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복
국경복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연재 중
Dream 톡talk
5개의 칼럼 #문화
  • Dream 톡talk
    태몽이란 임신 혹은 출산을 예고하는 예지적인 꿈 중 하나이다. ‘나의 태몽은 큰 밤 한톨입니다.’ 태몽의 주인공인 김성희(가명)씨가 말했다. “아버지 누나인 고모가 꾼 태몽이에요. 꿈에 고모의 남동생인 저의 아빠가 몸을 굽혀서 똘망똘망한 큰 밤을 주웠대요. 그런데, 옆에 있던 아빠의 형님인 큰아빠가 시샘하면서 ‘나도 주워야지’ 하고 찾았답니다. 결국, 큰아빠도 밤 한 톨을 주었대요.” “엄마는 처음에 저의 임신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병원에 가서 확인하고 알게 되었대요. 이 꿈을 꾼 후, 1998년 5월에 제가 태어났고, 제 사촌은 한 달 후인 6월에 태어났어요.” 이 태몽은 김성희씨의 어머니가 임신한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녀의 새언니가 꾸었다. 새언니(김성희씨의 고모)의 꿈은 임산부의 임신 사실보다 시간상으로 앞서고 꿈 꾼이와 임신한 사람이 공간적으로도 서로 다르다. 임신이라는 물리적 사실과 태몽이라는 정신현상 사이에 인과관계는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의미상으로는 일치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같은 예지적인 꿈의 현상을 이론적으로 규명하려고 노력한 학자들이 있었다. ‘정신 세계와 물질 세계를 깊이 탐구했던 두 학자의 만남’ 이들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융(Jung)과 양자물리학자인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Wolfgang. E. Pauli, 1900~1958)이다. 전혀 서로 다른 분야를 탐구했던 이 두 천재의 만남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다. 1930년, 당시에 30세였던 파울리는 융을 찾아온다. 융의 나이는 55세였다. 융이 파울리 보다 25살이나 더 많았다. 당시에 파울리는 심리적인 고통때문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겉으로는 뛰어한 실력을 갖춘 양자물리학자였지만 속마음으로는 나약하고 취약한 한 인간에 불과했다. 파울리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유명한 화학 교수였는데, 성실한 가장과는 거리가 먼 바람기 많은 위인이었다. 파울리의 어머니는 이를 비관하고 결국 음독 자살한다. 파울리는 젊은 시절 물리학을 연구하면서도, 매음굴에도 자주 출입하면서 방탕하게 지냈다. 그러다 어느 카바레의 무희와 결혼했는데, 1년이 채 못 되어 파국을 맞이한다.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두 명의 여인, 즉 어머니의 죽음과 아내와의 이혼으로 그의 정신은 파국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주색에 빠진 파울리는 여러 차례 뜻하지 않은 망신을 당하게 되자 두려움이 엄습했고, 급기야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원수처럼 여기던 아버지의 권고를 받아들여 심리 치료를 받게 된다. 처음 만난 융은 파울리의 꿈에서 여성 문제가 있음을 파악하고, 당시 자신의 문하로 있던 여의사인 로젠바움에게 보낸다. 그리고 융은 파울리와 지적인 대화를 시작한다. 인간 내면의 정신 세계를 탐구하는 융과 물질의 본질을 연구하는 파울리가 만나게 된 것이다. 어느날 융이 파울리에 대해서 묘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궤도에서 이탈한 32세의 매우 지적인 남자’ 그는 ‘명석한 두뇌를 놓고 따진다면, 아마도 파울리를 능가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천재였다. 사실, 융을 찾아오기 6년 전인 1924년, 파울리는 양자역학의 기념비적 성과 중의 하나인 배타원리(exclusion principle)를 발표한다. 1945년, 파울리는 아인슈타인의 추천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는다. 둘은 꿈 분석을 중심으로 한 심리치료를 이어갔다. 파울리는 치유와 더불어 자기성찰의 길을 걷게 되었고, 194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융과는 치료사와 내담자와의 관계를 넘어선 교류를 하게 된다. 이후 융과 파울리는 거의 26년 동안 치료자와 내담자, 사제 관계, 동료 교사의 관계를 갖는다. ‘태몽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동시성이론’ 195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융과 파울리는 공동으로 ‘자연의 해석과 정신(The Interpretation of Nature and The Psyche)’을 발간한다. 융과 파울리의 공동 작업은 그 자체로서 기록될 만한 독특한 사건이다. 동시성 현상(synchronicity phenomena)을 통해물리학적 발견과 심리학적 발견이 어떻게든 서로 포옹해야 하는 공동의 지점을 탐구한 것이다. 태몽도 동시성 현상이 발현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융이 동시성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본인 스스로가 예지적인 꿈을 여러 번 꾸게 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융은 인생의 중요 단계에서 이러한 ‘큰 꿈’, 혹은 ‘의미있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그의 제자인 마리 루이즈 폰 프란츠 (Marie Louise von Franz, 1915~1998) 박사는 “이 같은 꿈의 모티브는 임신·출산, 학교의 시작, 사춘기, 결혼, 인생의 위기, 죽음의 준비 등 매우 중요한 과도기적 단계에서 자주나타난다”고 한다. 1958년, 58세인 파울리는 췌장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 말을 남긴다. "지금, 나는 아직도 오직 한 사람 융과 이야기하고 싶구나."
