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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동맹의 흥망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24 08:26:291370년 5월 24일 독일 슈트랄준트. 10여 년 전쟁 끝에 평화조약 하나가 맺어졌다. 패배자인 덴마크가 승자에게 안전 항행을 보장하며 무역과 어획권 등 특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주요 요새를 넘겨주고 15년 동안 배상금 지불도 약속했다. 덴마크의 왕위 계승에 승자가 개입할 수 있는 길도 터줬다. 발트해의 떠오르던 강자인 덴마크를 탈탈 턴 승자는 누구일까. 상인들이었다. 국가나 왕, 제후가 아닌 상인. 중개 무역과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보니와 클라이드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23 08:08:461934년 5월 23일 오전 9시 40분, 미국 루이지애나주 비엔빌 카운티 패리시 인근 지방 도로. 짙은 아이보리색 포드 승용차가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달렸다. 순간 총탄이 빗발쳤다. 잠복 중이던 경찰 6명은 브라우닝 자동소총(M 1918 BAR)과 샷건, 권총 탄알을 퍼부었다. 차에 타고 있던 남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다.* 벌집이 된 차는 경관들 앞을 지나쳐 반쯤 뒤집힌 채 고랑에 처박혔다. 차가 멈춘 다음에도 경찰들은 총 -
'위대한 사회'와 그 적들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22 07:45:591964년 5월 22일, 미국 미시간대학교 졸업식. 특별 참석한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8만여 관중이 숨을 죽였다. ‘우리에게는 가난과 인종차별을 끝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미국은 부유한 사회와 강대한 사회를 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위대한 사회를 향한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회를 건설합시다.’ ‘위대한 사회’가 존슨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순간이다.* 암살 당한 전임 케네디 대통령이 주 -
‘증오의 관세법’, 피를 부르다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19 08:19:14‘연방군은 찰스턴으로 진격을 준비하라.’ 앤드류 잭슨 미국 대통령이 군대에 내린 명령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연방 탈퇴 선언에 대한 강경 대응책. 잭슨 대통령은 ‘국가 파괴 행위를 막겠다’고 별렀다. 이때가 1832년. 충돌 위기는 대화를 통해 가라앉았지만 뒤끝이 있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불만은 남부 전체로 번지고 결국 1861년 남북전쟁 발발로 이어졌다. 남부와 북부의 전쟁은 이미 30여 년 전에 서곡이 울렸던 -
KKK단의 성장 비결…악의 보편성과 돈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18 07:24:41‘사람들은 메리 터너의 발목을 한데 묶어서 나무에 거꾸로 매달았다. 그리고 옷에 기름을 끼얹은 다음 불을 붙였다. 옷이 타서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자 이번에는 돼지 잡는 칼로 그녀의 배를 갈랐다. 태아가 땅으로 떨어져서 울음소리를 냈지만 누군가가 아이의 머리를 발로 짓이겨 버렸다. 그 다음 메리 터너를 총으로 쏘았다. 한두 발이 아니라 수백 발이었다.’ 1918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겸 -
월 스트리트의 탄생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17 04:00:001792년 5월17일, 미국 맨해튼 동쪽 월스트리트 68번지. 증권 브로커들이 뒷골목의 한 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목적은 담합. 제 살 깎아먹기식 고객 확보 경쟁을 지양하고 수수료도 너무 낮게 책정하지 말자는 공감대를 갖고 모였다. 회합은 몇몇 큰 손들이 이끌었다. 1792년 들어 몇몇이 ‘주식거래 사무실’을 내고 증권 경매를 시작했으나 장외 브로커들에게 당할 대로 당한 뒤였다. ‘주식거래 사무실’에 들어와 가격 정보만 -
수어드…미국을 읽는 키워드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16 07:40:06173.5표 대 102표. 157년 전(1860년) 이맘때 치러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 결과다. 102표를 얻은 2위는 에이브러햄 링컨. 중앙무대 경력이라고는 하원의원을 한 번 지낸 ‘시골 변호사’ 출신이었다.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선 시작과 함께 ‘정직함’이 각인되며 선풍을 일으켰다. 그래도 결과는 1위와 차이가 많이 나는 2위에 머물렀다. 1위는 173.5표를 얻은 윌리엄 수어드((William Seward: 1801.5.16~ -
레오 13세의 가르침…‘임금 제대로 주시오’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15 07:40:33‘노동자는 인정머리 없는 사용자와 탐욕스럽고 무절제한 경쟁 속에서 더욱 고립된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 모리배들은 고리대금업의 형태를 달리하여 여전히 되풀이함으로써 사회악은 점점 더 퍼져가고 있다. 생산수단의 거의 모두가 몇몇 사람에게 집중되어 이들 소수 부유층은 근로계약이란 허울을 쓰고 수많은 노동자에게 노예와 비슷한 굴종을 강요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성명서가 아니다. 마치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1 -
