때문이었다. 잠깐 맡기겠다고 하더니, 웬일인지 여행을 마치고도 차일피일 되찾아가지 않았다. 그 사이, 새 부부는 하얀 알을 낳더니, 꼬물꼬물 새끼가 나왔다. 마흔 중반의 미혼 남자가 생명 탄생의 순간을 직접 볼 일이 없었기에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친구를 재촉하지 않았다. 도리어 새끼들이 태어나면서 주인이 애매해졌다고 농담을 했더니, 아예 주인이 바뀌고 말았다. 그렇게 수년에 걸쳐 새끼가 새끼를 낳아 7마리까지 불어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와 ‘도리’ 한 쌍만 남은 상태였다. 몇 대 손(孫)인지 알 수 없다. ‘그리’의 본래 짝은 ‘도리’가 아니라 ‘왕비’였다. ‘왕비’는 몇 년 전에 죽었다. ‘왕비’라고 부른 이유는 워낙 도도한 자태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새들은 하루에 한 번 목욕하는 습관이 있다. ‘그리’는 매일 물통에 들어가서 목욕했지만, ‘왕비’는 절대로 스스로 목욕하지 않았다. ‘그리’가 깃털로 물방울을 열심히 튀겨주면, ‘왕비’는 온몸에 떨어지는 물방울들로만 몸을 단장했다. ‘그리’가 자신의 반려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깃털로 물방울을 날려주는지 보고 있노라면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보석 같은 투명한 작은 물방울을 맞으며 몸을 단장하는 ‘왕비’의 자태는 나의 웃음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 도도함이 몸의 불편함에서 나온 것임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어느 날 ‘왕비’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서 살펴보니, 한쪽 다리가 거무스름하게 변한 상태였다. 동물병원에 가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을린 성냥개비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치료할 방법을 찾아 헤매는 사이, 한순간에 검은 다리의 절반이 절단되고 말았다. 아마 물에 발을 담그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근친교배를 계속하면 장애가 점점 생겨난다고 했다. ‘그리’와 ‘왕비’도 같은 배에서 나온 오누이지만, 반려였다. 새들은 날아다니다가 발가락으로 나뭇가지를 움켜잡아야만 쉴 수 있다. 나뭇가지를 잡을 수도 없으니 ‘왕비’는 제대로 날지 못했다. 한쪽 다리가 절반으로 잘라나간 상태니 바닥에도 제대로 설 수 없었다. 며칠을 넘기지 못할 줄 알았는데, ‘왕비’는 절단되지 않은 다리를 쭉 뻗은 상태에서 절단된 다리로 총총 뛰면서 움직였다. 바닥에서 맴돌며 먹이를 주워 먹었다. ‘왕비’가 위험한 상태에 놓이면 ‘도리’가 나에게 울음으로 SOS를 청하기도 했다. 밤이 문제였다. 내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둘 다 둥지 안에 들어간 날도 있지만, ‘왕비’가 들어가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어둠 속에 ‘왕비’ 혼자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깃털로 물방울 목욕을 시킬 순 있어도, ‘그리’도 ‘왕비’를 업어 옮기지 못했다. 나는 종일 뻗어 있어야 하는 ‘왕비’의 긴 다리를 마사지해서 둥지 안에 넣어주곤 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둥지에서 꺼내어 주었다. 왕비님은 결국 8개월 만에 죽었다. 그렇게 해서 혼자가 된 ‘그리’의 짝으로 데려온 것이 ‘도리’였다. 같은 배에서 나온 새가 아니라 다른 배에서 나온 어린 새를 사 와서 외롭지 않게 짝을 맞춘 것이다. 청계천에서 여러 상점을 돌아다니며 암컷을 구했다. 대부분 도리질을 했고, 웃돈을 주고 겨우 산 암컷이 ‘도리’였다. 의심스러운 것은 ‘도리’의 목소리가 암컷치고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알을 낳지 않았다. 나는 새 장수에게 속아 그렇게 ‘그리’에게 남자 반려를 만들어주고 말았다. 그들은 서로를 무척 위했기에 다시 떼어놓기에도 너무 늦었다. 더구나 ‘그리’는 나이가 들어서 이미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고, ‘도리’는 그런 ‘그리’를 잘 돌봤기 때문이다. ‘왕비’는 절름발이로, ‘그리’는 장님으로, 그리고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도리’가 ‘그리’의 죽음을 인지하도록 하루 정도 그대로 둘 생각이었다. 베란다의 푸른 슬리퍼 안에 놓아두었다. 나는 여러 번 새의 죽음을 겪었는데,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도리’는 ‘그리’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죽은 ‘그리’를 새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계속 주변을 돌며 꼭꼭 쪼았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여느 때와 달리, 끊임없이 콕콕 쪼며 밤이 깊어도 혼자 들어가지 않았다. 해결책이 없었다. 나는 참다 못해서 죽은 ‘그리’를 새장의 둥지 안에 넣어주었다. ‘도리’는 그렇게 죽은 ‘그리’와 자신들의 둥지 안에서 하룻밤을 잤다. 아침에 번쩍 눈을 뜨자 뭔가 이상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을 보니, 습관적으로 깨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 싶었다. 나는 언제나 ‘도리’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깨곤 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리’는 내가 여태 키운 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새였다. 악기보다 놀라운 음색이었다. 시계를 보니, 내가 깨어야 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지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새의 정원 쪽 베란다 문을 열었다. 나를 반기는 ‘도리’의 부산한 움직임도 들리지 않았다. 새장 안 지푸라기 둥지에는 죽은 ‘그리’만 굳어 있었다. 고개를 드니, 도리는 여느 아침처럼 높은 포도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해도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았다. 나를 반갑게 맞이하던 깃털의 날렵한 움직임도 사라져버렸다. 노래는커녕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어젯밤 둥지 안에 죽은 ‘그리’를 함께 넣은 것을 후회했다. 자신의 반려가 죽었다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새 이야기를 누가 믿을까.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 모습이 ‘도리’에서 보였다.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나도 ‘그리’처럼 충격을 받고 상심해서 울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혹여 벌레라도 생길까 봐 이전의 새들은 반드시 바깥에 묻었다. 그런데 ‘그리’의 사체가 완전히 사라지면 ‘도리’가 창문에 머리라도 박을까 봐, 자살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나는 ‘도리’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마지막 배려는 ‘그리’의 사체를 바깥에 내버리지 않고 베란다 정원의 흙에 묻어 주는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를 묻듯이 ‘그리’를 땅에 묻었다. 눈물이 비로소 줄줄 흘렀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5.02.24 12:33:00
    종의 기원  <21회>
  • 웹소설 종의기원
    III. 유혹의 계략 20. 뱀의 치명적 유혹 커다란 새장 안에 나뭇가지들을 장식하고, 새 한 마리를 넣었다. 작은 새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즈음, 뱀 한 마리를 다시 새장에 들어가게 했다. 자기 몸집보다 몇십 배나 큰 뱀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모습을 본 새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오갈 바를 몰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푸드덕거렸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가장 높은 가지 위로 올라갔다. 뱀은 즉각 새를 공격하지 않았다.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아래쪽에 꼼짝 않고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새는 윗가지에서 아래 가지로 조금씩 내려왔다. 심지어 호기심을 가지고 뱀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새가 코앞까지 가깝게 다가오자, 드디어 뱀은 입을 크게 쩍 벌렸다. 새는 스스로 뱀의 입안으로 들어갔고, 뱀은 간단하게 먹이를 삼켰다. 차창으로 빗방울이 흘러내렸다. 장례식장에 갈 때도 비가 내렸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내렸다. 장례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부모님 댁에서 거의 1주일을 머물러야 했다. 10일 만에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동안 내 존재에 대한 가치가 천지 차이로 변해버린 듯했다. 새와 뱀에 관한 한 과학적인 실험이 떠오른 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장례식장에 가기 전, 나는 프랑스 작가와의 대담으로 명예와 자존심을 다쳐 1주일가량 두문불출했던 상태였다. 당시 내 최악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여겼고 처참했다. 그때 곡기를 끊었던 것도 나를 다시 회복시킬 자신이 있었기에 벌인 발악이었다. 장례식장에 갈 때만 해도, 내가 나를 믿던 시절의 나의 비참함을 나름 즐겼을 것이다. 본래의 나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다. 비참한 모습이었지만 확실하게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는 존재를 자각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도 나는 장례식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스스로 진저리가 쳐졌다. 아픈 아버지와 집안일을 돌보던 어머니가 실상 돌봄을 받아야 하는 건강상태임을 깨달았고, 비로소 나는 몰인정하고 무심하고 독선적인 자의 자만을 보았다. 내가 알던 나의 멋짐이나 명예가 오만이었고 부끄러움이었다. 여태 뭔가 착각을 하면서 산 것 같았다. 