    2025.01.25 07:00:00
    태몽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이 있나요?  
  • Dream 톡talk
    1900년, 25살의 젊은 정신과 의사인 융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그의 추종자가 된다. 1907년, 융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프로이트를 방문하고 그가 명석하고 비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한때 융은 자신의 교수직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으면서도 프로이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특히, 융은 프로이트가 주장한 ‘억압이론’에 흥미를 가졌다. 심리적 억압(repression)이란 받아들이기 힘든 원초적 욕망이나 불쾌한 경험이 의식으로 떠오르지 못하도록 내면의 무의식 속에 눌러두는 것을 말한다. 억압이 심하면 불안의 원인이 되거나 심한 경우에 히스테리적 신경증이 될 수도 있다. 프로이트는 억압의 원인을 어린시절 받은 성적 학대나 성적인 외상(Trauma)으로 보았다. 하지만 융은 신경증 환자를 다루면서 성욕문제는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며 억압의 중요한 요인으로 사회적응, 비극적인 삶의 정황으로 인한 억압, 체면차리기 등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자신의 확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친애하는 융, 성이론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십시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입니다. 보시오. 우리는 성이론을 가지고 하나의 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융은 이점에 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1909년,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가 파국을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둘은 미국 클라크 대학의 초청으로 미국에 여행 중에 꿈의 해석에 대하여 토론하면서 융은 ‘프로이트는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자세를 풀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된다. 결국 융은 프로이트가 주장한 오이디프스 콤플렉스나 성적 발달단계의 본질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프로이트와 결별을 결심한다. 칼 융은 말한다. “현대 물리학자가 모든 힘을 이를테면 열에서만 끌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자 역시 모든 본능을 권력이나 성의 개념 따위로 분류할 수 없다.” 프로이트와 결별을 암시하는 꿈 얼마 후 융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국경의 산악지대의 풍경이 배경으로 나오는 꿈을 꾼다. “저녁 무렵, 나는 오스트리아제국의 세관관리 복장을 하고 있는 연상의 남자를 보았다. 그는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나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쳐버렸다. 그의 표정은 고집스럽고 다소 우울하고 짜증을 내는 듯 했다. 그 장소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저 노인은 실제로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전에 편히 저승길에 들어가지 못한 망령 가운데 하나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그 꿈의 첫 부분이었다. 융은 이 꿈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세관’과 관련하여 나는 금방 ‘검열’이라는 낱말을 떠올렸다. ‘경계’와 관련해서는, 한편으로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이트와 나의 경계를 생각했다. 국경에서의 아주 엄격한 세관검사는 분석을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국경지대에서는 여행가방들이 열려져 밀수품이 없나 검사를 받게 된다. 이런 검사과정에서 무의식의 가정(假定)들이 드러나게 된다. 늙은 세관관리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직업이 그에게 즐겁거나 만족할 만한 것을 거의 가져다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세상을 비뚤어지게 보았다. 나는 그가 프로이트의 유사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융은 이 꿈이 사실상 프로이트와 결별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와 결별했음에도 불구하고 융은 프로이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융은 말한다.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 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무의식적 정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2024.12.31 15:40:55
    융의 프로이트와 결별을 암시하는 꿈
  • Dream 톡talk
