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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장관시켜줬다고 선거 총알받이?…"국무위원이 장기판 졸 인가"

■고위관료 총선 차출 논란

경제부총리 등 10여명 차출설 공공연히 흘리는 여당

무더기 징발 참여정부 데자뷔…낙선자 '보은인사'도

평양감사도 싫으면 그만인데 권위주의시절 되풀이

행정의 정치화 부추기는 후진적 정치문화 '적폐'

3개월 선거운동 한계·"장관 명함 통하지 않아"지적도

지난 5월 홍남기(앞줄 오른쪽) 경제부총리와 최종구(〃왼쪽) 금융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뒤쪽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흐릿하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내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이들 4명을 포함해 장차관 10여명 징발설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수원 무 ) 의원과 김광림 자유한국당(경북 안동) 의원은 닮은 점이 많다. 정통 경제관료에서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두 의원은 현재의 기획재정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행시 13회인 김진표 의원은 김광림 의원보다 한 회 선배다. 김진표 의원은 참여정부 초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 발탁되자 당시 특허청장인 김광림 의원을 재경부 차관으로 불렀다고 한다. 남다른 인연 덕에 두 의원은 정치적 노선이 다름에도 국회에서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두 사람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 지도부로부터 총선 출마 압력에 시달린 것도 공통점이다. 김진표 부총리는 “경제 챙기기에 집중할 것”이라며 출마설을 부인했지만 결국 고향인 수원 영통구에 출마했다. 수도권 격전지에 뛰어든 김 부총리는 선거판을 강타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덕에 금배지를 달았다. 반면 김광림 차관은 끝내 고향인 경북 안동에 출마하지 않았다. “모친의 간곡한 만류가 있었다”는 김 차관의 불출마 변은 지금도 관가에 회자된다. 그는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안동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다.

내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권발 전현직 장차관 징발설에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 김용진 전 기획재정부 2차관이 13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여권 내부에서는 경제관료 차출 대상으로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구윤철 기재부 2차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본인들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고위관료의 총선 차출론은 여권 내부에서 확산일로다. 여당은 ‘장차관 10여명 징발론’을 공공연히 흘리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징발론도 거론된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차출 리스트에 오른 한 관료는 “정치는 관심 밖이라는 뜻을 전했지만 내 의사가 관철될지 미지수다. 그래서 더 고민스럽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료는 “죽을 맛”이라고 했다.

본인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장차관의 총선 출마설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뭔가. 경험칙이다. 관가에서는 15년 전 무더기로 ‘총알받이’에 나섰던 참여정부의 데자뷔로 보는 분위기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전현직 고위관료는 10명이 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신년 첫 국무회의에서 “장관 차출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김 부총리를 비롯해 윤덕홍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이영탁 국무조정실장 등 5명의 현직 장관이 징발됐다.

지난 8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회의에 참석한 장관들. 강경화(왼쪽부터) 외교부 장관, 홍남기 경제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현역 의원인 박 장관은 불출마를 고려하는 가운데 나머지 4명의 전현직 장관은 내년 4월 총선 차출설이 여당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관가에서는 해가 넘어가기 전까지 관료들의 출마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는 반응이다. 정치권의 출마 종용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공직자 사퇴시한(내년 1월16일)까지 장차관들이 현직에서 출마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영입과 차출의 경계선도 모호하다.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관료에 대한 최대의 보상은 승진”이라며 “장관을 시켜줬는데 죽어도 출전하지 못하겠다고 거절할 공무원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차출이든 영입이든 정통관료의 선거 등판은 역대 정부마다 전가의 보도였다.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내세우면 관료만 한 인재 풀도 없다. 전문성과 정책 역량이 높아 다른 직군에 비해 의정활동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정치권이 취약한 경제통이라면 금상첨화다.

관료의 정치판 끌어넣기는 보수정부보다 진보정부에서 많았고 압박 강도도 컸다. 관료의 속성상 보수 성향인지라 장차관 출전은 험지에서 나름 경쟁력이 있다. 지명도가 높아 전국적인 흥행 효과도 기대된다. 참여정부 시절 여당은 지역구도 타파를 명분 삼아 사생결단식으로 관료를 징발했다. 2003년 집권 첫해 ‘개혁 정당, 100년 정당’을 표방하며 창당한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은 고작 47명. 원내 제3당으로 영호남 지역 기반을 모두 잃다 보니 인물난에 허덕였던 것이다. 참여정부는 험지에서 장렬히 전사한 경우 ‘보은 인사’로 빚을 갚았다. 경북 영주와 구미에서 각각 낙선한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과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차관은 이듬해 한국거래소 이사장과 건교부 장관에 발탁됐다.