든든한 보호자이자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가 공급하던 영혼의 에너지가 끊겼는지 머리가 텅 빈 듯하고 먹먹했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지금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예 내 안의 ‘나’가 빠져나가 버린 듯 허망하고 허전했다. “어디로 갔어?” 내가 무심코 작은 소리를 지른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기사가 자동차 백미러로 나를 살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심한 아들의 돌발적인 언행이라고 느꼈는지 캐묻지 않았다. “키우는 새들이 제대로 있는지 갑자기 생각나서요.” 나는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아니 나는 이런 식으로 항상 나 자신을 방어하며 보호해왔을 것이다. 말을 하고 나자 비로소, 집에 남겨둔 ‘그리’와 ‘도리’가 떠올랐다. 방치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그대로 포기하면 아파트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내가 없으면 더 목숨을 이어갈 수 없는 존재들! 이런 존재가 가족이라고 아버지가 말했었다. 나는 그들을 키우는 보호자였다. 나의 아버지가 나의 의지처이자 보호자였듯이. 순간 울컥하는 심정이 올라왔다. 아버지의 죽음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한갓 새들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슬픔을 느끼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새를 기르세요?” “십자매!” “그렇게 바쁘신데도 생명을 키우시네요. …… 십자매라면 독수리 종류인가요?.” “아하, 십자매는 참새 크기의 새입니다. 몸의 길이가 10㎝ 정도 되는 작은 새예요. 십자‘매’라는 표현 때문에 사람들이 아주 큰 매 종류를 생각하기도 하죠. 제가 독수리를 키운다는 소문이 퍼진 적도 있었지요. 사람들은 실제를 보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이나 공상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죠.” 막상 말하고 나니 기사를 비난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마지막 말은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내가 나의 실제를 보지 못하고 내 생각으로 만든 공상의 산물로 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씀하셨으면 제가 아파트에 한두 번 들러서 먹이와 물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한 달 정도는 나 없이도 지낼 수 있게 조치가 되어 있어요. 새장에서 마음대로 나와서 수도꼭지에서 흘러내리는 물통의 물을 먹을 수 있고, 먹이도 충분히 공급되어 있으니까요. 여행이나 출장을 가도 신경 쓰이지 않도록 베란다 하나를 완전히 개조하여 새의 정원을 만들었거든요. 두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나이가 많아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괜찮나 걱정이 되네요. 보통 5년 정도 사는 새인데, 거의 10년을 살았으니까요. 사람 나이로 치면 백 살쯤 되었죠.” “앞이 보이지 않는데 …… 새가 날아다닐 수가 있나요?” “10년을 같은 공간에서 살았으니 기억에 의존해서 조금씩 날고, 나뭇가지나 벽을 타고 다니고, 보통은 바닥에서 돌아다녀요. ‘그리’의 짝인 ‘도리’가 소리로 길을 안내하기도 해요. 제법 두 마리가 도우며 잘 살아요.” 차는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다. 기사는 앞을 묵묵하게 바라보았다. 막상 이야기를 꺼내니, 빨리 ‘도리’와 ‘그리’가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뱀에게 잡아 먹히는 상상으로 이어지자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갑자기 ‘그리’가 불안해졌다. 창밖에 비가 멎은 듯했다. 새와 뱀의 실험!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들었을 당시에는 천적의 관계만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천적을 만나면 몸이 마비되어 저항이나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잡아먹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실험이 천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유혹에 관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유혹에 이끌리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데도, 그것에 시선을 맞추기 시작하면 점점 그것에 매혹당하는 것이다. 스스로 이끌리고,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가간다. 커다란 뱀 앞으로 스스로 다가가서 총총거리며 뽐내고 즐긴다. 그때 기다리던 뱀은 입을 쩍 벌리고 새가 스스로 그 안으로 날아드는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에 삼켜지려는 순간처럼 갑자기 다급해졌다. 아파트로 들어가자마자 베란다 문을 급하게 열었다. 나는 맨발로 베란다로 뛰어나가 ‘그리’와 ‘도리’의 이름을 마구 불렀다. 하얀 깃털의 ‘도리’가 나를 알아보고 부산하게 울었다. 하지만 회색 깃털의 ‘그리’의 울음은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 그리’는 평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가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울었다. ‘그리’가 어디 있는지, 새장 안에도 찾아보고, 수돗가의 물항아리 주변도 찾아보고, 그들의 정원을 샅샅이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 창문은 닫혀 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나는 ‘도리’에게 ‘그리’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지만, ‘그리’는 울기만 했다. 떨어진 나뭇잎 아래까지 아무리 뒤져보고도 찾을 수가 없어서 목말라하며 거실로 막 들어오려는 순간이었다. 거실 유리문 앞에 놓인 베란다용 슬리퍼 안에 뭔가가 주저앉아 있었다. 새들이 내 슬리퍼 위에 올라올 때는 나를 보고 싶을 때였다. 나를 기쁘게 하거나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슬리퍼 위에 와서 놀았다. 내가 생활하는 거실과 자신들이 거주하는 베란다를 이어지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오! 그리!” 나는 푸른 슬리퍼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그리’를 손으로 집어 올렸다. 아무런 저항도 반가움도 표현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온기로 보아 목숨은 붙어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마치 작은 솜뭉치같이 가벼웠다. 반면에, ‘도리’는 나의 귀가에 매우 기뻐하며 베란다 천장을 힘차게 날아다녔다. 안도와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울었다. 내가 ‘그리’를 돌보면 회복하리라고 여길지도 몰랐다. “그리! 그리! 기운 내. 내가 왔어.” 나는 ‘그리’의 이름을 마구 불렀다. ‘그리’는 닫히지 않은 남은 한쪽 눈꺼풀 안의 동공으로 나를 보았다. 장님 새의 동공이었지만, 그리는 마음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를 향한 검은 동공은 여린 빛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리’의 애틋한 홍채를 바라보며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했다. 죽음에 삼켜지기 전에, 나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끝까지 버틴 것이다. 순간, 소설 ‘인공낙원의 문’의 버려져 있던 아기가 떠올랐다. 관 안의 아기의 열린 실눈이 온 생명을 다해 단테를 바라보던 모습이 기억났다. 결국, 악당들은 돈벌이가 되는 여자 사체를 포기하고 골칫거리가 될 생명을 안고 달아났다. 그 실눈 안의 눈빛 때문에 아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관에서 건져 올리라고 말하던 악당 두목 단테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 떠올랐다. 나도 단테처럼 ‘그리’의 생명을 연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리’는 나를 보고 죽기 위해 마지막까지 기다린 것이다. 아버지도 이런 심정으로 나를 기다렸을까. 비로소 눈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나를 마지막으로 보고 가려고 온몸으로 버티셨을 것이다. 내가 아파트에 숨어서 뒹굴며 곡선의 시간을 사는 동안에도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간절히 기다렸을지 비로소 느껴졌다. ‘그리’를 품에 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도리’가 울면서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를 보았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듯 마지막 실눈을 스르르 감았다. 내가 손에 안아 올린 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리’는 몸이 굳더니 고개를 뚝 떨구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5.02.17 13:53:45
    종의 기원  <20회>
  • 웹소설 종의기원
