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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억 KAIST 기부 '여걸' "잠 줄여 번 돈 전부 과학인재에 쓸 것"
산업 IT 2020.08.04 18:03:50“사람들은 노벨과학상 수상을 위해 기부한다고 하면 공돈을 번 줄 알아. 잠 안 자고 번 돈인데….” 이수영(84·사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발전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맨하탄빌딩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 창간 60주년 특별 인터뷰를 갖고 “‘죽으면 가지고 가나’라는 생각에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결심했으나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경기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는 지난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경제신문 기자였으며 지난 8년간 KAIST에 766억원을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이날 그는 “피곤해 무리하면 안 된다”면서도 5시간30분 동안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삶의 철학과 에피소드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냈다. 딱 ‘여장부’의 모습이었다. “일제강점기도 보고 한국전쟁도 겪었는데 과학기술의 힘으로 우리가 잘사는 거야.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힘인데 우리가 미국 사람보다 머리가 나아.” 본지가 올해 강조하는 ‘과학기술 초격차’ 전략과 맞닿는 말이다. 이를 위해 연내 ‘이수영과학교육재단’을 만들어 과학 인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는 2012년 80억원, 2016년 10억원 상당의 미국 부동산을 KAIST에 내놓았고 이번에 재단에 676억원 가치의 부동산을 출연하기로 했다. 그는 “부동산 평가도 올해 끝내고 나머지 부동산도 죽기 전에 전부 재단에 출연할 것”이라며 “최대 1,000억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재단에서 내년에 연 5억원의 이익금부터 시작해 KAIST에 지원금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KAIST는 과학자들이라 나만큼 경영능력이 없어 재단에서 관리하려는 거야. 내가 돈 불리는 것을 잘하거든. KAIST가 내년 개교 50주년인데 이제 노벨상도 받을 만하지 않아. 뜻있는 분들은 동참해줬으면 좋겠어.” 1936년 서울에서 4남4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병약해 부모님이 거의 안고만 키울 정도로 귀하게 컸다. 일제강점기 때 충남 홍성에서 서울로 오다 아버지가 왜경에게 쌀을 빼앗기는 것도 봤고, 한국전쟁이 터진 뒤 1·4후퇴 때는 가족과 함께 의왕 모락산까지 피란 갔다가 오히려 교전현장에 발을 들여놓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늘 최고라고 생각하며 자랐지. 일류 학교를 다니며 집안의 중심이 되기도 했고.” 하지만 대학 3학년 때 사법고시에 떨어지고 몸까지 망가지는 고통을 맛본다. 우연히 영어학원에서 기자시험 공고문을 보고 1963년 서울신문 기자시험에 합격했으나 수습 4개월 만에 파벌 다툼이 싫어 퇴사했다. 다음해 현대경제일보에 들어가 4년 있었는데 “3류 신문으로 아주 X판이었어…”라며 손사래를 친다. 1969년 서울경제에 둥지를 튼 뒤 비로소 인생의 꽃을 피운다. “발로 뛰느라 골프를 못배웠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강제폐간 전) 서경은 시장점유율이 70%가 훨씬 넘어 경제여론을 주도했고 필독신문이었어. 당시 언론계에 성차별이 심하기는 했지만 창업주인 백상(百想·장기영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애국자이고 인재를 아꼈어. 12년 가까운 서경 기자 시절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값진 시간이었어. (백상이 1977년 숨지고) 1980년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는 오해로 강제해직되기는 했지만 서경을 친정으로 생각해.” 당시 그는 이병철 삼성 회장이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 이후 기자를 피할 때도 골동품 취재 명목으로 이 회장을 만났다. 박동규 전 재무부 장관의 소개로 인연을 맺은 홍재선 당시 전경련 회장이 이 회장에게 전화해준 덕을 봤다. 골프와 미술품·골동품 수집이 취미였던 이 회장은 고종황제의 아들인 영친왕이 생활고로 도쿄 골동품상에 판 골동품이나 그림, 궁중화가였던 오원 장승업의 그림이 헐값에 거래되는 것을 보고 많이 사들였다. “‘사업보국’이 붙어 있는 사무실에 들어서니 용인 자연농원을 만들 때라 목축에 관한 일본 책을 넓은 책상에 산처럼 쌓아놓고 있더라고. 처음에는 냉혹하게 폐부를 찔러보는 안광(眼光)이었는데 점차 아버지 눈빛으로 변했어. 오원이 비단에 그린 춘(春)·추(秋) 두 폭의 그림을 보고 이 회장이 예술품을 모으는 배경도 들었지. 근데 골동품이나 그가 갖고 있다고 알려진 청동기 칼과 가야금관은 못 봤어.” 이 회장 취재에는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위당 정인보의 아들)가 동행했다. 이는 호암미술관이 중앙박물관과 함께 한일 수교 10주년 기념 일본 전시회에 많은 미술품을 전시하는 계기가 된다. “이 회장은 다음에 만나면 먼저 말을 거는거야. 1980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이수영 기자 이리와’ 하며 정주영 회장과의 사이에 서게 한 뒤 어깨동무를 하더라니까. 이 회장 취재 뒤 다른 재벌 회장 취재하기가 용이해졌지.” 정주영 현대 회장에 대해서는 아침7시에 인터뷰 오라고 할 정도로 “아주 부지런하고 머리가 좋고 애국자였다”고 했다. 1973년 오일쇼크가 왔을 때 정 회장이 선박 모형을 보여주며 ‘내가 선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라며 조선업의 구상을 비친 일화도 들려줬다. “한번은 유럽·중동 경제사절단 동행취재를 했는데 정 회장이 ‘바레인 아스리조선소에서 한식 잡숴봐요’라고 하는 거야. 현지인이 안 먹는 꼬리찜으로 맛있게 대접한 거지.” 정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연안에서 부두가 없어 하역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때도 빔(철골조)을 엮어 똑딱선으로 끌고 가 임시부두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고 했다. 졸지에 빚쟁이에게 쫓겨 다니던 이양구 전 동양그룹 회장 특종 인터뷰라든지 동네 오빠이던 한용철 전 서울대병원장과의 일화 등을 회고하던 그는 “나도 참 피나게 돈 벌었다”며 사업 얘기로 옮겨갔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심훈의 ‘상록수’처럼 농촌을 잘살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 당시는 전라도 등에서 공장이 없으니 서울로 몰려 드는데 영등포 쪽방촌에서 한 방을 놓고 밤에는 여공이 자고 낮에는 야간작업하는 남공이 잘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어. 빈부격차도 커졌고.” 그는 서울경제 기자를 하던 1971년 ‘농공병진(農工竝進·농업과 공업이 같이 나아감)’에 공감한데다 목장을 하던 주간한국 국장으로부터 돼지 두 마리를 선물받아 경기도 안양에서 목축업에 뛰어든다. 낮에는 취재를 하고 밤이나 주말에 돼지와 소를 키운 것이다. “한번은 안양천이 범람해 지대가 높은 목장의 문지방까지 물이 찰 정도로 수해가 났어. 반신불수 중풍인 엄마한테 가지 못해 밤새 발을 동동 구르는데 기사가 통나무를 타고 들어가 엄마를 보호해줬지. 다음날 물이 빠진 뒤 도처가 진흙투성이에 뱀이 널브러져 있고 풀에는 기름이 묻어 있고 난리였지. 급한 대로 시장을 다니며 동물 먹일 것을 구했어. 사료로 쓰려고 하천 부지에서 옥수수를 재배해 사일로(원통형 창고)도 만들었는데 예쁜 다리에 상처도 많이 났어.” 나중에는 돼지 1,000여마리, 소 15마리 규모까지 목장을 키우는데 돼지 파동으로 돼지 가격이 폭락하고 우유 파동으로 중랑천에 우유를 버리는 업체까지 나올 정도로 우여곡절을 겪는다. “정부와 기업에 있는 서울대 법대 동창들을 찾아 돼지는 국군장병 위문품으로, 우유는 초등학교 납품으로 활로를 찾았어. 다른 회사의 반품 우유도 받아 소한테 먹여 소가 부쩍 컸지. 소로 떼돈을 벌었지. 그 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내 덕에 우유 먹고 저렇게 됐다’고 했지. 머리를 써야 해.” 강제해직 뒤에도 중풍으로 고생하는 엄마 수발들랴, 본격적으로 농장 일하랴 고달팠지만 기쁜 마음으로 했다.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거둬 같이 생활하기도 했다. “진짜 고생 많이 했어. 나중에 목장이 수용돼 애환이 심했지. 목장 하천의 모래를 누가 퍼가는 것을 보고 1988년부터 하루 종일 모래와 흙먼지 마셔가며 모래를 팔았지. 늘 입이 근질근질했어. 그해 은행에 다니던 대학 동기가 힌트를 줘 주차장이 넓은 여의도백화점(현 맨하탄빌딩) 한 층 인수계약을 하고 오는데 치주염으로 입안에 피가 가득했어. 이가 다 빠질 뻔해 돈 많이 들어갔지.” 이 과정에서 전기도 꺼져 난장판인 건물을 정비하는 데 철거업자가 2,000만~3,000만원 달라는 것을 직원들과 같이 100만원에 다 수리했다. 증권예탁원 등 공공기관 여러 곳이 입주하는 등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빌딩 관리 책임을 맡은 상황에서 집합건물관리단에서 예치한 3억원을 노린 조폭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1998년께 깡패 100명이 들어와 관리권을 빼앗고, 청부살인을 당할 수도 있어 심야에 대전으로 한 달쯤 피신했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신장암으로 왼쪽 신장을 잘라냈지. 오줌 잘 나오라고 늘 옥수수수염차를 마시지.” 결국 그는 소유주와 상인들의 신뢰를 쌓아가며 빌딩에서 매물로 나온 상가와 사무실을 계속 사들였고 올해까지 맨하탄빌딩 지분을 3분의1까지 확보하게 된다. 그의 관리하에 건물 가치도 덩달아 크게 높아졌다. “좌절을 겪을 때도 원망하지 않아. 끈만 잡으면 확 일으키고 별 밑천 안 들이고 키운다고. 오뚝이 인생이야. 나폴레옹처럼 ‘불가능이 없다’는 마음으로 살았지. 다만 증권은 안 했어.” 참여정부 말 300만달러까지 해외투자가 허용되자 ‘기회다’ 싶어 독산동 빌딩을 담보로 대출받아 미국 부동산 시장에도 진출한다. “처음에 브로커들이 자꾸 쇼핑센터만 보여주길래 공공기관이 입주한 건물을 소개해달라고 했지. 성조기가 펄럭이던 건물을 샀는데 얼마나 국위선양이야. 재미를 톡톡히 봤는데 10년쯤 뒤 연방정부의 재정이 어려워지며 갑자기 해약했어. 갖고 있으면 병 될 것 같아 KAIST에 기부하게 됐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석좌교수를 거친 서남표 KAIST 총장이 TV에서 “국가 발전에 과학기술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고 KAIST로의 기부를 결심한다. “서 총장이 참여정부 때 들어와 6년 반 총장을 하며 과학발전을 이뤘는데 작당해서 들쑤셔 몰아낸 것은 잘못이야.”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석·박사 연구인력 25%가 KAIST 출신이다. 과학 인재를 키워야 한다”며 “서울대 법대 나오면 사회지도층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직무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이 있어 싫증이 났다”고 비교했다. “부동산이라든지 세금 폭탄에 힘들어. 그렇지 않았으면 기부를 더 많이 했을 거야. 몇 년 전 초기 치매를 겪다가 치료 잘 받고 약 먹으며 극복했어. 정신 말짱해. 과학재단의 법적 울타리는 우창록 율촌 명예회장이 해주고 내가 죽으면 내 말을 바이블로 알고 15년 정도를 배운 (큰언니의) 손자가 재단을 운영하며 KAIST를 지원하도록 할거야.”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She is... △1936년 서울 △1956년 경기여고 졸업 △1960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63년 서울신문 수습기자(4개월) △1964년 현대경제일보 기자 △1969년 서울경제 기자 △1971년 광원목장 창업 △1980년 서울경제 퇴사 △1988년~ 광원산업 대표 △2010~2012년 서울대 법대 장학재단 이사장 △2012년 KAIST 명예박사 △2013년~ KAIST 발전재단 이사장 -
