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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어머니의 숨비소리 2
문화·스포츠 문화 2022.01.26 07:00:00- 김영란 그믓 그스멍 느거 나거 바당은 곱가르지 안 ㅎㆍㄴ다 땅 문세 집 문세 문세옌 ㅎㆍㄴ걸 베려나 봐시냐 바당은 그믓 긋지 안ㅎㆍ영…… 게난 살아졌주시깨나 읽어봤지만 첫 줄부터 막힌다. 두 번째 줄로 건너뛰어도 난감하다. 시루떡에 박힌 콩처럼 한두 개 아는 단어를 이어봐도 매끄럽게 뜻이 통하지 않는다. 제주 여행 중 한 찻집에 들렀을 때 만난 시다. 감물 천에 정성껏 쓴 손 글씨 앞에 난색을 표하니 토박이 주인 -
[시로 여는 수요일]이른 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1.19 07:00:00- 이규리 그분하고 같은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그렇게 아찔할 수가 없었다 냄비 안에서 숟갈이 부딪혔을 때 그렇게 아득할 수가 없었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딩딩 종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것이 끝이라 해도 끝 아니라 해도 다시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하얗고 먼 길 하나 휘어져 있었다 같은 아픔을 보게 되리라 손가락이 다 해지리라 어떻게 되든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한 순간이 -
[시로 여는 수요일] 눈덩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1.12 07:00:00- 조말선 시작은 나였어 나를 묻히고 나는 굴러간다 나는 아니야, 라고 외치는 나를 묻히며 굴러간다 너도 그랬잖아, 라고 외치는 나만 묻히며 굴러간다 옷 갈아입을 시간을 줘, 라고 외치는 나를 묻히며 굴러간다 나는 나에게 묻힌다 내 무덤을 내가 만든다 나도 같이 가, 라고 외치는 너에게 힘껏 눈덩이를 던진다 나는 제대로 박살난다 나에 대해서 가속도만 붙는다 나는 밤새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나는 이튿날 눈 녹듯 사라진 -
[시로 여는 수요일]새해 인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1.05 07:00:00- 나태주 글쎄, 해님과 달님을 삼백예순다섯 개나 공짜로 받았지 뭡니까 그 위에 수없이 많은 별빛과 새소리와 구름과 그리고 꽃과 물고기와 바람과 풀벌레 소리들을 덤으로 받았지 뭡니까 이제, 또 다시 삼백예순다섯 개의 새로운 해님과 달님을 공짜로 받을 차례입니다 그 위에 얼마나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덤으로 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잘 살면 되는 일입니다 그 위에 더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글쎄, 지난해엔 삼백 -
[시로 여는 수요일]알고 보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2.28 17:46:11사랑하는 사람이 침묵할 때 그 때의 침묵은 소음이다 그 침묵이 무관심이라 느껴지면 더 괴로운 소음이 된다 집을 통째 흔드는 굴삭기가 내 몸에도 있다 침묵이자 소음인 당신, 소음 속에 오래 있으면 소음도 침묵이란 걸 알게 된다 소음은 투덜대며 지나가고 침묵은 불안하게 스며든다 사랑에게 침묵하지 마라 귀찮은 사랑에게는 더욱 침묵하지 마라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건너편에서 보면 모든 나무들이 풍경인 걸 나무의 -
[시로 여는 수요일]새와 의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2.22 07:00:00- 송찬호 그 의자가 만들어지기 전 나무였을 때 가지에 날아와 앉던 어떤 새를 의자는 기억하고 있다. 새벽을 깨우며 지저귀던 깃털에 찬 이슬이 묻어 있던 꽁지 짧은 어떤 새를 잊지 않고 있다 의자라는 직업을 갖기 전 의자라는 형벌의 정물로 만들어지기 전새는 나무가 서 있던 자리를 몇날 며칠이나 찾아왔을 것이다. 우듬지가 있던 빈 허공을 맴돌며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새들을 어깨에 앉히던 -
[시로 여는 수요일]반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2.01 07:00:00김주대 양손에 큰 짐을 든 노인이 동요를 부르며 걷다가 간간이 뒤돌아본다 계집아이가 깡마른 사내아이를 업고 노인의 노래를 따라 걷는다 계집아이의 걸음이 느려지면 노래가 커지고 따라붙으면 작아진다 등에 업힌 사내아이를 돌아보며 계집아이도 노래를 따라 부른다 자다 깬 사내아이가 계집아이의 목을 끌어안고 노래를 옹알거린다 노래를 따라 노래가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간 후 반달이 천천히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반달 -