    19. 두 종류의 자랑거리 하얀 죽 한 사발이 가만히 테이블 위에 놓였다. 고개를 드니, 어머니였다. 우리가 꼿꼿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고 계셨는데, 어느새 나에게 먹일 죽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나는 1주일 동안 음식도 물도 거의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입관이 끝난 뒤에야 겨우 일회용 면도기로 수염을 깎으려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거울 앞에서 헉 놀라서 물러났다. 영화 ‘빠삐용’에서, 탈옥을 감행했다가 독방에 갇혀 햇빛도 없이 바퀴벌레를 잡아먹으며 견디다가 축 늘어져 끌려 나오던 스티브 맥퀸의 창백하고 메말라버린 얼굴을 닮은 남자가 거울 안에 서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굶주린 상태였지만, 매일 받던 세상의 관심과 칭찬과 자랑거리의 자양분이 공급되지 않아서 정신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시 거울을 보니, 염을 한 아버지의 하얀 얼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죽어버렸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께 고분고분 말했다. “좀 식으면 먹도록 할게요. 어머니도 좀 쉬도록 하세요.” 여자와 토론을 하자, 내 승부사 기질이 식욕까지 조금씩 깨우고 있었다. 조문객들은 장례식장 음식을 먹으면 코로나에 당장 걸릴 것처럼 아예 식당에 들르지도 않았고, 그래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장례식 식당이 가장 안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여자를 앞에 두고 죽을 먹을 순 없었다. 그러고 보니 생판 모르는 여자와 이렇게 성경을 토론하게 된 상황이 이상했다. 누가 저 하얀 가죽 표지의 성경을 나에게 전하라고 했는지 궁금해졌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에 여자와 토론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욕심에 미처 풀지 못한 의문을 말했다. “대담에서 프랑스 작가가 말했던 대응 문구 기억하시죠?” 표지 문구를 이해하려면 대응 문구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프랑스 작가가 주장했고, 그 두 문구는 다시 모순적인 관계여서 난감했었다. 여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응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와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사이의 모순을 말씀하시는 거죠?” 여자는 내 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문장의 모순 관계를 설명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성악을 전공한 여자에게는 무리였다. 세계적인 작가와의 대담에서도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 여자가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여자가 차분하게 말했다. “제 친구가 출판사의 부탁으로 어린이 성경책을 편집한 적이 있어요. 내용은 읽기는 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거든요. 대담자 님이나 김아리랑 팀장님뿐만 아니라, 책을 전문적으로 편집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예요. 성경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끼리 소통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신과 소통하기 위한 영의 언어라는 점이에요. 성령없이 영의 언어를 이해하기가 어렵답니다.” “…….” “지금은 아무리 설명해봤자 이해하기 어려우실 테니, 아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성경은 책 전체가 모순 언어예요.” 여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화술이 좋았다. 두 문장의 모순으로 끙끙대는 나에게, 성경 전체가 모순 언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이 신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말인가. 나는 여자의 대범한 표현에 조금 매료되어 말했다. “어째서 그런지 설명해보세요.” “신의 언어를 세상의 언어로 이해하려니 전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지요.” “예를 들어보세요.” 성악을 전공한 여자의 리듬감이 있는 목소리가 듣기가 좋았다. “대담자 님은 죄인이신가요?” “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감옥에 있겠지요.” “대담자 님이 죄인이 아니라고 간단하게 대답한 것은 살인이나 도둑처럼 사회적인 범죄인 크라임(crime)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대담자님은 죄인이세요. 본인이 아니라고 하고 법도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당연히 모순이잖아요.” “…….”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은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에 해당해요.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어 그 후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가 된 죄를 씬(sin)이라고 해요. 이처럼 아담 한 사람에 의해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었지만, 다시 예수님 한 분에 의해 모든 인간이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다시 연합할 수 있게 되었어요.” “더 쉬운 예를 들어보세요.” 여자는 처음으로 갸웃하는 표정이었고, 눈망울이 커졌다. “다이아몬드로 예를 들어볼게요.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는 금강석이라고 불렀죠. 흔히 다이아몬드라는 세상의 가장 아름답고 단단한 보석으로 여기잖아요. 성경에서는 금강석을 마음이 굳어서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닫힌 마음을 비유하기도 해요.” 그런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반격했다. “시인들도 얼마든지 그렇게 비유할 수 있죠.” “성경의 언어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요. 믿음을 가진 인간이 자랑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재물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거든요. 유일한 자랑거리는 예수님을 통해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을 다시 만난 거예요. 하나님을 모르면 자신의 재물이나 노력으로 얻은 것들을 세상에 자랑하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이 노력으로 이룬 재물이 죄라는 뜻인가요? 세상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된다는 뜻인가요?” “물론 아니에요.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신의 재능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에요. 다윗 아시죠?” “하나님이 가장 사랑한 이스라엘의 왕이자 예수님이 다윗 왕의 후손이잖아요.” “성경을 상당히 잘 아시네요. 본래 다윗은 당시 천한 직업이었던 양치기였잖아요. 다윗은 양들을 불러 모으거나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수금을 연주하곤 했어요. 수금이 다윗의 세상적인 재능이었던 셈이죠. 그런데 당시 사울 왕이 나쁜 영에 사로잡혀 병이 들게 되고, 다윗의 수금이 유명해서 궁궐로 들어가 수금으로 그 영을 쫓아내고 왕의 사위가 되어요. 게다가 다윗은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과 교제하거나 찬양할 때나 곧잘 수금을 연주하길 좋아했어요. 다윗은 나중에 사울에 이어 왕이 되지요. 양치기 다윗을 왕으로 만든 수금의 재능은 어디서 왔을까요?” “양을 지키려고 수금을 많이 연습했겠지요.” “그렇다면 양을 지키는 수금이 어떻게 왕의 병까지 고칠 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수금의 재능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었어요. 그래서 수금은 양치기 직업을 수행할 때 꼭 필요한 도구였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서 사람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기술이 되었고, 특히 새벽에 주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악기로 변하게 된 거예요. 대담자 님의 놀라운 언어 감각이나 대담 능력도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시면 좋을거예요.” 성경은 수천 년 전의 책이었다. 인간이 수금으로 양을 몰지도 않으며 그것으로 치료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나의 대담 능력을 칭찬받자 도리어 조롱처럼 느껴졌다. 칭찬이 모멸감으로 느껴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빈정거리는 어투가 나왔다. “현대에는 과학이 워낙 발달해서 인간의 능력이 점점 신을 닮아가는 정도죠.” “인간의 과학이 대단한 것 같지만, 성경 속 사건과 비교하면 겨우, 바벨탑 정도예요. 구약에서 인간들이 바벨탑이 쌓게 된 계기가 과학적 성과에 의해 벽돌을 ‘발명’했기 때문이에요. 흙이 아니라 벽돌이 가능해지자 이 엄청난 과학적 성과를 통해 하늘에 닿을 탑을 쌓을 수 있다고 여겼죠. 탑을 쌓아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하나님께 도전했던 사건이에요. 인간의 교만이 자라나서 그 탑에 공헌한 인간의 이름을 벽돌마다 새기기로 했던 거예요. 우주에 탐사선을 띄워 보내는 현대 인간의 과학이나 발명이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 수준이에요.” 성악을 전공한 여자가 이렇게 말을 잘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의 의문이나 질문에 막힘이 없어서 이런 언어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여자는 모순의 언어를 설명하면서도 전혀 말에 모순이 없었다. 나는 거의 식은 하얀 죽을 내려다보았다. “저에게 성경을 읽으라면 무엇부터 읽으라고 권해주시겠습니까.” 육체적 시장기와 성경을 알아보고 싶은 시장기가 동시에 느껴져 무심코 말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소제목들은 왕의 이름이나 업적을 드러내는 제목은 없어요. 창세기부터 구약은 거의 하나님의 언약이나 능력을 그리고 시편도 인간의 재능으로써의 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에요. 신약은 선지자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요. 요한복음, 사도행전처럼. 성경을 읽기 전에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거예요.” “성경의 소제목들은 선지자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지역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도 많지요. 가령, 고린도라거나…….” “아! 좀 전에 말한 대응문장이 고린도 전서 9장 19절이에요. 대담이 끝나고 제가 확인했거든요. 고린도 전도와 고린도 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에요. 어떤 이들에게는 고린도가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바울에게는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자랑하여 복음으로 지경을 넓혀갈 땅이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이같은 대응 문구를 말한 거예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인기나 부릴 종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사람을 얻는다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새 생명을 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예요.”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5.01.13 09:00:00
