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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3세…10가지 이야기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21 05:00:00영국 왕 에드워드 3세. 영국사를 통틀어 헨리 8세와 함께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군주다. 물론 유명세에서는 헨리 8세(1491~1547)가 앞선다. 수장령(1534)으로 잉글랜드 가톨릭교회를 성공회로 바꿨으며 떠들썩한 궁정 연애 비화도 남겼다. 무려 여섯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하며 왕비 두 명의 목을 잘랐던 헨리 8세는 심심치 않게 소설과 영화의 소재로도 쓰인다. 그러나 역대 영국 국왕 가운데 에드워드 3세만큼 다양한 족 -
로스차일드 대박 투자의 진실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20 04:00:001815년 6월 20일, 런던 증권거래소. 투자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개장과 더불어 투자자들은 ‘로스차일드의 기둥’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정보가 빠르다고 정평 난 네이선 로스차일드(Nathan Rothschild· 당시 37세)는 주식이나 채권을 사고팔 때 늘 기둥에 기대어 결정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주목했던 정보는 이틀 전인 6월 18일, 네덜란드(요즘은 벨기에 영토) 워털루에서 벌어진 전투의 결과. -
최초의 특허 & 실속 없는 특허 강국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19 07:16:301421년 6월 19일 피렌체 의회가 독점 권리가 명시된 특허장을 발급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문서화한 특허장을 받은 인물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꼽히는 천재 건축가였다. 피렌체가 브루넬레스키에게 내준 특허의 특징은 독점권, 특허 보호기간 3년 동안 아이디어만 갖다 써도 처벌한다고 밝혔다. 브루넬레스키의 특허는 대표작인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형 지붕을 건축 -
축복 or 재앙? … 생명특허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16 08:57:441980년 6월 16일 미국 연방 대법원이 생명공학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생명에 대한 특허를 사상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연방 대법원은 9년을 끌어온 특허 분쟁을 마무리하면서 칭송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화학과 제약, 종묘(씨앗) 회사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바이오산업(BT) 산업의 성장을 가져올 ‘생명 공학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대헌장: 1215년 제정된 영국 성문법의 모태)’라는 극 -
권력과 돈, 야합과 증오…美 수정헌법 12조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15 07:59:27권력과 돈, 야합과 증오…美 수정헌법 12조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미국은 헌법을 몇 번 개정했을까. 한 번도 개정하지 않았다. 독립선언 11년 뒤인 1787년 제정된 헌법의 골격을 230년간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제헌국회의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9차례 헌법을 고쳤다. 그렇다면 미국 헌법은 무오류이며 완벽한가. 그렇지 않다. 27차례 수정 절차를 밟았다. 필요에 의해 고칠 게 있으면 헌법의 해당 조항을 고치 -
미국의 이완용, 베네딕트 아널드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14 08:23:17‘대륙군에서 가장 빛났던 병사에게…나라를 위해서는 미국 독립전쟁 중의 결정적인 전투를, 그 자신을 위해서는 소장의 자리를 쟁취했다.’ 미국 뉴욕주 새러토가 국립역사공원의 장화 기념비에 적힌 내용이다. 장화 기념비는 1777년 가을 대륙군(미국 독립군)이 영국군에게 대승을 거둔 새러토가 전투의 영웅 4명 중 한 명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 호레이쇼 게이츠, 벤저민 링컨, 대니얼 모건 등 나머지 3명의 승장(勝將)들은 동 -
루스벨트가 보호한 환경, 트럼프가 깨나?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08 07:33:571906년 6월 8일,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당시 48세) 미국 대통령이 고대 유물법(The Antiquities Act)에 서명했다. 4개 조문으로 이뤄진 고대 유물법 제정의 목적은 사적(史蹟·historical landmark) 보호에 있었다. 다만 여느 나라와 사정이 달랐다. 건국 130년 밖에 안된 나라가 변변한 유적이 있을 리 만무. 연방정부가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토지 중에 경관이 뛰어나거나 선사시대 유적지를 보호 대상으로 삼았 -
