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는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최초의 근대적인 계획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조성하면서 측근과 신하들에게 길가의 부지를 나눠준 데서 유래한다. 다차가 원래 ‘하사한 땅’이라는 뜻이자 우크라이나어로는 ‘선물로 준 땅’이라는 것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에는 다차를 보유한 것 자체가 왕실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명예와 부를 상징했다. 다차는 귀족들의 여름별장으로 자리 잡으며 당대 지식인들의 대화와 토론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다차는 스탈린 시절까지 당 핵심 지도자나 예술인들에 대한 포상수단으로 이용되는 데 머물렀다. 다차가 본격적인 대중화 단계에 접어든 것은 1950년대 후반 들어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부터다. 정부는 직장인들에게 도시 외곽에 600㎡(약 180평)의 땅을 무상으로 나눠줬고 여기서 ‘600 다차’라는 말이 생겨났다. 일부에서는 러시아 국민의 70%가 다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통계까지 내놓고 있다. 매년 5월이면 주말마다 러시아 도심의 외곽도로가 다차로 향하는 자동차들로 몸살을 앓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지면서 시민들이 대거 다차로 탈출하는 소동이 벌어진다는 소식이다. 모스크바시가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자가격리를 명령했기 때문이다. 매년 농작물을 심었던 다차가 이제 러시아인들의 마지막 피난처로 변신했다니 시대를 앞선 조상들의 지혜에 고마워할 일인지 모르겠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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