    종의 기원  <19회>
  • 웹소설 종의기원
    18. 가장 오래 산 인간 무드셀라 “성경을 보면, 가장 오래 산 사람이 969살의 무드셀라였어요. 우리는 그 십 분의 일도 제대로 살지 못해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듯 살아가지만, 누구나 끝이 있음을 알아요. 단지 모르는 척할 뿐이지만…….” 장례식장에 와서 할 말은 아니었다. 인생이 그러하니, 아버지의 죽음이 당연하다는 뜻일까.조문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전혀 위로되는 언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항의나 저항을 할 기운이 없었다. “무드셀라의 삶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너무 짧아요. 우리에게는 더 긴 생명이 예비되어 있답니다. 영원한 생명.” 장례식에 와서 영원한 생명을 논하다니!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말했다. “제가 대담장에서 금발이었던 이유는 한 연극에서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연극 공연이 끝나고 본래 제 모습으로 돌아온 거예요. 이 책은 꼭 전해드리라는 분이 있어서 가지고 왔어요. 『인공낙원의 문』의 표지 문구의 출처가 이 책이에요.” 여자가 내민 하얀 가죽 표지의 책은 그러니까, 성경이었다. 자신의 홍보용 책이 아니었다. 여자는 내가 표지 문구의 의미를 꿰뚫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누가 전하라고 했건 성경을 내민다는 것은 공부 좀 하라는 뜻이었다. “제가 대담장에 간 이유도 표지 문구 때문이었어요. 김아리랑 팀장님이 책의 표지 문구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저에게 대신 나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어요. 교회 다니니 성경을 잘 알지 않겠냐고 하면서요.” “…….” “김아리랑 팀장님은 세계적인 작가들을 상대하니 다섯 개국의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문학을 전공하셔서 문학적인 표현이나 수사법까지 잘 이해하셔요. 하지만 그분도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셨거든요.” “…….” “팀장님이나 대담자님이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그녀가 직설적으로 나의 몰이해를 들추어내는 바람에 몸을 움찔했다. “인간들도 그렇지만, 하나님도 누구에게나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으시니까요.” “그러면 댁은 하나님이 비밀을 알려주어 표지 문구를 이해하신다는 말이군요.” “네.” 너무나 간단하게 대답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당돌함이 나의 맹렬한 토론 기질을 건드렸다. “성경은 교회에서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말하지요?” 장례식에서도 잠잠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여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 표현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과 예언할 때 품위와 질서를 지키지 못한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여성들이 방언과 예언을 교회에서 했다는 반증이죠. 단지 방언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나온 것처럼 굴었기에 그런 경계를 적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구약시대의 여자 사사 드보라나 여자 선지자 미리암을 모를 리가 없거든요. 특히 로마서에서 유니아 사도를 직접 소개까지 하고 있으니 바울이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비하하거나 부정만을 언급한 맥락은 아니에요. 물론 말씀하신 표현들 때문에 시험에 걸리거나 주변의 반격을 받은 경우가 저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주체가 전달하는 사도나 사람에게 있지 않고 주님에게서 나온 말씀 자체로 넘어왔어요.” 여자와 논쟁을 벌이니 여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머리가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이런 기질을 알고 이 여자와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나는 내친김에 말했다. “성경은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고 하지요?” 여자는 망설임 없이 반격했다. “그 뒷부분에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구절이 있어요.”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는 구절에 불편해하는 여자들을 본 적이 있거든요.” “머리는 영적 중심이라는 뜻이에요. 머리 역할도 중요하지만, 몸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중요해요. 서열이 아니라 역할이니 그 역할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그녀는 사람을 거스르지 않는 매우 부드러운 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토론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 “다시 표지 문구에 관해 이야기하면, 성경 욥기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본래 빚진 것이 없는 분이에요.” “그렇다면 표지 문구에서 값으로 사신 주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지요?” “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맞아요.” “그러니까 모순적이라는 것입니다. 온 천하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인간도 하나님의 것이라면 왜 우리를 위해 값을 치렀다고 하십니까?” “사람이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또한 죄의 삯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런데 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값을 치러야 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은 죄가 사라져야만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의 죄가 사라지도록 대가를 지불한 것이지요.” “하나님이 치른 값이 무엇이라는 것인가요?”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가 하나님과 다시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 그 값이 예수님이라는 뜻이군요.” “네. 독생자 예수님!” “어이가 없네요.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 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모순적인 문장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만으로 구원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한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을 받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치른 값은 당신의 독생자이지만, 우리에게는 무상으로 주어지는 은혜랍니다.” 대담장에서 끝내지 못한 대담을 여기서 계속하는 느낌이었다. 구토와 함께 왔던 어지럼증이토론을 하니 조금씩 가라앉았다. 어머니가 그런 나의 변화를 꿰뚫어 보고 저쪽에 서 계셨다. 나는 갑자기 생각난 성경 구절을 꺼냈다. “요한복음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하던데, 유일신을 섬기는 자들이 모두 신들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입니까?” “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예수님을 통해 받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생이 거하고 사람도 신성을 지니게 된다는 뜻이에요. 아마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댁도 신이고 영생을 살게 되겠군요.” “영생은 단순한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에요. 요한복음 5장 24절에 따르면 저에게도 이미 영생의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어요. ” “그 많은 죄를 예수의 피로 씻을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지 못하면 성령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으니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성경은 영의 언어예요. 학식이나 지식과는 다른 지혜랍니다. 눈으로 잘 읽는다 해도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어찌어찌하여 머리로 일부 이해한다 해도 거기에 함축된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요. 생명의 빛이 마음을 열어 성령이 함께 마음으로 이해하게 해주셔야 해요. 