태풍 영향 장마 거세져…빗줄기 13일까지 이어질듯
사회 사회일반 2020.08.03 17:44:27수도권과 중부지역을 강타하며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집중호우는 한반도 상공에 형성된 좁고 긴 비구름대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현상으로 밀려난 찬 공기가 한반도로 내려오면서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 머무르며 집중호우를 뿌렸다는 분석이다. 기상청은 오는 13일까지 중부지방에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3일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는 남북으로 좁고, 동서로 길게 형성된 비구름대로 인해 발생했다. 올여름 시베리아 지역에서 30도가 넘는 고온현상이 발생하며 북쪽의 찬 공기가 한반도로 밀려 내려와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의 확장을 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펼쳐지지 못한 비구름이 서울·경기와 강원 영서 상공에 좁고 길게 형성되며 최대 250∼300㎜ 이상의 많은 비를 쏟아냈다. 장마는 중국 남동해안으로 북서진하고 있는 4호 태풍 하구핏의 영향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는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났지만 하구핏 소멸과 함께 방출된 수증기가 장마전선에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구핏은 5일 새벽 중국 상하이에 상륙한 뒤 소멸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의 한 관계자는 “하구핏에서 방출된 수증기로 빗줄기가 당분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며 “장마 영향에서 벗어난 남부내륙은 높은 습도로 폭염특보가 확대·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기상청은 최소 13일까지 중부지방에서 빗줄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올해 북태평양고기압이 크게 형성됐다”며 “강수량의 등락폭은 있겠지만 최소 13일까지 중부지방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상청 중기예보는 10일 앞까지만 발표하는 만큼 13일 이후에도 빗줄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통상 한반도를 찾는 장마전선은 북태평양고기압에 따라 북쪽으로 넓게 퍼지며 사라진다. 앞서 기상청은 올해 장마가 예년과 마찬가지로 7월 말쯤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
한전공대·공영형 사립대…거꾸로 가는 '대학 구조개혁'
사회 사회일반 2020.08.03 17:39:31정부의 대학 구조개혁이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지방 공공 의과대학과 한국전력 산하 한전공대 설립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당정의 이런 행보가 대학 구조개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보다는 기초과학을 키우고 기존 공과대학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3일 교육계에 따르면 당정이 지방에 공공 의대를 세우기로 하면서 대학 정원 감축 및 통폐합 작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방 공공 의대 신설 과정이다. 의대가 없는 지역에 의대 신설을 적극 검토하고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해 공공 의대를 설립하는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정은 지난 2018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가 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5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지방에 의대를 늘리는 결정에 정치적 셈법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의사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정치적으로 지방 의대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방 의대를 신설하면 정원을 줄이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한전공대 설립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KAIST·포항공과대(포스텍) 등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5곳 있는데 오는 2022년 전남 나주에 한전공대를 세우려는 것은 호남 표심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총선 직전인 올해 4월3일 대학설립심사위원회를 열고 한전공대 법인 설립 안을 최종 의결했다. 지난해 1조2,765억원의 영업 손실을 낸 한전이 또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대학을 세우는 것은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전공대를 세우는 것에 반대한다”며 “학령인구가 줄고 기존 공과대학 지원 및 양성도 열악한 상황에서 대학을 세우는 목표와 방향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방대가 공영형 사립대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재정난에 허덕이는 사립대에 혈세를 지원하는 방식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공영형 사립대는 국가가 대학 운영비를 50% 이상 책임지는 대신 이사진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해 반 국립처럼 운영되는 대학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된 사업으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조선대(광주광역시), 상지대(강원도 원주시), 평택대(경기도 평택시)를 중심으로 공영형 사립대 설립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3개 대학은 올해 초 교육부가 발주한 ‘공영형 사립대 도입 효과성 검증을 위한 실증연구’ 용역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상지대는 상지영서대와 통합 작업을 추진하면서 전국 제1호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지정받겠다고 밝혔다. 조선대와 상지대는 6월 공영형 사립대 추진에 협력하는 협약도 맺었다. 정부가 현실에 맞는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 출신의 한 대학 교수는 “사립대가 국립대 성격으로 바뀌면 구성원들은 공무원화되고 재정만 많이 들어간다”며 “지방대가 지역 사회와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
[창간기획] 로치 교수, 대표적 월가 출신 경제학자...'아시아통' 평가도
국제 경제·마켓 2020.08.03 17:25:58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월가 출신의 경제학자로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 아시아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회장을 지냈다. 이 때문에 ‘아시아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랫동안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코노미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함께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혀왔다. 지금은 세계화와 무역정책·자본시장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1945년생으로 1971년 뉴욕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구원과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지금은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잭슨글로벌문제연구소 수석 펠로도 맡고 있다. ‘아시아통’답게 2014년에는 책 ‘균형이 무너진: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성’을 통해 미중 경제관계의 위험과 발전 가능성 등을 다뤘다. 2009년 나온 ‘다음 시대의 아시아:새로운 세계화를 위한 기회와 도전’은 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불균형 문제를 파헤쳤다. -
[창간기획] "弱달러 수혜, 위안화 아닌 유로화"