망치를 든 백의의 천사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12 08:19:20유럽을 여행 중인 영국인 부부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둘째 딸을 낳았다. 부부는 1820년 5월 12일 태어난 아이의 이름에 도시명을 붙였다. 플로렌스(Florence·피렌체의 영어식 발음) 나이팅게일. 연상연하 커플이었던 나이팅게일 부부는 첫딸의 이름에도 출생 도시를 넣었다. 파세노프(나폴리의 그리스어 이름)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 부부는 3년에 걸친 ‘그랜드 투어(Grand Tour·영국 귀족이나 부유층의 유럽 장기 여행)’에 -
미리 결정난 승패, 노몬한 전투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11 08:17:121939년 5월11일 만몽(滿蒙) 국경 할힌골(Khalkhin Gol·노몬한). 몽골 인민공화국 기병대가 군마의 목초지를 찾아 개울을 건넜다. 몽골과 일본 제국주의의 괴뢰국가인 만주국 사이에 국경선이 확정되지 않았던 터. 영토 침범으로 간주한 만주국은 교전을 시작하는 한편 일본군을 불렀다. 급히 출동한 일본 관동군 23사단 수색대와 만주국 기병대, 몽골군 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잇따랐다. 하늘에서도 공중전이 벌어졌다. 몽골과 -
‘권력은 영원히 내 것’…에드가 후버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10 04:00:001924년 5월10일, 캘빈 쿨리지 미국 대통령이 29세 수사관을 법무부 수사국장 서리에 임명했다. 청년의 이름은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 조지 워싱턴 대학 야간학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무부에 공채로 입사한 경력 7년 차 공무원이었다. 대학 시절 의회도서관에서 일한 경험으로 법무부 문서검열관, 전시 요주의 외국인 감시관을 거쳤다. 1차 세계대전 종결 무렵 수사국으로 옮겨 수사관 경력 5년 만에 중책을 맡게 된 그 -
금서령(禁書令)의 말로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08 04:00:00금서령(禁書令)의 말로 ‘어디서든 마르틴 루터의 저술이나 책ㆍ교리를 인쇄하거나 읽거나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하노라.’ 스페인 국왕이며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5세가 1529년 5월8일 내린 금서령(禁書令)의 골자다. 스페인과 독일 지역, 요즘의 네덜란드와 벨기에ㆍ이탈리아 일부까지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최전성기. 유럽을 쥐락펴락하던 합스부르크가의 수장 카를 5세가 내린 칙령은 시퍼렜다. 루터의 책이 불타고 -
1955년 서독 주권 회복과 한반도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05 04:00:001955년 서독 주권 회복과 한반도‘연합국의 점령통치 종식. 서독 주권 회복과 재무장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 1955년 5월5일자로 발효된 파리조약의 골자다. 1945년 2차세계대전 승전 이후 10년간 점령군으로 서독을 분할 통치하던 미군과 영국군, 프랑스군은 떠나거나 병력 수를 줄였다. 주둔의 성격도 점령에서 동맹을 위한 전진 배치로 바뀌었다. 완전한 주권국가로 거듭난 지 나흘 후인 5월 9일 서독은 나 -
헤이마켓 사건…범인은?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04 09:20:411886년 5월 4일, 미국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 노동자 3,000여 명이 집회에 나섰다. 나흘째 이어진 이날의 집회는 어느 때보다 긴장이 흘렀다. 바로 전날인 3일, 트랙터 공장 앞에서 경찰의 발포로 여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해 4~6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였기 때문이다. 경찰의 발포에 겁먹었는지 시위대 숫자는 이전보다 줄었어도 규탄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다행히 우려했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침 비 -
질병과 혁명, 공포의 산물…파리 재개발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7.05.03 09:00:34비좁고 꼬불꼬불하며 오물과 악취로 가득 찬 더러운 도시. 19세기 중반까지 파리의 모습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인구 급증에 따른 도시 환경 악화. 인구 65만명이던 1832년에는 콜레라가 발생, 시민 2만여명이 숨졌다. 불결한 환경에도 도시는 사람을 끌어당겼다. 산업혁명을 맞아 농촌은 붕괴하고 농민들은 살 길을 찾아 도시로 몰렸다. 1836년 인구 100만을 넘어선 파리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난개발에 몸살을 앓았다. 하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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