그러니까 대담자 님이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랍니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여자에게 내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놓고 싶어졌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나를 지으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나는 수많은 죄를 지었는데, 죄인의 원흉같은 나의 모습이 원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죄의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자가 갑자기 화사하면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을 매우 반기는 표정이어서 도리어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처음으로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서 구원을 받으면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도록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영접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됩니다.” “헌 피조물이 새 피조물이 된다는 논리가…… 모르겠네요. 무엇을 전공했습니까?” “성악을 전공했어요.” “무슨 음악을 좋아하세요?” “오페라 라보엠의 ‘안녕, 낡은 외투여!’라는 곡요. 라보엠의 내용을 아시겠지만, 친구의 사랑을 돕기 위해 낡은 외투를 전당포에 맡기며 부르는 노래예요.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전의 낡은 죄의 옷을 벗고 새로운 생명의 옷을 입게 될 거예요.”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12.30 11:19:32
    종의 기원  <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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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조가대(弔歌隊)의 여자 죽음을 실감할 수 없는데, 조문객을 맞이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아파트에서 1주일간 뒹굴며 거의 먹지 않았기에 기운이라고는 없었고, 대담장에서 도망친 뒤 자존감이 떨어져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다리와 심장이 후들후들 떨렸다. 장례식장에 허용된 동 시간대 99명의 조문객은 마치 전쟁터에서 훈련받은 전사들처럼, 한결같이 하얀 꽃을 영정 앞에 놓고 예의 바르게 나에게 목례를 했다. 하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죽음의 조문객들이 줄지어 왔다가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깨지 못하는 악몽처럼 반복되었다. 기독교식 장례식이라 다행히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었다. 길가에 떨어져 죽은 참새 한 마리도 내 가슴을 쓰리게 하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에서 이런 반복적인 시간을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한 채 견디는 것도 힘들지만, 진정한 슬픔이 몰려오면 이곳에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 같았다. 갑자기 성난 짐승처럼 인내의 끈을 끊고 도망치게 될까 봐 공포감이 엄습하곤 했다. 밤 3시가 넘어 빈소에 조문객들이 끊겼을 때, 나는 벽에 기대어 간신히 주저앉았다. 그때까지 한쪽 무릎을 절면서도 꿋꿋하게 사람들을 맞이하던 어머니가 나를 보고 서두없이 말을 건네셨다. “올림픽 선수가 자기 과녁이 아닌 라이벌 과녁에 총을 쏘면 어떻게 되겠니?” 아무래도 어머니가 잠시 실성한 것이 분명했다. 여태 아버지의 죽음을 너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어머니가 수상쩍었다. 겉으로 아무렇지 않게 보일수록 내면의 고통은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입관식 때 내가 무의식적으로 소설 속 대사를 큰소리로 내뱉었던 순간처럼, 어머니도 그런 혼란스러운 상태를 지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혼란 상태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었다. 연로한 몸이 생각보다 작고 더 많이 구부러져 보여, 그 모습이 더욱 애처로웠다. “올림픽에서 그런 실수를 범하다니, 귀신이라도 홀린 모양이네요.” 어머니의 슬픔이 왜 올림픽 과녁으로 빗나갔는지 그 맥락이 궁금해졌다. 나는 조심스레 해명하며 반문했다. “입관식 때 제가 엉뚱한 말을 한 건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속 ‘관’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어요. 견디기 힘든 마음이 다른 생각으로 흐르고, 그게 무의식적으로 나왔던 거죠. 어머니도 그런 상태인 거죠?” 어머니는 부드럽고 강직한 표정으로, 마치 아버지가 빙의된 듯 말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이란다. 남자 50m 소총에서 금메달 후보는 미국의 매슈 에먼스 선수였는데, 그가 마지막 1발을 오스트리아 경쟁자 과녁에 쏴버렸다. 선두를 달리던 에먼스는 결국 8위로 추락했지. 아버지께서 병원에서 이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지, 그 상황이나 맥락이 기억하시나요?” “너도 과녁을 잘못 알고 쏘고 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는 짚이는 것이 있어서 물었다. “혹시 아버지가 제 서울국제도서전 대담 영상을 보셨나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 대담이었지.” 온몸에 온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버지의 온화한 영정사진이 보였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가슴을 부여잡았다. 은퇴 후에야 아들의 일을 제대로 챙겨보셨던 아버지가, 아들이 가장 비참하게 무너지는 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셨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내가 책의 표지 문구 한 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세계적인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대담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평생 외교관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얼마나 부끄럽고 민망하셨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프랑스 작가가 인간을 ‘종’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것이 죽음이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죽음이 두려워서 우신 건 아니야. 그 작가가 죽음의 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네가 ‘공갈 아기’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우신 것 같았어. 죽음을 알지 못하니 생명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지.”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이끈 결정적인 원인은 지병이 아니라, 내가 대담에서 보여준 진정성 없는 모습이었던 것 같았다. 죽은 대담, 그리고 진정 죽음을 알지 못하는 죽음의 종! 프랑스 작가가 우리 모두 썩어갈 것이라 말했을 때, 내 안에서 일었던 작은 떨림이 다시 느껴졌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어설픈 대답이 어머니까지 충격에 빠뜨릴까 봐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시고 나서 뜬금없이 올림픽 이야기를 꺼내시길래, 그저 그런가 보다 했어. 아버지께서 가끔 치매 증상도 보였으니까.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나서 쓰러지셨지.”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내 몸을 조여왔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떠났다는 사실과 더 이상 아버지와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했다.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고, 목소리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무서운 사실에 직면했다. 영정 뒤에서 우리의 대화를 들을 수 없는 아버지가 느껴지자 고통과 공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어졌다. “왜 과녁을 비껴간 올림픽 선수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하셨는지는, 나도 정확히 알 수 없구나.” 나는 달아나고 싶었다. 내가 구역질을 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나를 식탁으로 데려갔다. 뭔가를 먹이시려고 했다. 그때 저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가 어머니를 보고 우리 자리로 왔다. 입관식에서 보았던 여자였다. 아직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를 소개했다. “아버지와 내가 다니는 교회의 조가대에서 왔어.” “조가대라면?”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위해 노래하는 합창단이야.” 어머니는 사람들 앞에서는 나에게도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셨다. 코로나로 장례식장에서 찬송가를 부를 수 없었다. 조가대의 존재가 이 자리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런 기운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마음을 알아채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저들은 영혼으로도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어머니는 음식을 챙기러 자리를 떴다. 어머니가 왜 이 여인과 나의 자리를 마련했는지 이상했지만,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조문객일 뿐이었다. 그 여자의 손에 들린 책을 보니, 입관식에서 내가 놓고 온 책이었다. 하얀 가죽 표지였다. “『인공낙원의 문』의 표지 문구의 출처가 바로 이 책이에요.” “아! 당신은….” 여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김아리랑 팀장을 대신해 대담장에 왔던 노랑머리가 흑발로 나타나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흔히 자신의 책을 읽어달라고 무리하게 책을 보내오거나 부탁하는 사람이 있었다. 여자가 입관식에서 책을 건넸을 때는 이곳까지 찾아와서 책 홍보를 부탁하는가 싶어서 모르는 척 그곳에 두고 나왔다. 지레짐작으로 괘씸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그녀였다. 대담장을 도망 나온 나의 실책을 자신의 것으로 덮어썼던 바로 그 여자!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12.16 09:00:00