국제 경제·마켓 2020.08.03 17:24:20달러화가 장기 약세 추세로 간다면 기축통화의 지위를 위안화에 내주게 될까.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현재로서는 위안화의 달러화 대체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 이르다”는 입장이다. 그는 “달러는 여전히 지급준비통화로서 세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60%를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지난 2000년대 초반에는 그 비중이 70%를 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매우 큰 규모”라고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달러화를 대체하는 데는 그나마 유로화가 가능성이 있으며 위안화가 달러화를 제치고 기축통화의 지위를 차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뜻이다. 국제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에 따르면 달러화의 국제거래 사용 비중은 40.33%인 반면 위안화는 1.76% 수준이다. 그는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유로화는 아마 점진적으로 비중이 상승할 것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위안화는 비중이 매우 매우 낮다”며 “위안화 사용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국영기업과 자본시장 개혁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로치 교수는 앞으로 유로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달러 약세의 주요 수혜자는 유로화일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까지 유로화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지 못한 통화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유럽연합(EU)이 전 세계에서 새로운 안전자산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는 공동채권을 찍기로 하고 회복기금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은 유로화 상승세가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
비대면·유연근무 일상화...변화 기로에 선 '공장시대 노동법'
사회 사회일반 2020.08.03 17:23:4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전까지 관념적으로만 주장됐던 노동법의 개혁을 시급히 추진해야 할 시대적 과제로 만들었다. 재택근무·시차출퇴근 등 비대면 유연근로제는 그동안 근로시간 중심의 급여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노사 ‘1대1’의 노무계약을 ‘1대다(多)’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미래가 갑자기 현실로 다가온 것으로 공장 중심의 노동법도 변화의 기로에 섰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3일 노동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비대면·유연 근로를 일반화시키면서 사업장별로 현행 근로기준법이 현장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재택근무다. 기업들이 생산성 하락을 우려해 도입을 주저했던 재택근무제가 코로나19로 보편적인 업무 방식이 됐고 실제로 업무에는 별 지장이 없다는 반응이 많다. 시차출퇴근, 시간선택형 근로제 등 유연근무제도 현장 수요가 많았다. 이렇게 장소와 시간에서 자유로운 근무제가 확산하면서 ‘정해진 근로시간에 맞춰 산정되는’ 임금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공장을 기초로 만들어진 노동법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근로문화를 포괄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집단적 대면근무가 기본인 공장에서는 컨베이어벨트 공정에 맞추기 때문에 성과에 큰 차이도 없어 근무시간을 기초로 임금을 산정하는 제도가 합리적이다. 지금은 비대면 근로가 일반화할수록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고 개인의 능력에도 차이가 나는 만큼 성과를 중심으로 임금을 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등 임금 관련 소송은 대체로 ‘소정근로시간에 맞춰 합당한 임금을 주었는가’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노사관계·사회보험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 공장 시대에서는 근로자의 집단인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체결하는 ‘집단적 노사관계’가 일반적이었지만 비대면근로가 일반화하면 한 명의 근로자가 여러 사용자와 노무계약을 체결하는 형태가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단체교섭을 어디까지 정할 것인지, 사회보험의 비용을 어떤 사용자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자의 정의가 깨지고 있다. 단순히 ‘근로자냐 자영업자냐’로 나누면 중간의 플랫폼종사자·특수근로종사자 등은 보호하지 못한다”며 “일하는 방식이 변화하면 보호의 방식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대로 둔다면 결국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세종=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뿌리 깊은 불신의 골에...정부·법원만 쳐다보는 노사관계
사회 사회일반 2020.08.03 17:23:34‘공공 부문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 근로시간 가이드라인, 통상임금.’ 노사분쟁에서 정부가 개입했거나 법원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문제들이다. 노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정부에 가이드라인을 요구하거나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노사가 지나친 불신으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공무직위원회는 지난 4월28일 1차 회의를 개최한 후 3일 현재까지 2차 회의를 열지 못했다. 공무직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공공 부문 비정규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무직이 늘어났지만 통일된 인사·노무관리 및 처우 기준이 없어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구성됐다. 정부 안팎에서는 노동계가 공무직위에서 임금 인상 등 각 기관의 노사교섭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일괄처리하려 한다는 우려가 높다. 공무직위가 열리면 또다시 문제가 제기될 게 뻔해 차후 일정을 잡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고용부가 ‘주 52시간 근로제’에 맞춰 2018년 발표한 ‘노동시간 단축 가이드’도 마찬가지다. 고용부는 당시 흡연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사용자의 지휘·감독에 해당한다고 봐 근로시간에 포함되고 부서 회식은 업무 목적이 아니므로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워크숍은 기본적으로 근로시간이 아니지만 하루 8시간을 넘어서는 프로그램은 근로시간으로 봤다. 회사의 성격에 맞춰 노사 합의로 처리할 수 있는 근로시간조차 정부가 ‘깨알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합리적으로 노사가 결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이드라인을 내려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모두 사건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통상임금은 실제로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노사 불신의 단면을 보여준다. 복지포인트(도서·의류 등을 구입한 후 영수증을 제출하면 실비처리), 승무원 어학수당 등 각종 수당·복지제도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단체협약에 넣지 못해 법원으로 가는 것이다. 하급심의 판단이 상급심에서 뒤집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모두 기업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세종=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창간기획] "달러화, 내년까지 30% 넘게 하락...美 더블딥 가능성도"
국제 경제·마켓 2020.08.03 17:23:27“달러화 약세는 금융자산과 인플레이션, 궁극적으로 통화정책에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미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장기적으로 떨어져 부채의 지속 가능성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미국 경제 입장에서는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월가 출신의 경제학자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서울경제신문 창간 60주년 특별 인터뷰에서 달러화가 장기 약세의 초기에 있으며 이것이 미국 경제에 큰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달러화는 지난 2011년 이후 강세를 보여왔으며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달러화지수는 30% 가까이 상승했다”며 “앞으로 몇 년 동안 달러는 하락세로 급격한 조정을 겪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조업체 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달러화 약세가 단기적으로 미국산 제품의 판매를 늘릴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수요 감소에 혜택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치 교수는 달러화의 장기 약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우선 그는 낮은 저축률을 제시했다. 안 그래도 낮았던 저축률이 코로나19 이후 재정적자 확대와 맞물려 경상수지 적자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내 투자가 국내 저축보다 많으면 외국인들이 그 격차를 메우게 돼 경상수지가 나빠진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상이 낮아진 것도 한몫한다. 미국이 탈세계화와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보호무역주의로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잃고 있다는 얘기다. 