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해석이야 전적으로 관객들의 몫이라지만 이처럼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접할 때면 아무래도 연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물어봤다. 장면들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연출됐는지를. 인터뷰는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6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단풍이 곱게 물든 삼청동을 바라보며 “서울의 가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며 찬사를 보냈다.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허먼 멜빌의 ‘백경’과 고래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기자간담회에서 고래의 의미에 대해 “‘백경’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청소년기를 지나는 친구들에게는 반드시 추천해주는 작품”이라며 “각자의 다양한 해석을 존중하기에 그 의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바 있는데, 과연 그 소설에 대한 감독 자신의 해석은 어떠하였는지가 궁금해진다.
▶‘괴물의 아이’에서 ‘렌’의 친구 ‘카에데’가 “선장은 결국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 말하는 데 그것이 나의 해석과 가깝다. 선장 에이허브는 거대 고래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게 되면서 고래를 쫓게 되는데 그 집념이 무섭다. ‘악마의 아이’, ‘괴물’이라고 이름 붙여가며 쫓는데 나중에 가면 이 무모한 추적 탓에 배에 탄 모두가 다 죽고 마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그때에 이르자 나는 과연 모비딕이 괴물 고래인지 그걸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선장이 괴물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모비딕이란 결국 자신의 내면 안에서 자라는 어둠, 괴물인 것은 아닐까.
덧붙여 ‘괴물의 아이’라는 작품의 제목도 여러 의미를 띈다. 괴물이 키운 아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괴물이 곧 아이(인간)이라는 해석*도 된다.*(일본어 조사 ‘の’는 동격인 ‘~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 ‘괴물인 아이’.) 그렇게 여러 의미를 담아 보려 했다.
◇인간 사회를 대표하는 장소로 일본 최대의 번화가 중 하나인 ‘시부야(澁谷)’가 나온다. 또 시부야와 연결되는 괴물의 마을 이름은 ‘쥬텐가이(澁天街)’다. 각각의 설정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인간은 이면이 있기에 매력적이다. 마을도 마찬가지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부야’라는 가장 화려한 장소가 있지만, 뒤편에는 외면의 화려함만으로는 알기 힘든 이면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숨겨져 있다면 신선할 것 같았다. ‘쥬텐가이’는 시부야의 ‘시부’ 라는 한자에 사람보다 높은 영혼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는 의미를 담아 하늘 ‘천’자를 붙여 이름 지었다. 쉽게 말해 시부야 뒤편에 있는 높은 영혼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신주쿠’의 뒤편에는 ‘신텐가이’가 있을 수 있다. 지하철 야마노테선 역(우리나라로 치면 지하철 2호선)마다 이런 짐승의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시부야에서의 사건들을 그릴 때 CCTV가 촬영하는 듯한 장면 묘사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유가 뭔가.
▶비슷한 이야기다. 우리가 비디오로 찍는 세상과 실제 체험하는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실제 공간에서는 눈에 보이는 고래의 그림자가 CCTV에서는 잡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다.
◇쿠마테츠와 렌의 관계는 묘하다. 스승과 제자지만 아버지와 아들 같기도 하고 반면 상하 관계를 느낄 수 없어 친구 같기도 하다. 요즘 세대 갈등 문제가 많은데 의식한 설정일까.
▶현대 사회의 세대 갈등이나 지역 갈등을 화두로 올리면 언제나 누가 더 낫다는 평가가 뒤따르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스승과 제자 혹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 말할 때는 스승 혹은 아버지가 훨씬 훌륭하기에 제자나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아이는 어른을 이길 수 없다는 인식. 하지만 직접 아이를 길러보니 반드시 그런 게 아니라 아이를 통해 어른도 자란다는 걸 깨닫게 됐다. 작품 속에서도 쿠마테츠가 더 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큐타를 가르치는 위치에 놓이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 영향을 받을 뿐이다.
덧붙여 내가 ‘괴물의 아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큐타’가 쿠마테츠의 동작을 미리 읽어 이기는 장면이다. 남자아이는 남자 어른들을 힘으로는 이길 수 없어 자신을 무력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장면을 보면 남자아이들이 매우 후련해할 것이다.
◇전작인 ‘늑대아이’에서는 싱글 맘이 나오고 이번 작품에서도 타인에 의한 육아를 말하고 있다. 설정을 굳이 이렇게 한 이유는.
▶선진국 국가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일본 또한 아이를 적게 낳고(소자화), 결혼이 늦어지며(만혼화), 아예 결혼하지 않는(미혼화) 사람이 늘고 있다. 즉 앞으로는 아이가 있는 사람들보다 독신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성립될 수 없을 테고 우리의 상식도 바뀌어야 한다. 가족이 변하면 사회가 변하고,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이 다 변할 수 밖에 없는데 나는 우리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 흥미가 있는 한편 문제의식도 가진다. 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싱글 맘을 넘어 미혼(독신)인 어른도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봤다. 미혼 어른들도 공동으로 부모가 될 가능성. 그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전통 세대와 독신으로 살아갈 요즘 세대 간의 넓은 간극을 메워보고 싶었다.
◇작품만을 놓고 보자면 그런 변화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바뀌는 사회에 대해 낙관적인 건가.
▶낙관적이기 보다는 희망을 품고 싶은 것이다. 가족의 해체나 변화는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 현실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실망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전통적인 가족이 좋다거나 대가족일 때가 모두 사이 좋았다거나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봉건적인 과거와 가족 형태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 현재 가족이 해체되고 일그러져 가는 게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가족 형태, 대안적인 가족을 보여주고 싶고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본인 또한 ‘늑대아이’ 때는 아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됐다. 달라진 것들이 있는지, 본인은 어떤 아버지인지 궁금하다.
▶3살 남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되었다는 실감이 들지 않는다. 아내는 아이를 낳는 순간 엄마가 되었고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이다. 나는 아직도 아내의 보조자 정도에 불과한 것 같다(웃음). 이유는 아이가 아직 많이 어려서 그런 측면도 있는 듯하다. 아버지가 필요한 나이가 되려면 최소한 ‘큐타’ 정도의 나이는 돼야 할 것 같다. 아이가 마음의 지향점을 찾으려 하는 나이가 되면 그때 비로소 아버지의 존재가 필요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때 필요한 아버지의 존재가 꼭 친아버지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자라는 데는 여러 종류의 아버지가 필요하니깐.
이를테면 나는 내 아이에게 작품 속 큐타의 실제 아버지, 즉 약하고 특별히 기댈 구석이 없는 아버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본받을 만한, 괜찮은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내가 나의 친아버지만을 보고 그 영향만을 받은 게 아니다. 내가 인생의 목표로 생각하고 바라본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굳이 내가 내 아이에게 강한 아버지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자라나며 스스로 존경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많이 찾길 바라고 그런 사람을 만날 운이 있으면 그걸로 좋을 것 같다.
◇과거 인터뷰를 보면 3D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오고 있지만 결국 승리하는 것은 손으로 그리는 그림이 될 것이고, 스스로도 2D를 고집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그 생각은 변함이 없나.
▶개인적인 의견은 변함이 없다.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마음을 그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걸 그리기 위한 최고의 도구는 손이다. 하지만 내 작품에서도 CG가 크게 늘고 있는 게 사실이라서 손 그림만이 최고다라고 얘기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특히 이번엔 굉장히 많이 들어가서(웃음). 그래도 손 그림 애니메이션을 계속 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풀CG나 3D 애니메이션은 그림이나 이미지가 너무 비슷비슷해져 가고 있다. 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싶고 계속 할 테지만 점점 CG 분량이 늘어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사진제공=얼리버드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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