    종의 기원  <17회>
  • 웹소설 종의기원
    16. 한 인간에게 필요한 땅 누군가가 나에게 검은 옷을 덧입혔다. 유리 창문 안쪽에서 한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동그란 눈이 안면이 있었다. 누군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가 어머니께 나의 도착을 알리는 듯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하기 전에, 나는 옆의 좁은 문으로 스며 들어갔다. 나를 보자 사람들이 주르르 자리를 비켰다. 누워있는 이는 분명 아버지였다. 두 다리가 꼼짝없이 포박당해서 묶인 것이 여느 때와 달랐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는 …… 미국에 사는 누나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로 출국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평소 잘난 척하는 여동생이 저렇게 눈이 뭉개질 정도로 울은 모습이 생경했다. 나를 보자마자 몸이 꼿꼿해진 여동생은 칼날 같은 날카로운 눈빛을 내비쳤다가 숨겼다. 어린 조카 미미가 그 곁에 서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6살 어린 아이에게 주검을 보여줄 잔인한 어른이 우리 집안에는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면 됩니다.” 키 작은 남자 직원이 어머니께 말했다. 나는 어머니를 만류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입원한 기간에도 어머니는 수없이 아버지께 마지막 말을 했을 것이다.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마지막 고통스러운 단어들을 뱉어내는 쇼를 펼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어떤 마지막 언어가 인간의 관을 장식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내 생각을 주장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시간에 아파트에서 쓰레기처럼 뒹굴었던 장남의 말이 먹혀들 것 같지 않았다. “당신이 그렇게 기다리던 우리 아들이 왔어요. 당신이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던 아들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 하나님 곁에서 곧 만나요.” 어머니의 짧은 두 마디에 내 몸이 휘청 뒤집혔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멀쩡했다. 장례식장 직원은 상주인 나에게도 마지막 말을 하라고 했다. 나는 욕설이 튀어나올까 봐 입을 앙다물었다. 아버지는 내가 딛고 섰던 땅이었고,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등받이였으며, 아버지의 후광만으로도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아버지는 내가 바라는 것들을 이루어주는 사다리였으며, 그동안 내가 지녔던 것들의 보증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듣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서서히 변했다. 아파트 관리실 소장조차 혀를 쯧쯧 차는 것이 인터폰을 끊기 전에 들렸다. 나를 찾아내어 이곳으로 데려온 아버지의 새 기사인 이무진도, 시선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여동생도, 이곳의 모든 이들이 아버지의 죽음도 지키지 못한 인간말종으로 나를 보는 듯했다. 나는 아버지께 마지막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탓인지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설령, 말할 수 있다 해도 소리내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의 서열이 무너졌는지, 허락없이 내 차례를 무시하고 여동생이 아버지께 마지막 말을 조곤조곤 시작했다. 여동생은 잠들려는 아기에게 자장가를 혹은 잠든 연인에게 속삭이듯이 읊조림을 계속 이어갔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염의 과정에 곱게 단장한 화장 아래로 검은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최근 1주 동안 내가 세상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동안, 아버지는 나보다 수백 배나 많이 가지고 있던 명예를 모두 내려놓았다. 내가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뒹굴며 곡선의 시간을 사는 동안, 아버지는 자신은 물론 가족 그리고 당신의 품 안에서 지키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시간을 사셨다. 내가 대담장을 빠져나와 달아나던 시간에,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빠져나가는 시간을 겪고 계셨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프랑스 작가가 인간은 죽음의 종이라고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딴생각하면서 무심코 올라온 내 표정을 미미에게 들켰다. 외삼촌의 얼굴을 어린 조카까지 외면했다. 나는 장례식장에 조문은 수없이 갔지만, 입관식에 참여하기는 처음이었다. 문학작품 속의 관이 실제 삶에서 드러난 생경한 모습에 눈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한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할까?’가 떠오른 것은 여동생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름이 바흠이었다. 그는 욕심 많은 농부였고 큰 땅을 가진 대지주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주 크고 싼 땅을 살 수 있는 바시키르 마을로 간다. 바시키르 촌장은 1000루블을 내면, 하루에 걸어서 갔다 온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반드시 해가 사라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하며, 돌아오지 못하면 땅도 돈도 돌려줄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바흠은 종일 달음박질로 땅을 계속 넓혀나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걸을수록 욕심은 커졌다. 땅을 더 얻기 위해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계속 달렸다. 아버지의 얼굴로 몸을 수그린 여동생이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나는 톨스토이의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여동생이 아버지의 얼굴에서 고개를 들었다. 바흠은 드디어 굳은 결심으로 방향을 틀어 출발점을 향해 다시 달렸다. 해가 천천히 지평선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흠은 숨이 막혀 심장이 터질듯했지만 계속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기 전에, 바흠은 출발점에 다행히 도착했다. 여동생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미미가 서슴없이 나섰다. 검은 옷을 입었는데도 몸 전체에 빛을 덧입은 어린 천사처럼 환하게 보였다. 미미는 누가 시킨 것이 아닌데 할아버지 앞으로 나아갔다. 어른들은 아이의 순진무구하고 자발적인 행동을 지켜보았다. 미미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렸다. 그런데 미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리 내지도 않고, 소리 내지도 못하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순식간에 참관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이곳은 여태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없었다. 슬픔은 삭제된 듯이 보였다.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이 상황을 충격없이 받아들이는 듯했고, 나만 빼고 다른 가족 친지들도 곧 하나님 곁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담담하게 했다. 그런데 6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소리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줄줄 눈물을 쏟았다. 평소 떼를 쓰며 울던 아이가 진정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지 온몸으로 슬픔을 견뎠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가식처럼 한결같이 담담하던 표정들이 저마다 달리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미미는 울음소리를 참기 위해 더욱 작은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염을 한 할아버지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장내는 슬픔으로 일렁였다. 나는 쓰러질 것 같았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려서 해가 지기 전에 바르키르 마을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바흠은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만다. 그때 촌장이 바흠에게 한 말이 내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정말 엄청난 땅을 차지했습니다. 관 하나를 묻을 만큼의 땅을 차지했으니!” 순간, 스스로 화들짝 놀라서 나는 미몽에서 빠져나왔다. 다들 슬픔에 빠져 있다가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듯 깨어났다. 어머니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버지가 대담에서 다룬 성경 구절을 들으시고 기뻐하셨다.” 내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 악마같은 말이 책에서 나온 것임을 어머니는 짐작했다. 이 무례한 아들의 표현을 아버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지막 한 구절로 해석해서 상황을 무마한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별로 당황하는 법이 없었고, 지혜롭고 명철했던 아버지도 어떤 때는 아이처럼 어머니를 의지했다. 그런데 남자 직원은 직업상 기필코 완수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위해 나의 마지막 말을 다시 부추겼다. “입관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드디어 한 마디를 쏟아냈다. “아버지가 가시는 곳으로 찾아가겠습니다.” 딱딱하게 굳어 누워있는 아버지를 관에 넣기 위해, 밑에 깔린 천을 남자들이 안쪽에서 잡아 올리고 여자들은 반대쪽에서 잡고만 있으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아버지는 관 안으로 옮겨졌다. 작은 천들로 아버지의 얼굴까지 가려졌다. 하얀 생화들이 관 안으로 차례로 놓였다. 그때 참관실에서 처음 나를 알아보고 어머니에게 알렸던 여자가 다가와 책 한 권을 건네며 말했다.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조가대에서 왔어요.” 관 위로 다시는 열리지 않을 뚜껑이 덜컹 내려앉았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11.25 09:31:37
