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에서 여러 명의 상인들이 길고양이의 목에 줄을 감고 쇠꼬챙이로 찔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백주대낮에 발생한 ‘길고양이 학대 사건’에 사람들은 공분했다. 이를 규탄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삽시간에 수만명이 서명했을 정도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상인은 “전후사정을 봐 달라”며 학대가 아니었다고 억울해한다. 그날 동묘시장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12일 저녁 서울경제와 만난 동묘시장 상인 A씨는 “인터넷에 소문이 잘못 퍼졌다”고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A씨는 학대 가해자로 알려진 B씨의 부인이다. 동묘시장에서 함께 시계방을 운영하고 있다. A씨는 “그날 오전 11시 50분쯤 고양이가 다른 가게에서 쫓겨나 몹시 흥분한 상태로 우리 가게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고양이가 향한 곳은 시계방 벽과 캐비닛 사이의 빈 공간. A씨는 “내가 평소 놀라면 혀가 꼬일 정도로 겁이 많은 편인데 덩치 큰 고양이가 계속 그르렁대 너무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A씨가 서울경제에 제공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A씨 남편 B씨가 담요를 들고 고양이를 꺼내기 위해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고양이는 이미 몹시 사나워진 상태여서 꺼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주변 상인 구모(33)씨는 “고양이가 시계방에 가기 전에 다른 상점으로 들어갔는데 그때도 상점 주인분이 힘들어했다”며 “간신히 상점에서 내보냈는데 고양이가 힘이 정말 세고 발톱도 돌출돼 있어서 젊은 나도 무서웠다”고 떠올렸다.
B씨가 고양이를 꺼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사이 A씨는 가게 밖에서 119구급대와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A씨는 “동물 구조를 맡고 있는 다산콜센터에서는 점심시간이 1시까지라고 해서 별 도움을 받지 못했고 영업을 해야 하는데 그 시간까지 흥분한 고양이를 데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상인들은 결국 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고양이를 묶은 채 끌고 나왔다. A씨는 “올가미를 배에 묶으려 했는데 고양이가 움직이다가 목으로 줄이 갔다”며 “가게 밖에서 바로 풀어주려고 했지만 다른 가게로 다시 들어갈까봐 박스에 담아 청계천에 방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쇠꼬챙이’로 알려진 물건은 셔터를 내릴 때 쓰는 도구”라며 “고양이가 자지러지게 흥분한 상태라 손으로 잡으면 다칠까 봐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고양이는 119구급대가 구조해 현재 서울시와 연계된 동물병원이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 당일 한 행인이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며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다. 해당 글에서 작성자는 ‘동묘시장에서 상인들이 임신한 고양이를 목줄로 묶고 내동댕이쳐서 토하고 피를 흘렸다’고 주장했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종로구청과 112 등에 신고했고 각종 SNS에 사진을 공유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동묘시장 임신한 고양이 학대사건 고발합니다”라는 청원까지 올라와 14일 오전 기준으로 약 5만7,000명이 서명했다. 사건이 화제가 되자 다수의 언론사가 이를 기사화했고 비난 여론은 더욱 확산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A씨와 B씨가 운영하는 가게의 상호명과 B씨의 연락처가 공개됐다는 점이다. ‘고양이가 임신했다’ ‘쇠꼬챙이로 항문을 찔렀다’는 등 사실과 다른 이야기도 퍼졌다. B씨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해 죽어버리라고 소리치는 등 욕설을 한다”며 “CCTV를 보고 판단하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심한 욕설이 담긴 문자메시지가 쉴 새 없이 쏟아지자 B씨는 12일 이후로 자신의 휴대폰 전원을 꺼 둔 상태다.
관할인 혜화경찰서는 이 사건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A씨는 ”남편이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면서도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고양이를 무지막지하게 학대했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A씨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고양이를 내동댕이친 적도 없고 피도 나지 않았다”며 “현재 남편이 휴대폰을 쓸 수 없어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제발 인권침해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