로치 교수는 “미국은 국민소득의 1.4%라는 매우 낮은 저축률로 코로나19를 맞았다”며 “코로나19를 다루는 데 있어 최악이었을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달러의 하락폭은 약 35%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30% 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락폭이 큰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달러 가치가 35% 이상 떨어진 적은 과거에도 있었다”며 “1970년대에 비슷한 감소세가 있었으며 1980년대 중반에 2년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약 30% 떨어진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연장선상에서 로치 교수는 달러화의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달러 약세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나 금의 강세를 동반할 것으로 본다”며 “비트코인이나 금과 같은 귀금속을 진지하게 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럴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봤다. 그는 “내 계산으로는 미국 정부의 부채비율이 130%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높았던 정부 부채비율이 낮아진 것은 공공 부문 부채가 소폭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의 가속화 때문이었다. 과도한 부채는 인플레이션 위험을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높은 물가상승률이 부채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에 이를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로치 교수는 달러화 약세가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입물가가 오른다. 비슷한 맥락에서 로치 교수는 코로나19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은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면서 저축은 많이 하지 않았다”며 “저축하지 않고 성장하려면 해외에서 자본을 들여와야 하고 막대한 경상수지 및 무역 적자를 감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미국은 외국자본을 필요로 한다”며 “세계화가 끝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 경제의 더블딥(double dip·이중침체) 확률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그는 “경기침체가 더블딥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며 “셧다운(폐쇄)을 해제하면 자동적으로 아주 낮은 수준의 플러스 성장을 하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3·4분기 들어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이 정상화하면서 생산 쪽인 공급은 돌아올 수 있지만 미국 소비자들이 (외부에서의) 소비를 두려워하면 수요 측면이 회복되기 어렵다”며 “이는 비대칭적 정상화로 더블딥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가을께 코로나19의 2차 유행 가능성도 매우 높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로치 교수는 “미국의 경기회복은 소비자의 행동과 참여 의지와 관련이 있다”며 “레스토랑과 소매점 등이 영업을 일부 재개하고 있다지만 기껏해야 부분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 미국은 전체 경제의 3분의2를 소비가 차지한다. 오는 11월 대선에 대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3년 반 동안 온 길을 계속 가면 미국은 매우 걱정스러운 미래에 직면하게 되고 세계 역시 큰 고통을 받을 것”이라며 “반면 조 바이든 전 부통령도 코로나19로 인한 보건과 인종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누가 되든 국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미중 관계는 1차적으로 11월3일 미국 대선 때까지 갈등의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로치 교수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같은 대중 매파가 제기하는 대중 압박이나 제재 조치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그 어느 것도 믿지 않는 게 좋다”며 “다만 선거를 앞두고 미중 관계가 매우 도전적이며 최소 대선 때까지 이러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와 관련해 공화당의 유일한 대응책은 중국을 비난하는 것이고 그 모든 책임을 중국에 돌리기 위해 인종적인 발언까지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되면 중국에 더 강하게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로치 교수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통령에 오른다면 정책에 있어 예측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면서도 “기술이전과 지적재산권, 사이버 보안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논의됐던 사안들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다만 트럼프 정부처럼 (관세를 통해) 상대방을 벌주기보다는 중국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타협을 통해 공통점을 찾게 될 것”이라며 “이 과정은 트럼프 행정부 때와 달리 더 투명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월가 출신의 경제학자로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 아시아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회장을 지냈다. 이 때문에 ‘아시아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랫동안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코노미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함께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혀왔다. 지금은 세계화와 무역정책·자본시장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1945년생으로 1971년 뉴욕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구원과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지금은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잭슨글로벌문제연구소 수석 펠로도 맡고 있다. ‘아시아통’답게 2014년에는 책 ‘균형이 무너진: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성’을 통해 미중 경제관계의 위험과 발전 가능성 등을 다뤘다. 2009년 나온 ‘다음 시대의 아시아:새로운 세계화를 위한 기회와 도전’은 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불균형 문제를 파헤쳤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
기득권에 막힌 노동개혁...결국 '취업 빙하기 세대' 눈물로
사회 사회일반 2020.08.03 17:20:3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취업하지 못한 청년층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시대에 나타난 ‘취업 빙하기 세대’처럼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대 중후반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 양질의 일자리에서 밀려나 30~40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청년세대 역시 코로나19로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취업에 대한 눈을 낮출 것인지’ ‘취업 재수를 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노동 유연성이 부족한 국내 노동시장에서는 입사와 퇴직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기득권에 밀려 차일피일 미뤄졌던 노동 유연성 확보의 역풍이 결국 청년세대의 눈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정규직 채용 줄고 채용전환은 어그러지고=3일 취업 포털인 진학사 캐치가 지난 5~6월 채용공고 중 인턴 비율을 조사한 결과 5월에 9%, 6월에 8%를 차지해 전년 대비 각각 2%포인트, 3%포인트 증가했다. 전체 공고는 2,300건 내외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인턴 채용은 130건 내외에서 약 200건으로 늘었다.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나마 있는 인턴도 대기업 채용전환형은 씨가 말랐다. 동계인턴은 채용전환이 어그러진 사례도 발견됐다. 2월까지 인턴으로 일한 후 3월부터는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하지만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짙어지자 관행을 깨고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것이다. 고용 한파는 대학을 이미 졸업한 20대 후반 여성, 30대 초반 남성 취업준비생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한 A(27)씨는 “뉴스에서는 코로나로 앞으로 2년 동안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한다”며 “신입직원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데 공무원처럼 나이제한이 적은 분야의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청년실업률은 10.2%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0.3%포인트 늘었고 고용률은 42.2%로 1.4%포인트 줄었다. 