    종의 기원  <16회>
  • 웹소설 종의기원
    II장 15. 죽음의 속임수 화들짝 놀란 것은 전화벨 때문이 아니었다. 관리실의 호출이었다. 내가 없다고 여겼는지 한순간 끊기더니, 다시 집요하게 울렸다. 관리실의 이런 질긴 연락은 아파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 수돗물을 며칠째 잠그지 않아서 아래층으로 흘러내리거나, 화재가 발생했거나 비상사태일 경우이다. 며칠 제정신으로 살지 않았기에 내가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관리실 인터폰을 눌렀다. ‘안 받는데 자꾸 그러시니 … 소용이 ….’ 인터폰을 통해 관리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뭔가 심상찮아서, “여보세요”하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방은 어, 하더니 급하게 말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계신가요? 관리실 소장입니다.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순간 제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하게 사람을 바꿔 달라고 했다. “대사님의 새 기사 이무진이라 합니다. 아버님이 병원에 계시는데 위급 상황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아버지의 기존 기사는 내가 잘 아는 공식 대사관 직원이었지만, 은퇴 후 아버지가 새로 고용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기사 이무진은 긴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말했다. “어머님이 옷과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해 두었으니 그냥 내려오시면 됩니다. 병원에 가야 하니 신분증과 꼭 마스크를 쓰고 내려오세요.” 나는 구두만 꿰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어지간해서 어머니가 사람을 보낼 분이 아니다. 나는 평소처럼 뒷좌석에 앉으려다가 기사 옆좌석에 올라탔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아버지의 상태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윈도우브러쉬가 매우 빠르게 움직여도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기사는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차가 방향을 잡을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번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대담만 끝나면 찾아뵙겠다고, 그 대담을 나중에 보실 수 있게 해드리겠다고 자랑까지 했다. 그런데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만큼 죽을 쑤고 심지어 도망자의 신분이 되고 보니 아버지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미적거렸다. 자동차가 대로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서둘러 물었다. “왜 진작 연락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전화해도 연락이 되지 않았고 심지어 위치 추적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가 이 아파트에 와서 초인종을 수없이 눌러도 소용이 없었고, 아파트 입구에 적재된 우편물을 보니 아파트에 없다고 여겨서 결국 돌아갔습니다.” 여러 번 초인종을 누르는 남자를 인터폰 화면으로 보긴 했지만, 코로나 방지 마스크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 기사의 얼굴을 알 리도 없었다. 전도 목적이거나 아파트 관리실의 성가신 동의 사인 등 때문이라고 여겨서 대답하지 않았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심각한가요?” 차장을 때리는 빗방울과 바람 소리에 못 들었는지 기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버지의 자동차가 서강대교를 넘어 합정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얼핏 바깥을 보니,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라는 교통 안내판이 오른쪽으로 보였다. 다른 상호나 안내판은 빗물에 보이지 않는데, 그것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 것이 섬뜩했다. 죽은 자를 묻는 묘원! 외국인 선교사들이 아주 작고 가난한 나라 ‘조선’에 복음을 전하려고 왔다가 마지막에 묻힌 곳이다. 전도가 그들의 소명이라니 말할 나위가 없지만, 죽고 나서도 자신의 뼈까지 이 땅에 묻는 그들의 마음이 감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픈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유독 외국인선교사묘원이 눈에 들어온 것이 불안했다. 나는 더 빨리 달리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내 차로 가겠다고 우겼으나, 이무진 기사는 반드시 태우고 와야 한다는 지시를 어머니께 받았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무진은 망설였다. “과속으로 사고가 생길까 봐 그러신 것 같습니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차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입원실 주차장으로 들어간다고 여기는 순간, 기사가 세브란스병원 입구를 지나쳤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았지만, 다른 입구로 들어가도 병원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기사도 마음이 급하니 순간적으로 첫 번째 입구를 놓친 모양이었다. 차가 유턴 신호를 기다리더니, 세브란스병원의 다른 입구가 아니라 왼쪽으로 꺾었다. 어! 왜지?, 라는 의문으로 주시하는 동안, 차는 세브란스 장례식장 건물 앞에 도달했다. “장례식장 8호입니다. 지하에서 내리는 것보다 이곳에서 내려서 들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사는 나를 내려주고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친척이 코로나로 죽었을까. 코로나로 죽으면 12시간이 아니라 4시간 안에 화장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급하게 찾은 것이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수치심에 칭칭 감겨 제대로 먹지도 못한 1주일간을 보낸 뒤라, 갑자기 어지럼증이 느끼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은 입장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가족만이 들어갈 수 있다며 신분증과 죽은 가족의 이름을 대라고 했다. 나는 누가 죽었는지 모르기에 신분증만을 제시했다. 직원은 신분증으로 뭔가를 확인하더니 나를 들어가게 했다. 나는 누가 죽었는지 알기 위해 병원 벽면에 계속 올라오는 죽은 자들의 얼굴 리스트를 훑었다. 도대체 누가 죽었기에…. 김담정! 아버지의 온화하고 환한 얼굴이 사진영상에 박혀 나타났다. 상주에 내 이름이 제일 먼저 나왔다. 누나와 여동생의 이름이 보였다. 그 아래 ‘부인’ 어머니의 이름이 보였다. 1주일 동안 칩거하면서 도망가는 악몽을 많이 꾸었고, 과거 잘못한 일도 많이 깨우쳤다. 그런데 이런 악몽까지 꾸는 것은 조금 과하다. 꿈에 시체를 보면 길몽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났다. 병원 직원은 나에게 병원 지하 1층으로 내려가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달아나고 싶었다. 아버지가 아파서 입원실로 가려던 것이니, 장례식장에 가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꿈속에서도 뚜렷하다. 마침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올라온 기사가 나에게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라고 권했다. “대사님은 어젯밤에 소천하셨습니다. 그나마 입관을 보실 수 있어 다행입니다.” 기사가 너무나 또렷한 발음으로 말해서, 꿈이 아니라 현실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살아계신 아버지를 왜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십니까.” 나는 힘은 없지만 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살아계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어머님의 지시였습니다. 찾게 되면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지 말고 데려오게, 라고 하셨습니다. 충격받아 사고를 염려하셔서 제가 모시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급하면 폭주하는 내 성격을 어머니는 잘 알고 계셨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죽음의 속임수를 쓸 생각을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공낙원의 문』 대담 후에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나를 보호했다. 여태 이런 방식으로 내가 살아왔다고 알려 주려고 다들 음모라도 꾸민 듯했다. 하지만 최소한 죽음의 속임수만은 쓰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무진 기사는 걸음을 서둘렀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입관을 미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입관을 보실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입관이라니! 누구 허락으로 아버지를 관속에 넣는다는 말인가. 누구 허락으로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인가. 누구 허락으로! 나는 기사를 따라 좁은 통로를 걸어갔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선명한 느낌이 든 것은 ‘참관실’이라고 적힌 문 앞에 섰을 때였다. 기사가 문을 열어젖혔다. 검은 옷차림의 가족과 몇 명의 미지인에 둘러싸인, 입구 쪽으로 몸을 뉜 틀림없는 아버지의 허연 머리가 보였다. 그 옆에 좁고 긴 나무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11.18 09:13:52
