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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에 사는 50대 가장 A씨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말다툼이 시작됐다. ‘돈도 못 벌어다 주면서 뭔 말이 많으냐’며 아내가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자 격분한 A씨는 흉기로 수차례 아내를 찔렀다. 결국 A씨는 살해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비극이 벌어진 건 다름 아닌 지난해 설 연휴였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웃음꽃을 피워야 할 명절 연휴에 오히려 가정폭력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분담이나 부모봉양 등 그동안 쌓여온 가족 내 갈등이 명절을 계기로 한꺼번에 표출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누구나 행복한 명절 연휴가 되기 위해서는 가정폭력을 엄연한 범죄로 인식해 처벌하는 것과 함께 가족 간에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설 연휴 기간 ‘112 신고’로 접수된 가정폭력은 하루 평균 954건으로, 평소(660건) 대비 44.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지난해 추석 연휴 기간 접수된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일 평균 1,019건으로 평소보다 54.4%나 급증했다. 지난해뿐 아니라 지난 2017년과 2018년에도 설과 추석 연휴 동안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평소보다 40~50%가량 늘어났다.
웃음꽃이 피어야 할 명절에 되레 가정폭력이 늘어나는 것은 서로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면서 그간 묵혀둔 불만들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부모부양과 재산상속 등을 둘러싼 형제간 갈등부터 고부갈등과 부부갈등, 정치적 이슈에 관한 세대 간 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경찰 관계자는 “아무래도 온 가족이 다 모이는 명절에는 의견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표출될 수밖에 없다”며 “더욱이 가족끼리 술을 마시다 보면 평소에는 참고 넘어갈 문제도 민감하게 반응하다 폭력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명절 연휴가 잠재된 갈등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명절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아무리 가깝고 편한 가족끼리라도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 아동학과 교수는 “남녀와 세대 간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가족 간에 서로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며 “특히 세대 간 의견이 엇갈리는 민감한 사회·정치이슈는 가급적 대화의 주제로 삼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의 가사노동이 집중되는 시기인 만큼 부부끼리 집안일을 분담하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가정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심각한 사회범죄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재연 여성의전화 인권국장은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정폭력을 단순한 부부싸움이나 가족 간 갈등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며 “가정폭력을 엄연한 범죄행위로 인식하고 가해자에 대한 실질적 처벌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은 오는 27일까지를 ‘설 명절 종합치안활동’ 기간으로 정하고 가정폭력의 징후가 있는 가정을 파악해 사전 모니터링 등 예방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특별관리대상으로 선정한 가정들을 방문해 경각심을 높이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실제 가정폭력 발생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상·허진기자 kim01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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