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도시’의 한 장면. 마석도 서울 금천경찰서 소속 강력계 형사가 김포공항 화장실에서 중국으로 도망치려는 조선족 조직폭력배 장첸을 잡기 위해 격투를 벌인다. 그는 맨손으로 장첸을 그야말로 때려잡는다. 무기 하나 없이 맨주먹으로 악당을 통쾌하게 제압하는 마 형사의 액션에 관객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경찰들은 현실에서도 마 형사처럼 두 주먹으로 범죄자를 제압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아니다. 서울 한 경찰서의 강력계 팀장은 “용의자 체포 현장에는 예상치 못한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영화처럼 맨주먹만 믿고 나가기는 위험하다”며 웃었다. 경찰이 범죄 용의자를 제압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비밀무기’에 대해 알아본다.
경찰의 개인 장비는 크게 장구류와 무기류로 분류된다.
호신용경봉·테이저건 등 저항하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장비는 장구로, 권총·기관총 등 살상까지 가능한 장비는 무기로 분류된다.
경찰이 가장 흔히 쓰는 장구는 호신용경봉(삼단봉)과 경찰봉이다. 경찰봉(전장 52㎝)보다 가볍고 휴대하기 편한 호신용경봉(전장 65㎝, 축소장 21㎝)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할 때 가장 많이 쓰는 장구는 전자충격기로 이른바 테이저건(Taser Gun) 이다. 테이저건은 유효사거리가 4~5m로 5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전선이 달린 전기 침 두 개가 발사된다. 이 침에 맞으면 중추신경계가 일시적으로 마비돼 상대를 5초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경찰은 이 밖에도 호루라기, 총과 칼을 막는 방검 방탄복, 휴대용 무전기 등 장구를 착용한다. 서울 강남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A 경위는 “삼단봉은 범인과 격투를 하다 보면 잘 휘어지고 약해 상대를 제압하기 어렵다”면서 “테이저건은 한번 맞으면 범인이 아예 옴짝달싹할 수 없기 때문에 강력범죄 사건 용의자를 체포할 때는 꼭 챙긴다”고 말했다.
경찰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무기는 38구경 리볼버 권총과 K3기관총이다. 권총은 스미스앤웨슨(Smith & Wesson)사의 리볼버 38구경으로 구형인 4인치와 신형인 3인치 두 종류를 모두 사용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리볼버는 약실에 탄환을 오랫동안 넣어둬도 잔고장이 별로 없다”며 “총기 소지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경찰이 살상용 무기인 권총을 쓰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라 잔고장이 적은 리볼버가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K3기관총은 대간첩작전이나 전시 등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공용화기로 각 경찰서 분대(10명가량)별로 1정씩 운용한다.
장구와 무기는 출동 현장 상황에 따라 사용된다.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이 2인 1조로 순찰할 때는 한 사람은 권총을, 다른 사람은 테이저건을 휴대한다. 언제든 위험한 강력계 당직자는 경찰서 안에서도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 또 현장에 출동할 때는 상황에 따라 권총이나 테이저건을 개별 경찰관에게 지급한다. 지난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때 헌법재판소 안팎을 지켰던 경찰들은 실탄을 장전한 총을 휴대했다. 또 포항 지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됐던 11월에는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수능 시험지를 지켰다.
경찰이 사용할 수 있는 장구와 무기는 다양하지만 정작 실제로 사용하는 사례는 드물다. 경찰청이 2015년 경찰관 공상 사건 402건을 분석한 결과 대응 과정에서 전자충격기를 사용한 경우는 전체 사건 가운데 6.1%에 불과했다. 권총을 사용한 경우는 2.8%에 그쳤다.
경찰이 장비 사용을 꺼리는 것은 의도치 않게 인명피해가 나거나 인권침해 논란이 생기면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10조’에 따라 무기를 사용할 수 있지만 기준이 모호해 자칫 잘못 사용하면 모든 책임을 경찰이 져야 한다. 경찰관 집무집행법에 따라 총기 사용이 허가되는 경우는 △정당방위·긴급피난 시 △징역 3년 이상의 실형을 받을 수 있는 피의자가 저항·도주 시 △영장집행과 대간첩작전 △위험 물건 소지 범인을 체포할 때 등이다. 테이저건 등 장구는 △징역 3년 이상의 실형을 받을 수 있는 피의자가 저항·도주할 때 △자신 또는 타인 신체보호 △공무집행을 방해할 때 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무기와 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정당방위만 해도 어떤 경우에 인정되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범죄현장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시나리오별 사용 매뉴얼을 만들어야 경찰이 적시 적소에서 무기와 장구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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