    꿈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에서 프로이트 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 있다. 그는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다. 그도 프로이트와 같이 꿈을 해석하고 꿈 꾼이에게 그 내용을 통찰시킴으로써 정신치료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융은 이 같은 꿈의 심리적 기능뿐만아니라 예지적 기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융이 직접 예를 들은 다음 두 개의 예지적인 꿈 사례를 살펴보자. ‘처가쪽의 한 사람이 죽었다. 그 시각 나는 아내의 침대가 벽으로 둘러 쳐진 깊은 구덩이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어딘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무덤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 혼을 내뿜는 것과 같은 깊은 한숨 소리를 들었다. 내 아내와 닮은 부인의 형상이 구덩이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위로 떠올랐다. 그녀는 흰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에 이상하게도 까만 표지가 찍혀있었다. 내가 깨어나 아내를 깨우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였다. 그 꿈이 하도 기이하여 한 사람의 죽음을 예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침 7시에 아내의 조카가 3시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융이 예를 든 또 다른 꿈이다. ‘한번은 내가 가든파티에 참석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누이동생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몇 해 전에 죽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죽은 친구도 거기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는 친지들이었다. 누이동생은 내가 잘 아는 여인과 함께 있었다. 나는 꿈 속에서 벌써 그 여인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추정하면서 그녀는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몇 주 후 나는 가까이 지내던 여인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 여인을 꿈에서 보았으나 기억이 나지 않던 바로 그 여자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융은 이 꿈을 꾸고 나서 그가 알고 있던 여인이 조만간 죽을 거라고 짐작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죽은 이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추측대로 그 여인은 몇 주 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융은 이와 유사한 체험들을 통해서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나는 무의식의 암시를 기초로 얻을 수 있었던 견해가 나에게 빛을 밝혀주고 예감의 영역을 내다보는 눈을 열어주는 것을 경험했다.’ 정신현상인 꿈과 외부의 현실적 사건이 의미상으로 일치하는 이같은 현상을 융은 동시성 현상(synchronicity phenomena)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즉, 동시성 현상이란 ‘인과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분명히 의미상으로 연결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동시성 현상은 한 천재 물리학자와의 우연한 만남에 의해서 보다 구체화되었다. 그의 이름은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Wolfgang. E. Pauli, 1900~1958)이다. 1930년, 융과 파울리는 정신과 의사와 환자로 처음 만났다. 이후에 둘은 심리학자와 물리학자로 지적인 대화를 나눈다. 195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융과 파울리는 공동으로 ‘자연의 해석과 정신 (The Interpretation of Nature and The Psyche’을 발간하는데, 이 책에서 동시성 현상을 밝힌다. 파울리가 아인슈타인의 추천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1945년에서 7년이 지난 해의 일이다.
    2024.11.30 06:05:00
    칼 융 ‘꿈은 무의식이 전달해 주는 메시지’
  • Dream 톡talk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a loyal road)이다.” 이는 프로이트(Freud)가 꿈을 분석하면서 한 말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잠자는 동안 꾸는 꿈은 무의식적 정신활동의 결과물이다. 1895년 여름, 프로이트는 일머(Irma)라는 젊은 여성의 정신 분석을 맡았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가족과도 매우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녀에 대한 치료는 부분적으로만 성공적이어서 그녀의 신경증적 불안은 없어졌으나, 신체에 나타나는 증상이 모두 제거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밤(아마도 새벽녘이었던 것 같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큰 홀에서 우리는 많은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일머가 보이기에 나는 그녀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그녀의 편지에 대한 답을 준 다음, 내가 제시한 ‘해결 방법’을 아직도 수용하지 않는 것을 비난했다.” 프로이트가 말했다. “(신체적 증상이) 아직 완쾌되지 않는 건 사실 당신 탓이오” “지금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기나 해요? 목과 위와 배가 졸리는 것 같아요”라고 일머가 대답했다. 나는 놀라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창백하고 부어 있는 것 같다. ‘그럼 역시 무슨 내장 기관의 장애가 있었던 걸까?’하고 생각한다. 그녀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목 안을 진찰한다. 그녀는 싫은 기색을 보인다. 마치 의치를 한 여자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싫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크게 벌리라고 했다. (참고로 현실에서 프로이트는 일머의 구강을 진찰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꿈속의 이 과정으로 얼마 전에 진찰했던 여자 가정교사가 연상되었다. 이 여자는 첫 인상이 매우 아리따운 미인으로 생각되는데, 내가 입을 벌리게 하자 곧 치열을 감추려고 했다. 