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정치 1번지’ 종로 당협위원장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황 전 대표는 현재 공식적으로 종로 ‘조직위원장’으로 당협위원장이 아니다. 황 전 대표가 지난 총선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패배한 후에도 종로를 떠나지 않고 오히려 지역 기반을 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종로 당협위원장이 되기 위해 당무감사를 받고 공식 직함을 얻은 후 서울시장과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통합당은 강경보수 세력과 결별을 선언했는데도 종로에서 기반을 다지는 황 전 대표의 행보에 제동을 걸지도, 그렇다고 대놓고 응원하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조직위원장이지만, 당협위원장입니다 |
2일 통합당 서울시당 홈페이지에 따르면 황 전 대표는 지역구 기초의원 후보 등을 추천할 권한을 가진 ‘당협위원장’으로 명시돼 있다. 하지만 서울경제신문이 확인한 결과 그는 당협위원장이 아니다. 황 전 대표는 당협위원장보다 권한이 제한된 조직위원장이다.
조직위원장인 탓에 황 전 대표는 통합당 전국위원회와 같은 공식적인 당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광역의원 등을 공천관리위원회에 추천할 권한도 없다. 무엇보다 조직위원장은 선거법을 적용받지도 않아 다음 선거 출마 후보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전 대표는 원외 당협위원장 오찬 모임에 초청되거나 비공식적인 내부 회의에 참석하고, 심지어 일부 외부 행사에서는 당협위원장으로 소개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론 당협위원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통합당 조직국은 “홈페이지에 따로 ‘조직위원장’ 메뉴가 없어서 ‘당협위원장’으로 올라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말할 때는 (황 전 대표를) 당협위원장으로 부른다”면서도 “정확한 명칭은 조직위원장이 맞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서울시당 소속 한 당협위원장은 황 전 대표가 당협위원장으로 ‘승격됐다’고 표현했다.
황교안, 종로에 정치생명 걸었다 |
황 전 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놓고도 종로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장학재단 설립을 추진하는 등 지역 기반을 다져왔다. 이는 당협위원장의 부재로 당협 조직이 무너진 척박한 종로 땅에 깃발을 세우겠다는 신호다.
당내에선 황 전 대표가 종로에 자신의 조직을 뿌리내리면 내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포함해 대통령 선거와 지방의원 선거 때까지 원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황 전 대표는 리얼미터에서 진행한 8월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홍준표 무소속 의원에 이어 2.9%의 지지를 받아 여전히 주요 대선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종인, 강경보수 세력 물갈이 집도 |
문제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혁신을 완성하기 위해 당무 감사 칼을 꺼낸 점이다. 통합당은 당명과 정강정책 개정에 이어 9월 전국 253개 지역구 당협위원장을 최대 169명까지 물갈이할 예정이다.
통합당은 ‘호남 껴안기’와 중도층을 겨냥한 ‘좌클릭’ 전략에 힘입어 김 위원장 취임 후 3달 만에 당 지지율이 20%대에서 30%대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광복절 집회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논란이 불거지자 통합당 지지율이 다시 30.1%로 하락해 20%대로 추락할 위기에 놓였다. 이에 당 지도부는 광복절 집회를 비롯한 강경보수 세력과 선을 그은 상황이다.
황 전 대표가 당협위원장에 공식적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당무감사 면접을 봐야 한다. 통합당 관계자는 “황 전 대표가 종로에 남아 있고 면접을 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태극기 세력의 지지를 받은 황 전 대표의 당무감사가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가오는 당무 감사에서 광복절 집회에 참여했던 민경욱·김진태 전 의원 등은 낙제점을 받아 당협위원장 직을 상실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조 '전광훈 리스크' 황교안의 운명은? |
이 때문에 김종인 비대위원장으로 선장이 바뀐 통합당이 황 전 대표에 대해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지가 중요하다. 황 전 대표는 통합당에 소위 ‘전광훈 리스크’를 떠안기고 총선에서 참패했다.
황 전 대표는 21대 총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죽기를 각오하겠다”며 단식 투쟁에 들어갔을 당시 그는 전광훈 목사와 함께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집회 연단에 올랐다. 전 목사가 건국을 부정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살려두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할 동안에도 그 옆을 지켰다. 통합당 관계자는 “우리 당이 8·15 광화문 집회를 주도하지도, 나가지도 않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황교안 전 대표와 전광훈 목사가 함께 선 모습을 연상해 바라본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황 전 대표의 당무 감사 운명은 점칠 수 없다. 황 전 대표는 유승민 전 의원의 새로운보수당과 합치며 뿔뿔이 흩어진 보수진영을 ‘통합’한 성과도 있다. 또 황 전 대표는 직접 김 위원장의 자택을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김 위원장의 영입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자신을 당에 영입한데다 여전히 대선 주자에 이름을 올린 황 전 대표를 당무 감사를 통해 물갈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혜린기자 rin@sedaily.com