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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큰 거짓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9.11 17:29:58- 박재연야! 죽는 게 궁금하다 만구에 어째라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아마 꽃가마가 당도할걸? 보고 싶은 사람들이 나래비로 죽 서서 가마에 태우고 구름 위로 사뿐 날아갈 거야으하하하………그렇다면 오죽 좋겠냐그렇다니까, 내 말을 믿어요어머니 떠나실 때 압축파일 주머니에 큰 뻥 하나 넣어드렸다시인이 뻥치시니 한 뻥 쳐볼까? 나는 사실 도둑이다. 어느 날 우주를 훔쳤다. 둘 곳을 궁리하다 눈꺼풀 곳간에 넣어두었다. 봐라, -
[시로 여는 수요일] 오카리나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9.04 17:29:09- 강정이 어린 새 오카리나 뾰족 내민 주둥이를 불어 본다 구멍구멍 내가 빠져 나온다 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싶던 울분이 나오고 예순 살 모래바람으로 사라진 엄마도 송도바다 세레나데 부르던 첫사랑도 나온다저것이 들숨날숨으로 나를 빚어 마구 허공에 뿌려대니 부웅 부운浮雲- 꽃이 되고 나비 되고 바다 되고 바람이 된다그래 그래 악다구니 삶도 물결무늬 삶도 우리 돌아갈 한 줌 흙 아니냐며 엉긴 가슴 호- 불어주는 오카리 -
[시로 여는 수요일] 밥 먹는 풍경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8.28 17:26:19안주철(1975~)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 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 -
[시로 여는 수요일] 연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8.07 17:13:32딸아이처럼 앳돼 보이는 햄버거 집 알바생래퍼처럼 경쾌하게 주문을 받고달인처럼 손가락을 움직인다틈틈이 테이블을 닦는 손걸레질도제집 밥상 닦듯 야무지다요리 뛰고 조리 뛰면서도 말갛게 웃는 얼굴그 아이를 보며햄버거 패티와 도살된 소, 환경파괴 최저임금 신자유주의를 운운하기 난처하다흐르는 강물이 더러워도강줄기를 비틀거나 방향을 바꾸지 않고저 혼자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저 즐겁고 씩씩한 한 마리 말간 연어고 -
[시로 여는 수요일] 아득한 성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7.31 17:11:58- 조오현(1932~2018)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뜨는 해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하루 동안 세상 모든 걸 다 보았다니 과찬이십니다. 단지 짧은 생이 상찬의 대상이라면 천 년 사는 학은 얼마나 몸 둘 바 없겠습니까? 저희도 하루 -
[시로 여는 수요일] 배가 고파요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7.24 17:32:57박소란(1981~) 삼양동 시절 내내 삼계탕집 인부로 지낸 어머니아궁이 불길처럼 뜨겁던 어느 여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까무룩 꺼져가는 숨을 가누며 남긴 마지막 말 얘야 뚝배기가, 뚝배기가 너무 무겁구나그 후로 종종 아무 삼계탕집에 앉아 끼니를 맞을 때 펄펄한 뚝배기 안을 들여다볼 때면 오오 어머니 거기서 무얼 하세요 도대체자그마한 몸에 웬 얄궂은 것들을 그리도 가득 싣고서 눈빛도 표정도 없이 아무런 소식도 없 -
[시로 읽는 수요일] 늙은 꽃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7.17 17:25:13- 문정희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식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둥치 검은 백년 복사나무라도 지금 핀 꽃은 젊다. 구순 노인의 가슴에도 세 살 동심 한 송이쯤 남아 있다. 살아 있는 동 -
[시로 여는 수요일] 불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2.20 17:14:22낯선 이가 불쑥 내미는 손 잡아본 적 있다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 있듯 살다 보면 불쑥 마음 문 미는 사람 있다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자 기다리라고 말하지 말자 아직 때가 아니라는 핑계로 그 손 부끄럽게 하지 말자목말라 본 사람은 안다 불쑥 손 내밀 수밖에 없는 이유를불쑥, 내미는 손 무례한 줄 알았더니 다급한 것이었군요. 목이 마르거나, 물에 빠졌을 때 염치 불구하고 손 내밀 수밖에요. 뉘라서 그 손 뿌리치 -
