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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엄포에 또 백기 든 서울교통공사

노조 농성이어 업무지시 거부에

열차 탑승 12분 연장 결국 철회

자동화 이어 근로개선도 '도루묵'

중재 안거쳐 불법 논란 큰데다

내부서도 "노조 궤변" 지적 불구

잇단 개혁 무산 선례될까 우려도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과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이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다음날 사실상의 파업인 ‘부당업무지시 거부’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변재현기자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온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글. /블라인드앱 캡처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두 달 동안 노사 갈등의 핵심이었던 ‘기관사 열차 탑승 시간 12분 연장’ 방침을 철회했다. 공사 직원들의 익명게시판에서도 노조의 투쟁이 근거가 없는 ‘궤변’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공사가 백기를 든 셈이다. 공사는 지난해 전자동운전(DTO·무인 운전) 도입에 이어 근로조건 개편도 노조의 천막 투쟁에 밀려 포기했다. 이 때문에 노동개혁 조치를 내놓을 때마다 노조 반대에 무위가 되는 ‘안 좋은 선례’로 굳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정균 서울교통공사 사장직무대행은 20일 서울시청에서 “설 명절을 앞두고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고심 끝에 4.7시간으로 12분 조정했던 운전시간 변경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노조가 다음날 오전4시부로 단행하겠다고 했던 ‘부당 업무지시 거부’도 없던 일이 됐다.





공사 노조는 1~4호선 기관사들의 열차 탑승 시간을 현 4시간30분에서 4시간42분으로 연장하도록 공사가 지시한 것이 노조와 합의하지 않은 부당 업무지시라며 이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서울지하철 파업’이다. 공사는 기관사의 업무는 열차 탑승 외에도 준비정리·중간대기 등을 포함해 승무 시간을 12분 늘려도 전체 근로시간에는 변화가 없으며 이 정도의 자구노력이 없다면 노사가 합의한 209명 인력 증원을 서울시에 건의하기 힘들다고 맞섰다. 노조는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시청 옆에 천막을 치고 교대로 숙식하는 천막 투쟁에 이어 시청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부당 업무지시’는 벼랑 끝 전술과도 같았다.

‘공사가 노조의 몽니에 물러섰다’는 비판은 불가피해 보인다. 사내에서부터 노조의 주장에 논리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익명게시판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는 “노조가 시켜서 집단적으로 작업을 거부하는 것은 파업인데 노조는 정당한 작업거부이니 파업이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궤변 아니냐” “애초에 좀 정당한 주장을 하던가. 노조부터 기관사 편이다” “승무(기관사)가 아집으로 똘똘 뭉쳤다”는 글이 올라왔다.

실제로 이번 ‘부당 업무지시 거부’는 쟁의찬반투표와 지방노동위원회 중재도 거치지 않은 변칙적인 파업으로 시행됐을 때는 ‘불법 파업’ 시비를 겪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더구나 이번 파업은 ‘승무의 아집’으로 비치기도 했다. 기관사들은 교대근무를 하므로 한 기관사가 사정이 생겨 출근하지 못하면 다른 기관사가 이를 대체해야 하고 그 결과 초과근무수당이 발생한다. 공사는 기관사들이 12분 열차를 더 타면 수당 지출이 주는데다 증원을 완료하면 인력 부족 문제가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봤지만 이조차도 노조가 거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사가 개혁적인 안을 내놓으면 노조가 극렬 반대하고 결국 무위로 돌아가는 선례가 굳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공사는 지난해에도 8호선에 기관사가 탑승하는 전제로 열차 운전을 전체 자동화하는 DTO를 시범 도입하기로 했지만 노조의 단식 투쟁 끝에 사회적 합의체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사회적 합의체 논의는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최 사장 대행은 “전향적으로 협조하고 대화하면 잘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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