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4일 전후 최장수 일본 총리였던 사토 에이사쿠의 재임기록(2,789일)을 넘어 최장수 총리가 됐다. 오는 11월19일에는 메이지유신 이후 최장수 총리라는 가쓰라 다로의 기록(2,886일)도 경신한다. 자민당 총재 임기가 2021년 9월까지이니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아베 총리는 근대 일본이 형성된 후 최장수라는 기록으로 한동안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이러한 성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냉전이 붕괴된 후 지난 30년 동안 일본에서는 두 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보통국가화를 추구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보수정권을 대신하는 비자민 연립정권과 민주당 정권이 짧은 기간이나마 출범했던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에는 일본의 보수화라는 설명 외의 것이 필요하다. 또 일본의 보수화는 무엇인지,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은 크게 수요자와 공급자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 수요자 측면에서 무엇보다 아베 총리 또는 자민당이 제시하는 가치 및 정책에 동의하는 지지자 이외의 유권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정당 지지율을 선거 득표율 또는 내각 지지율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일례로 소비세율 10%로 인상, 집단적 자위권 도입이 주요 쟁점이었던 지난 2014년 12월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절반을 훨씬 넘는 291석을 차지했다. 당시 소선거구 득표율은 48%, 비례대표구는 33%였다.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자민당 지지율이 36%였던 것을 고려하면 고정 지지자 외의 유권자가 자민당을 지지했음을 보여준다. 연립정권에 참여한 공명당 지지자들이 보내는 선거협력으로도 볼 수 있지만 국제 정세의 변화에 집단적 자위권 도입으로 대응하겠다는 아베 총리 및 자민당을 용인하는 무당파층의 지지로도 볼 수 있다. 이번 11일 개각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60%에 육박해 8월 일본 TV 조사(40%)와 큰 차이를 보였다. 이 역시 한국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 아베 총리의 정권 및 정책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고정 지지층 외에도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급자 측면에서는 아베 총리나 자민당이 발휘하는 정책적 또는 이념적 유연성이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에 대한 유연성을 예로 들 수 있다. 헌법 개정은 자민당 총재로서 뿐 아니라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로부터 물려받은 과제라는 점에서 아베 총리가 집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결코 서두르거나 그것만을 추진하는 모양새를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연립정권 파트너인 공명당의 미온적인 태도나 참의원 및 국민투표 통과 불확실성 등과 같은 조건의 미성숙이 고려된 것이지만 아베 총리가 정권 유지는 물론 정치 안정이라는 우선목표에 준해 무리하게 강행하지 않는 점에서 유연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한 양상의 헌법 개정 가능성이 제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연성은 보수주의의 주요 특징이요, 장점 중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쉽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 부패 스캔들 위기를 파벌 간 중재로 극복하고 야당으로의 전락을 정적인 사회당과의 대연립 형성이라는 결단으로 극복한 전통이 아베 총리와 자민당 내에 살아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일본은 현재와 같은 혼돈의 시대에 정부와 시민이 대처해야 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냉전 붕괴 이후 자리 잡았던 낙관론이 테러리즘의 증가와 중국의 공세적 부상,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대두와 같은 서구의 보호주의적 대응 등 불확실성과 혼돈의 시대로 변화하는 것에 대해 국가가 하나 될 수 있도록 실용적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혼돈의 시대를 함께하는 우리도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역사적 소명은 현실을 명확히 보고 기존의 안녕을 지킬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대응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 하겠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