토르데시야스 조약…지구를 반씩 나눠 먹다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07 05:00:001494년 6월 7일 스페인 북부 포르투갈 접경 도시 토르데시야스(Tordesillas). 신항로 발견과 식민지 개척을 놓고 경쟁하던 두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조약을 맺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의 골자는 영토 조정. 대서양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삼아 새로 발견되는 땅의 서쪽은 스페인이, 동쪽은 포르투갈이 차지하기로 했다. 분할의 기준선은 카보베르데 곶. 경도상으로 서경 43도 37분을 기준으로 스페 -
반민특위 습격 사건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06 07:25:541949년 6월 6일 월요일 오전 8시 30분, 서울 남대문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윤기병 중부경찰서장이 무장 경찰병력 50명과 함께 들이닥쳤다. 건물 주변은 기마경찰대가 에워쌌다. 윤기병 서장은 권총을 휘두르며 고함질렀다. “여기 있는 놈들, 모조리 끌고 가!” 무장 경관들은 특위 직원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팼다. 통신기기와 호신용 무기는 물론 서류 전체를 압수당하고 35명이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급 -
‘모르쇠’ 정당을 아시나요?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05 08:08:28‘몰라요, 나는 모릅니다.’ 범죄 사실을 추궁 받을 때면 이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전혀 모른다(know nothing)’ 어떤 짓을 했길래 딱 잡아뗐을까. 가톨릭교회에 불을 지르거나 사제들을 공격하고 돌을 던졌다. 아일랜드와 독일계 이민들을 차별하고 사적 린치를 퍼부었다. 분명한 범죄인데도 이들은 세를 불렸다. 외세를 배격하고 미국인끼리 잘 살아가자는 선동이 쉽게 먹혔다. 미국 토착주의(nativism) 운동이 한창이던 184 -
반달족과 로마의 약탈…반달리즘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02 07:30:06455년 6월 2일, 로마를 포위한 반달족(Vandals) 군대가 시내로 난입했다. 로마 역사상 세 번째 함락이었다. 첫 번째는 기원전 390년 켈트족의 침입. 신흥강국으로 급부상하던 시절이었으나 귀족들의 기득권 집착에 실망한 평민들이 로마를 버리고 떠나자 방어력이 떨어졌다. 프랑스 지역에서 넘어온 켈트족은 무려 7개월 동안 로마를 휩쓸었다. 더 이상 빼앗을 게 없어 켈트족이 떠났을 때 로마는 철저하게 망가졌다. 두 번째는 제 -
남북 전쟁과 면화, 채권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6.01 07:39:02미국 내전(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6월 1일, 남부동맹에 특이한 금융상품이 선보였다. 국채와 면화를 연계한 ‘7% 면화 공채(7 Percent Cotton Bond)’를 발행한 것이다. 미국의 경제사가 겸 투자분석가인 피터 번스타인(Peter Bernstein)의 저서 ‘리스크, 신을 거역한 사람들’에 따르면 면화 공채는 국가의 이름으로 발행된 최초의 파생 금융상품이었다. 면화공채의 특징은 두 가지. 첫째는 지불 수단으로 남부 동맹이 발 -
반상회의 빛과 그림자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31 07:59:001976년 5월 31일 오후 6시~9시. 전국 671만 가구, 25만 개 반(班)에서 반상회(班常會)가 한꺼번에 열렸다. 반상회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동시에 열린 것은 처음. 기본 의제는 새마을운동 확산과 장발 단속 기준 전파, 새로운 주민등록증 휴대 등 8개. 내무부가 지침을 마련해 전국 통반장에게 뿌렸다. 지역별로 원호 가족 돕기, 불법 무기 자진 신고, 하절기 재해 예방, 위해 식품에 대한 계몽 등도 의제로 다뤄졌다. 전 -
비아프라 전쟁 & 인류의 양심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30 09:01:40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구호품을 들었으나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뼈만 남은 어린아이. 세계를 충격을 빠트린 이 사진이 보도된 이후 더한 참상이 카메라에 잡혔다. 앙상한 팔다리에 불룩 튀어나온 배를 가진 아기들. 수척만 어머니의 말라비틀어진 젖을 물고 있는 신생아의 눈에 달라붙은 파리떼…. ‘인간이 이토록 처참해질 수 있는 것인가’라는 반성 속에 전쟁 종결에 대한 압력이 강해지고 ‘국경 없는 의사회’가 생 -
콘스탄티노플의 최후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29 08:06:151453년 5월 29일 새벽 1시 반. 갑자기 밤의 정적이 깨졌다. 나팔소리와 북소리, 오스만 튀르크군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성당의 종들이 일제히 울리며 적의 공격이 시작됐음을 온 도시에 알렸다. 한때 100만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며 번성하던 콘스탄티노플에 남은 인구는 불과 5만 여명. 비잔틴(동로마) 제국이 긁어모은 군대는 4,983명에 불과했다. 여기에 베네치아와 제노아 등 외국인 2,000여명 을 합쳐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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