특히 ‘취업 적령기’로 분류되는 25~29세의 고용률은 67.4%로 3.2%포인트 떨어졌다. 20~24세 감소 규모인 1.8%포인트보다 크다. ◇미뤄놓은 노동개혁이 낳은 ‘코로나 취업 빙하기’=전문가들은 입사와 퇴직이 자유롭지 않은 국내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만성적인 청년고용난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20대 후반~30대 초반에 첫 직장에 입사해 50대 후반까지 한 직장에서 근무하거나 이직을 해도 첫 직장이 대기업인지가 다음 직장에 영향을 미친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자유롭게 입사와 퇴직을 결정하게 하려면 재교육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정착되지 않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자는 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사용자는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직업훈련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취업을 시작한 때의 경제 사정이 평생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처럼 노동 경직성이 뚜렷한 일본은 고도성장이 끝난 ‘잃어버린 20년’에 취업 시기를 맞은 사람들을 ‘취업 빙하기 세대’로 부른다. 1980년대에 태어나 버블 붕괴 시기인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로 지금은 30대 중반~40대 중반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은 대학 3~4학년 때 취업할 회사를 정하는 ‘취업내정제’ 등 우리나라보다 더욱 경직된 일괄채용 방식이 굳어 있다. 20대 중반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 아예 양질의 일자리에서는 배제된다. 버블 붕괴 때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정규직 취업을 포기하고 니트족이나 프리터족으로 남았다. ◇‘노동 유연화=쉬운 해고’ 프레임에서 벗어나야=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도 노동개혁이 시도됐지만 번번이 무산된 것은 ‘노동 유연화’를 ‘쉬운 해고’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노동 유연화는 자유로운 입사 및 퇴직이 궁극적인 목표지만 유연화 전 단계로 직무 중심의 재교육, 채용 상시화, 근로시간 유연화, 직무급제 도입 등의 정책도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계가 ‘노동 유연화=쉬운 해고’라는 프레임으로 반대하면서 아예 손도 못 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임금·근로시간 등 내부적 유연화와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외부적 유연화로 나뉜다”며 “해답을 ‘해고가 경직돼 있어서’로만 봐서는 안 된다. 직무와 조직에 적합한 전문성을 발휘해 창의성을 키워야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세종=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K방역' 다음 타자 키워라...바이오산업 인프라 확충 시급
산업 바이오 2020.08.02 17:39:55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올해 상반기 한국의 보건산업 수출액은 지난해보다 26.7% 증가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코로나19 진단키트와 소독제 등 ‘K방역’ 대표 상품이 선전한 덕이다. 특히 국내 진단업체들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발 빠른 대응으로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해 국내에서는 적극적인 확진자 탐색에 기여하고 수출까지 대폭 늘렸다. ‘K방역’의 화려한 찬사를 딛고 정부는 ‘K바이오’ 부흥을 외치고 있지만 지금 같은 규제 장벽과 척박한 인프라로는 ‘K방역’의 다음 타자가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 추진 공동위원장을 맡은 송시영 연대세브란스병원 교수는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는 강한 원천기술과 특허에 기반한 제품이 아니면 거대 다국적 기업의 시장과 자본에 다시 갇힐 것”이라며 “기초연구부터 시작해 임상, 투자, 기업과 융합에 이르는 단계별 지원과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단키트의 성공도 기술보다는 생산에 기댄 측면이 크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장기화하며 독일 퀴아젠 등 다국적 기업들이 진단키트와 새로운 분석기기를 내놓기 시작했고 각국에서도 다양한 진단 장비가 잇따라 출시돼 점차 무한 경쟁체제 돌입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기술에 기초한 ‘K바이오’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하지만 국내 시장은 규제와 기득권에 가려 앞날이 불투명한 여건이다. 업계는 우선 ‘옥상옥’ 구조의 규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비자가 직접 유전체 기업에 의뢰(DTC)해 암 등의 발병 확률을 예측하는 유전자 검사는 지난해 2월 마크로젠과 4월 테라젠바이오 등이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며 사업에 속도가 붙는 듯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시범사업 개시가 불투명한데다 마크로젠은 13개 항목 중 당뇨 1개, 테라젠바이오는 24개 항목 중 비만 등 6개만 겨우 추후 시범사업 승인을 받았다. 실제 시행하더라도 ‘차’와 ‘포’를 모두 뗀 신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규제 유예를 내건 샌드박스 제도의 허상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의료기술평가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은 기존에 없는 새 의료 행위나 기술이 나왔을 때 인증(보험 급여 또는 비급여)과 비인증(연구단계)으로 평가한다. 비인증으로 결정되면 건강보험코드가 아예 부여되지 않는다. 비급여라면 환자가 모든 비용을 내더라도 활용될 길이 열리지만 비인증이 되는 순간 사실상 의사들의 눈 밖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앞서 체외 진단키트나 차세대 항암제 등이 NECA의 비인증 무덤에 내몰렸다. 업계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성 등 검증에 더해 NECA가 한 번 더 판단하는 ‘이중 규제’라고 호소한다. 원격의료는 기득권에 발목이 잡힌 경우다. 정부는 코로나19를 맞아 한시적으로 전화 처방·상담을 허용했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한 의사단체와 의료 영리화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약사들까지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며 다음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원격의료 관련 기기와 서비스 개발에 나선 기업들은 국내에서 시장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다 일본(라인헬스케어)이나 미국(네오펙트), 이탈리아(인성정보) 등으로 발을 돌렸다. 국내에서 실력을 갈고닦을 기회를 뺏기다 보니 더 큰 성장의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지난 5월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기기 ‘메모워치’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첫 원격의료기 요양급여 인정을 받은 휴이노의 길영준 대표는 “2015년 개발을 끝낸 뒤 해외에서 사업을 벌였지만 ‘모국(한국)에서도 사용 실적이 없다’는 인식에 해외에서도 퇴짜를 받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2004년 LG전자가 혈당체크 기능이 있는 당뇨폰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도 ‘의료기기’로 분류돼 각종 규제가 쏟아지자 사업을 포기한 ‘흑역사’는 지금도 계속되는 셈이다. 그러는 새 각국은 적극적으로 원격의료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은 2014년부터 원격의료를 추진해 지난해 기준 전체 진료의 10%를 원격이 맡을 정도로 시장을 키웠고 미국과 일본·러시아·인도네시아·호주 등 각국이 전략 산업으로 삼고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첨단기술을 통한 진료 기회도 얻지 못할뿐더러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의 계기도 잃는 셈이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19는 새로운 경제사회 구조로 재편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며 “원격의료 등 혁신 환경에 반하는 규제를 제거하고 기업의 조속한 대응을 유인하는 촉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임진혁·우영탁·이주원기자 liberal@@sedaily.com -
K웹툰 '로어 올림퍼스' 북미서 2.5억 클릭…SKT·KT, 아마존·애플과 '클라우드 맞짱'
