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이력을 보면 왜 이 사이트가 가장 사회적 물의가 많았던 커뮤니티인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세월호 유가족 시위 때 ‘폭식투쟁’을 벌이며 고인 능욕을 했던 게 대표적입니다. 명절마다 ‘사촌인증’이란 이름으로 여자 사촌 동생의 나체를 몰래 찍은 사진이 올라오는 것도 악명이 높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선 상습적으로 비하 게시물이 올라오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선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등 극우 성향도 뚜렷했죠.
이런 일베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사이트 폐쇄를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베 폐쇄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일베 폐쇄 vs 표현의 자유,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봐야할까요?
■5년 전 ‘일베 폐쇄 논쟁’, 부활하다
일베 폐쇄 논쟁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3년 5월 신경민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은 “표현의 자유도 최소한의 기본은 지켜야 한다”며 ‘일베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일베의 해악이 크더라도 폐쇄까지 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반박도 나왔습니다.
조국 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허위사실 유포, 인종학살 부인, 하드코어 포르노 등 민주주의 나라에서도 처벌되는 표현이 있다”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합헌적 제한은 가능하다”고 폐쇄 찬성 의사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는 “지금 당장 일베의 폐쇄를 논하기는 이르다”며 악성 게시물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차원의 경고나 삭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습니다.
5년 전 불거졌던 ‘일베 폐쇄 논란’이 다시금 불붙은 발단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 청원입니다.
올해 1월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사이트 폐쇄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원글이 등록됐습니다. 2월 말엔 23만5,000명 이상이 이 청원에 함께했습니다. 이에 3월 23일엔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직접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는지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5년 전 재야에서 ‘일베 폐쇄’에 찬성했던 조국 교수는 이제 청와대 민정수석입니다. 야권에서 ‘일베’와 대립각을 세우던 진보진영이 이제는 공권력을 쥐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권력이 일베를 폐쇄할 수 있는지’ 여부도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관건은 ‘불법성’입니다. ‘국가 권력은 오로지 법을 통해서만 각자의 표현의 자유를 규제할 수 있다’는 건 법치국가의 핵심 원리입니다. 일베를 폐쇄하려면, 일베 전체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걸 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혐오발언이나 명예훼손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제한할 수 있다”
김형연 법무비서관이 23일 ‘일베 폐쇄 청원’에 답할 때도 핵심은 ‘불법성’이었습니다. 김 비서관은 “헌법에도 명시됐듯,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를 갖는 동시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가짜뉴스 등 불법정보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개인의 명예나 권리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불법정보’로 개인이나 사회가 피해를 보게 되면, 그 표현의 자유는 공권력을 통해 제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 비서관은 일베의 ‘불법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두 단서를 달았습니다. 하나는 방심위에서 내놓은 ‘불법정보 70%’ 조항입니다. 방심위는 웹사이트 전체 게시물 중 불법정보가 70%에 달하면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접속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대법원의 판례입니다. 김 비서관은 “일반적으론 개별 게시물 단위로 불법정보를 판단하지만 개별 정보의 집합체인 웹사이트 전체를 불법정보로 판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대법원 판례에선 불법정보 비중만 보는 게 아니라, 해당 사이트의 제작의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사이트 폐쇄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죠. 즉, 청와대 논리대로면, △일베 사이트에서 ‘불법정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이고 △‘제작의도’ 등 사이트 전체에 불법적 성격이 있다고 판단하면 일베는 폐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베의 ‘불법성’, 입증할 수 있을까?
그러나 청와대의 기준대로 갔을 때 일베를 불법 사이트라고 결론 내리긴 어려워 보입니다. 일베에 있는 ‘불법정보’가 70% 이상이라고 판단하기 힘든데다가 일베의 태생 자체를 ‘불법’이라고 해석하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일베 유저들에게 문제가 많지만 이를 근거로 일베 전체를 불법이라고 결론 내리는 건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특히 ‘불법정보’를 규정하고 있는 법제가 모호한 게 걸림돌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냈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공권력은 불법적인 정보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혐오발언에 대해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제가 뚜렷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박 교수는 “일베 안엔 명예훼손 등 불법 정보들이 분명 있긴 하지만, 그게 ‘70%’를 넘진 않았다”며 “따라서 방심위에서 심의해도 일베 폐쇄를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베의 설립의도에 불법성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렸습니다. 박 교수는 23일 MBC 라디오 ‘박지훈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불법) 도박사이트나 음란사이트는 기본적으로 음란물이나 도박물로 공간을 다 채우는 데 상업적 취지가 있지만, 일베는 그렇진 않다”며 “거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을 만한 의견이라도 주고받기 위해 일베에 접속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소라넷이나 자주민보 등은 각각 음란물 유포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 법적 근거가 있어 폐쇄가 이뤄진 바 있습니다.
■‘쥐박이’와 ‘노알라’의 딜레마, ‘표현’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일베 폐쇄론이 나올 때마다 ‘표현의 자유’는 일베를 보호하는 ‘방패막’처럼 동원되곤 했습니다. 그동안 진보적 아젠다였던 표현의 자유가 극우·반사회 성향의 일베를 표현하는 어구로 쓰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강정석 지식순환협동조합 사무국장은 2013년 <문화과학>에 기고한 “<일간베스트저장소>, 일베의 부상(浮上)”이란 논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일베를 향하여 각종 비난들이 쏟아질 때, 일베 이용자들은 천연덕스럽게 ‘표현의 자유’를 운운했다. 즉 이명박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쥐박이’를 그린 사람이 체포되었을 때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이를 비판했던 많은 진보적 시민들이 했던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지점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베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차별금지법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까?”(<일간베스트저장소>, 일베의 부상(浮上),<문화과학> 75호, 2013, 296쪽)
비유하자면 ‘쥐박이’와 ‘노알라(노무현 전 대통령을 코알라에 빗대 비하하는 표현)’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쥐명박’을 외친 사람들이 체포됐을 때 공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일베를 폐쇄하게 된다면 이 전 대통령 때와 같은 모양새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일베가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사이트 폐쇄를 추진하는 것보단, 법적 토대를 통해 자정작용을 유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강 사무국장은 논문에서 “정재원(국민대 교수)의 말대로 일베의 혐오적 발언들을 카테고리로 나눠(역사적 사실, 죽은 사람, 여성·이주노동자 등의 소수자) 사안 별로, 그리고 게시물 별로 구분하여 법적 대응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표현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이번 ‘일베 폐쇄’ 논란이 표현의 질에 대한 토론의 계기로 발전하길 기대해 봅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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