[시로 여는 수요일]어처구니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1.24 07:00:00- 마경덕 나무와 돌이 한 몸이 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 근본이 다르고 핏줄도 다른데 눈 맞추고 살을 섞는다는 것 아무래도 어처구니없는 일 한곳에 붙어살며 귀가 트였는지, 벽창호 같은 맷돌 어처구니 따라 동그라미 그리며 순하게 돌아간다 한 줌 저 나무 고집 센 맷돌을 한 손으로 부리다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근본이 다르고 핏줄이 달라서 한 몸이 되었을 것이다. 맷돌 손잡이까지 돌이었다면 시종 덜그럭거렸을 것이다. -
[시로 여는 수요일] 초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1.17 07:05:00김은자 하릴없이 숫눈발 속에 다시 서노니 초경의 비린내 풋풋한 순수함이여. 너의 심부에 언제나 깊고 어둔 발자취를 남겼으되, 이 눈길 위에 다시 새로운 나의 발자국. 오오 편편으로 흩어지는 하늘의 전신이 흰 북소리 둥둥 울릴 때 과거가 어찌 남김없이 용서받고 기억들이 어찌 어김없이 위무 받느뇨. 모든 만남은 언제나 영원한 첫번째 만남이듯 흰 눈썹 부비며 낯선 미명의 거리를 가노라. 미진한 기억 속에 흰 북소리 낮게 -
[시로 여는 수요일]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1.10 07:00:00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
[시로 여는 수요일]치마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1.03 07:00:00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 -
[시로 여는 수요일] 모든 대추나무는 벼락을 맞고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0.27 07:00:00-성선경 내 도장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것 이것을 나는 무슨 벽사의 부적처럼 여기고 주머니 안에 넣어 다니며 몰래 남몰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만지작거리고 무슨 못 들을 말을 듣거나 못 볼 일을 보게 되면 만지작거리고 벽사의 주문처럼 웅얼거리고 이 대추나무 뼈다귀를 움켜쥐게 된다 알고 보면 모든 대추나무는 벼락을 맞고 이 벼락 맞은 대추나무 뼈다귀들이 축제의 난전에서 도장으로 환생하지만 그래도 참 이딴 것 -
[시로 여는 수요일]파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0.20 07:00:00-이정록 파리채 위에서 놀자. 파리채를 들어 올리면 그때 사뿐 날아가자. 놈의 주먹 위에서 놀자. 놈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말자. 손은 열심히 비비는 척하자. 손에 피가 돌면 머리가 좋아지니까. 주먹을 들어 올리면 순간 높이 날아오르자. 주먹만 믿는 놈에게는 날개가 없다는 걸 보여주자. 내가 높이 날아오를수록 놈은 코딱지처럼 작게 보인다. 도망치면 내가 작아지지만 날아오르면 놈이 바닥이 된다. 닭이 열이면 그중 하나 -
[시로 여는 수요일]돌지 않는 풍차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0.13 07:00:00- 송찬호 그는 일생을 노래의 풍차를 돌리는 바람의 건달로 살았네 그는 때때로 이렇게 말했네 풍차가 돌면 노래가 되고 풍차가 멈추면 괴물이 되는 거라고 그는 젊어서도 사랑과 혁명의 노래로 풍차를 돌리지는 못했네 풍차의 엉덩이나 허리를 만지고 가는 바람의 건달로나 살면서 바람 부는 언덕에서 덜컹거리는 노래의 풍차는 쉼 없이 돌았네 그는 지치고 망가져가는 풍차에게 이렇게도 말했네 멈추지 말게 여기서 멈추면 삶은 -
[시로 여는 수요일]고난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10.05 10:22:53폭설이 내린 산을 오른다 척박한 비탈에서 온몸을 뒤틀어가며 치열한 균형으로 뿌리박은 나무들이 저마다 한두 가지씩은 부러져 있는데 귀격으로 곧게 뻗어 오른 소나무 한 그루 상처 난 가지 하나 없는 명문가 출신에 훤칠한 엘리트를 닮은 듯한 나무 한 그루 하지만 나는 금세 싫증이 났다 너는 어찌 된 행운인가 너에겐 폭풍과 천둥 벼락의 시대도 없었느냐 너에겐 폭설도 눈보라의 부르짖음도 없었느냐 나는 눈길을 걸으며 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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