산업 IT 2020.08.02 17:39:23레이첼 스마이스의 로맨스 만화 ‘로어 올림푸스’는 북미지역 조회 수 2억5,000만건에 달하는 북미 최고 인기작이다. 무명의 스마이스를 일약 스타로 만든 것은 네이버웹툰. 국내 ‘도전만화’를 그대로 옮겨 만든 ‘캔버스’에서는 수백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스타 작가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유튜브가 새로운 유명인을 만들듯 미국에서는 네이버의 플랫폼이 등용문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구글과 유튜브·페이스북 등 공룡 기업들이 지배하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불쑥 다가온 언택트(비접촉) 환경의 본격적인 개막도 국내 기업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는 모양새다. 웹툰은 한국이 만든 플랫폼이 세계를 주도할 수 있다는 새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난 5월 글로벌 월간이용자(MAU)만 6,400만명에 달하는 네이버웹툰은 아예 본거지를 미국으로 옮겨 유럽과 남미 등 신시장 공략을 준비 중이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디지털 만화라는 장르를 키워 글로벌 업체들과 콘텐츠 경쟁을 하는 틀을 짜고 있다”며 “개발·자금 규모가 20~30배 더 큰 구글이나 알리바바 등과 맞붙으려면 네이버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 하이퍼커넥트가 만든 동영상 채팅 애플리케이션 ‘아자르’도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채팅 앱 사이에서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외국인과 화상통화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차별점은 언택트 시대를 만나 승승장구하며 올해 1월 전 세계 비(非)게임 앱 매출 6위에 오르는 등 탄생 7년 만에 본격적인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언택트 생태계에서 국내 기업의 선전은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끊이지 않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분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택트 최대 수혜 기업인 넷플릭스는 4월 국내 결제 금액이 전월 대비 21% 증가한 439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영향인데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국내 유료방송과 토종 OTT들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콘텐츠 저력을 내세워 동남아와 선진 시장까지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첫 관문인 국내 시장에서조차 훨씬 불리한 여건으로 넷플릭스와 맞서기 때문이다. 글로벌 OTT들은 방송사와 이동통신사 홈쇼핑까지 내는 방송통신발전기금 부과 대상에서 빠져 있고, 이용자보호 의무에 따른 제재에서도 자유로운데다 통신사에 내는 네트워크 사용료 등도 국내 CP보다 훨씬 적은 수준만 낸다. 반면 국내 업체는 규모의 경제를 위한 몸집 불리기에도 2~3개 부처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등 문턱이 적지 않고 세제혜택과 정부 지원도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호소다. 정부와 국회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해법을 찾고 있지만, 해외에 본사와 서버를 둔 글로벌 정보기술(IT)을 통제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국내외 플랫폼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규제 범위와 벌칙은 동일하지 않다”며 “플랫폼 간 건전한 경쟁환경이 다듬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규제 개선 못지않게 언택트 산업에 뛰어드는 국내 기업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클라우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인데 국내에서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강자에 대항해 국내 업체들이 사활을 건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다만 몸집과 기술력 차이를 고려해 정면대결보다는 틈새시장을 노리거나 업체 간 힘을 더하는 방식을 구사한다. KT는 보안에 특히 민감한 공공·금융 클라우드시장을 겨냥하고, 카카오는 메신저와 챗봇으로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클라우드를 내세웠다. SK텔레콤이 클라우드 관리 기업(MSP) 베스핀글로벌과 손잡은 것을 비롯해 삼성SDS·NHN, LG CNS·메가존클라우드, SK C&C·클루커스 등 업계 내 협업도 활발하다. 정부가 공공 부문을 클라우드로 전면 전환해 시장을 키우는 등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보다 적극적인 지원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낡은 법과 제도로는 신산업을 육성할 수 없다”며 “언택트 시대에 걸맞게 네거티브(포괄주의) 중심의 적극적인 규제 개선과 범부처 대응이 가능한 컨트롤타워 설치, 디지털 연구개발(R&D) 투자 세제혜택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임진혁·오지현·백주원기자 liberal@@sedaily.com -
“멈추면 죽는다” 과감한 인력·기술력 투자…초격차로 경쟁사 압도해야
산업 기업 2020.08.02 16:10:15“여기서는 힘껏 달려봐야 제자리야. 나무에서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해.” 영국의 수학자이자 동화 작가인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말이다. 열심히 뛰어도 숲을 벗어날 수 없다는 앨리스에게 붉은 여왕은 “숲이 함께 뛰기 때문에 숲을 벗어나려면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화생물학자 밴 베일른이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로 정리한 진화경쟁의 가설은 기업 경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장의 흐름 속에서 추격하는 경쟁사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으려면 몇 곱절의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최초와 최고의 타이틀에 머물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버린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성장한 우리 기업들은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위기를 맞고 있다. 남들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는 생존마저도 불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실패(구광모 LG그룹 회장)” “지금까지의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을 도모하자(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는 기업 총수들의 외침이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배터리·자동차 등 경쟁사보다 한발 빨랐던 산업 분야의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쫓아오는 중, 달려가는 美·日 위기는 데이터가 보여준다. 지난해 특허청의 ‘특허 빅데이터를 활용한 산업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이 출원한 특허는 고작 8%에 불과하다. 지난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출원·공개된 주요국 특허 11만7,159건 가운데 한국은 6,834건에 그쳤다. 미국과 일본이 이 분야 특허를 각각 37%, 20% 이상 점유하고 있다. 우리가 힘을 쏟고 있는 수소 산업도 일본과 중국이 전체 특허의 51%를 점유했다. 반면 한국의 수소 산업 특허는 점유율 기준 8.4%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연료전지 부문에 쏠려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5월 말 4차 산업혁명의 12개 주요 분야에서 국가별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미국·중국·일본에 비해 현재도, 5년 후에도 열세에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 12개 분야 기술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중국은 108, 일본은 117, 미국은 130으로 그 차이가 제법 컸다. 5년 후에는 중국 113, 일본 113, 미국 123으로 일본과 미국에 대한 기술격차는 줄지만 한국의 비교열위는 이어질 것으로 점쳐졌다. ■‘동기화 전략’ 통한 초격차 실현 우리 기업들의 성장전략은 과감한 인력과 기술투자, 발 빠른 인수합병(M&A)을 통한 선택적 집중으로 요약된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를 넘어 비(非)메모리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삼성전자는 기술개발부터 라인 건설까지 모든 작업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동기화 전략’으로 경쟁사들과 확연히 다른 격차, 즉 초격차를 실현할 계획이다. 지능형 반도체 포럼을 이끌고 있는 박영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단일제품으로 큰 시장을 보유한 메모리반도체부터 파고들어간 삼성전자의 전략적 판단은 적시에 이뤄진 과감한 투자와 결합해 현재의 성과로 이어졌다”며 “데이터센터와 자율주행·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산업이 변화하는 이 시기, 시스템반도체로 (삼성전자가) 진입하기 좋은 시기이자 기회”라고 짚었다. 삼성전자의 초격차는 남들과 다른 투자전략이 바탕이 된다. 극자외선(EUV) 공정을 전격 도입해 양산하는 10나노급(1a) D램, 축적된 미세공정 노하우로 생산하는 최첨단 V낸드 제품 등으로 입증한 기술 리더십을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산업으로 확장한다는 목표는 ‘반도체 비전 2030’으로 구체화됐다. 특히 이 비전 2030은 단순한 시설투자가 아닌 인재 양성과 인프라 확충 등 국가 반도체 생태계까지 고려한 133조원 규모의 투자로, 인텔·퀄컴·TSMC 등 각 분야 경쟁사를 추격할 계획이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도 올해 상반기 14조7,000억원을 반도체 설비투자에 쏟아 부으며 초격차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 성장 포트폴리오 구성 완료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한 가전 사업의 노하우를 소비자의 삶 전체로 확장하려는 LG전자도 신기술 확보를 바탕으로 우월적 지위를 지켜나갈 계획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공간의 경계가 없는 AI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다’는 목표 아래 준비를 해왔던 LG전자는 지난해 산업용 로봇 제조사를 인수하고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서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다. 최근에는 클로이 브랜드로 서비스 로봇 라인업을 추가하고 로봇·인공지능(AI) 분야 전문가를 모셔와 활발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퀀텀점프를 꾀한다. 현대자동차는 오는 2025년까지 61조원을 투자해 스마트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동차 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고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주도하기 위해서다. 내연기관 고수익화, 전동화 선도 리더십, 플랫폼 사업 기반 구축이 3대 전략이다. 핵심인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은 개인용비행체(PAV)·로보틱스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해 이동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2025년까지 고도화된 음성 사용자 경험 및 개인비서 서비스를 적용하는 실험에 들어갔다. 또한 2022년까지 완전자율주행 플랫폼을 개발하고 2024년 양산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미래차 시장을 겨냥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선보이고 기술을 고도화해 2025년까지 배터리전기차·수소전기차 67만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