    종의 기원  <15회>
  • 웹소설 종의기원
    14. 곡선의 시간 나는 직선적인 시간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자명종에 맞춰 이른 새벽에 일어나고, 잘 짜진 일정표에 따라 매우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늦게까지 일하고도 밤에는 헬스장에서 근육 만드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깊은 어둠 속에 지쳐 잠에 빠져들곤 했다. 원하면, 일을 미루거나 심지어 팽개치고 달콤한 휴식을 위해 거침없이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려고 하는데도 꼼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어디로 가야 이 한 문장 안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산 넘고 물 건너 고행을 감행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틀어박혀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담장에서처럼 눈에 비늘이 덮여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떠날 짐을 제대로 꾸릴 수도 그대로 퍼질러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서울국제도서전의 피날레 행사의 초대 링크 오픈 시간이 9분 남았다. 두문불출한 1주일 동안, 여태 무슨 일을 하고 살았나를 계속 돌아보게 되었다.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듯 계속 반추를 하니, 과거에 이미 끝난 일들과 과거에서 끝나지 못하고 현재로 이어진 것들이 구분되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국내외 행사들과 내 사유를 담았다고 여겼던 원고들이 허망하게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그때 청탁에 맞춘 글들이어서 나에게 큰 의미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익 관계에 묶인 수많은 행사와 인간관계도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조건적이어서 과거에 종결된 경우가 많았다. 직선의 시간에서는 예의와 친절로 무장하면 탈이 날 것이 별로 없었다. 갈등이 생길 조짐이면 중도를 선택했고, 갈등이 터졌을 때는 침묵을 선택하면 최소한 비겼다. 하지만 과거로 끝나지 못한 사건이나 감정들은 현재의 시간으로 이어져 흘러왔다. 그중에 가장 치욕스러운 『인공낙원의 문』의 표지 문구 사건은 되돌이표의 지시처럼 현재의 시간 위로 자꾸 겹쳐졌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직선의 시간을 살 수 없게 되었다. 후회와 자책을 되풀이하는 곡선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겹쳐진 시간은 수치심의 넝쿨을 만들며 온몸을 휘감는다. 어떤 친절과 예의나 웃음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소용돌이 시간이다. 침묵도 해결책을 주지는 않았다. 지고 나서도 회복력이 빠른 것이 나의 성품인데, 지금처럼 감정이 바닥이 아니라 지하층으로 끝없이 끌려 내려가는 경우는 처음이다. 김아리랑 팀장을 대신해서 온 노랑머리 직원은 내가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 탓으로 사과했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선의의 결정을 선취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당신의 어설픈 설명이나 전달로 대담이 끝난 줄 알았다고, 그래서 아주 유유히 그곳을 나갔다고 수긍했다면, 그녀는 직업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어린 여직원 하나가 감히 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고 결단했단 말인가. 촬영기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대담 영상을 마무리해서 서울국제도서전에 올려놓고, 아주 멋진 엔딩 장면이 완성되었으니 염려하지 마시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확인해 보니, 내가 도망간 빈자리를 시작으로 프랑스 작가의 책 『인공낙원의 문』을 클로즈업하여 표지 문구가 화면을 가득 채운 상태로 영상은 끝나 있었다. 나에게 엿 먹이는 엔딩이었다. 대담자였던 프랑스 작가에게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그에게는 수치심이자 존경심을 느꼈고, 굴욕이자 선망을 느꼈으며,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자 일생에 만난 가장 충격적인 사람이었으며, 더 빨리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를 알기 전, 나는 화려한 빛 속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와의 대담으로 인해 내가 믿었던 빛이 도리어 어둠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표지 문구 한 문장으로 한 인생을 가짜 빛에서 진짜 어둠으로 던져 넣은 것이다. 대담 중에 파악한 그의 성품으로는 거짓을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이메일에서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고 적은 것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 전언이 일말의 안도와 위로가 되었지만, 그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던 시간을 떠올리면 쥐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다. 반복되는 수치심과 죄의식은 한 단편소설의 스토리를 떠올리게 했다. 한 할아버지와 한 할머니가 등산로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 자신의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야기하게 된다. 할머니는 한 번만이라도 해외여행을 해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같이 여행을 떠나보자고 제안하고, 여행 가는 날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할머니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권을 만들고, 필요한 옷가지들을 돈을 아끼지 않고 준비하며 가장 바쁘고 설레는 한 달 반을 보냈다. 그리고 약속 날에 공항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단 한 번 만난 사람이라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싶어 할머니는 힘든 다리를 끌며 공항 전체를 헤매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 단편소설 스토리를 한 작가에게서 들었을 때는 할아버지의 신의 없음에 분노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가 느꼈을 꿈의 패배가 너무나 쓸쓸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약속 한마디를 지키지 못해 남의 꿈을 얼마나 잔인하게 찢어버렸을까. 초대 링크의 오픈 시간은 2분 23초가 남았다. 그 무정하고 잔인한 할아버지가 나와 다르다고 말할 수가 없다. 지금 나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달아나려고만 하지 않는가. 어, 그렇다. 내가 다시 달아나면, 나는 개인적인 약속이 아니라 국가적인 약속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아……아버지! 이 약속을 어기면 나의 이력은 그렇다 치고, 평생 외교관 생활을 해오신 아버지의 삶과 업적에 스크래치를 낼 것이다. 불안한 예감이 찾아들었다. 아버지가 크리스천으로 나에게 참빛을 전하기 위해 평생을 애썼지만, 나는 호탕하게 산 편이었다. 외교관의 아들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인간관계나 일이 매우 수월했고 탄탄대로였다. 아버지는 하나님이 자신을 외교관의 자리에 세워주신 것에 언제나 감사하며 세상과 사람을 섬겼지만, 나는 아버지가 외교관인 것에 언제나 감사하며 사람을 부렸다. 크리스천 아버지는 빛과 어둠의 차이를 정확하게 아시는 것 같았지만, 나는 비로소 내 삶이 어둠이라는 사실을 막 깨달았다. 참빛을 알지 못하니 내 자체가 어둠이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사로 잡인 죄인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왜 갑자기 불안한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에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찾아가서 뵙지도 못했다. 아버지께 전화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초대 링크의 오픈 시간은 채 1분도 남지 않았다. 49초를 남겨놓고 있다. 그때,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전화벨이 울렸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2024.11.11 09:00:00
    종의 기원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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