[시로 여는 수요일] 학생부군과의 밥상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2.13 17:33:15녹두빈대떡 참 좋아하셨지 메밀묵도 만둣국도 일 년에 한 두어 번 명절상에 오르면 손길 잦았던 어느 것 하나 차리지 못 했네 배추된장국과 김치와 동치미 흰 쌀밥에 녹차 한 잔 내 올해는 무슨 생각이 들어 당신 돌아가신 정월 초사흘 아침밥상 겸상을 보는가 아들의 밥그릇이 다 비워지도록 아버지의 밥그릇 그대로 남네 제가 좀 덜어 먹을게요 얘야 한 번은 정이 없단다 한 술 두 술 세 숟갈 학생부군 아버지의 밥그릇 아들의 -
[시로 여는 수요일] 시린 생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2.06 17:35:20살얼음 친 고래실 미나리꽝에 청둥오리 떼의 붉은 발들이 내린다그 발자국마다 살얼음 헤치는 새파란 미나리 줄기를 본다가슴까지 올라온 장화를 신고 그 미나리를 건지는 여인이 있다난 그녀에게서 건진 생의 무게가 청둥오리의 발인 양 뜨거운 것이다꽝꽝 언 겨울 대지에도 살아 있는 것들은 살아서 눈뜨고 있다. 땅속의 알뿌리들과 나뭇가지의 겨울눈들은 종교처럼 봄을 믿고 있다. 얼음천장에 갇힌 물고기들은 아지랑이 사면을 -
[시로 여는 수요일] 비무장지대에서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1.30 17:08:50여기서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육십 년 전에 떠나온 고향 마을이 보인다.불에 타 허물어진 돌담 곁에 접시꽃 한 송이가 빨갛게 피어 있다.얘들아, 다 어디 있니, 밥은 먹었니, 아프지는 않니?보고 싶구나!육십 년 바라보아도 접시꽃은 피어 있군요. 육십 년 지났어도 접시꽃만 피어 있군요. 허물어진 돌담은 여전히 허물어진 채로 배경이 되고 있군요. 고장 난 시계처럼 그 때만, 낡은 사진처럼 그 장면만 기억의 한 켠에 박혀 있군 -
[시로 여는 수요일] 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1.23 17:29:12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별들이 보이지 않는다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별들이 보인다지금 어둠인 사람들만별들을 낳을 수 있다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세상이 어두우면 별이 빛날 차례로군요. 지금 어둠인 사람은 빛이 될 차례로군요. 모든 새싹이 땅의 어둠에서, 모든 꽃이 가지의 어둠에서, 모든 새들이 알의 어둠에서 깨어난 것처럼. 세상이 환하면 별이 사라질 차례 -
[시로 여는 수요일] 수달의 고난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1.16 18:07:56매립지 공사가 한창인 낙동강 하류, 미꾸라지 등 민물 먹잇감이 바닥난 자그마한 수달이 횟집 창을 넘어와 처음에는 바닷장어 같은 것을 물고 가기에 애교로 봐주었더니 조금씩 대담해져 이제는 네 다리로 수조 안을 첨벙대며 보리새우, 우럭에다 값비싼 감성돔까지 물고 가니 덫을 놓을 수도 없고 아무리 천연기념물 330호에 멸종위기 1호라지만 이래도 되는 거냐며 손해배상 청구할 데라도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횟집 주인은 TV -
[시로 여는 수요일] 빨래집게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1.09 16:58:36빨랫줄의 빨래를 빨래집게가 물고 있다 무슨 간절한 운명처럼 물고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어느 더러운 바닥에 다시 떨어져 나뒹굴지도 모를 지상의 젖은 몸뚱어리를 잡아 말리고 있다 차라리 이빨이 부러질지언정 놓지 않는 그 독한 마음 없었다면 얼마나 두려우랴 위태로우랴 디딜 곳 없는 허공 흔들리는 외줄에 빨래 홀로 매달려 꾸득꾸득 마르기까지 빨래집게가 빨래를 물고 있는 동안, 빨랫줄은 처마 밑의 기둥과 마당귀의 -
[시로 여는 수요일] 극명克明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1.02 17:32:31이른 아침 한 떼의 참새들이 날아와서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날고 마당을 종종걸음치기도 하고 재잘재잘 하고 한 것이 방금 전이다 아 언제 날아들 갔나 눈 씻고 봐도 한 마리 없다 그저 참새들이 앉았다 날아간 이 가지 저 가지가 반짝이고 울타리가 반짝이고 쥐똥나무가 반짝이고 마당이 반짝이고 아 내가 언제부터 이런 극명克明을 즐기고 있었나. 어둠이 물러가고 먼동이 트면 가장 먼저 새들이 아침을 물고 창가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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