이명박(MB) 정부 때는 두 차례의 총선이 있었다. 집권 2개월 만에 치렀던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관료 차출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지만 19대 총선 때는 달랐다. “경제관료들이 많이 나가달라”는 MB의 주문이 나왔다. 당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류성걸 기재부 2차관, 김희국 국토해양부 2차관 등이 그에 해당한다. 박근혜 정부 때 실시된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등이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당선됐다. 진보정부의 차출이 험지 위주였지만 보수정부 때는 영남권과 서울 강남 등 텃밭에 출전한 게 차이라면 차이다.

고위관료의 출마 지역은 대개 고향 아니면 수도권이다. 하지만 여당의 텃밭이 아니라면 현실정치의 벽은 높다. 현직에서 옷을 벗고 3개월 선거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 30여년간 고향을 등지다 귀향한 것부터 지역 유권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20대 총선 출마를 진지하게 검토한 전직 관료의 경험담은 이렇다. “지역구로 내려갔더니 지역 총책이 선거자금으로 3억원부터 내놓으라고 하더라. 돈도 돈이었지만 도와줄 것으로 여겼던 고교 동창이 ‘네가 고향 발전에 뭘 했는데’라는 쓴소리에 말문이 막혔다.” 그는 고심 끝에 출마를 접었다.



지난 2012년 19대 4·11 총선을 하루 앞둔 10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서울 수서역 사거리에서 열린 새누리당 강남 지역 출마 후보 합동 지원유세에서 김종훈 강남을 후보를 등에 업고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가의 시각도 곱지 않다. 경제부처 국장급 간부는 “선거 차출설이 들릴 때마다 공직자로서 모욕감을 느낀다”며 “정무직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장기판 졸처럼 이리저리 차출한다면 정치권에 줄을 대거나 눈치 보기밖에 더하겠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관료의 전문성이 정 필요하면 비례대표로 영입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20대 총선에 출마했던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관료의 정치권 진출은 국회 전문성 제고 차원에서 의미가 있지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장차관 명함이 통하는 시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선거에서 여당 프리미엄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연말·연초 선거용 개각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차출 대상에 오른 고위관료들의 출마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만 여당의 압박 강도와 청와대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판에 억지 춘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권위주의 시절의 잔재이자 후진적 정치문화다. 평양 감사도 본인이 싫다면 그만인데 지금이 어느 시절인가. 이 또한 적폐가 아닌가.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장관만 4번하고도 고배…8명 중 절반은 낙선


2002년에는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선이 치러졌다. 지방선거 1개월을 앞둔 5월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천년민주당 6·13 지방선거 필승 결의대회에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진념 경기지사 후보의 대형 사진 아래에서 진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부총리의 선거 인연은 꽤 깊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진 1994년 12월 홍재형 초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 이후 경제사령탑은 22명이다. 이 중 11명이 국회의원과 연관이 있다. 국회의원을 하다가 부총리가 된 사람도 있고 퇴임 이후 선출직에 도전한 경우도 있다. 이런 전력은 홍남기 현 경제부총리의 총선 차출설이 끊이지 않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결과는 어떨까. 전국적 지명도를 갖췄지만 현실정치의 벽은 높았다. 출마자 8명 가운데 절반만 뜻을 이뤘다. 전현직 의원 출신을 제외한 정치 신인으로 좁히면 5명 가운데 3명이 고배를 마셨다.

홍재형 부총리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집권 신한국당 후보로 충북 청주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충청권의 맹주인 김종필(JP) 총재가 이끈 자유민주연합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초선 도전에 실패한 후 16·17·18대 의원을 지냈다. 홍 부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나웅배·한승수·강경식 부총리는 전현직 의원 신분이었다. 4선 의원인 나웅배 부총리는 공직을 끝으로 정치를 접은 반면 한승수 부총리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승리해 3선의 관록을 쌓았다. 하지만 강경식 부총리는 외환위기 초래 논란에 16대 총선(무소속)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못했다.

김영삼(YS) 정부 마지막 경제수장인 임창열 부총리는 김대중(DJ) 집권 1년 차에 치러진 2회 지방선거에서 여당 소속으로 경기지사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김대중·김종필(DJP) 연립정부는 수도권 광역단체장 3곳을 싹쓸이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DJP 연합에 균열이 가면서 패배가 잇달았다.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은 16대 총선 당시 분당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강 전 장관은 자신의 이름 석 자조차 모르는 유권자가 태반인 것을 알고 적이 당황했다는 일화는 관가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금배지를 단 후 3선 의원을 지냈다. 동력자원부·노동부·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아 ‘직업이 장관’이라는 진념 부총리는 여당의 거센 압박 끝에 2002년 경기지사에 도전했으나 쓴잔을 마셨다. 이후 그는 정치권과 담을 쌓았다.

경제수장의 선거 흑역사는 참여정부 초대 김진표 부총리의 17대 국회 입성으로 깨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경제부총리의 선거 차출은 없었지만 전현직 의원(박재완· 최경환·유일호)이 기용됐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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