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100년전 쯤에 사상가이자 문예비평가인 게오르크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나오는 아름답고도 서정적인 서문입니다. 루카치는 개인과 세계 간의 모순이 없었던 그리스·로마 시대와 달리 근대사회 이후 총체성을 상실한 개인이 이정표를 찾아가는 여행의 기록이 바로 소설이라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방황하던 젊은이들은 이 글을 또 다른 의미로 해석했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이들은 좌표를 잃은 청춘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얻었고 나름대로의 별을 찾으려 했습니다. 아마 지금의 대선주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이들에게 인생의 항로를 알려주는 ‘별’이란 거창한 이념도, 역사속 위인도, 잘나가는 선배도 아니었습니다. 이들 대선 주자들은 자신의 인생이 녹아 있는, 남들에게는 사소한 물건에서 넘어졌을 때 다시 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 잘 쓰지는 않지만 이미 나의 일부를 지배해 절대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을 ‘감정’ 물건이라고 합니다. 권모술수와 감언이설이 판치는 정치판에서 대선주자들의 곁에 머물면서 희로애락을 같이 하고 때로는 용기를 주고, 때로는 인생의 방향타가 됐던 감정 물건은 무엇일까요.
안철수 후보가 직접 공개한 종이학과 문구들. 병 벽면에는 손으로 직접 후보를 그린 그림도 붙어있다. /영상=서울경제DB
‘1,000마리 종이학에서 찾는 초심(안철수 편)’ /영상화면캡쳐
1,000마리 종이학, 정계 진출의 씨앗이 되다
국민의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후보의 감정 물건은 ‘종이학’이다. 학생들이 꼬깃꼬깃 모아 만든 1,000마리의 종이학은 그가 잘 나가는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접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종이학은 2012년 안 후보가 청춘콘서트를 한창 진행하던 시절 ‘정치 진출’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에 받게 된다.
안 후보가 강연을 마치고 내려가는 도중 한 학생이 종이학이 가득 찬 병을 직접 건네줬고, 안 후보는 학생의 정성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병에는 ‘1,000마리 학들의 소원과 7,777개 밝게 빛나는 별빛처럼 모든 사람의 희망이 되어주세요’란 글귀와 함께 안 후보를 직접 그린 그림도 있었다. 학생은 이 종이학을 건네며 “청년들의 희망과 기대를 담아 전달 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정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안 후보의 마음에 깊이 자리한 이 종이학은 지금 안 후보 의원실에 보관 중이다. 왜 정치를 하게 됐는지, 어떤 정치를 해야 할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항상 가까이 두고 있다고 전해진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종이학’. 안 후보는 1,000마리의 종이학을 바라보며 늘 초심을 되새긴다고 전했다. /사진=안철수 캠프
“청년들의 꿈을 이뤄주는 한국을 만들고 싶다”
안 후보는 1962년 2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지만 뜻밖에도 중·고교 시절에 최우수 성적표를 받아오지는 않았다. 정작 1등을 처음 했던 건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한다. 책 읽기를 좋아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문돌이’ 성향과 라디오를 직접 조립하는 ‘공돌이’ 취미를 함께 가진 아이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진지하게 세상을 고찰하는 시간도 많았다. 이는 훗날 그의 정치적 뚝심을 가지고 오게 된 초석이 된다.
안 후보는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을 밟던 도중 ‘V1’이라는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컴퓨터 기계어를 혼자 독학해 터득할 정도로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그의 기질은 훗날 ’안철수 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진다. 회사 초기 사업이 어려워 맘고생을 하다가 얻은 급성간염 때문에 3개월간 입원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사업 시작 5년 만인 지난 2000년 직원들에게 “사랑합니다”란 말과 함께 주식을 나눠줄 정도로 사업을 성공시킨다.
‘윤리경영인’, ‘젊은 청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1위’로 꼽히며 승승장구하던 안 후보는 2009년 청춘 콘서트를 시작하며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청춘들에게 귀감이 되던 시기, 주변에서 “삶을 바꿔달라, 정치를 바꿔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이에 안 후보는 2012년, 본격적인 대권 도전 의지를 표명하며 정계에 입문한다.
정치 인생 5살…그의 꿈은 아직 ‘청년’
안 후보는 ‘종이학’ 선물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만큼 청년들의 꿈과 희망에 관심이 많다. 청춘콘서트를 통해 청년들과, 대중과 소통하며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상담을 해주면서 ‘정치의 힘’과 올바른 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원칙주의자’라는 별명은 그가 자신이 세운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동안 청년들의 꿈이 좌절되고,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원칙을 지켜나가는 일만이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동안 청년들이 야당을 지지해왔지만 정작 야당에는 청년을 위한 정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에 소속돼 있을 때도 “청년의 3분의 2가 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청년 정책 반영은 없다. 당 대표 공약만 해도 청년당원 관련 내용은 배제돼 있고, 어느 누구도 청년 정책으로 공약 경쟁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번 대선 후보 공약에도 안 후보 정책의 핵심은 ‘청년’을 향해있다. 그는 지난주 청년창업센터를 방문해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전문인력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며 “청년 및 중장년을 교육시켜 10만명 전문가를 육성하겠다”고 공약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정부출연 연구소 및 참여대학에서 교육을 하고, 연 2만명 씩 5년간 총 10만명을 교육시킨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예산은 5년간 총 6,000억원 정도로 추산하며, 이는 실업대비 예산을 재분배하면 증세 없이 실현이 가능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정치 입문 5년차인 안 후보는 지난 18일 대권후보 합동토론회에서 “청년이 원하는 일들에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고,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 스스로가 어린 시절 자유롭게 꿈을 꾸고, 시도하며 행복했던 것처럼 ‘청년이 꿈꿀 수 있는 나라는 부강하다’는 목표를 하나씩 실천해 가고 있다. ‘1,000마리 종이학’에서 시작된 안 후보의 새로운 도전. 청년과 함께 하겠다는 ‘원칙주의자’ 안철수가 써 나갈 앞으로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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