위기 극복 위해 기업활력 높일 때...규제 샌드박스 속도내야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0.08.02 15:08:46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 감독법 개정을 신속하게 완료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른바 재벌 개혁 3법으로 불리는 세 법안은 현 정부 경제정책 기조의 한 축인 ‘공정경제’를 상징한다. 지난 국회에서 야당과 재계의 반발에 성과를 내지 못했으나 여당이 과반 의석으로 추진 동력을 마련한 만큼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해소에 정부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일주일 뒤 한국은행은 올 2·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3.3% 역성장해 외환위기 이후 가장 저조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4분기에 이어 마이너스 성장세를 이어간 것이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은 국제적으로 경기 후퇴를 공식화하는 경제지표다. 재계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성장동력이 꺼져가고 있는데도 정부가 기업의 기(氣)를 북돋울 혁신안을 내놓기는커녕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공정경제가 결국 반기업법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 주문에 여당은 관련 법안 처리를 서두르겠다며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한 경제단체의 고위관계자는 “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를 중심으로 수차례 성명을 냈고 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호소해보기도 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면서 “경제를 살리겠다면 기업을 질타하는 지지층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실물경기 무너지는데...경영 옥죄는 법안 속출 재계의 이 같은 호소에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에 반(反)기업법안을 무더기로 올리고 있다. 최근 법무부가 제출한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현행 상법은 이사를 선출하고 그중 감사위원을 선임하는데 개정안은 이사 선출 때부터 다른 이사들과 분리 선출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 경우 대주주의 이사선임권이 제한받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감사위원 선임 때 최대주주는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수 지분을 갖는 투기 자본이 연합, 감사위원을 선출해 기업의 내밀한 회계정보를 들여다보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외에 모회사 주식 0.01%를 갖는 주주가 다중대표소송을 낼 수 있게 한 것도 경영에 과도한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 재계에서 “일사불란하게 의사결정을 해도 모자랄 판에 경영권 방어까지 신경 써야 하나”라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주회사 지분 규제가 강화돼 신규로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기존 지주회사가 자회사를 신규 편입할 때 반드시 보유해야 할 자회사 지분을 기존보다 10%포인트를 더 확보하도록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에 따르면 현재 비지주회사인 삼성·현대자동차·포스코 등 16개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때 필요한 추가 비용만도 30조9,000억원에 달한다. 신규 투자에 투입하면 일자리 24만4,086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그럼에도 여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금융그룹 감독법, 상생협력법 등 반기업법 추가 도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위기 국면 속에서 정부가 정책 기조의 초점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 위기가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 실물의 문제로 접어든 만큼 기업의 활력을 회복할 방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영권이 위협받을수록 대주주는 리스크가 있는 과감한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며 “기업을 옥죄기보다는 기를 살릴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말로만 개혁...관료 보신주의에 신사업 막혀 임기 초반 공정경제와 함께 경제정책의 한 축을 이뤘던 혁신성장은 빛이 바래고 있다. 규제를 과감히 드러내 기업의 기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당국의 보신주의적 행정에 막혀 신산업 창출 의지가 꺾이고 있는 것이다. 대표 정책으로 내세웠던 규제 샌드박스만 하더라도 촘촘히 얽힌 규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병원을 거치지 않고 유전체 기업에 의뢰해 검사를 받고 결과를 통보받는 소비자직접의뢰유전자검사(DTC) 사업은 1년째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를 받는 조건으로 바이오 업체가 실증특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심사에 막혀 있는 탓이다.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잇달아 진출하면서 산업재편이 움직임이 나타나는 금융업에서도 정부가 “말로만 혁신”을 외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국은 금융판 규제 샌드박스인 ‘혁신금융 서비스’를 6개월 만에 60개나 지정한 것을 큰 성과로 내밀고는 한다. 하지만 금융혁신 서비스의 근거가 되는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은 사업자가 지정 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사업을 이어가려면 그동안 유예받은 금융규제를 준수할 수 있다고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혁신서비스로 지정되면 4년간 규제를 유예받지만 이후에는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규제개혁 업무를 담당했던 한 정부 관계자는 “대다수 공무원이 ‘규제를 풀어줬다가 나중에 책임질 일이 생기면 어쩌지’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며 “확실한 면책 특권을 보장해야 일선 공무원이 한발 더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
'컴퓨터 달린 불도저’ 백상 장기영, 시대를 바꾸다[서울경제 창간60주년]
문화·스포츠 문화 2020.08.01 07:00:22“나의 뼈는 금융인이요, 몸은 체육인이며, 피는 언론인이다. 그리고 정치인은 나의 얼굴이다.” 쉴 새 없이 솟아나는 아이디어를 가졌다 하여 ‘일백 백(百)’ 자에 ‘생각 상(想)’ 자를 호로 쓴 백상 장기영(1916~1977) 선생이 생전에 그린 자아상이다. 은행원으로 시작해 한국은행의 토대를 다진 금융인이요, 서울경제와 한국일보를 창간한 언론인이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낸 체육인이면서 경제부총리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니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는 별명처럼 치밀함과 추진력을 겸비한 백상은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들고 미답의 영역을 개척해낸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자 시대의 선구자였다. 서울경제 창간 60주년을 맞아 되돌아보는 그의 발자취는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미증유의 혼돈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에게 믿음직한 지표를 제시하기 충분하다. 지난 1916년 5월2일 지금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해당하는 경기도 고양군 한지동에서 태어난 장기영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1등을 도맡았다. 수재들만 입학할 수 있다는 선린상업학교에서도 최상위권에 올랐고 졸업하던 1934년에는 ‘우등 졸업자’로 일간신문에 이름과 사진이 함께 실렸다. 서울대 상대의 전신인 경성고등상업학교에 무시험 입학할 특전을 받았지만 어려워진 가정형편 탓에 진학의 뜻을 접은 그는 지금으로 치면 거대 다국적 기업인 조선은행에 입사해 청어잡이로 번성했던 청진점에서 스무 살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발군의 인재였다. 1943년 은행 내 공모에 제출한 ‘저축과 물가, 그리고 인플레’라는 제목의 논문은 당대의 경제학·사회학 이론에 케인스 이론을 접목해 큰 주목을 받았다. 백상은 이 논문으로 당대 엘리트들이 집결한 조선은행에서 1등 상을 거머쥐었다. 이론에만 밝은 게 아니었다. 백상은 조선은행 최초의 ‘신용대출’을 밀어붙인 주인공이다. 태풍으로 배를 날린 선주가 필사적으로 돈을 구하러 다니는 것을 본 백상은 ‘폭풍우를 뚫고 배를 구하려 한밤중에 뛰어다니는 정신’을 높이 사 담보 없이 선뜻 대출을 권했다고 한다. 유례없는 신용대출을 받아 재기에 성공한 선주는 이후 남한에서 손꼽히는 재벌그룹을 이뤄냈다. 