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에서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무대가 펼쳐졌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 서태지와 2017년 현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 방탄소년단은 서태지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 ‘롯데카드 무브ː사운드트랙 vol.2 서태지 25’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히트곡 8곡을 재현했다.
이날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은 ‘난 알아요’부터 ‘이 밤이 깊어가지만’, ‘환상 속의 그대’, ‘하여가’, ‘너에게’, ‘교실이데아’, ‘컴백홈’ 등 총 8곡의 무대를 함께 선보였다. 이들은 20년도 넘는 나이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안정된 호흡을 나누며 팬들을 일순간에 90년대로 돌려놨다.
물론 기념비적인 성과를 달성한 선배의 공연에 후배가수가 헌정 무대를 선보이는 일은 이전에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무대는 단순히 선후배가 함께 25년 전 무대를 재현했다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단순히 ‘현재 인기가 많은 그룹이라서?’ 라고 갈무리하기에는 방탄소년단을 향한 서태지의 신뢰는 두터워 보였다. 평소에도 음향이나 무대 연출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것으로 유명한 서태지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의미를 가지는 공연에, 방탄소년단에게 8곡이나 맡겼으니 말이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그 당시 가요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대부분의 음악 평론가들은 그들에게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랩이라는 장르부터 화려한 퍼포먼스,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한 의상까지, 그들은 당시 10대들을 대중문화의 소비주체로 끌어 올리며 신드롬에 가까운 파급력을 행사했다.
무엇보다 획일적인 교육 현실을 비판한 ‘교실이데아’, 사회 부조리를 비판한 ‘시대유감’, 가출 청소년들의 귀가를 종용하는 ‘컴백홈’까지 당시의 청춘들이 떠안고 살아가는 사회적 메시지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 그들의 공감을 얻었다.
2013년 가요계에 첫발을 디딘 방탄소년단은 믹스테이프를 만드는 아이돌로 등장했다. 데뷔 전부터 왕따를 비롯한 사회 이슈나 소소한 일상을 랩으로 표현하고 줄곧 자신들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냈다. 데뷔곡 ‘No More Dream’을 시작으로 ‘N.O’, ‘등골브레이커’, ‘핸드폰 좀 꺼줄래’ 등의 곡들은 자신들이 바라보고 느낀 사회의 모습을 담아 청소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기세를 몰아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전 세계적인 분위기로 확장된다. 올해 5월 케이팝 그룹 최초로 미국 3대 음악 시상식 중 하나인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한국 가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바 있다.
서태지가 방탄소년단에 주목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랑’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신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방탄소년단의 모습이 90년대의 자신의 모습과 상당부분 맞물렸을 것.
이날 콘서트에서 많은 이들이 인상 깊은 무대로 손꼽았던 ‘교실이데아’와 ‘컴백홈’ 무대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함께 제복을 갖춰 입고 등장한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은 ‘교실이데아’ 특유의 거친 래핑을 주고받으며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달라진 것 하나 없는 교육현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메시지는 또 하나의 줄기로 한 데 합쳐진다. 서태지와 지민이 어깨동무를 하고, 멤버들과 주먹을 맞부딪치는 모습등이 단순한 퍼포먼스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공연에서 무대를 펼치던 방탄소년단 지민은 “형님, 오늘 장난 아닙니다”라고 이야기 했고, 이에 서태지는 “이제는 너희들의 시대다. 보여줘”라고 흐뭇하게 웃으며 방탄소년단의 퍼포먼스를 유도했다. 서태지에 열광했던 ‘서태지 세대’도, 서태지라는 가수의 실체를 이날 처음 목도했을 ‘비(非) 서태지 세대’도 음악의 힘 하나로 한데 얽히고설킨 순간이다.
30주년을 내다보며 음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서태지, 하루하루 진보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서태지의 눈은 정확했고, 이들이 이뤄낸 호흡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들의 만남에 벌써부터 기대가 앞선다.
한편, 방탄소년단은 오는 18일 미니 앨범 ‘LOVE YOURSELF 承 ‘Her’으로 컴백을 앞두고 있다. 내년까지 이어질 시리즈의 첫 번째 앨범인 만큼, 이들이 새롭게 선보일 세계관에 대해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 되고 있다.
/서경스타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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