싫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 일머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것 말고 또 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꿈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이 치료하고 있는 환자가 완치되지 못함에 대한 걱정, 자책감과 치료의 실패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고 있다. 또 꿈에서 프로이트는 환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걱정 그리고 환자의 상태를 알고 싶어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꿈에서 여태껏 한 번도 진찰한 적이 없는 일머의 입안을 진찰하면 질병의 단서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다. 필자는 환자를 완전히 치료시키지 못한 프로이트의 자책감과 자기 책망의 심리적 기제가 이 꿈을 만들어 냈다고 본다. 또 현실에서는 서로 관련이 없는 두 명의 여성 환자를 구강 진찰을 매개로 자유로운 연상이 이루어진다. 그가 밝힌 ‘또 다른 뜻’에 관해 프로이트는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일머에 대한 성적 호기심이나 욕구가 은유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융(Jung)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 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 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무의식적 정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2024.10.02 07:00:00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
  • Dream 톡talk
    ‘꿈은 신의 계시(message)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꿈을 신이 전달하는 계시로 보았다. 이 같은 사고는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꿈의 해몽을 점치는 행위와 동일하게 보았다. 이로부터 수천년이 지난 1900년, 꿈 해석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관점이 제시된다. 지그문드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쓴 정신분석의 기념비적인 저작 ‘꿈의 해석’은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문구로 시작된다. “나는 이 책에서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심리학적 기법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꿈은 억압된 소망의 충족이다.’ 이같이 말한 프로이트에게 억압된 소망이란 주로 성적 욕망을 의미한다. 처음에 그는 호된 비판을 받는다. 19세기 유럽은 엄격한 도덕적 윤리가 중시되고 성(sex)에 관한 언급이 금기시 되던 시기였다. 더욱이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발설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프로이트가 사례로 든 한 부인의 꿈을 살펴보자. 어느 교양있는 부인이 꿈 속에서 제1육군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보초에게 말했다 “병원장님을 뵈려고 왔습니다. 내 자신이 병원에서 무언가 봉사를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녀는 이때 ‘봉사’라는 말을 세게 발음했으므로, 그 말을 들은 보초 하사관은 ‘사랑의 봉사’를 말하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선임 군의관을 만난 부인은 자기의 용건을 말했고 그는 그녀의 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그녀는 말했다. “저 뿐이 아닙니다. 비엔나에 살고 있는 주부들이나 처녀들은 언제라도 기꺼이 장교건 사병이건 누구든 상관없이······” 그러자 꿈속에서 소란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녀가 한 말은 사람들이 옳게 이해해 준 증거로 장교들은 이 말을 듣는 순간 당황한 듯 좀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계속한다. “우리의 결심을 이상하게 여기시겠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숨막히는 침묵이 계속되었다. 선임 군의관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말한다. “부인, 사실 이렇게 말하는 김에······” (소음) ‘남자는 똑 같구나’라고 그녀는 생각하면서 남자의 팔을 풀었다. 그리고 입을 연다. “어머나, 저는 늙은 여자입니다. 저에게 그런 일은 적당치 않습니다. 한 가지 조건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나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나이 먹은 여자와 젊은 청년이······(소음) 아아, 망측한 일입니다.” 그녀는 병원장을 만나러 가는 철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서 한 장교의 말소리를 듣는다. “참으로 놀라운 결심이군. 젊었든 늙었든 그런 거야 상관있나. 대견한 여자야.” 그녀는 자기의 의무를 재빨리 완수하려는 감정으로 가득차서 수 많은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이 꿈에 대한 프로이트의 해석이다. ‘결국 꿈을 꾼 여자는 장교·하사관·병사의 정욕을 채워주기 위해서 마치 애국심을 발휘하듯, 자기 몸을 바쳐도 좋다는 공상이 뚜렷해진다. 이 꿈은 확실히 망측스럽고 대담한 성적 공상의 전형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심리적인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리고 그 행동은 의식적 요소보다는 무의식(unconscious)에 의해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2024.09.10 17:08:45
    "꿈은 신의 계시이다"
1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