백상의 인재 중시와 사람을 보는 안목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조선은행에서 국가 중앙은행으로 승격된 한국은행으로 적을 옮겨 조사부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6·25전쟁으로 굶주린 인사들을 위한 전시(戰時) 신용대출을 밀어붙였다. 반대가 많았으나 명문으로 펼치는 그의 논리를 거스를 사람은 없었다. 백상이 “피란 온 학자와 문인·예술가 등 저명인사들이 굶어 죽거나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질 경우 전쟁에서 적을 물리쳐도 나라를 재건하는 비용과 시간이 몇 배나 들 것”이라며 강행한 지원 덕에 중요한 인재들은 본업을 중단하지 않고 전쟁통에서 살아남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혜안도 남달랐다. 일제강점기 말 패색이 짙어진 조선총독부의 화폐 남발로 인해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한 1946년, 백상은 서울신문 기고문을 통해 ‘일본이 통화를 남발한 부분을 대일 청구권에 포함시키되 일단 미국에 대신 받아 새로운 조선은행권 발행과 경제건설에 활용하면 초물가고를 잡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훗날 경제부총리로 재임하며 펼친 외자도입 활성화 정책은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이다. 해방 직후인 1948년 7월 조사부 차장 신분으로 발간한 ‘조선경제 연보’는 오늘날 한국은행이 발간하는 국민소득통계·국제수지통계·금융통계·기업경영분석·산업연관표의 원조가 됐다. 금융계에 대한 백상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은행법과 은행법 제정에 대한 기여다. 금융제도 현대화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 김도연 재무장관, 최순주 조선은행 총재가 합의한 사항이었다. 백상은 두 법안의 초안을 작성했고, 재무부를 설득하고 국회에 호소해 기민하게 법의 통과를 이끌었다. 다만 낭중지추라 공만큼 적도 많았다. 한국은행 설립 1년 후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신해 은행원으로서의 1막을 끝낸 그는 언론인으로서 인생의 2막을 열어젖혔다. 언론인 장기영의 첫 행보는 재정난에 빠져 있던 조선일보로 향했다. 1952년 4월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해 2년간 부수 13배 신장의 기록을 이뤄냈다. 이후 타의에 의해 신문사를 나서며 그는 젊은 조국에 걸맞은 새로운 언론의 필요성을 자각했다. 태양일보를 인수해 1954년 6월9일 창간한 한국일보는 뉴스의 가치에 의해 독자에게 인정받고 광고주에게서 광고 게재를 의뢰받는 상업지를 표방했기에 남달랐다. 사장실에 야전침대를 설치하고 철야로 신문제작을 독려한 백상의 일화는 유명하다. 매일 아침 논설실·편집국 합동회의를 주재했고 원탁회의부터 난상토론까지 기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그 자신도 문장가였다. 조사 ‘은·는’과 ‘이·가’가 어떻게 다른지를 기자들에게 설파했고 직접 사설도 썼다. ‘신문기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비롯해 ‘사건이 발생한 그 시간이 바로 마감시간이다’ ‘신문은 비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칭찬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등의 어록은 기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현장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발로 기사를 쓴다’는 표현도 그의 입에서 나왔다. 1960년 8월1일 창간한 서울경제는 13년 숙고의 결과물이었다. 1947년 초 장기영을 포함한 은행의 30대 젊은 실무책임자 8명이 결성한 ‘서울경제연구회’가 시발점이었다. 쟁쟁한 인력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새로 태어난 조국의 경제에 대해 토론했다. 경제신문이 필요하다는 데 뜻이 모였지만 여의치 않아 발간한 ‘경제평론’은 재계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일보가 연착륙하자 재벌그룹 회장이 투자를 자처하며 경제신문 창간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백상은 정중히 고사했다. 신중히 때를 기다렸고, 오랜 동지들인 서울경제연구회의 제안으로 제호 ‘서울경제’ 창간을 결정했다. 백상의 통찰력은 서울경제 지면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백상은 창간 일주일 뒤부터 서울경제에 ‘경제인 왕래’라는 고정란을 운영하도록 했다. 김포공항에 전담기자를 배치해 공항을 오가는 주요 인사들의 출국 일정, 해외 업무 계획을 간략하게 실었는데 해외 출장이 극히 드물던 시대에 누군가 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면 그 자체로 중요한 경영정보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는 길목과 핵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드론 상용화 시대에 앞서 한국 언론에 항공기를 처음 도입한 것도 백상이었다. 항공부를 만들어 단발기와 쌍발기·헬리콥터를 잇따라 사들였고 다양한 항공사진을 실어 지면의 질을 끌어올렸다. 5·16 직후 신문제작용 종이가 부족할 때는 몸소 서울과 부산을 하루 두 번씩 왕복하며 신문용지를 실어날랐고 수해로 배달이 불가능해지면 항공기로 신문을 싣고 가 학교 등의 옥상에 뿌렸다. 백상은 쓴소리여도 바른 소리를 고집했다. 1961년 여름 칠레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정부가 공산권인 유고슬라비아 선수단의 방한도, 우리 대표팀의 원정도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던 장기영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찾아갔다. ‘자칫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설득한 끝에 최종 예선전을 치를 수 있었다. 이때부터 박 대통령이 백상의 범상치 않음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1962년 11월28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로 군부(혁명정부)의 심기를 건드려 사장 겸 편집국장인 장기영을 비롯한 4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자진 정간의 압박을 ‘3일 휴간’으로 버텨내면서 백상은 “한국일보를 3일 정간하는 대신 서울경제를 배달하라”고 감방에서 지시했다. 독자와의 약속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책임자들은 자숙의 모양새를 취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9일 만에 출소한 백상은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 같은 우여곡절에도 박 대통령은 경제이슈가 터질 때마다 “서울경제를 가져오라”고 했으니, 날카로운 분석과 정확한 예측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결정적으로 식량난이 극심하던 1963년 8월 세계적인 곡물 부족 사태 와중에 한국이 일본을 통해 캐나다산 밀가루 10만톤을 수입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막후에서 성사시킨 이가 백상이었다. 공식 외교채널로도 해결할 수 없던 곡물 수입을 백상이 일본 내 인맥을 총동원해 이뤄낸 것이다. 이듬해인 1964년 5월11일 백상은 박 대통령이 단행한 개각에 따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입각했다. 좀체 측근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는 박 대통령이 경제 분야만큼은 전권을 일임했다. 경제난국 속에 등장한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취임식에서 ‘물가를 때려잡고 저축을 늘릴 테니 6개월만 참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 약속대로 한국 경제는 백상이 경제부총리로 재임하던 기간 중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고속성장 가도에 들어섰다. 경제기획원은 백상이 서울경제신문·한국일보 발행인으로 복귀한 1967년 10월까지 최강 경제부처로서 한국 경제의 고속질주를 이끌었다. 문화·스포츠는 백상의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추상미술의 선구자 중 한 명이자 해방 후 프랑스 현지에서 이름을 떨친 첫 번째 한국화가인 거장 남관(1911~1990)을 국내에서 먼저 알아본 이가 바로 백상이었다.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처음 개최한 이도 백상이다. 우리의 씨름이 일본의 스모에 뒤질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프로야구의 초석도 다졌다. 1971년 첫 경기를 시작한 봉황대기 고교야구는 지방의 무명선수들을 서울운동장 마운드에서 주목받게 했고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의 모국 방문경기로도 이어졌다. 소설가 황석영에게는 ‘뚝심 있는 후원자’였다. 황 작가는 1974년 연재를 시작한 대하소설 ‘장길산’을 준비한다며 ‘자료 조사비’ 명목으로 백상에게서 ‘집 반 채값 정도’의 거금을 받아갔는데 보름 만에 술값으로 돈을 날렸다. 다시 찾아간 그에게 백상은 돈과 함께 단골 술집의 명함을 주며 “달아놓고 마시라”고 타일렀다. 꼬박 10년이 걸린 ‘장길산’의 완결을 보지 못한 채 백상은 타계했지만 연재소설은 유훈처럼 지속됐다. 시대를 앞서 간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는데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의 해인 1975년에는 공채로 여기자만 뽑았다. 백상과 함께 한국 경제는 승승장구했으나 유신 정부의 언론통제는 심각해졌다. 권력에 의해 쫓겨나는 기자들이 생겨났으나 서울경제와 한국일보만은 해직 기자가 없었다. 백상이 이들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정작 백상 자신의 건강은 챙기지 못했다. 남들의 네다섯 배나 열정적인 인생을 산 백상은 우리 나이 겨우 62세로 타계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한국의 경제·언론·정치·문화·스포츠는 또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을지 모를 일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
문 대통령 "코로나 위기 극복위해 서울경제신문 역할 소중" ...[서울경제 창간 60주년 기념식 축하 메시지]
사회 피플 2020.07.31 22: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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